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자는 본을 보여야 합니다.

Man praying on the holy bible. The image has intentional added grain and styling.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그레이스 성경 교회의 개척을 준비하며 어떤 목회자가 되어야 하는지 많은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참 목자 되신 예수님의 양 떼를 잠시 돌보는 일꾼으로서 예수님께 잘했다. 칭찬받기를 원합니다. 에베소서 4장에서 바울은 목사와 교사를 교회에 선물로 주신 이유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워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게 하는 것”이라 가르쳐 줍니다. 예수님께서 양을 돌보는 목자들에게 원하시는 것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바르게 가르침으로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인도하는 것입니다.

목회를 준비하며 요즘 디모데전서를 공부하며 묵상하고 있습니다. 교회를 바르게 세우기 위하여 디모데에게 주는 바울의 권면은 저에게 주시는 것 같습니다. 디모데에게 주는 말씀들이 모두 저에게 적용이 되지만 그 중 특별히 목회를 준비하는 저에게 마음에 와닿는 구절은 디모데전서 4장 12절의 “누구든지 네 연소함을 업신여기지 못하게 하고 오직 말과 행실과 사랑과 믿음과 정절에 있어서 믿는 자에게 본이 되라”는 말씀입니다.

디모데는 30대 중반의 나이었지만 그 당시 문화 속에선 아직 존중을 받고 회중에서 권위를 가질 만한 나이는 아니었습니다. 그렇기에 성도들과 원로 한 장로들을 대상으로 “다른 교훈을 가르치지 말게 명하며 (1:1), 하나님의 기준에 자격이 있는 장로와 집사를 세우며 (딤전 3장), 하나님의 집인 교회에서 성도들이 어떻게 행하여야 할지를 (3:15) 깨우치고 (4:6) 명하고 가르치는 (4:11)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자신보다 젊은 사람이 명하고 가르치는 것을 좋게 받아들이기보다는 오히려 무시하고 업신여기기가 쉬웠습니다.

이렇게 상대적으로 연소하지만, 하나님의 교회를 바르게 세워야 할 임무를 받은 디모데에게 바울은 디모데가 현실적으로 직면하게 될 장애물을 정확하게 집어 주었습니다. 디모데의 연소함으로 인하여 디모데의 명하고 바로잡고 가르쳐야 하는 임무를 수행하는 것에 어려움이 있으리라는 것입니다. 영적인 목회를 하는 디모데에게 참으로 현실적인 조언을 해 주었습니다. 웬만큼 영적으로 성숙한 자가 아니면 젊은 사람이 명하고 가르치는 것에 대하여 어느 정도 저항이 있는 것은 당연합니다. 문화적 연소함이라는 장애를 넘지 못하면 에베소 교회의 성도들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양육을 받지 못하게 됩니다. (4:6). 그러므로 디모데가 그의 사명을 온전하게 이루기 위하여서 업신여김을 받을 수 있는 연소함의 벽을 뛰어넘는 것은 참으로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감사하게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이런 장애물이 있다고 말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어떻게 이런 장애를 극복하여 디모데가 하나님께 받은 사명을 효과적으로 잘 해낼 수 있는지 구체적인 해결책을 줍니다. 즉, 디모데가 어떻게 하여야 성도들이 디모데의 가르침을 잘 받아 궁극적으로 하나님 말씀으로 장성해 나가며 양육을 받게 할 수 있는지를 가르쳐 주었습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사람들 앞에서 강해 보이게 하라고 하지 않습니다. 성도들보다 디모데가 여러 면에서 뛰어나며 실력이 있다는 것을 증명해 보이라 하지 않습니다. 말씀으로 무조건 강하게 대응하라고 하지도 않습니다. 바울이 디모데에게 준 해결책은 참으로 단순합니다. 그 해결책은 디모데로 하여금 “경건에 이르도록 자신을 연단” (4:7)하라면서 “믿는 자들에게 경건에 본이 되라” (4:12)는 것입니다. 세상의 방법으로 존경과 순종을 받아내려고 하지 말고 오직 디모데 스스로 경건에 전심전력 (4:15) 을 하라고 명합니다. 그렇게 경건에 전심전력함으로 디모데의 경건의 성숙함이 모든 사람에게 명백하게 나타나게 하라 (4:15) 명합니다. 즉, 가르치고 명하는 데만 집중을 할 것이 아니라 가르치고 명한 것들을 스스로 삶 속에서 실천함으로 듣는 자들에게 말씀을 어떻게 삶에 적용하는지 본을 보이는 데 집중하라 명합니다. 그렇게 경건의 성숙함으로 디모데의 연소함을 극복하고 목자로서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을 감당하라 가르쳐 주었습니다.

