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대 주의와 언약 주의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지난 2세기 동안, 세대 주의 신학(하나님의 거룩한 역사, 즉 주님의 경륜이 시대마다 다르다고 보는 견해)과 언약 주의 신학(성경 전체를 주님의 언약 안에서 해석하는 견해)은 복음주의 진영 안에서 신학적 경쟁 관계를 유지해왔다. 두 신학 모두 깊은 전통과 훌륭한 학자들이 포진해 있고, 많은 부분이 신학적 체계에 관한 것들이며, 두 진영 안에 있는 대부분의 논쟁거리는 우리에게 친숙하다.

이제부터 이 두 신학의 차이점에 대한 나의 생각을 기술하려고 한다. 이 영역과 관련된 사안들이 다소 복잡하고 광범위하여 이 글에 모든 것을 다룰 수는 없지만, 나의 신학적 관점 안에서 두 진영 안에 존재하는 가장 근본적인 차이점에 대해 간략히 요약해 보겠다.

첫 번째로 이 두 신학 체계의 차이점을 다루기에 앞서 이들의 공통된 주제에 대해 다루려 한다. 무엇보다도 성경에서 말하는 복음은 세대 주의와 언약 주의 신학을 나누는 것이 아니며, 양측 모두 구원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얻는 것임을 확증한다. 복음에 대한 이 두 신학의 일치는 칭찬받아 마땅하며 그리고 비록 둘 사이에 어떠한 차이점들이 존재하더라도 복음이 그들 중 한쪽에만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차이점을 논의하기에 앞서 세대 주의와 언약 주의 신학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한 형제라는 것을 여러분들이 알아줬으면 한다.

나는 “시대”(dispensation)에 대한 쟁점이 두 신학의 근본적 차이를 만드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 말이 어떤 이들에게는 다소 이상하게 들릴지도 모르겠다. 왜냐하면, 세대 주의 신학이 “시대”(dispensation)에 대한 개념과 아주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매우 재미있는 것은 언약 주의와 세대 주의 모두가 하나님께서 시대마다 다른 방법을 통해 일하신다는 것에 동의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구원은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오직 믿음, 오직 은혜로만 받는다). 비록, 세대 주의 신학이 “시대”(dispensation)에 대한 사안들에 많은 에너지를 소비해왔지만, 나는 이것이 두 신학 간의 핵심적 차이점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두 진영은 서로 “시대”(dispensation)를 정의하는 기준과 그 시대에 대한 숫자의 개념이 다를 것이기 때문에 “시대”(dispensation)가 두 신학을 나누는 결정적 요인이 아님은 분명하다.

또한, 언약 주의 쪽에서 말하는 주님의 “언약”(covenant)들이 이 쟁점에서 가장 중요한 것도 아니다. 전통적으로 3개의 중요한“언약”(covenant)이 언약 주의 신학 체계 안에서 확증 됐는데, 이는 1. 구속의 언약 2. 행위의 언약 3. 은혜의 언약이다. 하지만, 언약 주의자들 내에서도 이 확증된 사항들에 동의하지 않거나 이들 중 몇 개만 받아들이는 경우도 있고, 더욱이 이쪽 신학자 중에는 이러한 방식으로 언약들이 명명되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세대 주의 학자 중에서 세대 주의 신학을 고수하면서도 이 세 개의 “언약”(covenant)을 다 받아 들이거나 이들 중 몇개만 받아들이는 경우도 있다. 이를 통해 볼 때, 위에 언급한 3개의“언약”(covenant)들 또한 두 신학을 나누는 핵심적 요인은 아님을 알 수 있다.

만약 “시대”(dispensation)와 “언약”(covenant)이 두 신학을 나누는 결정적 요소가 아니라고 한다면, 과연 무엇일까? 나는 그 대답이 성경 해석(hermeneutics)과 줄거리(storyline)에 있다고 생각한다.

