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 vs 진화(44): 창조자의 권위를 거부하는 진화론

‘시작’에 대한 이 계속되는 싸움에서 위험에 처한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예배’다.

성경은 시작부터 끝까지 하나님을 창조주로서 찬양하기 위한 근거로 창세기의 기록을 사실로 단언하고 확언한다. 이런 패턴을 우리도 따라야 한다. 사실, 이것은 선택 사항이 아니다. 주권자 창조주로서 하나님은 예배를 요구하신다.

하나님이 창조주이시라면, 그 말은 그분께서 그의 모든 피조물 특히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인간에게 주권을 행사하신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모든 시대를 통해 하나님의 백성들이 가지고 있었던 확실한 진리였다. 반면에, 자신의 자율성을 지키고 싶어하는 자들은 창조주의 권위를 싫어한다. 그들은 창조의 가르침을 제거하는 것에 가장 큰 관심을 갖는다.

하나님은 세상을 창조하셨을 뿐 아니라, 주권자로서 세상을 통치하신다. 하나님의 뜻을 무시하고 불순종하는 자들도 언젠가 그분을 만나게 된다. 창조주의 하나님일 뿐 아니라 심판자이신 분을 만나게 되는 것이다.

맥아더 목사의 설명을 들어보라.

 정말 정직하게 생각해보면 창세기의 기록은 간단하고 분명하며 명백하고 명료하며 복잡하지 않고 오해할 여지도 없으며 모호하지도 않습니다. 보이는 그대로입니다. 어린 아이들도 그 간단함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1장은 이렇게 말합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이 말이 복잡합니까? 그저, 그가 창조하지 않은 것이 없다는 말입니다. 골로새서 1장 16절의 말씀은 어떻습니까? “만물이 그에게서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왕권들이나 주권들이나 통치자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다시 말하지만, 이것은 오해할 수 없이 간단한  성경의 증언입니다. 절대 어렵지 않습니다.

이사야 40장 28절입니다. “너는 알지 못하였느냐 듣지 못하였느냐 영원하신 하나님 여호와, 땅 끝까지 창조하신 이는피곤하지 않으시며 곤비하지 않으시며”

에베소서 3장 9절은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이라 말합니다. 골로새서 1장 16절은 “그로 인해 모든 것이 창조되었다”고 말씀합니다.

잠시 요한계시록의 말씀을 보시죠. 다가올 대환란의 때에 공중에 천사가 날아다닙니다. 계시록 14장 6절에 보시면 “그가 영원한 복음을 가졌다”고 합니다. 모든 민족과 종족과 방언과 백성에게 전할 영원한 복음의 메시지입니다. 이 메시지가 무엇일까요? 영원한 메시지는 무엇입니까?앞으로도 전해질 것이고, 지금도 전해지고 있고, 과거에도 전해져 왔던 메시지가 무엇입니까? 바로 이것입니다.”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라” (17절) 이것이 시간을 초월하는 메시지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라. 이는 그의 심판의 시간이 이르렀음이니 하늘과 땅과 바다와 물들의 근원을 만드신 이를 경배하라”

여러분, 진화론자들의 문제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이 창조주시라면, 그분은 경배 받으셔야만 합니다. 바로 그분의 어떠하심때문입니다. 그분은 거룩하시기에 우리는 그분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그분은 은혜로우시기에 우리는 그분을 사랑해야 합니다. 영원한 복음은 세계에 전해져야할 구원의 기쁜 소식입니다. 지금도 전해지고 있고 과거에도 전해졌던 동일한 메시지입니다. 하나님이 계십니다. 그분은 거룩한 분이십니다. 우리는 그분의 법을 어겼습니다. 바로 이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하며 경배해야만 합니다. 그분을 경배하기 위해 나갈 수 있는 방법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전세계의 죄인들에게 요구되는 것은 동일합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 분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그 분을 경배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죽음입니다. 멸망입니다. 이 하나님이 누구입니까? 바로 하늘과 땅을 지으신 그 분이십니다.

이런 예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시편 33편을 읽어보십시오. 창조주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에 대한 예는 정말 많습니다.

신약 성경의 저자들이 창세기의 기록을 확언했다는데는 의문의 여지가 없습니다. 165개의 창세기 말씀이 신약에서 그대로 인용되거나 참조되었습니다. 암시적인 언급까지 합하면 200번이 됩니다. 그 중 165번은 직접적인 인용이나 참조입니다. 이들은 모두 분명합니다. 모두 간단하고 직접적으로 창세기를 사실로 확언합니다.여기에는 창세기에 있는 창조에 대한 간결한 기록도 포함되어 있습니다.모든 신약 성경 저자들이, 모든 신약 성경의 저자들이 창세기의 말씀을 사용했습니다. 그들은 예외없이 창세기의 진실성과 실제성을 확언합니다. 그리고 히브리어로 기록된 창세기 1장 1절의 명백한 의미에 따르면 무한하고 인격체이시며 영원하신 하나님이 영원의 한 특정한 시점에 무에서 그분 자신을 제외한 모든 것을 창조하셨습니다. 칼(Qal) 형태의 히브리어 동사 ‘바라’는 영어의 ‘창조하다’보다 훨씬 더 제한된 의미를 가집니다. 아무 것도 없는 상태에서 무언가를 존재하게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엑스 니힐로(ex nihilo, 무에서)’입니다.

하나님의 참 백성들은 역사를 통해 이에 대한 일관된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지금 창조주로서의 하나님을 부인하며 하나님을 모욕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창세기의 기록을 읽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그들의 창조주와 구원자로서 말입니다. 실재하는 것에 대한 그들의 이해가 부족했을까요? 그들과 또한 자신의 삶을 참되고 살아계신 하나님께 헌신하며 그분을 신뢰했던 모든 자들… 찰스 다윈 이전의 그들은 무지 가운데 하나님을 경배한 것입니까? 하나님께서 놀랍게, 기적적으로, 또한 영광스럽게 모든 것을 6일 동안 창조하셨다고 그들이 생각한 것은 그저 잘못알고 그랬던 것입니까? 그랬기 때문에 그들의 찬양은 무지의 소산입니까? 수세기를 거쳐 온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는 어떻습니까? 진리의 기둥과 터이며,  참된 하나님을 전하고 수호하는 교회가그저 창조에 대한 단순하고 순진한 생각에 사로잡혀 왔던 것입니까? 아니면, 그들이 제대로 알고 있었던 것입니까? 그들이 바르게 알고 있었던 것입니까?

창세기의 기록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그저 구약의 예배를 인정하지 않는 것 뿐 아니라 신약의 예배와 수세기에 걸친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의 예배를 거절하는 것입니다. 믿는 자들은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창조주로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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