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들어야 할 하나님의 음성

구약의 역사를 보면 사람들이 하나님에게 직접 자신들의 상황에 대해서 말하고 “어떻게 할까요?”라고 묻고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어떻게 하라고 답하시는 장면을 종종 볼 수 있습니다. 모세의 경우는 좀 더 특별하긴 했지만 마치 친구와 대화하는 것처럼 하나님과 대화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출 33:11). 신약으로 오면 실제로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사람들과 함께 하시며 그들과 대화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후에 제자들이 구약의 성도들처럼 그렇게 “여기서는 어떻게 할까요?”라고 직접 묻는 장면은 찾아보기 힘들지만, 여전히 하나님은 그들에게 특별하게 말씀하시곤 하셨습니다(행 9:4-6; 10-12, 15; 10:9-16 등).

이 글에서 다루고자 하는 질문은 ‘오늘날 성도들에게도 이런 것이 필요할까’입니다. 극단적인 은사주의 쪽에서 주장하는 것 같은 성령 체험은 아니더라도, 여전히 많은 복음적인 교회의 그리스도인들이 그런 하나님의 특별한 인도 하심을 기대하고 그것을 추구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이 하나님의 ‘개인적인’ 인도하심을 받는 것이고 하나님과 ‘친밀하게’ 교제하며 동행하는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 저에게도 말씀해 주십시오”라고 구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기다려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말씀을 듣는 방법도 여러가지가 제시됩니다. 실제로 ‘음성을 듣는 것’을 말하기도 하고 어느 순간 어떤 강한 (말로 표현하기 힘든) 확신이 생기는 것이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혹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읽다가 마음에 ‘확 와 닿는’ 구절이 있다면 그것이 하나님께서 나에게 하시는 말씀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방법들은 다르지만 어떤 특정한 상황에서의 구체적인 하나님의 뜻을 초자연적인 혹은 일반적이지 않은 방법으로 알게 되는 것을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으로 생각한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이렇게 상황 상황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그에 따라서 행한 경우가 성경에 많이 나오기 때문에 그게 뭐 이상한가 하는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혹은 더 나아가 그렇게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습니다. 정말 그럴까요?

먼저, 우리가 분명히 아는 것은 하나님은 변하지 않으시는 분이시지만 언제나 동일한 방법으로 역사하지는 않으신다는 사실입니다. 성경에는 연속성과 불연속성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 속의 사람들이 경험한 모든 것을 우리가 동일하게 경험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게 해야만 한다는 것도 아닙니다.  대표적인 예로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과 신약의 교회는 여러 면에서 비슷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같지는 않습니다. 언약의 백성으로서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을 받고 그 약속을 주신 하나님을 믿고 이 땅에서 살아가는 것은 동일합니다. 하지만 그 약속의 내용은 동일하지 않습니다. 오늘날의 교회가 약속의 땅인 가나안을 얻기 위해 전쟁을 할 수는 없습니다. 이스라엘이나 교회나 똑같이 이 땅에 하나님을 전파하는 사명을 받았지만, 그 방법은 동일하지 않습니다. 교회에게는 ‘가서 전하라’고 하셨지만,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와서 보게 하여라’고 하셨습니다. 연속성과 불연속성이 있는 것입니다. 성경을 읽고 그것을 내 삶에 적용할 때 이것을 잘 구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드러내시는 방법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일반적으로 피조 세계를 통해 자신을 드러내시는데, 그것을 일반 계시라고 합니다. 그 외 하나님은 특별하고 더 구체적으로 자신을 드러내시는데, 그것을 특별 계시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특별 계시도 그 방법은 동일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특별히 피조 세계의 법칙에 개입하시는 ‘기적’도 성경 속에서는 자주 언급되기 때문에 일반적인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성경의 역사를 보면 특별한 시대에 집중되어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모세와 여호수아, 엘리야와 엘리사, 그리고 예수님과 제자들의 시대를 제외하면 기적에 대한 기록은 매우 적습니다. 앞서 언급했던 하나님의 음성을 직접 들었던 사람들도 사실은 예외적이었다고 보는 것이 더 맞습니다.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음성을 직접 듣고 하나님의 뜻을 알았던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 세우신 사람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출애굽 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경우,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보고 두려워하며 모세에게 “당신이 우리에게 말씀하소서 우리가 들으리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시지 말게 하소서”(출 20:19)라고 부탁하기도 합니다. 어느 시대에 혹은 어느 누구에게 하나님께서 어떤 방법으로 역사하셨다고 해서 그것을 일반적인 것으로 생각할 수는 없습니다.

