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주권적인 선택을 믿는다면 당신은 전천년주의자가 되어야 합니다 – 상

Heroes' Square, Budapest, Hungary

이 글은 2007년 목회자 컨퍼런스 중, 존 맥아더 목사님의 “Sovereign Election, Israel & Eschatology” 설교 내용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저자의 해설을 붙이고 풀어서 번역하였습니다. 설교 원문은 들으시려면 클릭하세요. https://www.gracechurch.org/sermons/332

 지난번 금주의 말씀을 통해서 세대주의에 대한 잘못된 오해와 올바른 세대주의 신학, 더 자세히는 저희가 믿고 가르치는 미래주의적 전천년 신학이 무엇인지에 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성경의 영감과 무오성을 절대적으로 믿으며, 하나님께서 태초부터 예정하신 우리의 구원과 성화, 영화롭게 됨을 믿고 하나님의 말씀이 공격을 당할 때 누구보다도 먼저 하나님 말씀의 진리의 수호를 위해 싸울 준비가 되어있는 신실한 목회자나 성도들 사이에서도 종말 신학은 크게 세대주의와 언약주의로 나뉩니다. 이 두 진영은 모두 그리스도안에서 구원받은 형제들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성경 말씀이 수많은 구절들로 증거하고 있는 이 종말 신학에 관해서 서로 다름에 만족하고 그 다름을 심지어 즐기는 태도를 가져서는 안됩니다. 저번 시간에 왜 종말 신학이 그리스도인들에게 중요한지에 대해서 알아보았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마지막 때를 어떻게 말씀하고 계신지 겸허하고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말씀 앞에 더 깊이 그리고 진지하게 접근해야 합니다.

이스라엘과 하나님의 주권적인 선택하심(Sovereign Election)

저번 글에서 설명해 드린 대로 성경해석학은 세대주의와 언약주의를 나누는 뿌리가 됩니다. 일관된 원리를 가지고 성경을, 특히 구약의 예언의 말씀을 해석하면 구약의 이스라엘의 언약을 올바로 해석하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이스라엘과 교회에 대한 올바른 분별을 갖게 되고 자연스럽게 문자적인 미래주의적 전천년이라는 결과에 이를 수밖에 없습니다. 논리적인 흐름입니다. 성경해석학 – 구약의 언약 – 이스라엘 – 미래주의적 전천년. 그렇게 때문에 이스라엘을 정확히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성경은 하나님을 200번 넘게 ‘이스라엘의 하나님’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한 성경 전체에서 2천 번이나 넘게 이스라엘이 언급이 되는데 단 한 번도 이스라엘이 아닌 의미로 쓰인 적이 없습니다. 성경에서 이스라엘은 항상 이스라엘을 의미합니다. 신약에서도 73회나 이스라엘이 언급되는데 모두 나라와 민족 이스라엘을 의미합니다. 성경의 전체 70퍼센트가 이스라엘의 역사입니다. 이렇듯 성경에서 이스라엘은 이스라엘이 아닌 다른 의미로 사용된 적이 없고,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합니다. 이 이스라엘의 이야기가 그저 한 줌의 연기처럼 사라져 버린다고 생각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여기 종말 신학을 이해하는 중요한 열쇠가 있는데 그것이 바로 이번 글에서 설명할 내용입니다. 바로 이스라엘과 하나님의 선택하심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주권적인 선택과 예정하심을 믿는다면, 이스라엘도 틀릴 수 없고, 그렇다면 종말 신학도 틀릴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 주장과 정 반대되는 신학이 소위 대체신학(Replacement Theology)이라고 불리는 주장입니다. 대체신학은 신약성경의 렌즈를 통해서 구약을 봐야 하고, 그렇게 되면 이스라엘은 이제 없어지고 모든 구약의 언약은 교회로 전가되었다고 주장합니다. 이 대체신학이 바로 언약주의와 그에 따른 무 천년설을 형성하는 중심이 되는 신학입니다. 대체신학은 이스라엘의 불순종과 메시아를 거부한 그들의 완고함으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맺은 언약을 파기하셨고 그 언약의 축복이 이제 교회에게 넘어왔다고 말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에게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약속하신 회복의 약속, 지상 천년왕국의 성취도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들은 이스라엘의 불순종으로 말미암아 구약의 모든 저주와 심판이 이스라엘에게 주어졌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맞는 주장입니다. 지금 현재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축복 아래에 있지 않습니다. 메시아이신 예수그리스도를 거부한 그들은 현재 하나님의 저주와 심판 아래에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 그루터기, 하나님의 백성은 이스라엘에 남아있고 그들이 마지막에 언약의 성취를 누릴 것입니다.

