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 교리 분별(3): 냉전의 종식과 함께 변질된 복음

This entry is part 3 of 19 in the series 바른 교리 분별

1993년도의 세계는 여러 면에서 크나큰 변화를 겪은 시기였다. 20세기의 남은 해들과는 매우 다른 독특한 면이 있었으며, 한편으로는 인터넷이 막 시작되려고 하던 시기로 본격적인 인터넷 시대와는 분명 달랐다. 역사는 틀림없이 1990년대 초기를 인류사에 있어서 획기적인 변화들이 일어난 시기였다고 기억할 것이다. 1992년, 보수적인 특집기사 논객인 조지 윌(George Will)은 자신이 3년 동안 신문에 기고한 칼럼을 모아 책을 발간했다. 그는 그 책의 제목을 “갑자기”(Suddenly)이라고 정했는데, 이것은 당시의 상황을 정확히 묘사하는 제목이었다. 돌연히, 정신을 못 차릴 정도로, 모든 것이 변화의 흐름 속에 있었다. 유행과 철학사조도 어느 때보다 빠르게 변하고 있었다. 그 변화는 예술에서부터 동물학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에 영향을 끼쳤으며 범세계적으로 광범위한 것이었다. 이데올로기적인 변화, 사회적인 변화, 정치적인 변화 그리고 도덕적인 변화들이 당시의 세계질서였다. 갑작스럽게 너무나 많은 견해들과 경계들이 혼란스러울 정도로 변화를 겪었다. 근대적인 사고에 기초하여 확립된 세계관이 완전히 신뢰를 잃었다. 그나마 근대 사회가 진실하고 확실하다고 굳게 믿었던 가장 기본적인 가치관들 역시 완전히 부정되었다.

1989년 11월 9일, 중요한 전환점이 되는 사건이 발생했는데, 그것은 유럽의 공산주의의 종말을 고하는, 베를린 장벽이 문자 그대로 하루 아침에 무너진 사건이었다. 레닌의 유산의 종말이 현실로 이루어졌고, 그와 더불어 기념비적인 수많은 변화들이 누구도 예상치 못하는 속도로 진행되었다. 고르바초프와 개방정책 그리고 걸프 전 등이 90년대의 개막을 장식하는 뉴스 거리들이었지만 1991년에 걸프전이 끝나고 같은 해 8월 소비에트 연방이 붕괴 되었다. 보리스 옐친은 용감하게 구데타 시도에 대항했고, 러시아의 권좌에 올랐으며 이어서 구 소련제국의 공식적인 해체가 시작되었다.

1993년의 세계는 냉전의 가치를 단호히 포기했다. 우리는 부모세대의 “근대성”(modernity)의 개념이 빠르게 퇴색되어 가는 것을 지켜보았다.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단어가 여기저기서 인기 있는 담론의 주제로 사용되기 시작했지만, 그것이 표방하는 개념들은 이미 사회 전 분야에 뿌리내려져 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채 깨닫기도 전에 우리는 근대의 종말을 지켜보았고, 포스트모던의 가치들이 진리에 관한 세상의 생각과 말하는 방식을 완전히 바꾸어버렸다. 근대성의 종말에는 한편으로 긍정적인 면이 있었다. 그 중 하나는, 참과 거짓을 구분하는 신뢰할 만한 척도가 과학과 인간의 이성이라는 관념이 틀렸다는 것이 드러난 것이다.

“이성의 시대”로 명명되는 근대는 그 시대 초기 옹호자들에 의해 성경의 권위에 대한 부정과 그 자리를 인간의 이성으로 대체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시작되었다. 근대성의 주요 관념들이 몰락하면서 인간의 사상적인 면에서의 교만이 드러났는데 이것은 명백히 바람직한 발전이었다.