제 관찰에 의하면 요즘 교회의 목회자들과 성도들이 하나님께서 지도자들에게 바른 교훈을 가르치며 명하는 것 (바른 교리를 가르치고, 잘못된 교리로부터 성도들을 지키고, 거짓 교사를 대면하여 꾸짖고 등등)을 명하신다는 것은 잘 알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동일하게 목회자들에게 거룩한 삶의 표본이 되기를 원하신다는 것은 상대적으로 잘 모르는 것 같습니다. 목자들의 삶 속에 거룩함이 모자라도 설교를 잘 한다거나 봉사로 잘 섬기기만 한다면 괜찮다는 생각이 일반적으로 퍼져 있습니다. 성경에서 가르쳐주는 목회자의 기준에 어긋나는 죄악들이 목회자의 삶 속에 있음에도 계속 목회를 하는 목회자들과 그런 목회자를 옹호하며 계속 따르는 성도들이 너무 많습니다. 참으로 가슴이 아픕니다. 이렇게 경건의 본이 없는 교회의 성도들이 그리스도의 장성한 데까지 이르는 것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오늘 글에서 저는 하나님께서 영적인 리더들에게 있어 ‘경건의 본을 보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 인지 나누고 다음 글에서 바울이 디모데로 하여금 본을 보이라고 한 5가지 성품에 대하여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리더들에게 믿는 자들의 본이 되라고 하십니다. 성도들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게 하려고 하나님께서는 교회의 리더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교회를 이끄는 것뿐만 아니라 성도들에게 신앙의 본을 보여 주도록 계획하셨습니다. 복음에 ‘칭의와 성화’가 항상 같이 가야 하듯이 목회자들에게 ‘가르침과 경건의 본’은 항상 같이 가야 합니다. 가르침만 주장하면 성도들이 머리만 커지게 됩니다. 그리고 바른 가르침이 없이는 경건한 삶을 살 수가 없습니다. 이 두 가지는 떼려야 땔 수 없는 동전의 양면과 같습니다. 목회자들은 바르게 가르쳐야만 하는 것이 아니라 가르치는 것을 삶 속에서 본으로 함께 보여주어야 합니다.

본이라는 단어는 헬라어로 ‘토파스’입니다. 영어로는 example 이라고 번역된 이 단어는 똑같은 것을 만들어 내도록 사용된 “모델, 패턴, 틀, 아웃라인”의 의미가 있습니다. 즉, 바울이 디모데로 하여금 성도들에게 본을 보이라고 할 때 바울은 성도들이 디모데를 보고 말씀이 삶 속에 적용되는 것이 이런 것이라는 것을 보고 따라 할 수 있게 하라는 것입니다. 성도들이 목자를 따라가는 것은 자연스럽게 되는 것입니다. 호세아서에서 하나님께서는 리더인 제사장들이 죄를 범하니 그의 백성들도 제사장들처럼 똑같이 되어 모두 하나님께 심판을 받는다고 합니다. 리더가 죄를 범할 때에 그를 따르는 자들이 그들을 따라 함께 죄를 짓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와 같이 성도들은 교회의 목자들을 보고 따라가게 됩니다.
베드로 전서 5장 3절에 베드로는 장로들에게 “양 무리를 치되 주장하는 자세를 하지 말고 양 무리의 본이 되라” 명합니다. 장로의 권한으로 양 무리에게 이렇게 하여라. 저렇게 하여라 지배하거나 다스리는 톤으로 하지 말고 장로로서 양 무리가 따라 배울 수 있는 경건의 본을 보이도록 하라 명합니다. 그러므로 디모데전서 3장에서 장로의 자격에 대하여 상세하게 가르쳐 주는 목록은 가르침을 제외한 나머지 모두 ‘인격’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교회의 장로들은 무엇보다도 경건함의 본을 보여줄 수 있는 자들이어야 합니다. 단순히 가르치는 은사나 지도하는 은사만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의 리더는 바른 교리를 붙잡고 가르치며 삶 속에서 경건히 성숙함을 지닌 자여야만 합니다. 교회의 목적은 일 잘하는 사람들을 세우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성도들을 세우는 것에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테니스 코치가 연습생들에게 이론적으로 라켓을 이렇게 잡고 공을 보고 이러한 각도로 이렇게 스윙을 하라 백번 가르쳐 주는 것보다 연습생 옆에서 직접 이렇게 하는 것이다며 보여 줄 때 연습생들이 ‘아~ 이렇게 하는 거구나’ 하며 쉽게 배우고 실력이 늘 수 있는 것처럼 교회의 목자들에게도 강단에서 말로만‘이렇게 사십시오’라고 외치는 것이 아니라 삶 속에서 ‘이렇게 사는 것’입니다 하며 성도들이 보고 관찰하여 따라 할 수 있는 실질적인 경건의 본을 보여 주어야 합니다.