성경 해석학(Hermeneutics)

성경 해석학은 성경 해석의 원리들을 다루는 학문이다. 세대 주의 학자들은 일관된 역사적’문법적’문자적 해석에 따라 성경 66권 전체를 바라보며, 이는 종말론과 민족적 이스라엘에 주신 구약의 메시지들을 포함한다. 이는 성경에 명시된 이스라엘 땅, 성전, 예루살렘 등을 문자적으로 접근하는 것으로써 세대주의 진영에서는 구약의 모든 예언과 약속들 그리고 언약들이 영감을 받은 저자의 본래 의도대로 이행되어야 함을 강조한다. 이는 물리적이고 민족적인 약속들이 영적으로(문자적인 성취가 아닌) 성취되는 것을 다른 성경에서 찾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신약이 구약의 약속과 예언을 재해석하거나, 초월 또는 미화하는 것도 아니다. 세대 주의 해석의 관점, 즉 문자적(문자 주의와 다름)인 관점에서 성경을 있는 그대로 읽다 보면, 여러분들은 분명 문자적 관점에서 이해된 내용이 결국 성경 저자가 의도한 내용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쪽 진영에서는 성경의 줄거리 또는 언약의 중요한 세부사항들을 삭제하거나 그 내용을 바꾸는 예표론(구약의 모형이 신약의 원형으로 성취됨)이나 성경의 진보’발전은 없다고 믿는다. 역사적’문법적’문자적 성경해석이 성경 안에서 원형(antitype)에 대한 모형(type)을 발견하기는 하지만, 성경 본문이 본래 의도한 뜻을 바꾸는 무분별한 예표론적 접근에 대해 세대 주의 학자들은 전혀 동의하지 않는다.

모세 율법과 같은 언약들이 새 언약(히브리서10:1)의 그림자 역할을 하는 것은 맞지만, 세대주의 학자들은 구약의 모든 것들이 그림자라고 보지는 않는다. 이들은 이스라엘, 이스라엘의 땅, 성전, 예루살렘, 민족들, 창조의 회복과 관련된 약속들이 그림자가 아니라고 믿는다. 이 약속들은 미래에 반드시 성취될 것이며, 이 모든 것들이 가능한 이유는 주님의 모든 약속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취하시기 때문이다 (고후1:20).

세대 주의 학자들은 한 구절의 주요 의미가 다른 구절이 아닌 현재 속해있는 문맥 안에서 발견된다는 “구절 우선순위”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또한, 이들은 한 성경(구약 또는 신약)이 다른 성경(구약에는 신약, 신약에는 구약)을 넘어서서 우선권을 행사하지는 않지만, 각 성경(신약과 구약) 안에 있는 구절들이 가지고 있는 의미가 서로 상충하지 않고 내용의 일치를 이룬다는 것에 동의한다. 달리 말하자면, 신약 성경이 더 새로운 계시를 제공하는 것은 맞다. 그러나 그 내용이 구약 성경의 내용과 모순되거나 뜻을 바꾸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를 볼 때, 각 성경의 내용과 뜻이 서로 조화를 이루지만, 어떠한 성경 본문이 다른 성경 본문의 내용을 바꾸거나 재해석하지 않는다는 것이 세대 주의 측의 일관된 견해임을 알 수 있다.

언약 주의 학자들 또한 역사적’문법적으로 성경을 해석하는 것에는 동의한다. 하지만, 그들이 더 강조하는 것은 예표론적, 영적인 성경해석에 대한 접근이다. 이는, 주님께서 구약성경을 통해 민족적 이스라엘에 주신 약속을 포함하는 것으로써 구약의 약속들을 신약의 그림자로 인식하여 해석한다.