이외에 정치적인 연합의 재편이라는 세계적인 추세는 기독교 사역을 위한 놀라운 새로운 기회를 제공했다. 나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교회 지도자들에게 성경을 가르치기 위해 구 소련 연방 국가들을 자주 여행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나는 소련 침례교회의 초청으로 그곳을 방문한 이래 지금까지 견고한 유대관계를 형성할 수 있었다. 방문 초기에 나는 복음적인 러시아 교회들의 힘과 활력을 보고 무척 놀랐다. 그들의 예배는 단지 설교와 성만찬 예식으로 이루어졌지만 꾸밈이 없고 소박했다. 거기에는 당시 서구 교회 전문가들에 의해 사람들의 주목을 끌기 위해 예배에 필수적이라고 홍보되던 화려함과 흥미적인 요소들이 전혀 들어있지 않았다. 그것은 나로 하여금 그 어느 때보다 주님께서 어떻게 그분의 교회를 세우시는지 그리고 지혜로운 건축자가 된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에 대해 깊이 숙고하게 만들었다(고전 3:10~15).

90년대 초 미국의 복음주의는 부끄럽게도 세상의 유행을 답습하는데 열심이었다. 교회 지도자들과 교회성장 전략들은 공공연히 복음을 시장에서 판매하는 상품으로 묘사했으며, 그에 따른 당연한 결과는 복음을 고객들이 구매하고 싶은 상품 중의 하나로 만들기 위해 갖가지 방안을 고안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잘 짜여진 마케팅 전략이 단순한 복음 선포보다 교회에 나오지 않는 사람들에게 다가가는데 훨씬 효과적이라고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수많은 여론조사에 의해 지지를 받는 이런 개념에 도전하고자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것처럼 보였다. 하기야 누가 도전하고자 한들 흥미지향적인 대형교회들이 성취한 눈에 보이는 외형적 “성공”에 감히 맞설 수도 없었을 것이다.

서방의 복음주의자들은 이런 분위기 속에서 성경적인 설교와 기독교의 근본진리에 대한 가르침에 대해 수십 년에 걸쳐 서서히 관심을 잃어가고 있었다. 미국의 교회는 연약해져 갔고, 세속적으로 변질되어 갔으며, 사람중심이 되어버렸다. 복음주의자들의 귀도 얇아져서 성경적인 가르침보다 무언가 새롭고 오락적인 것들을 더 원하게 되었다(딤후 4;3). 또한 경영학 지식을 갖춘 교회 전문가들은 고객들이 원하는 것을 주지 않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고 선언했다. 심지어 그들은 실용적인 방법론에 의하지 않고는 수적인 성장은 절대로 불가능하며, 그와 같은 방법들이 영적인 성장에 명백히 해가 될지라도 교회성장에는 필수적이고 주장했다.

교회들이 오락적인 요소에 지나치게 집중하는 사이에 영적으로는 점점 메말라져 갔다. 몇몇 외형적으로 성장한 대형교회들은 수 천 수 만 명의 출석교인들 숫자로 그러한 비극을 감추고 있었지만 그들이 걸어온 길을 유심히 살펴본 사람이라면 서구의 복음주의가 심각한 어려움에 당면해 있다는 사실을 누구나 감지할 수 있었다.
이와 대조적으로, 철의 장막에 싸여 있던 교회들은 성경적인 가르침에 목말라하고 있었다. 그들은 담대한 복음사역으로 영적으로 능력이 있었으며 수적인 면으로도 성장하고 있었다. 오랜 세월에 걸친 공산주의 압박에서 벗어나 마침내 그리스도를 자유롭게 전파할 수 있게 되었고, 그 결과 교회는 더욱 흥왕하고 있었다.

대부분의 러시아 목사들은 정식으로 신학교육을 받은 적이 없었다. 때문에 그들은 서구 교회로부터 해석학과 교리분야에 있어서 간절히 도움을 필요로 했다. (내가 그들을 돕는 일이 바로 그 일이다). 철의 장막에 갇혀 있던 러시아 교회의 성숙하고 분별력 있는 교회 인도자들은 서구교회로부터의 부정적인 영향을 매우 조심스러워 했다. 나는 솔직하게 그들의 염려를 이해했고, 서구교회들을 염려하는 그들의 우려에 감사를 표했다. 나는 그들 중 가장 연약한 교회라 할지라도 교회성장에 관한 성경적인 접근방법에 대해 미국의 복음주의자들보다 더 잘 가르칠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 그들은 올바른 교회성장 전략은 결코 요한복음 15:19~20 의 진리를 간과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점을 이미 우리보다 더 잘 이해하고 있었다.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터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세상에서 나의 택함을 입은 자인고로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 내가 너희더러 종이 주인보다 더 크지 못하다 한 말을 기억하라 사람들이 나를 핍박하였은즉 너희도 핍박할 터이요 내 말을 지켰은즉

