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이 말을 주고받을 때 떠오르는 말씀이 하나 있습니다.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blessed us with every spiritual blessing, NASB)(엡 1:3)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우리에게 복을 주신 분이십니다(우리말성경).

만일 이 말씀대로 우리가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이미 받았다면, 어떤 복이 더 필요할까요? 어떤 사람은 아마 “하늘에 속한” 복이 아니라 땅에 속한 복을 구할 수 있다고 대답할 것입니다. 하지만 참된 “복”은 모두 하나님께로부터 옵니다. 야고보는 이렇게 말합니다.

온갖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부터 내려오나니…(약 1:17)

매 순간 우리가 들이마시는 호흡(사 42:5), 필요를 채우고 갖춘 것을 누리게 하는 재물(전 5:19), 몸과 마음의 건강(신 32:39), 나아가 일상 가운데 일어나는 크고 작은 사건과 사고들 모두 모든 일을 자기 뜻의 결정대로 일하시는 하나님의 계획을 따라 주어진 것입니다(엡 1:11).

그러니 땅에서 저절로 솟아나는 복은 없습니다. 하지만 바울은 분명 “신령한 복”(spiritual blessing)이라고 말하면서 장수, 재물, 건강, 명예 등 우리가 흔히 말하는 복과 구분을 짓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렇습니다. 4절에 “곧”이라는 말 뒤로 바울은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받은 “신령한 복”을 구체적으로 소개합니다. 이 복의 시작은 무려 창세 전까지 올라갑니다.

하나님께서 창세 전에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택하셨습니다(4절).

이 택하심에는 목적이 있는데 그것은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그 말은 우리가 거룩하신 하나님께 다가갈 수 없었다는 사실을 말해줍니다. 흠이 조금도 없으신 하나님 앞에 서기에는 흠이 너무 많은 존재였습니다. 하지만 그런 우리를 하나님은 사랑하셨습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자녀로 삼으시겠다고 확정하셨습니다. 그렇게 하기를 기뻐하셨기 때문입니다(5절). 다른 어떤 이유를 찾을 수 없습니다. 특히 우리 안에서 말입니다. 정하신 뜻을 이루기 위해 하나님은 우리를 죄에서 속량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의 핏값으로 우리를 사서 죄에서 해방하고 자기 백성으로 삼으셨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모든 지혜와 총명을 넘치게 하셔서 이 놀라운 구원의 비밀을 알게 하셨습니다(8-9절). 그래서 우리가 진리의 말씀을 듣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을 때 우리는 성령을 통해 하나님의 것으로 인치심을 받았습니다(13절). 성령께서 우리 안에 계셔서 하나님이 약속하신 기업과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백성이 된 것을 증거하십니다(14절). 이것이 바울이 설명하는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입니다. 창세 전에 정하신 아버지 하나님의 계획에 따라 아들의 고귀한 희생과 성령의 무한한 능력으로 영원히 우리와 함께 나누실 복입니다.

온갖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을 내려 주시는 분과의 관계가 영원히 놀랍고 은혜로운 방법으로 회복되었다는 소식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것을 소유하고 함께 누리게 된다는 헤아릴 수 없는 축복이 담겨 있습니다. 바울은 그것을 “부르심의 소망”,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라고 말합니다(엡 1:18).

만일 우리가 바울이 기도한 대로 마음의 눈이 밝아져 이 놀라운 복의 실체를 진실로 보게 된다면 짧은 수명에 가난한 삶을 살며, 질병과 고통을 겪고, 사람들의 멸시와 조롱을 받는다 해도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할 수 있을 것입니다. 고통스럽지 않아서가 아니라 고통을 견딜수 있을 만큼 소망이 크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미 주 안에서 이 놀라운 복을 받았습니다. 삶과 죽음, 건강과 재물,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가 되셨는데 새해에 어떤 복을 더 받아야 겠습니까?

아니 그럼, 새해에 가족의 건강을 구할 수 없단 말입니까? “새해에는 더욱 건강하길 바란다”라고 말도 못 합니까? 이렇게 생각하는 분이 계실지 모릅니다.