언약 주의 해석은 “신약성경 우선순위(성경해석에 있어 신약을 구약의 위에 둠) ” 개념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데, 이 개념의 핵심은 신약의 렌즈를 통해 구약을 해석 또는 재해석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관점은 구약에서 신약으로의 전환이 그림자(모형)가 결국 실제(원형)를 위해 존재하고 변환된다는 생각과 정확히 맞아떨어진다. 따라서 구약의 육체적, 민족적 약속은 종종 신약에 나타난 예수님과 교회의 성취를 위한 그림자(모형)로 간주한다. 이 접근법은 구약을 왜곡할 수 있는데, 이에 대해  Kim Riddlebarger는 “만약, 신약 성경의 저자들이 구약 성경의 예언을 영적(문자적인 접근이 아닌)으로 해석하여 적용했다면, 구약은 신약의 해석 안에서 이해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Kim Riddlebarger, A Case for Amillennialism, 37). 의심할 여지 없이, “이스라엘”과 “성전”의 개념이 예수님 안에서 성취된다면, 구약에 약속된 민족적 이스라엘의 문자적 성취는 기대할 수 없는 것이다.

종합하자면, 두 진영 사이의 궁극적인 차이점은 구약의 민족적 이스라엘에 대한 약속과 예언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에 대한 것이다. 세대 주의 측은 이것을 미래에 일어날 실제적인 약속으로 바라보고 있지만, 언약 주의 측은 이 약속들(이스라엘에 대한)을 예수님(원형) 안에서 성취되는 그림자(모형)로 생각하며, 문자적으로 성취되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줄거리(Storyline)

해석적 관점 외에도, 세대 주의와 언약 주의가 가지는 다른 또 하나의 차이점은 성경의 스토리에 관한 것이다. 둘 간의 논쟁은 대개 구약의 약속과 언약들의 본질, 하나님의 목적 안에 나타난 민족적 이스라엘의 정체성과 역할, 그리고 예수님의 초림(first coming)으로 성취된 것과 재림(second coming)을 통해 앞으로 성취될 것에 대한 내용이다. 이러한 것들에 대해 두 가지 중요한 스토리의 차이가 예상되는데, 이는 – 1) 하나님의 목적 안에 나타난 이스라엘의 역할 2) 현 시대 이후와 영원한 왕국 이전의 단계, 즉 중간 단계의 왕국(천년왕국)이 하나님 나라 안에 존재하는지의 여부 – 이다.

언약 주의 학자들은 구약의 이스라엘에 대한 약속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되며 예수님을 진정한 이스라엘로 보고, 이방인을 포함한 모든 믿는 자가 그리스도와 연합하게 될 때, 이 연합을 통해 믿는 자가 “영적 이스라엘”이 된다는 게 이들의 생각이다. 이것은 “이스라엘”이라는 개념이 이방인들에게도 확장되었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교회는 새로운 이스라엘, 즉 영적 이스라엘이 된 것이며, 주님의 백성을 향한 계획이 이 연합을 통해 절정을 이룬다. 예수님이 “진정한 이스라엘”이시고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교회가 영적 이스라엘이기 때문에 민족적 이스라엘의 회복은 이제 필요가 없는 것이다. 또한, 구약의 약속과 언약에 대한 성취가 예수님의 초림(first coming)에 강조되는 경향을 볼 수 있는데, 대부분의 언약 주의 학자들은 예수님의 천년왕국 통치가 지금 하늘에서 일어나고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우리는 현재 예수님의 메시아 왕국에 살고 있으며(천년왕국을 비유로 해석), 구약의 언약들은 대부분 지금 성취되고 있다고 본다. 따라서 이 시대가 성취의 시대이고 예수님의 통치 시대이기 때문에, 미래에 있을 예수님의 지상 통치는 필요 없는 것으로 간주한다.

