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는 하나님이 공평하지 않으심을 증명한다. 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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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s entry is part 2 of 3 in the series 불공평한 하나님

성경: 엡 3:8 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나에게 이 은혜를 주신 것은 측량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풍성함을 이방인에게 전하게 하시고

유년시절부터, 우리는 부모님, 선생님 그리고 우리가 피하고 싶은 다른 어떤 권위적인 사람들의 삶 속에서 위선적인 행동이나 모습을 보았다. 싫어하는 규칙과 원하지 않는 결과로부터 피하고자 하는 것은 주로 아이들이 하는 행동이다. 하지만 이것은 다 자란 성인들이 여전히 하는 행동이기도 하다. 특별히 하나님에 대해서 말이다.

하나님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은 제쳐 두고라도, 이런 질문은 애초에 잘못된 질문이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그들 자신의 주관적인 기준을 하나님의 완전하고 공의로우신 거룩한 기준과 바꾸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것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질서를 뒤바꾸는 인본주의와 세상의 교만한 잣대를 반영한다.

크리스마스를 맞이하여, 믿지 않는 가족들, 친구들과 교류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아마 이 기간에 그들은 하나님의 선하심에 대하여 우리가 익숙히 들어왔던 불만, 불평들을 이야기할지도 모른다. 이 글이 이런 불평들에 대한 질문이나 이야기에 어떻게 대답해야 하는지 도움을 주기를 원한다. 특별히 크리스마스는 세상이 생각하는 하나님의 불공평함이 사실은 놀라운 축복임을 나타내는 날이기 때문이다.

어떻게 하나님은 한 번도 복음을 들어보지 못한 사람들을 똑같이 정죄할 수 있나요?

이 질문은 비단 비기독교인들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 많은 목사와 선교사들 또한 이 문제로 씨름한다. 하지만 이것 역시 인간에 대한 잘못된 관점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하나님의 말씀에 따르면, 인간이 본질에서 죄 가운데에서 태어났듯이, 또한 죄의 심판 가운데서 태어났다(롬 6:23). 아담이 죄를 범하였을 때, 아담과 모든 그의 후손들은 하나님 앞에 유죄가 되고 정죄를 받았다. 그리고 오직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구원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롬 5:18-19). 이 사실을 무시하게 되면 다른 어떠한 탈출구도 없다.

때때로 그리스도인들은 죄인들이 복음을 들어보았는지 안 들어보았는지 관계없이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에 의구심을 품으면서도 단지 입술로만 하나님의 죄인에 대한 공의로운 판결을 시인하는 안 좋은 습관에 빠질 수 있다. 하지만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을 의심하는 것은 성경이 증언하는 것을 무시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하지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부터 나타나나니 이는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그들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그들에게 보이셨느니라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 (롬 1:18-20)

다시 말해서, 하나님 앞에서 “나는 무신론자였어요”라는 통하지 않는다.

믿지 않는 자들이 복음을 듣고 거부하기 전일지라도 그들은 하나님 앞에서 예외인 상태가 아니다. 죄에 덫에 사로잡혀서, 모든 사람은 어떤 변명 없이 하나님 앞에서 죄인이다. 복음을 거부하는 것은 단지 하나님에 대해 더 나아간 반항의 표현인 것이다. 구원에 관한 한, 하나님은 누구에게도 빚진 것이 없으시다. 하지만 그분의 자비와 은혜로 인해서 그분이 선택한 백성을 구원하도록 길을 예비해 두셨다.

그러므로 “어떻게 하나님은 한 번도 복음을 들어보지 못한 사람들을 똑같이 정죄할 수가 있나요?”라는 이 질문은, “왜 이미 만물에 계시된 하나님을 거부한 사람들의 마음을 밝히고 그들을 구원하고자 복음을 사용하는 건가요?” 이렇게 바뀌어야 한다.

 왜 하나님은 모두를 구원하지 않나요?

“나 같은 죄인 살리신 (Amazing Grace)”는 시대를 뛰어넘는 찬송가이다. 교회 역사를 뛰어넘어서 현대 시대로 오기까지 많은 사람에게 사랑을 받았다. 하지만 우리는 잠시 멈춰서 이 찬송가의 가사 속에 들어있는 풍부한 진리를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찬송가를 쓴 다른 수많은 청교도와 마찬가지로, 존 뉴턴(John Newton)은 그와 같은 죄인을 기꺼이 구원하시는 거룩한 하나님을 경외했다. 찰스 웨슬리(Charles Wesley)도 예외는 아니었다. “주 보혈로 날 사심은 그 뜻이 깊고 크셔라. 놀라워라. 주 사랑이 날 위해 죽으신 사랑 놀라워라. 주 사랑이 어찌 날 위함이온지”

이런 뉴턴과 웨슬리의 사상은 생소한 것이 아니었다. 이들이 가사를 통해 보여준 그들의 사상(인간의 죄인 됨과 받을 자격 없는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찬양)은 찬송가 전체에 걸쳐서 다른 수많은 신실한 작가들에게서도 표현된 것이다. 찬송가를 쓴 수많은 작사, 작곡가들은 죄성으로 가득한 인간에게 내주하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에 압도당했다. 그들은 인간은 하나님의 율법을 어긴 죄인이고 영원한 형벌로 인해 고통받아야 마땅하지만(고후 5:21), 그들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제대로 이해했으며 하나님의 그 불공평한 구원하심의 수혜자가 된 기쁨과 감사를 표현했다.

그뿐만 아니라, 그들의 찬송가는 교회가 태동하던 초기부터 역사의 수 세기에 걸쳐 그리스도인들에게 확신을 주는 목소리가 되어주었다. 은혜를 받을 자격 없는 죄인을 향한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과 은혜는 사도 바울조차 헤아리기 힘들 만큼 큰 것이었다. “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나에게 이 은혜를 주신 것은 측량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풍성함을 이방인에게 전하게 하시고”(앱 3:8).

대부분의 뉘우치지 않는 죄인들은 그들 자신을 타락한 세상과 비교하기를 좋아한다. 심지어 그리스도인들도 세상 가운데 온갖 타락한 것들과 우리를 비교하며 우리의 죄의 심각성을 낮추려 하는 일도 있다. 하지만 율법과 말씀에 기록된 하나님의 공의 함에 비추어 보았을 때 우리 안에 있는 통탄할 만한 죄의 본성을 볼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 사실에 대하여 우리가 보여야 할 유일하고 적절한 반응은 뉴턴과 웨슬리 그리고 사도 바울이 놀라움으로 표현했던 그 고백들을 메아리치는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에 비추어 보았을 때, 질문은 “왜 하나님은 모두를 구원하지 않나요?” 에서 “도대체 왜 하나님은 인간을 구원하시나요?”로 바뀌어야 한다.

다음 글에서는 마지막 질문을 다루면서 하나님의 불공평하심을 통한 풍성한 은혜를 같이 묵상해보고 결론을 내리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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