물론 그렇지 않습니다. 사도 요한은 이렇게 가이오에게 축복을 합니다.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요삼 1:2)

분명히 요한은 가이오의 육체적 건강 그리고 모든 일에 있어서 잘 되는 것을 간구하고 있습니다. 영적인 영역에 국한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놓치지 말아야 할 부분이 있으니 바로 요한의 축복의 우선순위입니다.

“네 영혼이 잘됨 같이”라는 말은 곧이어 나오는 3절 말씀에서 가이오가 “진리 안에서 행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가 진리 가운데 행하여 그 열매가 삶에서 맺히는 것처럼(형통하다는 표현이 적절할 것 같습니다) 다른 영역에서도 그렇게 되기를 바란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축복의 우선순위를 예수님의 가르침에서도 찾을 수 있습니다.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하여
구하지 말며 근심하지도 말라
이 모든 것은 세상 백성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아버지께서는 이런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아시느니라
다만 너희는 그의 나라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런 것들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눅 12:29-31)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먹을 것과 마실 것이 대표하는 육신의 필요를 구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도무지 구하지 말라고 하신 것이 아니라 우선순위에 대해 말씀하신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없는 세상 백성들은 육신에 속한 것만 구하며 살겠지만, 하나님을 아버지로 둔 너희는 이런 것보다 먼저 “그의 나라를 구하라”는 것입니다. 마태는 그래서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고 말합니다(마 6:33).

예수님이 가르쳐주신 기도에도 이 우선순위가 뚜렷이 나타납니다.

일용할 양식, 죄 사함, 시험과 악에서 구원…이것을 마땅히 구해야 하지만 그 전에 먼저 그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는 것과 하나님 나라의 도래, 하나님의 뜻이 땅에서 이루어질 것을 구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 6:9-13).

왜 예수님은 계속해서 우리의 눈을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으로 향하게 하실까요? 우리가 당장 땅에서 배를 채우고 목을 축일 물질이 절실히 필요한 존재라는 것을 체험적으로 아시면서도 말입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참된 사람답게 살기를 바라셨습니다. 떡으로만 사는 존재, 물질적인 필요만 채우면 그만인 존재, 육신의 욕구와 바라는 대로 살아가는 존재가 아니라 우리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존재가 되길 바라신 것입니다. 그것이 창조의 목적에 맞게 살아가는 사람의 모습이고, 구원의 목적에 부합한 모습입니다. 다시 에베소서에 기록한 바울의 편지를 주목해봅시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신령한 복을 내려주신 목적이 무엇입니까?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엡 1:6)

하나님은 우리가 찬송하는 삶을 살기 원하십니다. 우리에게 내려주시는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 무궁한 영광을 노래하는 삶을 살기 원하십니다. 하나님 아버지가 진실로 사랑하시는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값없이 내려주신 그 놀라운 축복. 그 참된 복을 누리며 살기 원하십니다. 기쁨과 즐거움과 사랑과 충만함 속에서 그 은혜와 영광을 찬송하기를 기뻐하십니다.

많은 사람이 이 참된 복의 가치를 쉽게 망각합니다. 나중에 죽으면 나오는 보험금처럼 살아있는 동안 별로 쓸모가 없는 것으로 취급합니다. 금세 시선이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와 이 땅의 것들을 구합니다. 이 땅의 것들로 염려하고 조급해하고 더 많이 가지고 누리려 합니다. 불평과 불만이 생깁니다. 그리고 새해를 맞이하면서 더 많이 이 땅의 것들이 채워지는 한 해가 되라고 축복합니다.

물론 건강이 우리를 위협하고, 재정이 우리를 염려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사랑하는 가족이나 직장 동료와의 관계, 내가 이룬 업적과 사람들 사이에서의 인기가 우리의 정체성을 흔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죄인으로서 아무것도 요구할 가치도 없고 자격도 없는 존재로서 구하는 것과 성자 하나님 안에서 성령 하나님을 의지하여 성부 하나님을 아빠 하나님으로 부를 수 있는 자가 구하는 것은 천지 차이입니다.

