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이 말하는 본이 되는 성품

지난 번 글에서는 디모데서 4장을 통하여 목회자가 경건의 전념하여 본을 보이는 것이 얼마나 성경적이고 중요한 것인지 다루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바울이 디모데로 하여금 본을 보이라고 명한 5가지 성품에 대하여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바울이 젊은 목회자 디모데에게 본을 보이라고 명하며 주는 5가지 성품을 통하여 목회자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모든 성도들이 도전받고 본이 되는 성품들을 이루기를 원합니다.

첫번째 경건의 성품은 ‘말’입니다.

헬라어로 ‘로고스’ 라는 이 단어는 영어로는 speech, 한글로는 말, 언행을 뜻합니다.  우리 입에서 나오는 말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개인적인 대화가운데 나오는 말과 공적인 곳에서 나오는 말 모두를 포함합니다. 여러가지 성품중에서 제일 먼저 바울이 권하는 경건의 성품은 바로 ‘말’입니다. 그것은 입에서 나오는 말 뿐만 아니라 말을 하는 태도도 포함합니다. 말이 그만큼 중요한 이유는 우리 입에서 나오는 말이 곧 우리자신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 입에서 나오는 모든 것들은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마태복음 15:18절에서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입에서 나오는 말들은 우리 마음 속을 반영해 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야고보 3장 2절에는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라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 가르칩니다. 우리가 말에 있어서 완벽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은혜로 다스릴 수 있고 믿는 자들이 듣고 따라할 만한 본이 되도록 노력하여야 합니다.

여러분의 입에서 나오는 말들은 어떻습니까? 여러분의 입에서 나오는 말들이 믿지 않는 자와 믿는 자들이 보았을 때에 본이 됩니까? 여러분께서는 새로 믿기 시작한 그리스도인들과 주위에 있는 신자들에게 나의 언행을 본 받으라 하실 수 있습니까?

말에 있어서 본이 되기 위하여 거짓과  (딛 1:2; 잠 6:16-17; 엡 4:25), 더러운 말과 (엡 4:29), 비방하는 말과 (엡 4:31), 수군거리는 말들을 일절 버려야 합니다 (고후 12:20).

그리고 말에 있어 추구해야 할 것은 에베소서 4장 29절에서 가르쳐 주고 있듯이 말은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는데에 있습니다.  덕을 세우고 은혜를 끼치는 말이란 나의 입에서 나오는 말을 통하여 하나님을 높이는 것입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대화 가운데 더욱 하나님을 신뢰하고 나아가고 싶도록 동기부여를 하는 말들, 죄를 깨닫게 하고 거룩을 추구하게 돕는 말들, 대화 가운데 성경의 진리를 나눔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더욱 깨닫고 위로와 힘을 얻을 수 있게 하는 것들입니다. 즉, 여러분과 대화를 하면 그 사람이 그 대화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저희에게 주신 은혜를 기억하게 되고 하나님께 영광과 감사를 드리도록 하는 말들입니다.

두번째 경건의 성품은 ‘행실’입니다 (딤전 4:12)

말에서 본이 되는 것 뿐만 아니라 행실에 있어서도 우리는 믿는 자들과 세상에게 본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은 말을 포함한 모든 행실을 의미합니다. 첫번째 보았던 말이 귀로 듣는 영역에 속한 것이라면,  행실은 눈으로 관찰되고 보여지는 영역에 속한 것입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그의 눈에 비치는 모든 행실에 있어서 본이 되어야 한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리더를 따라가게 되어 있습니다.  보는대로 따라하게 되어 있습니다. 자녀를 키워 보신 분들은 잘 아시겠지만 자녀들은 부모가 삶 속에서 보여주는 행실을 그대로 따라 합니다.  저희가 성경의 진리를 외치면서 경건하지 않은 행실을 보이는 것을 위선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런 위선적인 가르침은 능력이 없습니다. 그와 반면에, 성경의 진리가 거룩한 삶으로 행실로 뒷받침이 될 때에 그가 하는 말에 강력한 능력을 가져다 줍니다.

성경은 거룩한 행실에 대한 가르침으로 가득 찼습니다. 베드로전서 1장 15절에서 베드로는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이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고 명하며 야고보서에서 야고보는 “너희는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 가르쳐 줍니다.

