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 vs 진화 (49): 창조 시리즈의 요약과 결론 (1)

This entry is part 49 of 52 in the series 창조 vs. 진화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창 1:1)

다윈의 생각은 “지금까지 지구 역사상 가장 강력하고, 가장 포괄적인 생각이다. “(줄리안 헉슬리의 휴머니스트에 관한 에세이 ‘교육과 인문주의’에서)

위의 인용문은 그리스도인의 유신론과 자연주의의 진화론이라는 두 개의 상대적인 세계관을 보여주는 말이다. 하나는, 하늘과 땅이 만들어진 지 불과 수 천년 밖에 되지 않았다는 성경 이야기를 따르며, 다른 하나는 생명과 죽음이 수십 억년에 걸쳐 반복 순환되고 있다는 철학적 물질주의 입장을 고수한다. 이 두 개의 대립적 사고 – 창조와 진화 – 는 믿음과 불신을 근본적으로 구분하는 경계선 역할을 하고 있다.

그레이스 투 유 블로그는 존 맥아더의 칼럼과 오디오 및 비디오 설교 그리고 그것에 관한 논평들로 이루어진 글들을 몇 달에 걸쳐 다루었다. 이번 칼럼은 50번째 제목으로 본 시리즈를 요약하는 정리하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 동안 참 많은 주제를 다루었는데, 이번 칼럼에는 지금까지 다루어 온 여러 주제를 링크해 놓았기 때문에 미처 읽지 못한 부분이 있다면 다시 읽어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교훈을 되새기고 싶은 부분이 있다면 관련 주제를 찾아 다시 공부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다른 사람들과 함께 나누는 것도 좋은 방법일 것이다.

정리에 들어가기에 앞서 나는 여러분에게 존 맥아더의 전체 설교 시리즈와 “태초를 위한 싸움”(The Battle for the Begining) 이라는 책을 추천하고 싶다. 이 책은 본 주제에 관해 잘 정리되어 있으므로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이번 블로그 연재가 독자들에게 최대한 많은 정보를 주려고 노력했지만 맥아더의 설교 시리즈나 그가 책에서 말하고자 했던 모든 내용을 다 전달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다만 본 연재를 통해 그가 만물의 기원에 대해 그리스도인의 관점에서 자세히 연구하고, 성경적으로 일관성 있게 정리한 내용들을 접해 봄으로써 관련 주제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기회를 갖게 되었기를 희망한다.

정리에 들어가기에 앞서

만물의 시작에 대한 존 맥아더의 관점의 중심에는 성경에 대한 헌신이 자리하고 있다. 그는 성경의 눈으로 모든 생명을 바라본다. 그리고 바로 이것이 두 개의 상대적인 세계관 – 하나님을 믿을 것인가 혹은 다른 누구를 믿을 것인가? – 의 차이점이다. 이것은 궁극적으로 우리가 최종적인 권위를 어디에 두느냐의 문제이다. 성경적인 관점으로 논쟁을 정리한다면, 단 하나의 결론, 즉 젊은 지구 창조만이 가능하다. 성경은 오류 없는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하늘과 땅, 식물과 동물의 생명, 아담과 이브의 특별한 창조가 과학이 주장하는 것보다 훨씬 최근에 창조되었음을 가르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성경은 하나님이 만드신 세상에 죄를 들어오게 한 아담과 이브의 타락에 관해서도 명확한 설명을 제공하고 있다. 이 점은 성경의 무신론적인 반대자들도 인정하는 바이다. 창조, 믿거나 거절하거나라는 제목의 스물 네 번째 칼럼을 참조해보라.

궁극적으로, 진화론의 근원은 사단이다. 진화론은 거짓이며, 현실의 대안으로 하나님을 불신하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불신을 합리화하기 위해 만들어낸 이론이다. 사단은 에덴에서 이브를 미혹할 때도 똑같은 전략을 사용했으며, 지금까지 모든 인류를 속이는데 꽤 유용한 도구로 여전히 잘 먹혀 들고 있다. 진화론은 단지 반역의 대의로 내세우는 거짓말의 긴 목록들 중 가장 최근의 것일 뿐이다. 진화론: 오늘날의 전쟁터라는 제목의 두 번째 칼럼을 읽어보라.

진화론은 본질적으로 사람을 영적으로 죽이기 위한 것이다. 그것은 사람들로 하여금 삼위(三位)의 하나님을 물질, 시간 그리고 우연으로 이루어진 거짓의 삼중 세트로 바꾸어 섬기게 만들었다(열 다섯 번째 칼럼 참조). 사실, 하나님은 죽었다는 거짓말을 믿는 사람들은 그들의 파멸적인 결말과 불행을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다. 만약 우리를 창조하신 분이 하나님이 아니라면, 우리는 그분의 소유가 아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법은 우리와 아무 상관이 없고, 그분은 우리를 심판하실 권리가 없다. 하나님의 주권을 감당하기 힘든 멍에로 간주하여 우리 삶에서 제하여버린다면, 사람은 스스로의 주인이 되어 임의로 자신이라는 존재에 대한 정의를 내리고 살아갈 수 있다. 도덕과 윤리는 개인의 기호와 사회적인 관습의 문제일 뿐 우주적이고 초월적인 권위는 인간의 삶에 아무 의미가 없게 된다.

