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 vs 진화(45): 하나님은 왜 세상을 창조하셨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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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 교리는 많은 질문들을 제기한다. 이 시리즈를 통해서 우리는 그 질문들에 정면으로 부딪혀왔다. 창조자는 누구인가? 하나님은 어떻게 세상을 창조하셨는가? 그리고 창조는 언제 일어났는가? 등이 그 질문들이다. 아직 남아 있는 가장 중요한 질문이 있는데, 오늘 존 맥아더 목사는 그것에 대한 대답을 할 것이다. 바로 하나님은 세상을 창조하셨는가이다.

어떤 것이 완벽한 이야기를 만드는 가에 대한 여러 주장들이 있다. 신비로운 영웅들, 사악한 악당들과 같은 등장인물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격렬한 갈등 구조가 나오는 흥미로운 줄거리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아니면 독특한 배경과 강렬한 주제가 완벽한 이야기를 만들 수도 있다. 이 요소들이 모두 중요하지만, 만약 목적이 없다면 그것들은 아무런 쓸모가 없다. 목적이 없는 이야기는 전하거나 들을 가치가 없다.

창조 기사는 하나님께서 그의 말씀을 통해 설명하시는 더 큰 “이야기”의 한 요소일 뿐이다. 그리고 그 이야기에는 확실한 목적이 있다. 하나님께서는 대본을 쓰시고, 등장인물들을 만드시고, 줄거리를 정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심지어 극장도 만드셔서 앞으로 펼쳐질 이야기를 위한 무대를 갖추셨다. 그 이야기의 제목은 바로 구원이며, 그것은 우주의 거대한 계획이다. 존 맥아더 목사의 설명을 들어보자.

하나님께서 우선으로 삼으시는 것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는 무슨 목적으로 만물을 지으셨습니까? 궁극적인 목표와 이유는 무엇입니까? 확실히 하나님께서는 명확한 목적을 갖고 만물을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창조를 하신 후에 그것이 뭔가 의미 있는 계획으로 진전되기를 바라신 것이 아닙니다. 그는 마음 속에 매우 구체적인 계획을 가지고 창조하셨습니다. 그는 매우 분명하고도 궁극적이며 반드시 성취될 목적을 가지고 만물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사람간에, 나라간에, 시대간에 발생하는 수많은 환경과 비상 사태와 변화와 변혁들을 모두 세심하게 조정하시며, 이 모든 것들이 하나도 빠짐없이 고정된 목표를 향하여 가도록 하십니다.

조나단 에드워즈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섭리는 인간사에 발생하는 모든 변화들 위에 있다.”  중요한 말입니다. 섭리는 인간사에 발생하는 모든 변화들 위에 있으며, 그 변화들은 모두 하나님의 계획에 종속되어 있습니다. 창조부터 완성까지 모든 것이 하나님의 강력한 섭리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위대한 신적 계획에 속해 있습니다. 어떤 것도─심지어 그것이 단 한 개의 분자라고 할지라도─그 계획 밖에서 작용하여 계획의 진행을 방해할 수 없습니다. 역사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방식 그대로 끝이 날 것입니다. 역사의 실제적인 결말은 하나님께서 스스로 성취하실 것입니다. 이 우주는 영원하지 않으며 그 끝이 올 것입니다. 그것은 핵폭발로 파괴되어 사라질 것입니다. 성경은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우신 계획이 완성되어 더 이상 쓸모 없어지게 되기 전까지는 우주는 끝이 나지 않을 것입니다.

한편, 하나님의 섭리와 목적은 질서들 위에 있으며 모든 것을 통제하고 지배해서 그 결과 하나님의 목적을 성취합니다. 성경의 여러 구절에서 이것에 대한 가르침을 얻을 수 있습니다. 아마 여러분이 떠올리기 쉽지 않은 말씀일지도 모르지만 우리의 이해에 중요한 말씀이 바로 이사야 46장 9-10절입니다. “너희는 옛적 일을 기억하라 나는 하나님이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느니라 나는 하나님이라 나 같은 이가 없느니라 내가 시초부터 종말을 알리며 아직 이루지 아니한 일을 옛적부터 보이고 이르기를 나의 뜻이 설 것이니 내가 나의 모든 기뻐하는 것을 이루리라 하였노라”