행실에 관하여 거룩해야 하는 것은 모든 신자들에게 적용이 되지만 특별히 리더들이 거룩한 행실에 있어 본을 보여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저의 관찰이 어느정도 정확하다면 교회 안에 많은 분들이 성경의 말씀을 배워서 알고 있지만 눈으로 볼 수 없는 본이 없다면, 막상 삶 속에서 어떻게 적용하고 실천할 수 있는지에 대하여  어려워 합니다. 그러나 리더들이 말씀을 몸소 실천하여 성도들에게 본을 보여 준다면 성도들은 리더의 행실을 눈으로 보고 그분들의 삶 속에서 직접 본 것을 따라 하는 것은 그렇게 어려워 하지 않습니다.

바울이 자신이 성도들 사이에서 한 행동들에 대하여 한 말을 보겠습니다.  “너희는 내게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라 그리하면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 (빌 4:9)”.  “어떻게 우리를 본받아야 할지를 너희가 스스로 아나니 우리가 너희 가운데서 무질서하게 행하지 아니하며 누구에게서든지 음식을 값없이 먹지 않고 오직 수고하고 애써 주야로 일함은 너희 아무에게도 폐를 끼치지 아니하려 함이니 우리에게 권리가 없는 것이 아니요 오직 스스로 너희에게 본을 보여 우리를 본받게 하려 함이니라”  (데후 3:7-9).

세번째 경건의 성품은 ‘사랑’입니다 (딤전 4:12)

이것은 남녀간의 사랑을 표현하는 ‘에로스’의 사랑이 아닙니다. 친구간의 사랑을 표현하는 ‘필레오’의 사랑도 아닙니다. 이 사랑은 바로 아가페 사랑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사랑’이라는 단어는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과 문화가 가르쳐 주는 감정적인 사랑과 질적으로 차이가 납니다. 성경의 사랑은 나의 감정이 어떠냐를 떠나 상대방을 안위를 위하여 스스로를 희생시키는 것에서 그 특징이 나옵니다. 이러한 사랑은 의지적이며 목적의식을 가지고 있는 사랑입니다. 사랑이신 하나님의 자녀된 우리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내야할 의무를 가지고 있습니다

교회의 리더들이, 그리고 성도들이 실천해야 할 사랑의 모습을 고린도전서 13장은 너무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 1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2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3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4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5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6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7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저희들에게 적용을 해 보겠습니다. 우리가 바른 진리를 선포하고 의로운 행실의 삶을 산다고 합시다. 그러나 형제자매를 향한 사랑이 없다면 우리의 말은 바울이 말한 대로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에 불과합니다. 그것은 참으로 요란하고 시끄러운 소리입니다. 듣는 사람으로 귀가 아프게 하는 소리입니다. 오히려 해를 끼치는 것입니다. 진리를 선포하되 진리를 선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지 않고 그 진리를 선포함으로 하나님의 성품이 바르게 전달되고 사랑으로 포장이 되어서 듣는 이로 하여금 말씀에 잘 반응하도록 해야 합니다.

사랑한다는 것은 무조건 죄까지 모두 용납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사랑한다면 ‘형제의 죄’를  지적해야만 합니다. 바울은 갈라디아서 6장 1절에서 형제들 사이에 무슨 범죄한 일이 드러나거든 온유한 심령으로 그러한 자를 바로잡으라고 명합니다. 저희가 진리를 선포하고 전할 때에 전하는 자들의 말과 행실이 온유함과 사랑으로 옷 입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데살로니가 전서 2: 8절을 보면 바울은 “우리가 이같이 너희를 사모하여 하나님의 복음뿐 아니라 우리의 목숨까지도 너희에게 주기를 기뻐함은 너희가 우리의 사랑하는 자가 되었기 때문”이라 말합니다. .좋은 일꾼은 자신의 시간, 힘을 하나님께서 그의 삶 속에 불러 주신 이들을 위하여 그들이 말씀을 온전히 받아들여 주 안에서 장성하도록 사랑으로 관계를 맺습니다. 그 사랑이 상대방에게 전달이 되도록 필요에 따라 어쩔때는 어머니의 따뜻함으로, 필요할 때는 아버지의 엄하고 강함으로 대해줍니다.

바울이 디모데에게 이런 사랑에 있어서 본이 되라고 하는데 그것은 모든 사역의 기본이 되는 것 뿐만 아니라 그렇게 했을 때에 말씀으로 인한 양육이 자연스럽게, 왕성하게 이루어질 수 있게 되기  때문입니다.

