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그리스도를 더욱 사랑할 수 있을까?

Young man reading the Bible with bright green background

“이것이 너희의 간구와 예수 그리스도의 성령의 도우심으로 나를 구원에 이르게 할 줄 아는 고로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지금도 전과 같이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게 하려 하나니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 (빌1:19-21)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빌 3:7-8)

나는 주일 아침마다 우리 교회의 팰로십 모임에서  바울 서신서를 빌립보서를 설교해왔고, 최근에 빌립보서 1:19-21에 이르는 영광을 얻었다. 그리스도를 존귀하게 하려는 바울 생애의 열정(1:20)과 그에게는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하기(1:21) 때문에 그가 그리스도를 존귀하게 할 것을 확신했다는 사실을 묵상하는 것은 놀랍고 영혼을 흔드는 연구였다.

또한 빌립보서 1:19-21과 빌립보서 3:7-8의 상호작용은 감격스러웠다.  이는 바울에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가 의미하는 것은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과 그분을 얻는 것이 가장 고상하므로 자신의 삶에서의 모든 것을 다 해로 여긴다’는 것이었다. 나보다 먼저 이 본문을 연구한 신실한 분들의 도움으로 -적잖은 부분이 존 파이퍼다- 삶이 줄 수 있는 모든 것과 죽음이 가져가는 모든 것보다 그리스도로 만족함으로써 그리스도인이 그분을 영광스럽게 한다는 것은 놀라운 발견이었다.

그 날 오후 나는  교회의 한 친구로부터 이메일을 받았다. 그는 몇 마디의 아주 친절한 격려의 말을 한 후에,  자신과 함께  말씀을 읽으면서 시간을 보내는 한 남자가 자기에게 몇 가지 추가 질문을 했다면서, 그에게 바로 대답하기보다 나라면 어떻게 대답했을지 알고 싶다고 말했다. 그 중 한 가지  질문은 이것이다.

“빌립보서 3:7-8의 바울과 같이 어떻게 하면 그리스도를 귀하게 여길 수 있습니까?”

저는 그 형제에게 저의 기도를 소개하며 그의 질문에 답했다. 다음은 그 편지의 일부로 여러분에게도 유익이 될 것으로 생각하기에 소개한다.

형제님,

 

격려 감사합니다.

어떻게 사람이 바울이 그랬던 것처럼 그리스도를 귀하게 여기게 되냐는 질문에 대해, 저는 그것은 우리 모두의 삶 속에서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나요?

 

하신  질문은 우리의 모든 인생의 목표를 차지해야 하는 질문입니다. 제가 빌립보서 3:7-8을 읽을 때, 저는 바울이 경험으로나, 소중히 함으로나, 그리스도를 보물로 여김으로써, 그의 삶의 다른 모든 것은 그분과 비교해 아무것도 아니고 그리스도가 최고의 가치임을 찬양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형제님의 질문은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을 것입니다. 

 

“어떻게 제가 그리스도를 이런 식으로 경험하는 데 이를 수 있을까? 어떻게 제가 그분을 보물로 소중히 할 수 있을까? 어떻게 제가 그분이 너무 귀해서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그분을 얻는 것이 여전히 유익이라고 여길 수 있을까?”

 

제 생각에 이것을 이해하는 비결은 그리스도의 ‘객관적인 가치가 너무나 귀하다‘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 사실을 믿든 믿지 않든, 느끼든 그렇지 않든 간에 상관없이 우리의 삶이 줄 수 있는 그 어떤 것보다 죽음이 가져갈 수 있는 그 어떤 것보다 더 가치 있고, 더 귀중하고, 더 사랑받기 합당하신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리스도를 그런 식으로 경험하고 있지 않다면, 제게 처음 떠오르는 생각은 이것입니다:

 

우리는 그분을 더 잘 알 필요가 있겠다!

 

이 말이 단순하게 들릴 거로 생각합니다만, 달리 무슨 말을 하시겠습니까? 저는 객관적인 어떤 사실을 주관적으로 경험하지 못했다면, 그 객관적인 사실을 아는 일에 더 열심히 노력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것이 매일매일 말씀에 의지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생각합니다.

말씀을 읽고 묵상하는 것이 그저 미리 세워 놓은 년간 계획에 따라 밀린 숙제를 하듯이 칸에 표시하기 위해 읽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저 보이기 위해 읽는 것이 아닙니다. 그저 새로운 신학이나 교리에 기반을 둔 새로운 논쟁을 찾기 위해 읽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매일 예수님을 보기 위해 말씀에 의지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분을 알기 위함입니다. 그분이 교만한 죄인들과 깨어진 죄인들과 어떻게 관계하시고 소통하시는지 알기 위함입니다. 그분의 하신 일에 감탄하기 위함입니다. 그리고 주님께 모든 길을 묻기 위함입니다.

 

저는 그것을 위해서 이렇게 기도합니다. 

 

아버지, 저는 당신의 말씀 안에 있는 당신의 아들의 나타남으로 제가 그분을 귀하게 여기게 될 것을, 그분이 제 사랑의 더 큰 자리를 갖게 될 것을, 그래서 제가 그분을 훌륭하고 영광스럽고 귀중하고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분으로 보게 될 것을, 그리고 그 결과로 제 삶이 그분을 예배하며 살게 될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 저는 죄인입니다. 제 눈은 이 세상의 유혹으로 가리워졌고, 그러한 것들이 제 눈을 멀게 하고 가장 사랑하는 구주에 대한 제 사랑을 무디게 했습니다. 제 속에 있는 죄는 아름다움을 거부하고 추악함을 따랐습니다. 저는 저를 만족하게 할 수 있는, 돈 없이 물로 나아와 마실 수 있을 때, 값 없이 포도주와 젖을 살 수 있을 때, 양식이 아닌 것을 위하여 돈을 쓰며, 배부르게 하지 못할 것을 위해 수고했습니다(사55:1-2).

오 아버지, 제가 뒤로 물러서서 주님을 의뢰하지 못했던 것을 용서해 주십시오! 그리고 용서해 주시는 것뿐 아니라, 저를 그것으로부터 고쳐주십시오! 제 눈을 여셔서 당신의 말씀의 놀라운 것들 만이 아니라, 당신의 말씀으로부터 놀라운 구주를 바라보게 해주십시오. 당신의 거룩하게 하시는 말씀의 능력으로(요17:17), 그분 그대로 볼 수 있는 눈을 주시고, 제가 본 그분을 예배하는 마음을 주십시오.

 

 이러한 기도를 하면서 당신의 삶을 창조된 목적인 하나님 만을 의지하며 성경을 통해서 그분을 알아갈 때, 형제님의 사랑이 사도 바울과  같은 사랑으로 자라나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