구약의 언약을 문자적으로 해석하면 이스라엘이 천년왕국을 통해 회복될 것이라는 것은 언약주의 신학의 무천년주의자들도 동의하는 내용입니다. 자, 그렇다면 대체신학이 주장하는 대로 구약에서 배교한 이스라엘에게 주어졌던 저주와 심판이 지금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 맞다면, 그들의 주장대로 구약에서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축복의 언약이 이제는 교회에게 주어졌다는 주장 또한 맞는 걸까요? 절대 그럴 수 없습니다! 어떻게 심판의 메시지가 문자적으로 성취되었는데 축복의 메시지는 이스라엘에게 성취될 수 없을까요? 이러한 주장에 대한 어떠한 성경 본문의 정당성도 발견할 수 없습니다. 대신 우리는 이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구약의 문자적인 심판의 메시지가 성취된 방법 그대로 축복과 회복의 메시지도 성취될 것이다. 구약에 무수히 예언되었던 그리스도의 초림에 관한 예언(메시아의 성령 잉태, 베들레헴 탄생, 고난받는 종의 모습 이사야 53장 등)이 문자적으로 이루어진 것 같이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에 관한 예언도 문자적으로 이루어질 것이다. 구약의 예언은 분명히 그리스도의 재림 때 이스라엘이 누릴 지상 왕국에 대한 언약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구약의 언약과 하나님의 선택하심

 아브라함의 언약(Abrahamic Covenant)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어떤 언약을 맺으셨나요? 창세기 12장 1절입니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줄 땅으로 가라”

완전히 주권적인 하나님의 부르심이 보이시나요? 아브람이 하나님의 부르심에 어떠한 역할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선택되어 부르심을 받았을 뿐입니다. 2절과 3절에 놀라운 언약이 선포됩니다.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미래형 동사입니다. 영어 성경을 보시면 ‘I will’ 이라고 시제가 정확히 표현되어 있습니다.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I will), 네게 복을 주어(I will)…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I will).. I will, I will… 계속해서 반복됩니다. 언약의 주체가 누구입니까? 바로 하나님입니다. 아브람의 순종이 하나님의 언약을 가져왔나요? 아닙니다. 이 언약은 조건 없고 주권적인 하나님의 일방적인 언약이고 부르심이고 예정입니다.

언약은 끝나지 않았습니다(17장 7절).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 및 네 대대 후손 사이에 세워서 영원한 언약을 삼고 너와 네 후손의 하나님이 되리라”

이날 하나님께서는 아브람과 그리고 아브람의 후손인 이스라엘 백성과 언약을 맺으셨습니다. 아브람의 순종함이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어떤 조건도 없는 일방적인 하나님의 주권적인 선택이고 언약입니다. 이것이 바로 성경적인 언약을 이해하는 근본이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다른 민족보다 더 잘나거나 가치가 있어서 수많은 다른 민족 대신 하나님께 선택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태초부터 이스라엘에게 정하신 사랑으로 선택된 것 이상의 다른 이유는 없습니다. 지도자들의 무수한 죄와 백성의 불순종에도 불구하고 유다가 멸망하지 않았던 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과 세우신 언약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구원도 이와 다르지 않지 않나요? 우리가 선한 일을 행해서 받은, 조건이 달린 구원이 아닙니다. 구원받을 자격이 없고 영원한 심판으로 달려가던 우리의 영혼을 조건 없이 선택하여 구원해 주신 주님의 은혜입니다.

다윗의 언약(Davidic Covenant)

사무엘하 7장에 하나님께서 다윗과 맺으시는 언약이 있습니다.

“네 수한이 차서 네 조상들과 함께 누울 때에 내가 네 몸에서 날 네 씨를 네 뒤에 세워 그의 나라를 견고하게 하리라 그는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을 건축할 것이요 나는 그의 나라 왕위를 영원히 견고하게 하리라 나는 그에게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내게 아들이 되리니”

여기서도 다시 한번 I will, I will… 하나님의 주권적인 언약의 그대로 나타납니다. 아브라함과 맺으신 언약의 연장입니다. 메시아를 예언하는 이 구절은 다윗의 씨로부터 날 새 왕에 대한 언약입니다. 한가지 덧붙일 것은 물론 이 언약이 이스라엘 백성만의 언약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우리의 영적인 조상으로서 우리 교회(이방인)도 다 같이 이 축복에 참여하며, 천년왕국에서도 함께 그 언약의 성취에 참여하게 될 것입니다.

