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 교리 분별 (4): 급증하는 무지

Businessman hand browsing internet websites on his laptop
This entry is part 4 of 19 in the series 바른 교리 분별

월드 와이드 웹(WWW)은 구소련연방이 해체된 후 일년이 지나기 전부터 서서히 사용되고 있었다. 나의 책 “복음을 부끄러워하는 교회” (Ashamed of the Gospel) 초판이 서점에서 막 판매되기 시작될 무렵인 1993년도까지 인터넷을 가장 일찍 접해 본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웹(the Web)을 구경하기는 고사하고 들어본 적도 없었다. 대부분 사람은 웹이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듯이 세상을 그렇게 갑자기, 획기적으로 변화시켜 놓으리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1996년도 어느 날 나는 우리 교회의 미래 사역을 계획하고 의논하는 회의에서, 월드 와이드 웹이 앞으로 우리의 라디오 방송과 설교 테이프를 통한 사역을 확장하는데 있어서 결국 주된 매체의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는 말을 들었다. (그 당시에는 라디오와 카세트테이프가 우리가 사용하던 유일한 오디오 매체였다). 당시에 새로운 전자 기술의 흐름을 이미 읽고 있었던 “그레이스 투유” (Grace to You)의 운영진들은 20년 이내에 오디오 테이프는 완전히 자취를 감추게 될, 낡은 기술이 될 거라는 점을 예견하고 있었다. 그때 나는 그건 좀 지나친 과장이라고 생각했다. “차 안에서 인터넷에 접속할 수는 없죠. 설령 접속할 수 있다고 해도, 누가 차에 컴퓨터를 들고 타려고 하겠어요. 차 안과 같이 좁은 공간에서는 누구나 카세트테이프가 훨씬 편리하다고 느낄 거예요.”라고 나는 그들의 오류를 지적했다.

기술에 관한한 나는 명백히 문외한이었다.

세상이 새로운 미디어 기술을 따라 잡는 속도는 실로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인터넷 커뮤니케이션의 편의성과 속도는 우리 삶의 거의 모든 영역을 바꾸어 놓았다. 수많은 정보(틀린 정보를 포함하여)에 손쉽게 접근하는 인터넷은 사람들이 생각하고, 배우고, 의사 결정을 내리는 방식을 이전과 완전히 다르게 변모시켰다. 그뿐만 아니라 인터넷이 쏟아 내는 정보들을 쉽고, 빠르게, 그리고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접근할 수 있게 되어 식자층과 일반 대중 사이의 경쟁의 장이 평준화되었다. 누구든지 큰 비용을 들이지 않고 블로그를 개설할 수 있고, 컴퓨터(혹은 스마트폰)와 인터넷만 연결되어 있으면 순식간에 자기 생각을 전 세계에 알릴 수 있다. 또한, 전문가나 비전문가나 똑같은 소셜미디어를 사용할 수 있다. 청중을 모으는 데 능숙한 사람들은 수많은 팔로워(follower)들을 거느리고 있으며, 그들이 이렇게 자신의 의견을 전파하는 데 있어 반드시 특정한 지위와 자격을 갖출 필요도 없다.

다양한 의견과 수많은 정보가 온라인상에서 짧은 시간 안에 전 세계에 회자 된다는 사실은, 즉흥적인 생각을 전달하는 언어들이 세심한 연구를 거쳐 나온 논문들보다 훨씬 더 큰 영향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실, 오늘날은 무엇이 진실이냐 거짓이냐 하는 문제보다 자신의 의견을 교환하는 방식이 더 중요하게 여겨지는 것 같다.
대부분 사람은 본능적으로  사려 깊게 쓰인 글보다 간결하고 재치 있는 농담성의 논평을 더 좋아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거의 모든 경우에 형식이 내용보다 우선순위를 차지한다. 진중한 담론보다 인상적인 말 한마디가 대중의 구미에는 더 맞는 것이다. 이러한 현실은 우리가 평소에 뉴스를 접하는 방식이나 정치인들이 선거운동을 펼치는 방식, 그리고 심지어 사람들이 인맥 관리를 위해 개인적인 유대 관계를 관리하는 방식에도 반영되어있다.