특별히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방법’에 대해서 히브리서의 기자는 명확하게 말합니다.

히 1:1-2 옛적에 선지자들을 통하여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이 모든 날 마지막에는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방법이 달라졌다는 것입니다. “옛적”은 예수님께서 오시기 전까지의 시대를 말합니다. 그동안에 하나님은 선지자들을 통해 여러 방법으로 말씀하셨습니다. 꿈이나 환상, 기적을 통해 말씀하셨습니다. 비유를 통해 말씀하기도 하셨습니다. 또한, 말씀을 기록하게 하셔서 글을 통해 말씀하기도 하셨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오신 후로는 바로 그 예수님을 통하여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직접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셨고 예수님의 제자들과 그들의 직접적인 영향력 아래 있던 사람들이 성령의 감동하심으로 그분의 말씀과 의미를 기록하였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부분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위에서 언급한 다양한 방법을 통해 말씀하셨는데, 기록된 말씀을 제외하면 다른 것들은 오늘날의 우리에게 남아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마지막 날들’에 속하는 지금은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말씀하시기 때문에 더 이상의 다른 선지자를 통한 말씀은 없습니다. 그런데, 이 땅에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셔서 사람들에게 말씀하셨던 예수님은 현재 승천하셔서 하늘에 계십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던 것처럼 우리가 예수님의 말씀을 들을 수는 없습니다. 그럼 하나님은 더 이상 말씀하시지 않으시는 것일까요? 아니면, 우리는 다시 선지자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할까요? 아닙니다. 지금 하나님은 예수님에 대해서 기록한 성경을 통해서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구약 성경이 바로 예수님에 대한 것이었고(눅 24:25-27), 신약 성경은 예수님의 증인들이(행 1:8) 성령의 인도하심 가운데 예수님께서 드러내신 진리를 기록한 것이기 때문입니다(요 16:12-13).

하나님께서 여러 방법 중에 오직 성경을 통해서 오늘날 우리에게 말씀하신다는 것이 예전에 비해서 제한적이라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면에서 불완전하다고 생각될 수도 있습니다. 또는 직접적이지 않거나 보다 개인적이지 않다고 느낄 수도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불확실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성경 자체의 증언을 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딤후 3:16-17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구원받은 목적은 “선한 일”을 하기 위함입니다(엡 2:10). 성경은 그 선한 일이 무엇이 되었든지 그것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는 것은 성경으로 충분하다고 말합니다. 즉 우리가 구원받은 목적에 합당하게 사는데 성경으로  충분하다는 것입니다. 제한적이지 않고 불완전하지 않습니다.

그럼, 직접적이지 않고 개인적이지 않은 부분은 어떨까요? 하나님께서 나의 이름을 부르시면서 너는 이런 일을 하면서 살라고 말씀하시는 것이 훨씬 직접적이고 개인적으로 와 닿지 않을까요? 그게 훨씬 확실하게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는 방법이 아닐까요? 예수님을 직접 경험하고 그분의 영광을 보았던 베드로는 이렇게 말합니다.

벧후 1:19-21 또 우리에게는 더 확실한 예언이 있어 어두운 데를 비추는 등불과 같으니 날이 새어 샛별이 너희 마음에 떠오르기까지 너희가 이것을 주의하는 것이 옳으니라 먼저 알 것은 성경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니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라

여기서 주목할 것은 19절의 “더 확실한 예언”이라는 표현입니다. 하나님의 감동하심으로 기록된 말씀은 그리스도에 대하여 베드로가 경험했던 것보다도 “더 확실한” 증거가 된다는 말입니다. 성경은 글로 기록되었기에 우리에게 더 ‘생생’하지는 않을 수 있지만 의심의 여지 없이 ‘확실’합니다. 객관적이고 우리가 믿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확실한 말씀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믿는 자들에게 성령을 주셔서 이 확실한 말씀을 깨닫게 하시고 그 말씀에 따라서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주십니다. 이 말씀이 얼마나 직접적이고 개인적인지 히브리서의 기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히 4:12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우리의 가장 깊은 곳까지 들어와 그 능력을 보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직접적이지 않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단지 내가 그렇게 말씀을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기 때문에 그렇게 느끼는 것뿐입니다.

