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 vs 진화(43): 아무런 답을 주지 못하는 진화론

인간의 죄된 성향은 우리 주변 도처에서 볼 수 있다. 우리는 그것을 신문의 헤드라인에서 매일 읽는다. 정규 뉴스 프로그램을 통해서도 듣는다. 웹사이트를 통해서도 모든 사람들이 소식을 접한다. 사실 죄악은 인간 역사 전체를 관통한다. 그런데 우리는 어쩌다 이 지경에 이르게 되었을까?

찰스 스펄전은 아담의 죄악으로부터 흘러나오는 끈적끈적한 점액이 지구 전체를 뒤덮고 있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의 말은 옳았다. 그 어떤 것도 인간 죄악의 얼룩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심지어 피조물 자체도 하나님의 저주 아래 탄식하고 있다. 그 증거는 명백하다. 우리는 타락한 세상에서 타락한 사람들과 함께 살아간다. 그러나 어떻게 그렇게 된 것일까? 이 질문에 대한 존 맥아더 목사의 대답을 들어보자.

창세기 3장은 성경 전체를 통틀어서 지극히 중요한 장들 중 하나입니다. 그것은 그 이후에 일어나는 모든 일들의 기초입니다. 그것이 없다면 성경 또는 인생에서 이해할 수 있는 것이 거의 없을 것입니다. 창세기 3장은 우주와 인간의 상태에 대해 설명합니다. 세상에 왜 그렇게 많은 문제들이 일어나는지 설명합니다. 인간이 빠진 딜레마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우리에게 왜 구원자가 필요한지 말해줍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역사 속에서 무엇을 하시는지 알려줍니다.

즉, 창세기 3장에 계시된 진리는 참되고 정확한 세계관을 갖게 해주는 필수적인 토대입니다. 이 토대가 없는 모든 세계관은 완전히 그리고 절망적으로 잘못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완벽한 창조를 마치셨을 때, 그곳에는 어떤 무질서도, 어떤 혼란도, 어떤 갈등도, 어떤 투쟁도, 어떤 고통도, 어떤 불화도, 어떤 쇠퇴도, 어떤 죽음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의 인생은 언제나 그런 것들로 가득합니다. 사실 완벽한 세상은 어떤 곳이었을지 상상하는 것이 어려울 정도입니다. 창세기 3장에서 우리는 그 상상할 수 없는 완벽한 천국이 어떻게 해서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곳으로 변하게 되었는지를 발견합니다.

진화는 인간이 처한 딜레마에 대하여 어떤 설명도 해주지 않으며, 더욱이 그에 대한 해결책도 주지 않습니다. 인간은 왜 그렇게도 많은 도덕적이고 영적인 문제를 갖게 되었습니까? 진화는 절대로 그 문제에 대한 해답을 주지 않을 것입니다. 사실 순수한 자연주의적 진화론은 도덕적이거나 영적인 것들에 대하여 어떤 설명도 줄 수 없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우리가 도덕적이고 영적인 피조물이라는 점이며, 우리 모두는 이것을 알고 있습니다. 선과 악의 개념은 인간의 마음 속에 선천적으로 주어진 것입니다. (심지어 가장 무신론적인 진화론자들도 양심을 갖고 있습니다.) 우리는 쓰디쓴 경험을 통해서 우리 스스로를 악으로부터 멀리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죄가 우리를 끌어당기는 힘에 저항할 수 없다는 것을 압니다. 우리는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한다고 알고 있는 것들을 모두 할 수 없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우리는 스스로를 개혁할 수 없습니다. 진화론은 이런 딜레마에 대하여 설명해 주지 않으며, 해결에 대한 소망도 주지 않습니다.

대신에, 진화론의 교리는 (그것을 일관되게 따를 경우에) 결국 악의 실체를 부인합니다. 만약 자유주의적 진화론이 옳고 하나님은 없다면, 우주를 지배하는 불가침한 도덕 원리들도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로 인해 어떤 종류의 도덕적 책임도 없을 것입니다. 사실 진화론이 옳다면 만물들은 순전히 우연으로 생겨난 것이며 그 안에는 어떠한 초월적인 이유도 없을 것입니다. 그런 체계 안에서는 어떤 것도 진정한 도덕적 의미를 가질 수 없을 것입니다. 선과 악에 대한 생각은 의미 없는 관념이 되어 버릴 것입니다. 히틀러를 비난하거나 선한 사마리아인을 칭송할 만한 이유가 없을 것입니다.