성경에서 리더들에게 본을 보이라고 하는 구절이 많지만 몇 가지 나누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 히브리서 13장 7절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너희에게 일러 주고 너희를 인도하던 자들을 생각하며 그들의 행실의 결말을 주의하여 보고 그들의 믿음을 받으라” 명합니다.
  • 데살로니가후서 3장 9절에서 바울은 “우리에게 권리가 없는 것이 아니요 오직 스스로 너희에게 본을 보여 우리를 본받게 하려 함이니라” 말합니다.
  • 빌립보서에서 바울은 “형제들아 너희는 함께 나를 받으라 그리고 너희가 우리를 본받은 것처럼 그와 같이 행하는 자들을 눈여겨 보라 (빌 3:17) 하며 너희는 내게 배우고 받고 듣고 바를 행하라 (빌 4:9) 명합니다.

한가지 주의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바울이 신자들에게 자신을 본받는 자가 되라고 하는 것은 자신이 경건하고 대단하기 때문이 아니라 자신이 그리스도를 본받는 것을 본받으라는 것입니다. 고린도 전서 4장 16절에 바울은 “내가 너희에게 권하노니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 명하고 고린도전서 11장 1절에서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가 된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 명합니다.

목회자가 성도들에게 본이 되어 그들로 하여금 목회자의 본을 따르게 하는 것은 성도들로 하여금 그리스도를 닮아가게 하는데에 있지 목회자를 닮아가는데 있지 않습니다. 결코 자신을 드러내며 자신을 따르라는 것이 아닙니다. 목회자의 경건의 본은 자신이 드러나지 않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 드러 나도록 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우리 주님께서 보이신 본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는 것이 옳으니라. 내가 너희에게 행한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요 13:14-15). 목자의 자리는 지도자로서 양 무리 위에 군림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겸손하게 낮아져서 양 무리가 말씀으로 양육을 받고 그리스도를 닮을 수 있도록 말씀과 경건한 삶으로 섬기는 자입니다.

이렇게 목회자가 ‘경건의 본’을 보여준다는 것은 교회의 경건에 있어 중요합니다. 목회자의 가르침이 그의 삶 속에 실천되는 경건의 본과 함께 전달 될 때 더욱 강력하고 효과적으로 역사합니다. 그렇게 했을 때 “기쁨으로 말씀을 받아 우리와 주를 본받은 자가 되었으니 그러므로 너희가 마게도냐와 아가야에 있는 모든 믿는 자의 본이 되었느니라” (데전 5:6-7) 는 목회자에게 속해 있는 성도들이 믿음의 본을 따르고 그런 성도들은 또 다른 성도들의 본이 되어 시너지의 효과를 발휘하게 될 것입니다.

The Masters Seminary 졸업하고 Grace Community Church의 Korean Fellowship 의교사로 봉사하였고, Grace 교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은 후 현재 그레이스 성경교회 담임목사로 섬기고 있습니다. Grace to Korea의 기고자이며 가족은 보현 자매 사이에 지아, 지훈, 하민, 하늘 이남이녀 네 자녀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