너희 말도 지킬 터이라”

하지만 철의 장막이 걷어졌을 때, 서구의 수많은 “선교사들이”이 밀물처럼 구 소련 연방국가로 들어갔는데, 그들은 순수한 복음과 성경공부 도구들을 가지고 간 것이 아니라 대단히 위험스러운 복음주의 전략을 가지고 들어갔다. 그것은 이미 서구의 복음주의를 세속적이고 피상적으로 만들었던 교회성장이라는 해로운 철학이었다. 러시아의 교회 지도자들은 복음주의라는 가면을 쓰고 그럴듯해 보이지만 얄팍한 풍조가 서구로부터 그들의 문화에 들어오는 것을 보고 경악했다. 그것들로 인해 나 역시 상처를 받았고 당황스러움을 금할 수 없었다.

나는 모스크바 방문 초기에 미국에서 잘 나가는 텔레비전 복음 강사들이 우스꽝스럽게도 화려한 행상인들처럼 자신들의 건강과 부에 관한 메시지와 다른 거짓 복음을 가지고 러시아의 텔레비전 방송에 나온 모습을 보았던 것을 기억한다. 그들은 아마 건강한 러시아의 교회들에게는 거의 영향을 끼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심각하게 변질된 거짓 복음을 대중들에게 인식시켰으며, 수많은 사람들을 완전히 혼란에 빠뜨렸다. 올바른 복음을 들어야 할 러시아연방 사람들은 무신론으로 세뇌되었고 성경의 진리로부터 더 멀어지게 되었다. 만약 올바른 복음이 전파되었다면 사람들은 진리와 종교 안에 들어있는 거짓을 분별 할 수 있는 수단을 갖게 되었을 것이다. 텔레비전에 등장하는 많은 거짓 기독교는 의심할 바 없이 대중들에게 순수한 복음을 반대하는 사상을 주입시키고 있었다.
나는 또한 키에브 광장에서 미국에서 온 “학생 선교사들”의 행진을 본 적이 있다. 그들은 저글링에서부터 광대놀이, 그리고 춤과 무언극까지 다양한 볼거리 공연을 펼치고 있었다. 그 모든 것들은 언어장벽을 넘어 “복음” 을 전하기 위해서라든지, 명목상 영적인 것처럼 보이는 주제들을 내세우며 행해지고 있었다. 솔직히 말해 나는 그런 것들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정확히 무엇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나는 성경이 말하는 복음을 분명히 깨닫고 있었지만 독립광장에서 무언극을 통해 전해지는 것과 같은 메시지는 내가 알고 있는 복음이 아니었다. 나는 서구교회들이 그런 모습으로 비쳐지는 것에 매우 당황했다.

미국에 돌아와 보니 이런 공연들이 대단히 놀라운 복음사역의 결과로 보고되고 있었다. 회심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숫자만 갖고 판단한다면, 우리는 철의 장막 속에 있는 나라들의 교회가 매달 두 배 네 배로 성장하고 있다고 기대했을 것이다. 러시아와 루마니아의 교회들이 성장하고 있었던 것은 사실이었지만 서구에서 온 소위 복음을 전한다고 하는 거리 공연자들이나 예술가들은 그것과 아무 상관이 없었다. 그 교회들은 러시아의 그리스도인들이 복음을 자유롭게 공공연히 선포하는 상황에서, 죄로부터의 회개와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자신들의 이웃들에게 신실하게 전파했기 때문에 이룬 성장이었다. 복음에 대한 러시아인들의 반응은 놀라울 정도로 진지했다. 나는 오랜 시간 동안 그들과 한자리에 앉아 예배를 드리면서 구원을 받은 사람들이 연이어 나아와 공적으로 믿음을 고백하며 이전의 죄악 된 삶을 포기하고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시인하는 간증을 들을 수 있었다. 사람들은 항상 교회 문 앞까지 가득 채우고 선 채로 예배를 드리고 있었다. 그것은 미국의 교회성장 전문가들이 성장을 위해서는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것과는 정반대였다. 그것은 마치 사도행전의 역사가 현실에서 펼쳐지고 있는 것을 보는 것과 같았다.

