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의 자유(3): 자유와 지식 그리고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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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눅 17:2; 롬 14:13; 고전 8:1-13

하나님의 말씀은 그리스도인의 삶의 모든 부분을 하나하나 구체적으로 지시하지는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은 성경이 정확하게 말해 주지 않는 상황이나 질문, 그리고 결정해야 할 일들과 자주 마주하게 된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은 구약의 율법으로부터 완전한 자유를 얻었지만, 여전히 성경이 구체적으로 명확히 말씀하고 있지 않은 삶의 회색 지대(Gray Area)에서 내려야 할 많은 중요한 결정들을 마주하게 된다.

그리고 이런 현실은 현대교회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초대 교회 당시 고린도 교인들도 사도들의 글이나 구약 성경에서 명확히 언급하지 않은 수많은 문제들과 부딪혔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사도 바울의 인도와 조언을 구하는 편지를 보냈고(고전 7:1), 이에 대한 바울의 회신은 우리에게 도움이 된다. 고린도 교회에 보내는 바울의 이 서신은 어떻게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주어진 자유를 사용하며 올바른 결정을 내려야 할지에 대한 성경적인 원칙을 제공해 준다.

특히, 바울이 고린도 교인들에게 보내는 서신에서 권면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이 자유를 행동에 옮기기 전에 먼저 사려 깊게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바울은 그들이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 모범이 됨과 동시에 그들의 결정이 그들 자신의 삶에 끼칠 영향 또한 고려해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는 앞으로 며칠 동안 그들이 내리는 결정에 있어서 그들 자신과 다른 사람 모두를 고려하라는 사도의 훈계로 시작하는 바울의 지침들을 살펴볼 것이다.

형제를 실족케 하는

바울이 그의 편지를 읽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자신의 전 사역 기간 동안 계속해서 권면하고 촉구했던 것은 그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미치는 영향력을 깊이 생각해야 하고 또한 다른 사람들을 죄에 빠뜨리는 것을 피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로마서 14장 13절에서 그는 말한다. “그런즉 우리가 다시는 서로 판단하지 말고 도리어 부딪힐 것이나 거칠 것으로 형제 앞에 두지 아니할 것을 주의하라” 사도의 말은 다른 이들을 죄로 이끄는 사람을 향한 엄중한 그리스도의 경고를 반영하고 있다.  “저가 이 작은 자 중에 하나를 실족케 할찐대 차라리 연자맷돌을 그 목에 매이우고 바다에 던지우는 것이 나으리라”(눅 17:2)

이 원칙이 바로 고린도 교인들의 질문에 대한 바울의 대답에 그대로 적용이 되었다.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자신들의 자유를 사용하는 것에 거리낌이 없을 수 있지만, 사도는 그들이 그렇게 자유를 사용하는 것이 우선순위가 아님을 확실히 하고자 했다. 우선순위는 그들 주변의 다른 형제들의 영적 성장이어야 했다. 그리고 바울은 바로 그 점을 고린도전서 8장 13절에서 드러낸다. “그러므로 만일 음식이 내 형제로 실족케 하면 나는 영원히 고기를 먹지 아니하여 내 형제를 실족치 않게 하리라”

우상숭배, 제사, 그리고 음식

여타 다른 다신론적 문화와 같이, 로마 사회는 매우 미신적이었다. 로마 사람들은 매일의 삶의 모든 측면에서 하나의 신 또는 많은 신들을 갖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의 악한 영들 믿고 있었다. 그들의 제사 제도는 악한 신들로부터 보호받고 신들부터 호의를 얻고 이를 유지하기 위한 것이었다.

음식 제물은 가장 흔한 것이었고, 주로 고기가 바쳐졌다. 제물들은 주로 3등분되었다. 3분의 1은 제단에서 태워졌고, 나머지 두 조각은 제사장들과 신전의 관리들에게 나누어졌다. 우상숭배가 문화를 지배했기 때문에, 고기가 많이 남게 되었고, 그것들은 시장에서 거래되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제사 고기를 피하는 것은 고린도 사람들에게 사실상 불가능했을 것이다. 이 고기들은 제물로 바쳐진 것이어서, 악한 영들의 영향력이 제거된 것으로 여겨졌기 때문에 더 높은 가치가 부여되었고, 주로 잔치나 결혼 그리고 다른 사회적 예식들에 사용되었다. 그리스도인들은 아마도 그런 예식들 중 몇몇은 피했을 수 있으나, 만약 그들이 교회 바깥의 어떤 자와 개인적인 관계를 가지고 있었다면 그들은 머지않아 제사에 사용된 고기를 먹을 것인가 하는 문제에 직면하게 될 것이었다.

