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주 오용되는 성경 구절 : 용서받지 못할 죄는 무엇인가?

This entry is part 9 of 15 in the series 오용되는 성경 구절

몇 년 전 바로 이 주에, 존 맥아더 목사를 비롯, 많은 목회자들의 주도로 은사주의 교회를 총체적으로 비판하는 다른 불(Strange Fire) 컨퍼런스가 열렸다. 이 컨퍼런스를 통해서 이 은사주의 운동 안에 깊숙이 만연한 하나님의 말씀의 오용과 성령님을 모독하던 일들이 들춰지게 되었다. 컨퍼런스 이후의 반응은 놀랄 정도로 뜨거웠지만 여전히 은사주의 운동 안에는 수많은 잘못된 교리와 오류들이 사라지지 않고 있다. 우리는 계속하여 은사주의 진영에게 분별력과 올바른 교리를 호소함으로 이 중요한 토론의 불꽃에 불을 계속해서 지피려 한다. – Grace to You 스텝일동

은사주의 진영의 사람들이 비판을 직면할 때 자신들을 방어하기 위해 가장 많이 사용하는 것은 바로 “용서받지 못할 죄” 이다. 그들은 비판하는 자들을 향해 그것은 성령을 모독하는 일이라고 경고한다. 이런 식으로 이들은 자신들의 분별력 부족을 변호한다.

하지만 그것이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신 “성령을 모독하는 것은 사하심을 얻지 못하겠고” (마 12:31)의 말씀을 제대로 이해하는 방법일까? 생각해보자. 그리스도께서 소위 성령의 역사에 의문을 갖는 사람을 정죄했는가? 예수님께서 초자연적인 이적과 기사를 주장하는 것들의 분별을 금지하셨는가?

물론 아니다. 존 맥아더 목사는 그의 저서, 은사주의의 혼란 에서 어떻게 이 용서받지 못할 죄에 대한 잘못된 해석이 은사주의 안에 깊게 뿌리내려 있는지 설명한다.

성령에 대항하는 죄는 무엇인가? 잘 알려진 은사주의 부부 사역 팀인 찰스와 프란시스 헌터(Charles and Frances Hunter)는 여러 권의 책을 집필했으며, 자신들의 은사의 경험에 관해서 끊임없이 간증한다.

헌터 부부는 학자도 아니고 신학공부도 하진 않았지만 보통 사람들과 쉽게 소통한다. 그리고 그들이 제시하는 성경해석은 그 영향력이 아주 광범위하다. 그들의 쓴 책, ‘‘나’ 는 방언을 해야만 하는가?’ 의 도입부에서 그들은 방언이나 다른 어떤 은사주의 운동에 관해서 의문점이나 의심을 갖는 사람들을, 예수님의 사역을 사탄의 사역으로 주장했던 바리새인들로 치부한다. 또한 헌터 부부는 책에서 은사주의 운동에 관한 비판들을 용서받지 못할 성령을 모독한 죄라고 암시한다. 이 사람들의 말이 과연 맞는가? 은사주의 교리에 대해서 비판을 하거나 의구심을 품는 것이 성령을 모독하는 죄와 같은가? 어떤 사람이 이 시대의 방언을 부정하거나, 성령세례가 구원 이후의 경험임을 부정한다면, 그 사람은 용서받지 못한 죄를 저지르는 것인가? (John MacArthur, Charismatic Chaos (Grand Rapids: Zondervan, 1992), 97.)

존 맥아더 목사의 책인 다른 불(strange Fire) 에 응답한 몇몇을 비롯해서 셀 수 없이 많은 은사주의 지도자들은 이와 같은 유사한 주장과 비난을 한다. “친애하는 맥아더 목사에게” 로 시작되는 글에서 R.T 켄달(R.T Kendall)은 이렇게 이야기한다. “먼저, 당신의 책이 가짜 예배가 성령을 모욕할 위험이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라면, 나는 당신이 성령의 역사를 사탄의 역사로 돌리는 더 위험한 성령 모독을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의 글, “존 맥아더, 다른 불과 성령의 모독” 에서 마이클 브라운(Michael Brown)은 본인이 나중에 결국 암시하지만, 그전에 일단 존 맥아더 목사에 대한 비난은 부정하는 듯 이야기한다. 맥아더 목사의 “성령을 모독하고, 심지어 사단의 역사를 성령의 역사로 돌린다” 라는 주장에 대해 이렇게 반응했다. 서술하길,

