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대주의는 위험한 교리인가?(1)

얼마 전 한 인터넷 카페를 둘러보다 이런 글을 보았습니다. “존 맥아더의 책은 안전한 거죠?”

요즘 워낙 비 성경적인 가르침들과 이단들이 많기에 맥아더 목사님에 대한 정보를 많이 접하지 못한 성도 분께서 그분의 책은 읽어도 되는 것인지 궁금하여 올린 글이었습니다. 댓글을 다신 분들 대부분이 격려를 해주셨지만 몇 개의 댓글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존 맥아더는 훌륭한 개혁주의 설교가로 알려져 있습니다. 다만 종말론에 관련해서는 세대주의 성향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유의하세요.”

또 다른 댓글 중, “존 맥아더의 세대주의와 관련된 해석은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무엇을 조심해야 할까요? 맥아더 목사님은 세대주의자라는 비판을 오랫동안 받아오고 계십니다. 하지만 더 안타까운 것은 많은 사람들이 맥아더 목사님이 가르치는 세대주의가 어떤 것인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거나 성경 말씀과 그에 따른 교리에 대한 무지에서 오는 맹목적인 비난들이 대부분이라는 것입니다.

세대주의에 관한 몇 가지 오해들

오랜 세월 동안 세대주의 신학은 그 근본과는 전혀 상관없는, 그리고 본질을 호도하는 비 성경적인 관점들로 인해서 훼손되어왔습니다. 세대주의에 관한 여러 가지 잘못된 오해와 인식들이 있지만 대표적인 몇 가지만 살펴보겠습니다.

첫째로, 시대마다 구원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20세기 초 미국의 성경학자 스코필드(Cyrus I. Scofield)가 쓴 스코필드 관주성경은 이런 잘못된 세대주의 사상이 전파되는데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당시 많은 잘못된 세대주의자들이 이 관주성경을 토대로 시대마다 구원을 얻는 방법이 다르다고 주장하기 시작했습니다. (John Macarthur and Richard Mayhue. Christ’s Prophetic Plans: A Futuristic Premillennial Primer, 43).

하지만 구원론은 세대주의 신학과 직접적인 연관이 없을 뿐 더러 어떠한 영향도 주지 않습니다. 이 구원론에 대한 잘못된 교리들이 세대주의 신학과 결합되어 세대주의에 대해 잘못된 인식을 만들어 왔습니다. 성경적인 세대주의 신학은 구원론이 아니라 교회론과 마지막 때(종말론) 교리와 연관이 있으며 또한 성경을 어떻게 해석하는지에 관한 성서해석학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존 맥아더 목사님은 그분의 책, ‘사도들이 전한 복음’ 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세대주의 신학은 한 성도의 종말 신학과 교회학을 형성한다. 그것이 바로 세대주의 신학의 연장선이다. 순수한 세대주의 신학은 하나님과 인간, 혹은 성화와 같은 교리에는 영향을 주지 않는다. 더 중요한 것은 성경적인 세대주의 신학이 구원 론, 즉 구원의 교리와는 전혀 상관이 없다는 것이다.” (John F. MacArthur Jr., Faith Works: The Gospel according to the Apostles, 222.)

우리의 구원은 어디로부터 옵니까?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앱 2:8-9) 시대마다 구원이 다른 것이 아니라 구원에 이르는 길은 과거도 지금도 미래도 오직 한 길,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둘째로, 이 세상이 일곱 경륜(시대)로 나누어졌다는 것입니다.

19기 초 존 넬슨 다비(J.N. Darby)에 의해서 시작되고 체계화되기 시작한 이 주장 또한 많은 사람들이 세대주의 하면 떠올리는 내용입니다. 인터넷 검색창에서 ‘세대주의’를 검색해보면 교회 용어 사전이나 위키백과에서 위와 같이 설명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태초부터 지금까지 ‘일곱 시대(dispensation)로 나누어졌다’라는 주장은 저희가 주장하는 세대주의가 아니며, 또한 그것은 세대주의 신학을 대변하는 주장이 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다른 세대(dispensation)을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아담의 타락 전과 후가 다릅니다, 예수그리스도의 초림 전과 후(구약/신약)가 다릅니다, 또한 지금 현재의 세상과 미래의 새 하늘 새 땅이 다름을 우리는 이해합니다. 하지만 시대를 일곱으로 나누고 각 시대마다 구원이 다르다는 것은 전통적인 세대주의자들로부터 잘못 주장되어 온 것이지만 성경적이지 않은, 잘못된 신학입니다.

마지막으로 마지막 때의 날짜와 시간이 정해져 있다는 것입니다.

