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 vs 진화(46): 무엇이 요점인가?

진화론을 믿는다는 것은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세상의 시작뿐 아니라 종말을 우리가 어떤 관점으로 바라보느냐가 그것에 의해 좌우되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목적이다. 오직 하나님만이 만물에게 목적을 부여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계시며, 그 이유는 만물을 창조하신 창조자가 바로 그분이시기 때문이다.

진화론자는, 자기가 원하는 대로, 자신을 위한 목적을 세우거나 자신이 좋아하는 형태의 사회를 지향할 수는 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누구인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그리고 무엇보다 왜 존재하는지를 알지 못한다. 진화론은 그에게 이성을 빼앗아버리고, 목적을 잃어버리게 하며, 삶에 대한 암울하고 비관적인 관점을 남겨 둔다.

이것을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여 그분을 신뢰하는 삶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과 비교해보라. 그리스도인은 자신이 어디서 왔고, 누가 자기를 창조했는지를 안다. 그는 자신이 누구의 형상을 따라 지음 받았는지, 자신이 왜 여기에 존재하는지, 또 어디로 가고 있는지 그리고 역사를 이루어가시는 하나님의 목적 속에서 자신이 어떤 한 부분을 이루는지를 안다. 이 둘 사이의 차이점이 무엇인가. 존 맥아더 목사가 제시하는 성경적인 관점을 들어보자.

진화론을 믿는다는 것은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세상의 시작뿐 아니라 종말을 우리가 어떤 관점으로 바라보느냐가 그것에 의해 좌우되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목적이다. 오직 하나님만이 만물에게 목적을 부여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계시며, 그 이유는 만물을 창조하신 창조자가 바로 그분이시기 때문이다.

진화론자는, 자기가 원하는 대로, 자신을 위한 목적을 세우거나 자신이 좋아하는 형태의 사회를 지향할 수는 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누구인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그리고 무엇보다 왜 존재하는지를 알지 못한다. 진화론은 그에게 이성을 빼앗아버리고, 목적을 잃어버리게 하며, 삶에 대한 암울하고 비관적인 관점을 남겨 둔다.

이것을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여 그분을 신뢰하는 삶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과 비교해보라. 그리스도인은 자신이 어디서 왔고, 누가 자기를 창조했는지를 안다. 그는 자신이 누구의 형상을 따라 지음 받았는지, 자신이 왜 여기에 존재하는지, 또 어디로 가고 있는지 그리고 역사를 이루어가시는 하나님의 목적 속에서 자신이 어떤 한 부분을 이루는지를 안다. 이 둘 사이의 차이점이 무엇인가. 존 맥아더 목사가 제시하는 성경적인 관점을 들어보자

‘하나님이 왜 세상을 창조하셨는가?’ 라는 질문은 앞에서 다루지 못한 질문이다. 여기서 함께 그 대답을 생각해보기로 하자. 이 질문에 대해 우선 떠오르는 생각은, ‘하나님이 원하셨기 때문에’라는 것이다. 사실, 이것이 가장 진실하고 적절한 대답일 것이다. 그렇다면, 이어서 가질 수 있는 의문은 ‘하나님이 왜 원하셨을까?’이다. 이에 대한 대답은 명백하다. 하나님은 자신의 영광을 나타내기를 원하셨으며, 창조를 통해 그 기이한 창조의 능력을 감상하게 될 하늘의 천사들과 사람들에게 그분 자신의 영광을 보여주실 수 있는 또 다른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요한계시록 4:11 은 “우리 주 하나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권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나이다”라고 말씀하고 있다. 나는 여러분에게 ‘하나님께서 원하셨기 때문에’ 만물을 창조하셨다고 말한 적이 있다. 하나님은 진실로 자신이 원하셨기 때문에 창조하셨다. 그리고 하나님이 그렇게 하기를 원한 이유는, 그분 자신의 위엄과 속성을 보여주는 광대한 창조의 능력으로 인해 피조물로부터 영원한 영광과 찬양을 받으시기 원하셨기 때문이다. 이사야 43:7, 21 은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그리고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 고 말씀하고 있다.

하나님은 이 창조의 영역 안에서 사람을 만드셨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생각해보자. 하나님은 창조를 통해 그분 자신의 영광스럽고 측량할 수 없이 광대한 지성, 무한한 능력, 무한한 지혜, 아름다움과 복합성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그 안에 질서와 조화로움이 있는 무한한 사랑을 나타내 보여주기를 원하셨다. 이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특별히 인간을 창조하심으로써, 인간을 통해서만이 보여주실 수 있는 그분의 속성, 즉 그분의 한없는 은혜와 자비 그리고 구속의 영광을 보여주실 수 있었다.

우리는 하나님이 그분의 사랑하시는 아드님을 위해 신부를 예비하시려고 인간을 창조하셨다고 생각할 수 있다. 전에 한 번 언급한 적이 있지만, 나는 성경을 공부하던 중에, 전에는 그 어디에서도 읽어 본 적이 없는 생각이 문득 떠올랐다. 그것은 마치, 어느 날 하나님이 그분이 완전한 사랑으로 사랑하는 아드님에게 이렇게 말씀하신 것 같았다. “내가 너를 너무 사랑하여 너에게 선물을 주고 싶다. 너를 위하여 인간들 가운데 구속함을 받은 신부를 준비하여, 영화롭게 된 그 신부를 너에게로 인도해 올 것이며, 그 신부는 의와 거룩함으로 영원히 옷 입을 것이다. 또한, 그 신부는 너의 형상을 입고, 영원무궁토록 너를 영화롭게 하며, 너를 찬양하고, 너를 섬길 것이다. 이것이 바로 아들인 너에게 주는 나의 사랑의 선물이다.”

아들의 영광을 드러내며, 아들을 섬기고, 아들을 찬양하게 될, 구속 받은 사람들—교회—을 아들에게 주시는 이것은, 사랑하는 아드님이자 삼위의 둘째 위(位)가 되신 분을 위한 하나님 아버지의 영광스러운 계획이자 영원한 사랑의 표현이다. 이 얼마나 놀라운 생각인가! 이 모든 계획이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 속에 들어있다.

나는 이런 내용을 12세기의 저술가 리챠드 빅터(Richard St. Victor)가 쓴 고전인 De Trinitate를 발견하기 전에는 다른 어느 책에서도 읽어본 적이 없다. 그는 그 책에서 이 놀라운 진리의 진수(眞髓)를 표현하고 있었다. 그는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분 자신과 동등하게 무한하신 아드님을 너무나 사랑하셔서, 유한한 물질 세상을 무(無, ex nihilo)에서 창조하시고, 그분의 사랑하는 아들의 형상을 닮은 사람들을 그곳에 살게 하셨으며, 이것은 그들로 하여금 그 아들의 신부로서 하나님의 성품을 옷 입고, 유한한 피조물들에게 허락하신 그분 자신의 생명의 축복을 함께 나누게 하시기 위함이었다고 가르치고 있다. 사랑하는 아드님에게 아름다운 신부를 주시기 위하여 영원하신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주를 만드셨고, 그 우주 안에 아들의 신부가 보호를 받으며 자라게 될 안전한 보금자리와 처소로서, 그 전에는 어떤 형태로든 존재한 적이 없는, 세상을 만드셨다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빅터가 가르치고자 한 것이었으며, 그는 대단히 옳은 관점을 제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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