네번째 경건의 성품은 ‘믿음’입니다 (딤전 4:12)

헬라어로 ‘피스타스’ 라는 이 단어는 우리가 구원받을 때 믿는 믿음을 의미하는 단어이지만 또한 신실함을 표현하는 단어이기도 합니다. 이 구절에서의 ‘믿음’은 우리가 믿는 것들을 신실하게 살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바울은 디모데와 리더들에게 믿음의 ‘본’을 보여야 한다 가르쳐 줍니다. 솔직히 믿음대로 산다는 것은 쉬운 것이 아닙니다. 왜죠?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서 11장을 보시면 믿음의 선진들 모두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임을 증언하였다 기록합니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설령 그 약속의 결과를 이생에서 얻지 못한다 하더라도 말입니다. 그런 자들의 초점은 이 땅에 있지 않고 영원에 맞추어져 있습니다. 구원받고 주님 앞에 서기 전까지 우리는 믿음의 삶을 사는 것 입니다. 바울을 디모데에게 이런 믿음에 있어서 믿는 자들에게 믿음의 본을 보여야 한다 가르칩니다. 믿음생활은 쉽지 않습니다. 그리고 말씀을 근거하여 믿음으로 삶의 여러 형태로 나타나는 현실속에서 살 때에 많은 회색지대를 지나갑니다. 그럴 때에 지도자들을 보며 어떻게 믿음으로 반응하고 믿음으로 걷는지를 직적 보고 듣게 된다면 바른 믿음 생활을 하는데 엄청난 도움이 됩니다.  히브리서 기자가 13장 7절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너희에게 일러 주고 너희를 인도하던 자들을 생각하며 그들의 행실의 결말을 주의하여 보고 그들의 믿음을 본받으라”라고 가르쳐 준 것 처럼 말입니다.

저희들에게 적용을 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구원을 받고 교회의 리더와 선배들의 삶 속에서 그분들의 언행, 행실, 형제간의 사랑, 환란가운데서 믿음을 지키는 것들을 눈으로 직접 목격하면서 아.. 믿음생활이라는 것이 이렇게 하는 것이구나… 하고 배우며 성장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모든 성도들이 본을 보이는데까지 이르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그분들이 우리들의 본을 보고 따름으로써 믿음안에서 건강하게 성숙하여져서 그분들의 가족들 사이에서, 일터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효과적으로 사용하시는 귀한 그릇이 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마지막으로 다섯번 째 경건의 성품은 ‘믿음’입니다 (딤전 4:12)

이것은 ’하그네이아’라는 헬라어로 ‘깨끗함, 흠이 없는, 순결한’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디모데는 정절 (Purity)에 있어서 본이 되어야 했습니다.  이것은 아마 우선적으로 성적으로 깨끗해야 한다는 것일 겁니다. 그러나 성적으로도 정결한 것 뿐만 아니라 마음의 동기와 생각들도 악의가 없이 깨끗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할 것이라 생각됩니다.  성적인 타락처럼 파괴적으로 사역과 가정을 박살 내버리는 것은 없습니다. 그렇기에 리더가 되기 위하여 그리고 장성한 제자가 되기 위하여 이 영역에 있어서 흠잡을 것이 없어야 한다고 디모데전서 3장에서 감독은 책망할 것이 없으며 한 아내의 남편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하는 것입니다 (딤전 3:2).

사단은 언제나 리더들을 무너뜨리려고 온갖 수단을 가리지 않고 리더들을 공격합니다. 좋은 일꾼은 딤후 2:22에서 바울이 명한 것처럼 주를 깨긋한 마음으로 부르는 자들과 함께 의와 믿음과 사랑과 화평을 따라야 합니다.  젊은 여자에게는 온전히 깨끗함으로 자매에게 하듯 대해야 합니다 (딤전 5:2). 젊은 여자를 깨끗함으로 대하라는 원어가 지금 다루고 있는 ‘정절’과 같은 단어입니다. 올바른 정신을 가진 남자라면 자신의 친여동생을 성적인 대상으로 바라보지 않습니다. 그것은 아주 부자연 스러운 것입니다.  그런 깨끗한 마음으로 여자들을, 특히 젊은 여자들을 대하라 구체적으로 명합니다. 그리고 이런 부분에 있어서 본이 되라 명합니다.