과거 1992년에 ‘다미선교회’를 기억하시나요? 다미선교회는 그 해 10월28일에 휴거(Rapture)가 일어난다고 주장했고, 그것으로 인해 기독교인들 사이에서뿐 아니라 공중파 뉴스에서도 방송했을 정도로 온 나라가 떠들썩했습니다. 하지만 그날엔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그 일은 우리나라 기독교 역사에 한 획을 긋는 사건이 되었습니다. 이 일을 통해서 세대주의 신학이 일각에서 소위 ‘세대주의 종말론’ 이나 ‘시한부 종말론’으로 매도되는 안타까운 일들이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이단적인 가르침은 저희가 주장하는 세대주의 신학과는 전혀 연관이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부활 후 승천하시기 직전 제자들에게 마지막 시기와 때는 오직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가 알 바 아니요”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다미선교회 이후에도 간간이 여러 이단들이 마지막 종말의 때를 정해 놓고 사람들을 현혹하는 일들을 종종 보아왔습니다. 이런 세대주의 시한부 종말론은 극단적이고 이단적인 가르침이며, 성경적인 세대주의 신학과는 전혀 다릅니다.

이 외에도 세대주의에 대한 여러 오해와 비 성경적인 주장들이 더 많지만 다 다루지는 않겠습니다. 저희가 주장하는 세대주의 신학은 이런 잘못된 주장들과는 다르다는 것을 이해하시는 데 도움이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믿고 가르치는 세대주의 신학: 미래주의적 전천년설(Futuristic Premillennialism)

세대주의(Dispensationalism)는 더 포괄적인 표현이고, 더 정확히 분류를 하자면 저희가 믿고 가르치는 종말 신학은 미래주의적 전천년설입니다. 존 맥아더 목사님과 그레이스 커뮤니티 교회의 모든 장로들, 성도들 그리고 마스터스의 신학교 모든 교수진들 또 저희 Grace to Korea가 믿고 가르치는 종말론입니다. (gracetokorea.org/우리의-믿음/, 중 ‘종말론’ 참조)

전천년, 후천년, 무천년.. 이런 용어들을 들어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요한계시록 20:2-7절까지 6번 등장하는 이 ‘천년’이라는 단어를 어떻게 해석하는지에 따라서 나누어진 용어들입니다. 전천년, 후천년, 무천년의 차이를 간단히 설명하면 예수그리스도의 재림의 시기의 차이입니다. 2천 년 전 낮고 낮은 모습으로 우리의 죄를 담당하시려 오신 아기 예수님이 아닌, 백마를 탄 천사의 군대들과 영광스러운 왕, 심판자로 오실 예수그리스도의 재림(계 19:11-16)이 이 머리 복잡한 용어들을 구분하는 핵심입니다.

후(post-millennium)천년설은 교회 시대로 대변되는 천년 이후에 그리스도가 재림하신다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무(A-millennium)천년설은 예수그리스도의 재림 후나 전에도 천년은 없다고 주장합니다. 천년은 상징적으로 해석됩니다. 마지막으로 전(Pre-millennium)천년설은 (전천년설은 또 역사주의적, 미래주의적, 이 두 가지 전천년설로 나누어집니다) 문자적인 천년왕국이 그리스도의 재림 후에 실현된다고 주장합니다. 2014년 크로스웨이(crossway)에서 발행된 ESV 스터디 바이블 요한계시록 서론장을 보시면 표와 함께 각 천년설을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 놓았습니다. 참고하시면 쉽게 이해하시는데에 도움이 되실 것입니다. 한국의 많은 장로교회는 언약주의 신학의 관점으로 천년을 상징적으로 해석하는 무천년설을 주장합니다.

하지만 저희는 반대로 세대주의적 관점으로 문자적인 천년을 주장하는 많은 신실한 교회 중에 하나입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잘못된 세대주의적인 관점이나 특정한 신학의 프레임에 맞춘 주장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 앞에 신중하고 겸허한 자세로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바가 무엇인지를 해석하여 나온 결론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면 왜 많은 신실한 언약주의 교회와 종말론에서 해석의 차이가 나나요?” 두 가지가 다 맞을 수는 없습니다. 어떤 차이가 있는지 알아보겠습니다.

성서해석학(Hermeneutics): 동일하고 일관된 문자적인 성경해석

미래주의적 전천년설의 핵심을 한 마디로 쉽게 정의하자면, “교회와 이스라엘은 다르다” 라는 것입니다. 물론 이방인(교회)과 하나님께서 택하신 구약의 유대 이스라엘 백성은 예수그리스도의 재림 후 지상의 천년왕국과 영원한 나라, 새 하늘 새 땅에서 함께 하나님의 영원한 백성이 되지만 하나님께서 과거와 미래에 이스라엘(민족과 국가)을 다루시는 방법과 교회를 다루시는 방법은 분명히 다르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언약주의자들이 주장하는 것, 곧 교회가 이스라엘을 대체했고(대체신학), 모든 이스라엘의 축복은 이제 교회의 것이라는 주장과는 반대의 해석입니다. 저희가 주장하는 것은 구약에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약속하신 언약과 축복이 미래에 문자적으로 천년왕국에서 성취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구분하는 근간은 바로 성경을 어떤 원리로 해석하는지에 관한 성서해석학입니다. 언약주의와 세대주의의 성경해석이 어떻게 다른 지는 몇 달 전 저희가 게시한 마스터스 신학교의 마이클 블락(Michael Vlach) 교수님의 글에서 자세히 그 내용을 이해하실 수 있습니다.

gracetokorea.org/2017/11/17/세대-주의와-언약-주의의-차이점은-무엇인가/

한가지 덧붙일 것은 저희가 성경을 해석하는 일관된 원리는 ‘문법적이고 역사적인’ 문자적 해석 방식입니다. 저희는 이 방법이 하나님의 말씀을 그 원래의 의미로 가장 가깝게 해석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마스터스의 성서해석학 교수셨던 로버트 토마스 교수님은 이 방법을 이렇게 정의하셨습니다.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딤후 3:16) 성경말씀을 성령님의 조명하심과 인도를 받아 자연스러운 문법적인 법칙과 역사적인 사실을 토대로 쓰여진 성경 본문이 가지고 있는 의미를 발견하는 방법이다.”