명확히 밝히는 것은 나는 맥아더 목사가 성령을 모독한다고 주장하는 또 다른 사람이 아니다(하나님이 금지하신다!). 하지만 신약성경에서 성령의 모독은 이미 알고 있듯이 성령의 역사를 사탄의 역사로 돌리는 것이다(막 3:23-30). 그리고 내가 더 염려하는 것은 비정상적인 은사주의 운동의 불들을 끄는 일보다 진정한 성령의 불을 부정하는 일련의 주장들이다.

브라운의 이 같은 말은 많은 은사주의 운동 안의 사람들이 소위 성령의 역사라고 주장하는 거의 미신적인 일들을 옹호하는 듯하다. 마치 그런 현상들에 대한 어떤 의심이나 분별하려는 시도가 용서받지 못하는 죄가 되어버리는 것 같이 말이다. 하지만 이 같은 마음가짐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가져야 할 것들과는 거리가 멀다. 성경 말씀은 믿는 자들에게, “사랑하는 자들아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분별하라” (요일 4:1)고 말씀한다. 그리고 또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행 17:11)했던 너그러운 베레아 사람들을 본받으라고 말씀한다.

이같이 하나님은 그분의 백성이 분별하기를 원하시는 것은 분명하다. 특히 하나님을 대변한다는 사람들을 마주할 때 더욱 그렇다.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마태복음 12:22-32절에서 바리새인들을 훈계하시며 말씀하셨던 것과 그 맥락을 같이한다.

이 본문은 예수님께서 귀신들려 눈멀고 말 못하는 사람을 고치심으로 시작한다(마 12:22). “무리가 다 놀라 이르되 이는 다윗의 자손이 아니냐 하니” (마12:23). 사람들은 이 같은 기적을 행할 수 있는 사람은 메시아 밖에 없다는 것을 정확히 이해하고 있었다. 자신들의 권위에 직접적인 위협이 될 수도 있는 군중들의 이 같은 생각을 바꾸기 위해서,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에 대해 이 같은 신성 모독적인 주장을 내세우기 시작했다. “바리새인들은 듣고 이르되 이가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지 않고는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느니라 하거늘” (마 12:24).

존 맥아더는 이같이 주장하는 바리새인들의 타락의 깊이에 대하여 이렇게 설명한다 :

“파리의 왕인 벨제붑은 본래 팔레스타인 지역의 신이었다. 사람들은 벨제붑을 모든 악한 영의 왕으로 믿었으며, 그래서 그 이름은 사탄의 또 다른 이름이 되었다. 여기서 바리새인들이 주장하는 것은 예수님이 사탄의 힘을 빌려 귀신을 쫓았다는 것이다.” (Charismatic Chaos, 97)

그들이 주님의 면전에서 이같이 악한 주장들을 말할 용기는 없었지만 성경은 예수님께서는 이미 그들의 생각을 아셨다고(마12:25) 말씀한다. 예수님은 공개적으로 바리새인들의 이 같은 주장의 모순을 훈계하셨다.

“예수께서 그들의 생각을 아시고 이르시되 스스로 분쟁하는 나라마다 황폐하여질 것이요 스스로 분쟁하는 동네나 집마다 서지 못하리라 만일 사탄이 사탄을 쫓아내면 스스로 분쟁하는 것이니 그리하고야 어떻게 그의 나라가 서겠느냐” (마 12:25-26).

간단히 정리하면, 예수님께서는 사탄이 사탄을 쫓아내는 것이 얼마나 모순된 것이라는 것을 보여주셨다. 예수님은 이렇게 하심으로 바리새인들의 어리석고 왜곡된 마음을 드러내신 것이다. 존 맥아더가 설명하길, “바리새인들은 그들의 논리가 틀어지면서 그리스도를 향한 증오를 품었다. 그들은 이성적이지 못하고 완전히 터무니없었다.” 이들은 이스라엘의 영적 지도자들이 되어야 하는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의도적으로 부인할 수 없이 명백히 드러난 그리스도의 신성한 능력을 부인하고 사람들을 속이고 있었다.