그 결과는 참으로 가혹하고 비참하다. 우주적인 구속력과 초월적인 권위가 없다면 정의를 위한 기초는 존재할 수 없다. 설사 있다 한들 누가 그것에 신경을 쓰겠는가. 인간의 창조에 특별한 목적같은 것이 없고, 인간이 한낱 마주보는 엄지손가락을 가진 동물에 지나지 않거나 혹은 그들보다 약간 더 미묘하고 복잡한 존재에 불과하다면, 정의나 도덕이 있을 필요가 무엇인가?

서로 물고 뜯기는 동물왕국 같은 곳에는 정의란 있을 수 없고, 잔인함과 본능만이 지배하게 되어 오직 강한 자만이 살아남게 된다. 거기에 가족 혹은 도덕에 대한 충성심이나 삶의 목적 또는 의미는 들어설 여지가 전혀 없다. 이렇듯 진화론의 세계관으로 볼 때 삶은 본질적으로 공허하다. 삶은 그저 맹수처럼 먹이를 쫓아다니며 감각적인 욕구를 채우는 것만 중요할 뿐이다. 진화론자들이 꿈꾸는 세상이 이런 세상이라면, 그 세상은 유토피아가 아니라 차가운 잿빛만 있는 비 이상향의 세상일 수 밖에 없다. 진화론이 인류 역사상 가장 포괄적이고, 가장 강력한 사고라고 했던 헉슬리는 그의 관점에서 보는 세상이 이처럼 완전히 암울하고 희망이 없는 세상일 수 밖에 없다는 면에서는 백 번 옳다.

이와 대조적으로, 성경적인 관점은, 사랑의 하나님이 심사 숙고하여 만드신 창조에 근거를 두며, 진화론의 그것과는 전혀 다른 그림을 그린다. 우리는 이것이 실재이며, 이것이 지구 상에서 가장 포괄적이고 가장 강력한 사고라고 믿는다. 왜냐하면 이것이 하나님이 그분의 말씀 속에 계시하신 것이기 때문이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창 1:1).

창조에 관한 성경의 기사는 모든 것에 대해 설명하고 있기 때문에 포괄적이다. 성경은 하늘과 땅, 인류, 결혼, 죄, 언어, 정부, 문화, 기술, 나라들, 대체 종교, 6일 근로의 기원에 대해 알려주고 있으며, 많은 화석들이 어디에서 왔는지 그리고 지구 역사의 연대기에 대한 정보를 제공해 주고 있다. 피상적으로 볼 때, 그 정보가 때로 모순처럼 보일 수 있지만 하나님이 그분의 말씀을 통해 알려주시는 것들이 진실로 모순된다는 증거는 없다. 사실들을 종합하고, 증거들을 조사해 보면, 성경의 기록이 옳으며, 다윈의 진화론이 허무맹랑한 이론이라는 것이 계속 증명되고 있다.

또한, 성경의 창조에 관한 기사는 창조주의 영광과 목적을 드러내주므로 강력하다. 창조의 첫째 날부터 하나님은 아담과 이브를 위해 지구를 준비하셨다. 하나님은 창조의 정점으로 그분 자신의 형상을 따라 남자를 만드시고, 그를 창조와 구속(救贖) 역사 안에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그분의 계획의 중심에 두셨다. 그리고 창세기는 왜 사람이 구원을 받아야 하는지, 인간의 타락을 통해 세상에 악이 어떻게 들어오게 되었는지를 설명해 주며, 동시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하나님의 구원을 통한 희망의 메시지를 전해주고 있다. 이것이 창조주, 심판 그리고 세상의 구주라는 제목으로 전한 성경이 전하는 중심 메시지이다. 이 이야기보다 더 강력한 사고가 어디 있겠는가?

성경의 창조에 대한 기사를 읽으면서도 여러분은 하나님을 만물의 근원되신 분으로 인식할 수도 있고, 전능하산 하나님 이외의 다른 어떤 신으로 인식할 수도 있다. 또한, 물질의 영원함을 믿는 물질주의자가 되기를 선택할 수도 있고, 하나님의 영원하심을 믿는 초자연주의자가 되기를 선택할 수도 있다. 무엇을 선택하든, 여러분이 처음 선택한 그 선택 – 당신이 믿기로 선택한 가정 즉 선험적(a priori) 인식 – 이 여러분이 무엇을 최종적인 권위로 받아들일 것인가, 성경의 증거를 어떻게 볼 것인가 또한 어떤 결론을 받아들일 것인가를 결정하게 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어떤 그리스도인들이 믿는다고 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진화론를 지지하는 편으로 기울어지는 것을 도무지 이해하기 힘든 이유이다. (다음 칼럼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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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 vs 진화(48): 성경이 최종 권위이다. 창조 vs 진화(50) : 요약과 결론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