그리스도인의 자유(5): 자유, 지식 그리고 죄

고린도전서 8장은 고린도 교회에 분란을 일으켰던 “회색지대 질문”에 대한 바울의 답변이다. 바울은 우상에게 바쳐진 고기를 먹는 문제에 대해 단순히 “된다” “안된다” 식의 답변을 하지 않았다. 바울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자유의 목적과 그들의 행동이 가지는 의미에 대해 생각할 수 있도록 도왔다. 바울은 사람들이 비교적 양심이 그렇게 자유롭지 않은 사람들에게 미칠 자신들의 영향력을 배려하기를 원했다. 우상에게 바쳐진 고기를 먹느냐 마느냐 하는 것이 오늘날 교회의 사람들이 당면한 문제는 아니겠지만, 바울의 가르침은 오늘날 우리에게 닥쳐올 수많은 회색지대 문제들에 대해 많은 실용적인 도움을 제공한다.

먹는  것

우리가 이미 살펴보았듯, 고린도교회를 향한 바울은 고기를 먹는 자들의 자기 변호에 대답한다. 바울은 그들이 내세우는 원칙에는 동의했으나, 그는 그리스도인의 삶이 포함하는 또다른 중요한 요소들을 제시한다.

바울이 한편으로 주장하는 진리는 음식을 먹는 것, 혹은 먹지 않는 것이 그것 자체로 영적인 의의를 가지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먹는 것이 “우리를 하나님 앞에 세우지”못한다(고전 8:8) 먹지 않는 것도 우리를 하나님께 더 가까이 이끌거나 하나님의 칭찬을 받게 하지 못한다. 일반적인 요점은 이것이다. 하나님께서 금지하지 않으신 것을 행하는 것은 그분을 향한 우리의 관계에 의미있는 차이를 만들지 않는다. 그것들은 영적으로 중립적이다. 음식은 그것에 대한 탁월한 사례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몸을 향한 관심과, 우리의 상식은 우리가 얼마나 먹을지, 또 무엇을 먹을지에 주의하도록 한다. 탐식은 해롭고 알러지반응이 있는 음식을 먹는 것은 몸에 좋지 않다. 지성이 있고 성숙한 사람은 그런 일을 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 자체로 먹거나 먹지 않는 것이 영적인 의의를 가지는 것은 절대 아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점을 확실히 하셨다. “무엇이든지 밖에서 사람에게로 들어가는 것은 능히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하되”(막 7:15) 주께서 베드로에게 “죽여서 먹으라”라고 명령하신 것은 비유적으로 이방인을 받아들이라는 것이기도 하고, 문자적으로 전에는 부정한 것으로 여겨졌던 음식을 먹으라는 뜻이기도 하다(행 10:9~16) 그리고 바울은 디모데에게 모든 음식을 감사함으로 받으라고 말했다.(딤전 4:4)

어디서 어떻게 먹을 것

음식은 하나님께, 또한 하나님 앞에 우리가 설 수 있는가에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 그러나 음식은 하나님의 자녀들 중 어떤 이들의 양심에는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원래라면 잘못된 것이 아니었을 것들도 그것이 “약한 자들에게 거치는 것”(고전 8:9)이 된다면 잘못된 것일 수 있다. 분명히 어떤 고린도 신자들은 그러한 자유를 감당할 수가 없었다; 우상에게 바쳐진 고기를 먹는 것은 그들을 자신들이 한때 구원받았던 구덩이로 다시 몰아넣었다. 만약 미성숙한 신자가 자신의 양심을 괴롭게 하는 행동을 보게 된다면 그의 영적인 삶은 해를 받을 것이다. 우리는 어떤 경우에도 형제자매 그리스도인들의 양심이 멀리하는 것을 하도록 독려해서는 안된다.

성숙한 신자라면 응당 가족모임 등에서 “우상의 집에 앉아 먹는 것”(고전 8:10)이 자신에게 아무 해를 끼치지 못한다는 것을 안다. 그는 이방 미신을 받아들이지 않고 또한 이방 풍속을 행하지도 않지만, 그는 이방 사람들과 교류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는 영적으로 강하기 떄문이다;그는 영적인 지식이 있다. 그러나 만약 양심이 약한 그리스도인이 다른 신자가 우상의 집에서 먹는 것을 보게 되면, 약한 형제는 아마도 자신의 양심을 거슬러 똑같은 행동을 하고싶은 유혹을 받게 될 것이다. 결과적으로, 바울은 말한다 “네 지식으로 그 약한 자가 멸망 하나니 그는 그리스도께서 위하여 죽으신 형제라”(고전 8:11) 강한 신자가 약한 신자를, 그가 감당할 수 없는 상황으로 이끎으로써 죄를 짓게 만드는 것이다.

다른 신자가 그의 양심을 위반하게 만드는 것은 언제나 옳지 않다. 그렇게 하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위하여 죽으신 형제”를 망쳐놓을 위험을 수반한다. 우리가 가진 그리스도인의 자유는 같은 값으로 구원받은 그리스도인 형제와 자매를 희생해가며 사용되어서는 안된다.

그리스도인의 양심의 소리는 성령께서 사용하시는 도구이다. 만약 믿는자의 양심이 약하다면 그것은 그가 영적으로 약하고 성숙하지 못하기 때문이지 그 양심을 이끄는 힘이 약해서가 아니다.

양심은 우리를 영적인 해로움으로부터 지키시는 하나님의 경보시스템이다. 우리가 성숙해질수록,우리의 양심은 우리가 더 많은 곳을 갈수 있게 하고, 더 많은 것을 할 수 있게 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더 큰 영적인 힘과, 더 높은 영적 판단력을 가지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작은 아이는 뾰족한 물건을 갖고 놀거나, 길가로 뛰어들거나, 위험한 기계 근처에 있어서는 안된다. 그러나 그런 제약들은 그가 점점 자라가고, 또한 무엇이 위험한지 아닌지 알아감에 따라 점점 줄어들기 마련이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영적 자녀들의 양심을 제한하셨다. 그들의 지식과 성숙함이 더해감에 따라 양심의 제한선도 점점 확장된다. 우리는 우리의 양심이 허락하기 이전에 우리의 행동과 습관을 멋대로 확장해서는 안된다. 그리고 우리는 간접적으로나 직접적으로나 다른 어떤 사람들에게도 그것을 격려해선 안된다. 바울이 기록하듯, “형제에게 죄를 지어 그 약한 양심을 상하게 하는 것이 곧 그리스도에게 죄를 짓는 것이니라”(고전 8:12) 형제를 넘어뜨리는 것은 그 형제에게 죄를 짓는 것을 넘어서는 의미를 가진다.

바울은 다른 믿는 이를 실족케 하느니 평생동안 고기를 먹지 않겠다고 말한다. 우리는 우리의 자유를 언제나, 또한 얼마만큼이든지 기꺼이 다른 형제자매들-그리스도께서 위하여 죽으신 귀한 영혼들이요 우리가 사랑해야 하는 자들-을 돕기 위해 제한하기에 열정을 쏟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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