시편 19편 7-14절에서 다윗이 하는 말을 주의 깊게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그는 하나님 말씀의 특징과 그에 기인한 역할에 대해서 정확히 알고 있었습니다(7-9절). 그렇기 때문에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했습니다(10절). 그리고 그 말씀에 따라서 경고를 받고 그에 따라 살기를 원했습니다(11절). 삶에서 알게 모르게 범하는 죄에서 벗어나기를 원했습니다(12-13절). 그래서 그 입의 말과 마음의 묵상이 모두 하나님께 열납되기를 원했습니다(14절). 하나님의 말씀을 매우 개인적으로 받아 적용하는 것입니다. 성경이 실제로 그렇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시편 기자는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시 119:105)라고 고백합니다. 성경이 그의 삶의 직접적이고 개인적이고 확실한 인도자가 되었던 것입니다.

당연히 하나님은 오늘날에서 그 음성을 우리에게 들려주실 수 있으십니다. 그것은 하나님 고유의 능력이자 권한입니다. 하나님은 원하시면 전 세계의 사람들에게 동시에 말씀하실 수도 있으십니다.  하나님께 그런 능력이 없어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오늘날 다른 방법으로 말씀하시기를 선택하셨습니다. 바로 하나님의 기록된 말씀, 성경을 통해 말씀하십니다. 그 성경을 통해 하나님은 우리를 향한 가장 객관적이고 확실하며 또한 직접적인 하나님의 계획과 뜻을 드러냅니다. 따라서 우리는 성경을 통해 하나님과 실제적인 친밀함 가운데 거할 수 있습니다. 직접적인 인도하심을 받을 수 있습니다.

존 파이퍼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 시대에 가장 필요한 것은 사람들이 살아계신 하나님의 실체를 경험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성경 안에서 그분의 말씀을 개인적으로 그리고 변혁적으로 들을 때 가능합니다. 성경 밖에서 듣는 말들이 하나님의 감동하심으로 기록된 말씀보다 우리에게 더 강력하고 영향력이 있다는 것은 뭔가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된 일입니다. 시편 기자와 같이 우리도 부르짖어야 합니다. “내 마음을 주의 증거들로 향하게 하소서”(시 119:36). “내 눈을 열어서 주의 율법에서 놀라운 것을 보게 하소서”(시 119:18).

우리는 육신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로서 실제로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는 것을 원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것들이 우리에게 더 큰 영향을 줍니다. 조심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지 않으시는데 우리가 그런 것을 추구한다면 우리는 잘못된 것을 경험하고 그것에 영향을 받고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구할 것은 ‘나에게도 말씀하소서’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이미 우리에게 충분한 말씀을 주셨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그 기록된 말씀을 통해 오늘날 나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하나님의 음성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그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음성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통해 우리에게 들려옵니다. 성경에 있는 ‘글자’가 아니라 그 글자들이 전하는 의미, 메시지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성경 안에 ‘나에게’ 필요한 모든 말씀을 주셨다는 믿음 가운데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로 성령을 의지하며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내 삶에 적용하며 살아가는 것이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과 교제하며 동행하는 삶입니다. 정말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는다면, 성경 외에 또 다른 어떤 음성이 우리에게 필요하지 않음도 우리가 확신할 수 있습니다.

 

Grace to Korea 자문 목회자이며 고정 기고가로 봉사하고 계십니다. 사이트의 모든 기술적인 문제를 해결해 주시기도 합니다. 미국 캘리포니아에 위치한 The Master's Seminary를 졸업하고 현재 유평교회에서 학생회를 담당하며 주일, 수요일에 말씀을 전하고 있습니다. 아내 김미경 자매와 2008년 결혼하였고, 슬하에 아들, 이제를 두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