이런 부분에서 본이 되는 것은 육체적인 면만이 아니라 정신적인 면에서도 본을 보여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누구든지 음욕을 품고 여자를 보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죄를 짓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마 5장 27-28절). 우리가 눈으로 보는 것, 생각으로도 정절을 지키는 ‘본이 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제가 TMS 에 처음 왔을때가 생각이 납니다. 신학교를 시작하기 전에 전 남자들이 여자들을 향하여 음욕을 품고 쳐다보는 것 자체가 죄란 건 알았습니다. 그러나 신학교에 와서 교수님들을 통해서 또 선배들을 통해서 성적으로 순결하기 위하여 몸소 보여주시는 정결의 삶을 보고 놀랐던 기억이 납니다. 정결한 삶을 살기 위하여 길을 가다가 자극적인 사진이 있으면 그 길을 돌아가 가고, 이메일을 보낼때에는 항상 아내를 첨부하고, 이메일이나 페이스북 계정도 함께 공유하고, 아내가 아닌 여성에게 단둘이 차를 태워주지않고, 여자와 단둘이 상담을 하지 않고 어쩔 수 없다면 문을 열어놓고 하고, 교회일로 다른 도시를 가더라도 누군가 꼭 같이 가기까지 하였습니다.

이렇게 믿음에 있어서, 아내를 사랑함에 있어서, 경건의 행실과 정결에 있어서 직접 보고 따라할 수 있었던 본을 보는 것은  저에게 큰 도전이 되었습니다. 아, 순결함은 이렇게 추구하며 지켜야 하는 구나 하고 배웠습니다. 지금 뒤돌아 보면 너무 당연한 것 같아 보이는 이런 것들이 그 당시 저에겐 신선한 충격이었고 지금은 그런 본을 따라 살고 있습니다. 형제 자매님들, 우리들의 생각과 행실의 정절에서 믿는 성적인 부분을 포함한 모든 영역에서 거짓이 없고 더러운 것을 멀리하는 순결한 자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리고 이런 영역에서 다른 믿는 자들에게 본이 되기를 바랍니다.

저희들은 지금까지 교회가 효과적으로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본이 되어야 할 5가지 성품을 보았습니다. 말, 행실, 사랑, 믿음, 그리고 정절에 대하여 배웠습니다. 여러분께서 ‘아, 그렇구나’ 하시고 다시 삶을 살아 간다면 삶 속에 특별한 변화는 없을 것 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들의 삶 속에서 이런 거룩한 성품들이 자라도록 어떻게 해야 할까요?

바울은 이것이 자연스럽게 되는 것이 아니라 운동을 하는 사람이 자기의 몸을 쳐서 복종시키며 육체의 훈련을 하는 것과 같은 연습, 연단, 훈련을 필요로 한다고 합니다. 7절과 8절에 나온 바울이 사용한 연단, 훈련이라는 의미의 ‘굼네시아’ 라는 헬라어는 영어 gymnastics 의 파생어입니다. 즉, 육상선수가 되기 위하여 음식을 가려서 먹고, 근력운동을 하며, 고된 훈련에 훈련을 거듭하여야만 육체적으로 탁월한 선수가 될 수 있듯이, 바울이 디모데에게 권하는 이 5가지 경건의 성품이 15절의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게 하기 위하여는 10절의 수고하고 힘쓰는 연단을 필요로 한다는 것입니다. 운동선수가 운동을 하는 것처럼 꾸준한 훈련을 필요로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13절에 보면, 이 모든 일에 ‘전심 전력하여’ 너의 성숙함을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게 하라고 명합니다. 한글로는 ‘전심전력’하라는 한나의  명령어가 있지만 영어로 보면 2개의 동사 명령이 있습니다. ESV 번역에서는 “Practice these things, immerse yourself in them” 이라고 되어 있고 NASB 에서는 “Take pains with these things, be absorbed in them” 이라고 되어 있고 NIV 에서는  “Be diligent in these matters; give yourself wholly to them” 이라고 번역이 되어 있습니다.  곧 연습하라, 훈련하라, 아픔을 느끼는 훈련을 하라, 자신을 던져 넣으라, 완전히 담구라, 완전히 흡수되게 하라, 온전히 드려라’ 라는 의미로 번역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경건의 본이 되기 위하여서는 흐지부지해서는 절대 이루어 지지 않습니다. 자나깨나 경건의 푯대를 향하여 끊임없는 헌신과 훈련을 통해서만 이루어 집니다.  바울은 이 것을 “I am” 의 동사를 사용하여 명하였습니다. 이 5가지 성품과 내가 마치 하나가 되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궁극적으로 우리의 본은 예수님을 닮는 것입니다. 바울이 고린도전서 4장 16절에서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 명하였습니다. 그리고 고린도전서 11장 1절에서 그것의 의미를 더욱 정확하게 표현하며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가 된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 명합니다. 저와 여러분도 바울처럼 예수를 본받는 것에 있어 전심전력하며 본이 되는 삶을 사시길 기도합니다.

The Masters Seminary 졸업 그레이스 성경교회 담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