사실, 공산주의의 붕괴 후 구 소련 연방국가로 몰려갔던 대부분의 서구인들은 이미 그곳에 세워져 있던 교회들의 존재를 완전히 무시했기 때문에 당시에 일어나고 있던 교회성장의 진정한 조짐을 볼 수 없었다. 그들은 복음적인 기구들을 설립하고, 미디어사역을 전개하고, 광장의 흥미본위의 볼거리 행사를 지원하거나, 서구의 세속적인 형식에 맞춘 새로운 교회들을 개척하는 등의 사역을 시도했다. 하지만 당장 무언가 이룬 것 같은 그와 같은 “복음주의적인” 사역들과 교회개척 활동의 결과들은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

과거에 성공을 거두었다고 해서 그 전에 했던 방법들이 결코 다 옳은 것은 아니다. 미국인들은 러시아에서 당장은 성과를 거두는 것 같았지만 실제로는 혼란을 야기하고 있는 세속적인 복음주의 형태를 그들의 문화 속에 주입시켰다. 수 십 년 동안 무신론적인 정부의 핍박과 사람들의 조롱을 극복해 온 교회들이 지금은 훨씬 더 교묘하고 비할 수 없이 더 악한, 복음주의를 표방하는 미국 교회들의 유행성 전략과 맞서 싸워야만 한다. 그 전략이란 사람들의 본능에 호소하여 그들의 기호를 맞추기 위해 고안된 것으로 실제로는 진정으로 가치 있는 것들을 약화시키는 책략과 값싼 아이디어에 불과한 것들이다.

지금까지 가장 교묘하고 위험천만한 서구의 영향은 교회성장 전략가, 선교학자 그리고 여론조사 전문가들을 통해 유입되었다. 텔레비전 복음 강사들과 거리 공연자들과 달리 이런 학문적 기술을 갖춘 전문가들은 러시아의 교회들 안에 손쉽게 발판을 구축할 수 있었다. 그들이 신뢰를 얻은 이유는 그들이 작가였으며, 선교의 경험을 가지고 있었고, 학위를 갖고 있는 신학교 교수들이었으며, 심지어 목사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수많은 책들과 아이디어를 가지고 들어왔다. 그리고 그것들은 공산주의의 박해 속에 살아 온 교회들의 입장에서 볼 때는 신기하게 보이지만 실질적으로는 교회 사역에 있어 얄팍한 실용주의로 접근하는 것을 옹호하는 것들에 지나지 않는 것들이었다.

사람들은 상황화(contextualization)에 관한 이론을 섣부르게 다루는 서구인들에 의해 러시아와 동유럽 교회들에게 교묘히 주입된 유행을 좇는 실용주의보다 훨씬 더 부적절한 무언가를 끊임없이 상상하려고 애를 쓴다. 그러므로 어떻게 보면 90년대 초에 러시아에 유입된 얄팍한 복음주의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한 것이다. 지금은 훨씬 더 속도가 빠르고 적은 비용이 드는 매스 미디어의 발전 덕택으로 기능장애에 빠진 미국 종교의 어리석은 영향이 온 세상을 뒤덮고 있다. 특히 억제된 감정의 배출구를 활짝 열게 만든 인터넷은 순식간에 이러한 부정적인 영향이 한곳에 머물러있거나 통제 받는 것을 아예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불과 수년 안에 복음주의적인 책략이 전 세계적으로 서구의 “영성”을 대표하는 가장 영향력 있고 두드러진 표현으로 인식되었다. 따라서 종교적인 실용주의의 독성은 이제 어마어마한 지구적인 문제가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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