문자 메시지는 아마 개인들 간의 가장 흔한 의사소통 수단일 것이다. 또한, 한번에 몇 시간 혹은 하루 저녁을 함께 보내다 헤어지는 “파워 데이트” (power-dating) 가 결혼 전 서로를 알기 위해 오랫동안 사귀는 “교제”(courtship)의 자리를 대신 했고, 퇴근 후 짧은 시간 동안 자녀와 함께하는 시간을 일컫는, “귀중한 시간”(quality time)이 자녀들과 삶을 함께 나누는 진정한 양육의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전형적인 라디오 대담 프로그램은 시청자들의 전화를 받고 몇 마디 대화를 나누다가 그들이 몇 초 내에 설득력 있게 요점을 이야기하지 못하면, 무례하게 전화를 끊어버린다.
텔레비전 방송의 사회자들도 토론 참가자를 손님으로 공개토론회에 초청해 놓고, 자신들이 원하는 대로 프로그램을 진행하기 위해 그들의 식견을 다 들어 보기도 전에 시청자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말든 중간에 말을 끊는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본질이 아니라 프로그램 자체이다. 단순히 시청률을 높이는 일이 진실을 더 널리 전하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믿는다. (오늘날 수많은 교회가 가진 생각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나는 이러한 텔레비전 프로그램의 초청인사로 초대받은 적이 몇 번 있었다. 인터뷰하면서 때로 함께 초대받은 인사들은 지역적으로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서 서로 볼 수도 없었고, 상대방이 하는 말도 이어폰을 통해서 겨우 알아들을 수 있을 뿐 이었다. 하지만 이것은, T.V. 카메라가 인터뷰하는 장면을 내 보면서 여러 사람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했다는 인상을 주는 것으로 프로그램의 목적을 달성했다고 생각하는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초청 인사가 입을 열어 한 문장도 채 끝마치지 못했더라도 그들은 상관하지 않는다. 이처럼 우리의 문화는 여유를 가지고 충분한 설명과 이성적인 담화를 나누는 데 있어 인내심이 부족하다.

오늘날 인터넷에 기반을 둔 가장 인기 있는 의사소통 수단은 트위터(Twitter), 즉 사용자들이 자신들의 생각을 짤막한 문구로 전 세계에 알릴 수 있는 애플리케이션인 것 같다. 하나의 “트윗” 은 140 글자로 제한되며, 이런 메시지가 매주 수 십만 건 이상 온라인상에서 오간다. 이것은 새로운 미디어의 진화라는 측면에서 볼 때 논리적으로 다음 단계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블로그는 이미 인기를 잃어 가고 있다. (블로그는 보통 세 단락으로 이루어지는데, 사람들은 문자 메시지보다 너무 길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주목하는 시간은 점점 짧아지고 있고, 그에 따라 읽고 쓰는 능력은 현저히 저하되고 있으며, 논리적인 글들은 불필요하게 상세하다는 이유로 흔히 외면을 당한다. 웹은 어떻게 “느끼느냐”라는 문제가 어떻게 “생각하느냐”라는 문제보다 중요하게 여김을 받는 오늘날의 문화에 더 잘 맞는다. 인터넷 사이트 운영자들은 각자의 의견을 교환하는 수많은 토론방을 개설하는데, 때로 이런 공간이 폭언과 악성 댓글이 넘쳐 나는 싸움터로 오용되는 경우가 많다. 또한, 인터넷 토론장은 사용자들이 그들 자신의 정신을 지배하고 있는 신성 모독과 적의를 표출하는 부정적인 통로로 사용되기도 한다. 만일 당신이 인간의 타락성에 대한 풍부한 예를 보여주는 명백한 증거를 보기를 원한다면, 신학적인 논쟁을 벌이는데 몰입해 있는 사이트들을 포함하여, 무절제하게 자신들의 생각을 쏟아 내는 인터넷 토론장을 한번 들어가 살펴보라.

인터넷은, 이 모든 역기능에도 불구하고 포스트모더니즘이 번성할 수 있는 이상적인 환경을 만들어 준 것이 아니라, 더욱 정확히 표현하자면, 바로 이러한 역기능들 “때문에” 포스트모더니즘이 더 활개 치고 번성하게 된 것이라고 말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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