새 언약(The New Covenant)

세 번째로 예레미야 31장 새 언약의 말씀을 살펴보겠습니다. 신약 교회 시대의 성도들 또한 예수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새 언약에 참여합니다. 하지만 이 새 언약의 특별한 적용은 이스라엘 백성입니다. 31-34절입니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맺으리라”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 강조)

“이 언약은 내가 그들의 조상들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맺은 것과 같지 아니할 것은 내가 그들의 남편이 되었어도 그들이 내 언약을 깨뜨렸음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러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과 맺을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들의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들이 다시는 각기 이웃과 형제를 가리켜 이르기를 너는 여호와를 알라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를 알기 때문이라 내가 그들의 악행을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다시 한번 설명할 필요 없이 수많은 I will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주권적이고 일방적인, 조건 없는, 취소될 수 없는 언약입니다. 혹시 ‘하나님께서 마음을 바꾸시지는 않았나’라고 생각이 될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다음 구절은 그 생각을 지워버리게 합니다. 35-36절입니다.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셨느니라 그는 해를 낮의 빛으로 주셨고 달과 별들을 밤의 빛으로 정하였고 바다를 뒤흔들어 그 파도로 소리치게 하나니 그의 이름은 만군의 여호와니라 이 법도가 내 앞에서 폐할진대 이스라엘 자손도 내 앞에서 끊어져 영원히 나라가 되지 못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36절은 개역개정 번역이 해석이 모호한 부분이 있습니다. 이 부분은 새 번역이 더 명료하게 번역이 되어있습니다. “이 정해진 질서가 내 앞에서 사라지지 않는 한, 이스라엘 자손도 내 앞에서 언제까지나 한 민족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나 주의 말이다.”

다시 말하면, 해와 달과 별이 없어지지 않는 한 이스라엘과의 언약도 사라지지 않는다 즉, 이 언약은 불변의 언약이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언약, 다윗의 언약, 새 언약을 통해서 민족과 백성 이스라엘에게 하나님께서 그들의 하나님이 되신다는 놀라운 언약을 세우셨고 이 언약은 폐하지 못합니다.

물론 이스라엘은 배교했고 불순종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분노를 쏟으시며 이스라엘을 심판하셨고 지금도 그 심판 아래에 있습니다. 모든 이스라엘이 다 진정한 구원받은 이스라엘이 아닙니다. 하지만 이사야 6장 13절에서 볼 수 있듯이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그루터기, 남은 자(remnant)들을 선택하셨습니다. 그리고 천년왕국이 세워질 때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진정한 유다 백성, 민족 이스라엘은 회복되어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이스라엘을 향한 새 언약의 메시지입니다.

이 외에도 구약에는 영원의 상태인 새 하늘 새 땅이 아닌 메시아가 통치하는 지상 왕국에 대한 무수한 축복의 약속들이 많습니다. 이 모두 유다 백성, 즉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주권적인 언약입니다(스가랴 14:9-11). 새로운 땅 의 예언(암 9:14-15), 새 성전의 건축(겔 40:1 – 48:35), 구원받는 유다 백성(렘 23:6) 등 이 무수한 예언들은 요한 계시론 20장의 재림하실 메시아가 천년 동안 다스리시는 천년왕국에서 성취가 될 것입니다.

이렇듯 하나님의 주권적인 선택하심이 민족과 백성 이스라엘과 맺으신 언약의 뿌리가 됨을 살펴보았습니다. 이렇듯 이스라엘을 바로 이해한다면 구약의 언약의 문자적인 성취인 미래주의적 전천년설의 결론에 이를 수 밖에 없습니다. 다음 글에서는 신약 성경을 살펴보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무천년주의자셨을까요? 사도들은 어떤 주장을 했을까요? 바울도 무천년을 주장했을까요? 예수님 시대 때 유대인들이 구약의 언약을 어떻게 믿고 있었을까요? 다음 글에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The Masters Seminary 재학중 Grace to Korea 운영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