고린도전서를 살펴보면 교회 내에서 우상에게 바쳐진 고기를 대할 때에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가에 대하여 교회 내에서 분쟁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교회의 많은 사람들은 로마의 이방 문화로부터 구원받은 자들이었다. 그래서 우상숭배와 연관되어 있는 행동, 심지어 아주 단순한 행동뿐만 아니라 먹는 음식도 그들의 예민한 양심을 괴롭히고 그들의 영적 성장에 방해가 될 수 있었다.

그러나 좀 더 성숙한 신앙인들은 우상숭배는 공허하고 헛된 것임을 이해했고, 또한 제물로 바쳐진 그 고기 또한 그저 고기일 뿐인 것을 알았다. 그들은 깨끗한 양심을 가지고 이것을 먹었지만, 이 문제로 분란이 일어나 이 문제에 대해 바울의 지도를 부탁한 자들이었을 것이다.

지식 그리고 사랑

고린도 교인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나타나는 바울의 대답은 우상에게 바쳐진 음식을 먹는 것을 변호하는 것이다. 고린도전서 8장 1절에서 바울은 고린도 교인이 자신들의 변호를 위해 사용했을 말을 인정한다. “우리가 다 지식이 있는 줄을 아나” 이것은 그 자체로, 부분적으로 옳을 수 있으나, 자기중심적 진술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하고 안다는 데서 오는 우월감을 반영한다. 하지만 바로 그 나머지 반의 구절에서 바울의 말을 살펴보자. “지식은 교만하게 하며 사랑은 덕을 세우나니”

성숙한 고린도인들은 이방 신들이 진짜가 아님을 알았다. 그리고 그들에게 바쳐진 고기 또한 영적으로 아무런 위해가 되지 못함을 알았다. 그러나 그 지식은 그들 스스로에게만 집중하게 만들었다. 그들은 그들 자신의 개인적인 범위 안에서만 진리를 중요하게 여겼다. 그들은 다른 사람에게 무감각했고, 특히, 고린도 교회 내에서 “이 지식을 가지지 못한”(고전 8:7) 이들에게 무감각했다.

바울이 이전에도 말했듯, “만일 누구든지 무엇을 아는 줄로 생각하면 아직도 마땅히 알 것을 알지 못하는 것”(고전 8:2)이다. 그들의 교만은 그들이 스스로 생각하는 것만큼 많이 알지 못한다는 것을 증명했다. 그들은 아마도 옳은 교리적 지식을 가지고 있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실제적으로 그들은 다른 그리스도인들과의 관계 속에서 무지하게 행동했다. 사랑 안에서 행하기를 실패함으로써, 그들의 지식은 무가치한 것으로 여겨졌다.

성숙한 신앙인들을 향한 바울의 반응은 그들이 어떤 것을 더 중요하게 여겨야 하는지 그 방향을 제시한다. 바로 다른 사람들이다. 그들의 자유를 아무 생각 없이 사용하기보다는 그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칠지를 고려했어야 했다. 달리 말하자면, 그들이 깨끗한 양심으로 먹을 수 있다는 것이 그렇게 해야만 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은 교회 내의 형제자매들을 진지하게 생각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그들 자신의 행동이 다른 사람의 신앙을 공격하고, 혼란스럽게 하고, 약화시킬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해야만 했다. 그것을 무시함으로써, 고기를 먹은 것은 자유를 행한 것이 아니라 교만을 행한 것이 되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의 자유를 사용함에 있어서 이러한 희생적인 자세를 가져야만 한다. 우리가 자유를 가졌다는 것이 우리가 이 자유를 끝까지 최대한 할 수 있는 만큼 사용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대신, 우리는 우리의 행동으로 인해 실족할지 모르는 사람들의 유익을 위하여 사랑 안에서 우리 자신을 절제하기를 원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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