이렇게 예수님을 향해 바리새인들이 주장하는 고소들의 진정한 본질과 그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던 증오함이 드러나면서 예수님은 할 수 있는 가장 강한 어조로 예수님을 통한 성령의 역사를 부정하는 그들을 정죄하신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에 대한 모든 죄와 모독은 사하심을 얻되 성령을 모독하는 것은 사하심을 얻지 못하겠고 또 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얻되 누구든지 말로 성령을 거역하면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서도 사하심을 얻지 못하리라” (마 12:31-32).

이 본문에 관한 그의 주석에서 존 맥아더는 그리스도의 정죄의 본질과 그 범위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예수께서 먼저 말씀하셨다, “모든 죄와 모독은 사하심을 얻되”. 비록 모독이 죄의 한 종류이지만 이 본문과 문맥을 통해서 이 두 개의 죄는 별개로 다뤄지고 모독은 죄 가운데 가장 극단의 형태로 설명된다. 이곳에서 죄는 온갖 부도덕하고 불경스러운 생각과 행동을 나타내는 반면 모독은 의식적으로 하나님을 부정하고 거부하는 죄를 나타낸다. 모독은 공격적인 반항이고 공개적으로 거룩한 하나님에 대항해서 의도적으로 악한 말을 하고 헐뜯거나 무시하는 것이다(막 2:7 참조). 구약에서 이 같은 신성모독의 죄의 대가는 돌로 쳐서 죽임을 당하는 것이었다(레 24:16). 마지막 날, 하나님께 대항하고 반항하는 자들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이 바로 이 신성모독이다(계 13:5-6; 16:9; 17:3)…

하지만 “성령을 거역하는 것”은 더욱더 심각하고 돌이킬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은 불신앙을 반영하는 것뿐만 아니라 완전하게 이해할 수 있고 심지어는 그리스도를 깨달을 수 있을 만큼 충분하고 무수한 증거들을 목격한 후에도 불신앙으로 말미암아 진리를 거부하고 거절하기에 이른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신성에 관한 모독이고, 그분 안에 특별히 거하시고 능력을 나타내시는 성령을 거스르는 것이다. 예수가 메시아임을 가리키는 모든 증거와 논증들을 부정함을 나타낸다. 또한 진리의 말씀이 성육신이 되신 것과 그분을 의도적으로 부정하고 정죄하는 것이다. 성령을 거역하는 것은 완전하고 영원히 그리스도를 거절하는 것을 증명하고 그것은 용서받을 수 있는 기회조차 상실한다….. 이 세상이건 오는 세상이던지 간에 말이다” (John MacArthur, The MacArthur New Testament Commentary: Matthew 8-15 (Chicago: Moody Press, 1987), 311-312.

이것은 아주 중요한 구별이 된다. 그리고 이것은 은사주의 운동 안의 지도자들이 회중을 속이고 무분별한 분별을 촉구하는 위협들과는 아주 큰 거리가 있다. 그리스도의 말씀을 완전히 왜곡함으로 은사주의자들은 그들의 추종자들이 절대로 그들의 가르침을 성경 말씀에 비춰서 의문을 갖는 것을 아예 못하게 막는다. 마치 초자연적인 일들을 의심하는 생각은 용서받지 못하는 죄라고 사람들을 속이면서 말이다. 한편 그들은 계속해서 그들의 속임수와 일관성 없는 횡설수설로 성령을 모독하고 있다.

하나님의 백성은 절대로 이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오용하는 무리에 동조할 수 없다. 우리는 자신들의 비판을 입막음하기 위해 비판 하는 사람들을 향해 정죄와 위협을 가하고 또한 자신들을 따르는 사람들의 분별력을 억제하려는 이런 자들에게 대항할 필요가 있다.

자주 오용되는 성경 구절(8):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우리를 회개로 이끄는가? (롬 2:4) 자주 오용되는 성경 구절(9): 땅에서 매이면 하늘에서도 매인다? (마 81:18-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