반면에 세대 주의 학자들은 예수님께서 참 이스라엘의 정체성과 역할을 감당하시는 것은 맞지만, 민족적 이스라엘의 언약을 축소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는,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이 민족적 이스라엘과 참 이스라엘 이신 예수님 둘 다를 포함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정체성을 참 이스라엘로 바라보는 관점은 “이사야 49:3-6”이 가르치는 것처럼, 이스라엘 민족의 회복을 의미한다. 구약에 나타난 이스라엘 국가에 대한 주님의 계획, 즉 이스라엘 민족이 열방 민족에 대한 봉사와 리더십의 사명을 완수하는 것은 성경에 나타난 일관된 주님의 계획이었다 (창12:2-3, 신4:5-6). 이스라엘은 구약에서 이 사명을 완수하지는 못했지만, 앞으로 있을 메시아 왕국(천년왕국)에서 열방들에 대한 리더십의 사명을 감당할 것이다 (이사야2:2-4). 앞으로 있을 천년왕국 기간에 실제로 국가가 존재하기 때문에 이 기간에 이스라엘(민족적)이 한 국가의 역할을 감당할 것이라는 사실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리고 민족적 이스라엘이 주님의 언약에 있어서 여전히 중요하기 때문에 교회가 이를 대체하여 새로운 영적 이스라엘이 되었다고 볼 수는 없다. 교회가 이 시대에 복음과 주님의 나라를 선포할 도구인 것은 분명하지만, 그리스도께서 재림(second coming)하실 때 이스라엘은 천년왕국에서 열방 민족에 대한 리더십의 역할을 감당할 것이다. 그리고 이 시대의 교회 또한 열방을 다스리실 예수님의 통치에 참여할 것이다 (계2:26-27, 3:21).

언약 주의 학자들과 달리 세대 주의 학자들은 “이스라엘”에 대한 개념이 이방인을 포함하여 확장된다고 믿지 않는다. 하지만, “하나님의 사람들”, 즉 교회에 대한 개념은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고 구원받은 백성(이방인이든 이스라엘인이든) 모두를 지칭한다고 본다. 모든 믿는 자가 이스라엘 민족이 되는 게 하나님의 계획은 아니지만, 각각의 민족적 정체성을 잃지 않고 이스라엘과 이방인을 주님의 백성으로 포함하시는 것이 성경에 나타난 주님의 뜻인데, 이는, “주님의 백성”이 영원한 상태(eternal state) 에 있을 때도 “열국(the nations)”으로 불리는 것을 (계21:24, 26) 통해 더욱 알 수 있다.

또한, 세대 주의 진영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성경의 스토리는 마지막 아담인 메시아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통치할 나라, 즉 지상 왕국의 실제적 필요성에 있다. 이는 지구를 성공적으로 통치하는 것이 반드시 이루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아담과 인류(창1:26-28)에게 그분을 대신하여 지구를 성공적으로 다스리라고 명령하셨지만, 히브리서 저자가 “히브리서2:5-8”에서 단언한 것처럼, 이 왕국의 임무는 아직 성취되지 않았다. 그러므로 첫 번째 아담이 실패한 이 임무를 마지막 아담 되신 그리스도께서 성공적으로 이루셔야 하므로 다가올 지상 왕국(아직 실현되지 않음)은 반드시 필요하다. 그리고 이 통치가 국가들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메시아이신 그리스도께서 이 통치 기간 동안 이스라엘 민족을 그분의 도구로 사용하실 것이다. 이를 볼 때, 지상 왕국(천년왕국) 통치 기간 동안, 그리스도께서 이스라엘 민족을 사용하시는 것이 성경 스토리를 이해하고 해석하는데 있어서 세대 주의 학자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요소임을 알 수 있다.

결론

세대 주의와 언약 주의 신학 사이에 존재하는 차이점들에 대해 더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지만, 위에 언급한 내용이 이들의 핵심이다. 종합하자면, 이 두 진영의 궁극적 차이는 장차 올 메시아 왕국(천년왕국)에 대한 필요성과 이 왕국 통치에서 사용될 이스라엘 백성의 역할에 대해 서로 다른 견해의 해석(hermeneutics)과 성경 스토리(storyline)를 가진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