문자적인(literal) 해석 방법을 그 당시 언어의 비유나 상징적인 표현을 무시한 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는 문자주의(letterism)와 혼동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오른손이 너로 실족하게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마 5:28) 는 말씀을 그대로 실천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죄를 어떻게 심각하게 다루어야 하는지에 대해서 예수님께서 비유로 말씀하신 것을 이해하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문자주의와는 달리 ‘문법적이고 역사적인’ 문자적 해석 방법은 자연적이고 일반적인 언어의 문법적인 법칙을 토대로 성경 본문을 바라보고 (그 법칙에 따라 비유나 상징의 표현을 결정함) 그 법칙에서 벗어난 추상, 상징적이거나 자의적인 해석은 배제하며 똑같이 일관된 원리를 성경 전체에 적용합니다(구약의 예언서들의 예언의 말씀에도 같은 원리 적용). 이렇게 일관된 원리를 적용하면 블락 교수님의 글에 설명되어 있듯이 구약의 이스라엘은 말 그대로 교회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이며, 이스라엘에게 약속하신 모든 축복과 언약이 마지막 때에 문자 그대로 성취된다는 결론에 이릅니다. 이러한 원리의 성경해석학이 미래주의적인 전천년설의 결론에 이르게 되는 가장 중요한 뿌리입니다.

지난 몇 주간 마스터스 신학교 채플 시간에서는 미래주의적 전천년의 주제를 가지고 각 학과(성서해석학, 교회역사, 신·구약, 신학) 교수님들의 강의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중에 성서해석학 교수님이신 브래드 클라슨(Brad Klassen) 교수님께서 전천년 성서해석학에 관한 아주 명료한 강의를 해주셨습니다. 혹시 영어가 가능하시고, 조금 더 깊이 공부를 하시고 싶으신 분들은 아래의 링크에서 강의 비디오를 보시면 도움이 되실 것입니다.

“Premillennialism and Hermeneutics” by Dr. Brad Klassen – TMS Chapel – January 30, 2018”

https://vimeo.com/253881692

 왜 종말신학이 중요한가요?

여기 종말 신학에 대해 두 성도들이 대화를 하고 있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전천년, 후천년 무슨 소리야, 너무 복잡해, 난 정확히 모르지만 어쨌든 우리 교회가 주장하는 전천년설을 지지할래” 옆에 있던 다른 성도가 대답합니다. “종말 신학이 그렇게 중요해? 어차피 예수님은 다시 오실텐데 너무 중요하게 생각하지 마”

첫 번째 성도는 잘 모르지만 더 깊이 알고 싶지 않아 하며 두 번째 성도는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두 성도 다 순수한 마음에서 한 이야기일 수 있지만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마지막 때에 관한 수많은 계시를 무시하는 태도가 될 수 있습니다. 왜 종말 신학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 중요한가요? 간단한 대답은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이 명령하고 권고하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종말, 마지막 때에 대해서 아주 많이 그리고 충분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특히 말씀을 가르치는 자들은 종말론에 대하여 가르칠 때 더욱 진중히 하나님의 말씀 앞에 서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세상에 나아가 복음을 전할 때 예수님께서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치라고 명령하셨습니다(마 28:20). 또한, 모든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여 하나님 앞에 부끄러움이 없이 인정된 일꾼으로 자신을 드려야 합니다(딤후 2:15). 그리고 사도 바울처럼 하나도 빼놓지 않고 하나님 말씀의 모든 경륜(the whole counsel of God)을 전해야 합니다(행 20:27).

또한 종말 신학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은 우리 구원받은 백성들에게 하나님 말씀에 순종할 수 있는 힘을 줍니다, 또한 그 말씀을 이해하고 순종함으로 하나님의 복을 받습니다. (계1:3, 22:7). 또한 종말 신학의 성경적인 이해는 우리에게 참 소망을 주며 정결케 합니다(요1 3:2-3). 또한 주의 강림을 소망하는 것은 고난과 시험 가운데 우리에게 인내를 가져다줍니다(약 5:7-11).

이렇듯 종말 신학은 그리스도인의 삶에 있어서 너무나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 말씀에 계시하신 참 진리를 발견함으로써 소망을 가지시고, 그 소망을 붙잡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다음 편에서는 맥아더 목사님의 설교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주권적인 선택하심과 미래주의적 전천년설이 어떤 관계가 있는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The Masters Seminary 재학중 Grace to Korea 운영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