우리에게 이미 주어진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 안에서 우리가 구하는 이 땅의 필요는 우리 안에 있는 모든 조바심과 염려를 몰아냅니다. 구하는 모든 것이 우리가 요구하는 지금 주어지지 않는다 해도 참된 복의 근원 되신 하나님 아버지의 그 사랑을 신뢰하기 때문에 우리 마음과 생각은 평안합니다. 때로 세상이 “화”라고 부르는 일이 내 삶에 굴러들어온다 해도 그것은 죄인에게 내려진 철퇴가 아니라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의 손길이라는 것을 믿을 수 있습니다.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이 이 땅에 주어진 모든 좋아 보이는 것과 심지어 좋아 보이지 않는 것까지 복으로 바꿔줍니다. 모든 것이 내 사랑하는 아버지 하나님의 손안에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나를 대신하여 죗값을 치르시고 하나님 앞에 나를 정결한 자로 세우셨습니다. 이제 그리스도와 함께 아버지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성령 하나님의 능력으로 모든 기업을 상속받는 특권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이 놀라운 축복, 참된 복이 참으로 은혜롭고 풍성하여 내 마음을 완전히 사로잡습니다. 나머지 필요를 구하는 것은 이미 나의 필요를 아시는 아버지를 신뢰하면서 아뢰는 사랑의 간구일뿐입니다.

아버지, 당신은 내게 모든 것을 주셨으니
이것 또한 주실 것을 믿습니다.
아버지, 또한 당신은 나의 모든 필요를 아시고 채우셨으니,
이 또한 채우실 것을 믿습니다.
그러나 아버지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아버지의 뜻대로 되기를 원합니다.
사랑하는 아버지의 뜻을 신뢰합니다.

자, 그러면 우리는 새해에 어떻게 인사해야 할까요?

저는 율법주의자처럼 어떤 문구로 인사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다만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고 말할 때마다 마음속으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더 풍성히 누리라고 외치기를 바랍니다.

새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복을 많이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그 안에 우리에게 부어진 무궁한 은혜의 영광을 풍성히 누리는 한 해 되시기를 바랍니다. 올해도 무수히 많은 일이 우리 삶에 주어질 것입니다. 때론 내가 원하지 않는 일이 일어날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 질병, 심각한 갈등과 좌절, 실패, 낙담, 염려와 실족. 때론 내가 좋아하고 바라는 일이 일어날 것입니다. 승진, 성공, 합격, 친밀한 관계, 새로운 생명의 탄생, 부흥, 성장…

하지만 벌어지는 일을 가지고 받은 복을 계산하지 않게 되기를 바랍니다. 오히려 우리가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받은 참된 복,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 안에서 이 땅에 주어진 모든 일을 복으로 누리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을 더 알아가는 데 필요한 복, 하나님의 은혜에 더 의존하는 데 필요한 복, 복음의 진리 안에서 인내하고 열매 맺기 위해 주어진 복, 세상의 일시적인 것에 소망을 두지 않게 해주는 복, 영원한 하늘나라를 바라보게 하는 복,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가도록 나 자신을 더 깎아내고 변화시키는 복, 내 가정, 내 직장, 내 교회 안에서 하나님이 주신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는 복, 흠이 많은 나를 빛 가운데로 이끄신 하나님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시는 복…

창세전에 나를 택하사 아들의 핏값으로 나를 사시고 지금은 성령으로 확실한 약속을 확증하시는 하나님, 영원히 삼위일체 하나님 안에서 모든 영광을 누리게 하시는 그분이 주시는 모든 것은 나에게 복이며 은혜입니다. 새해 우리 아버지가 주시는 모든 복 많이 받으시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합니다.

The Master's Seminsry에서 M.Div와 Th.M(신약전공) 과정을 마친 후, 현재 유평교회의 담임 목회자입니다. Master's University에서 성경적 카운셀링의 대학원 과정을 마친 아내 김 선미 자매와 2008년 결혼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