골로새서에서도 다음과 같은 구절을 발견합니다.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골 1:16하) 이 거대한 계획은 무엇입니까? 이 거대한 목적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무엇을 하고 계신 것입니까? 그는 왜 우주를 만드셨습니까? 왜 지구를 만드셨습니까? 그는 왜 지구에 이 모든 피조물들을 살게 하십니까? 하나님께서는 왜 인간을 만드셨습니까? 이 모든 것들이 있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대답은 바로 “위대한 계획은 구원이다”입니다. 그 위대한 계획은 하나님을 영원히 예배하는 목적을 위해서 구원받은 사람들을 영원한 영광으로 모으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모든 창조와 섭리와 완성의 사역은 모두 구원의 사역과 관계되어 있습니다. 구원의 사역은 우연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주가 존재하는 이유입니다. 그것은 지구가 존재하는 이유입니다. 그것은 인간을 지탱하는 생태계가 있는 이유입니다. 창조의 모든 부분이 구원의 목적에 집중되도록 의도되었습니다.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여 인간을 구원으로 이끕니다. 들짐승들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서 인간을 구원으로 이끌고, 인간은 그 들짐승들을 만드신 하나님을 단지 창조자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구원자로 보게 됩니다. 창조된 물질 세계의 모든 분자들과 모든 영적 존재들─그것이 마귀이든지 인간이든지 간에─은 구원의 위대한 계획 아래 있는 하나님의 목적에 종속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창조 세계를 볼 때, 여러분은 구원을 향한 하나님의 목적이 바로 창조 안에서 시작되었음을 이해하셔야만 합니다. 신약 성경에서는 그런 연결 관계를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사망에 이른 것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생명에 이르게 될 것이라는 말을 통해 보여주고 있습니다. 여러분에게 매우 친숙한 구절인 로마서 5장 18-19절에서는 창조와 구원을 비교하고 있습니다. 하나의 죄, 즉 아담의 죄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이 정죄에 이르렀고, 한 의로운 행위로 모든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한 사람의 불순종으로 많은 사람들이 죄인이 되었습니다. 한 사람의 순종으로 많은 사람들이 의인이 될 것입니다.

창세기 3장의 타락 이야기로 다시 돌아가보면 심지어 그 타락 안에도 구원의 사역과의 분명한 관계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타락이라는 주제 안에만 한정된 것이 아닙니다. 고린도전서 15장에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첫 사람 아담은 생령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주는 영이 되었나니.”(45절) 고린도전서 5장 21절을 보십시오. “사망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한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 요한계시록 2장에서는 “첫째 아담은 천국을 잃어버렸다”고 말합니다. 요한계시록 22장에서는 “둘째 아담이 천국을 가지고 오실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고린도전서 15장 47절은 말하기를 “첫 사람은 땅에서 났으니 흙에 속한 자이거니와 둘째 사람은 하늘에서 나셨느니라.” 고린도전서 15장 48-49절을 보십시오. “무릇 흙에 속한 자들은 저 흙에 속한 자와 같고 무릇 하늘에 속한 자들은 저 하늘에 속한 이와 같으니 우리가 흙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은 것 같이 또한 하늘에 속한 이의 형상을 입으리라.”

구원에 관한 모든 비유들은 그리스도와 타락한 아담의 비교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와 죄 없는 아담의 비교에서도 나타납니다. 그러나 구원과 창조 사이의 관계를 드러내는 가장 풍부한 비유는 고린도후서 4장에 있습니다. 이곳을 보시기 바랍니다. 여기에서 지금까지 우리가 말해온 것들이 모두 합쳐집니다. “어두운 데에 빛이 비치라 말씀하셨던 그 하나님께서” 여기서 멈추십시오. 그게 무슨 뜻입니까? 창조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빛이 있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빛의 처음 창조 안에서 한 그림을 발견하는데, 바로 구원의 빛의 비유입니다. 그는 어두운 데에 빛이 비치라 말씀하셨던 그 하나님께서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제가 다시 말씀 드려야 합니까? 이것은 바로 창세기 1장 1절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그러나 2절에서 뭐라고 하고 있습니까?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그 다음이 뭡니까?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그것은 형태가 없었습니다. 생명이 없었습니다. 공허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빛이 있으라”고 하시기 전까지는 흑암이 있었습니다. 나머지도 구절도 함께 읽겠습니다. “어두운 데에 빛이 비치라 말씀하셨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추셨느니라.”

여러분, 하나님께서 그의 주권적이고도 즉각적인 능력으로 흑암 가운데에 빛을 창조하신 것은 하나님께서 죄인들의 마음 안에 있는 어둠 속에서 하시는 일과 같은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창세기에 대하여 어떤 진화의 복잡한 개념들을 가져오려고 한다면, 여러분은 흑암에 있는 우주에 생명을 주시고 어둠 가운에 있는 죄인의 마음에 즉각적으로 빛을 주시는 하나님의 주권적이고 신성하며 즉각적인 기적을 함부로 바꾸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구원의 그림입니다. 그것을 마음대로 바꾸지 마십시오. 이것이 창조가 증거하는 구원의 영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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