누가 우리를 선과 악을 구별하는 자들로 만들었습니까? 인간의 양심은 어디에서 온 것입니까? 그리고 인간 본성은 보편적으로 악을 향합니까? 진화론자들은 그것에 대해서 아무 것도 모릅니다.

창세기 3장은 명확하고 간단하게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줍니다. 우리의 첫 조상인 아담은 고의적으로 하나님께 불순종했습니다. 어떤 까닭인지 알 수 없으나, 그의 죄는 전인류를 더럽혔고, 이제 그의 자연적인 자손들 모두가 죄를 향한 사랑과 참된 의에 대한 경멸을 물려받았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우리의 행동을 통해 그대로 드러납니다.

아담의 죄 때문에 피조물은 부패하고 저주를 받았습니다. 로마서 8장 20-22절은 말하기를, ”피조물이 허무한 데 굴복하는 것은 자기 뜻이 아니요 오직 굴복하게 하시는 이로 말미암음이라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 노릇 한 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을 우리가 아느니라.” 즉, 죄로 말미암아 모든 피조물이 이제는 하나님께서 원래 만드신 대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그것들이 “허무한 데 굴복한다”는 말은 그것들이 원래 지어진 목적을 성취할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피조물은 죄로 인해 더러워지고 쓸모 없게 되었으며, 그 결과 하나님의 축복이 아닌 저주에 굴복하게 되었습니다. 부패함의 노예가 되었고, 부패함과 타락함과 죽음과 같은 죄의 악영향에 속박이 되었습니다. 모든 피조물이 이제는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죄의 오염으로 인해 생겨난 고통과 아픔을 생생하게 묘사하는 구절입니다. 성경은 이 모든 일들이 아담의 불순종의 결과들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진화론의 주장을 명백하게 반대하는 것입니다. 만약 하나님이 처음부터 세상을 창조하기 위해서 진화의 과정 혹은 “자연 도태”를 사용하셨다면, 죽음과 부패와 돌연변이는 처음부터 존재했을 것입니다. 만약 죽음과 자연 도태가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는데 사용하신 수단들이었다면, 어떤 것도 정말로 완벽하게 지음 받지 않았을 것이며, 만물은 그 안에 결함을 가지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히 그런 모든 것들이 아담의 죄로 말미암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들은 최초의 불순종 행위 후에 찾아온 저주의 결과들입니다.

그리고 이 상태로부터 구원받는 것은 진화의 어떤 과정을 통해서도 아닙니다. 사실, 피조물 전체-인간을 포함하여-는 일종의 권력 이양(devolution)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이것은 아무리 많은 교육, 깨우침, 환경보호운동, 심리학, 문명, 혹은 기술로도 뒤바꿀 수 없는 문제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구원(redemption)입니다(롬 8:23).

창세기의 나머지 장들은 인류가 전적인 도덕적 타락을 향해 급락하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로 가득합니다. 창세기 3장이 그 전환점입니다. 그 전까지는 하나님께서 지으신 그 모든 것을 보시고 “심히 좋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3장 이후부터 모든 인류의 역사는 극악한 것들로 얼룩지기 시작했습니다. (유일한 예외는 하나님의 구원 사역이며, 그것은 인간의 고결함을 보여주는 예가 아닙니다.)

창세기 4장에는 최초의 살인인 형제 살해 죄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창세기 4장 19절에는 일부다처제가 최초로 언급됩니다. 23절에는 또 다른 살인이 나옵니다. 그 이후로부터 인류는 극심하게 타락하고 창세기 6장 5절에 가서는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전 인류를 지면에서 쓸어버리셨습니다. 한 가족만 제외하고 말입니다.

창세기에는 또한 동성애(19:1-5)와 근친상간(19:30-38)과 우상숭배(31:30-35)와 강간(34:1-2)과 대량 학살(34:25-29)과 매춘(38:14-19)과 같은 죄악들이 시작된 것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외에도 수많은 종류의 악행들이 있습니다.

이 모든 것들은 아담 한 사람이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인해 생겨났습니다. 아담의 죄는 그의 자손뿐만 아니라 나머지 다른 피조물들도 오염시켰습니다. 이 악이 어떻게 발생했습니까? 다시 말하지만 오직 창세기 3장만이 확실한 답을 줍니다. 이제 남은 질문은 이것입니다: 당신은 이것을 믿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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