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 vs 진화 (42): 창세기 1장을 잃어버린 기독교

A portrait of a modern human and a Homo Erectus man side-by-side - 3D render with digital painting.

부제: 유신론적 진화론의 아킬레스 건

창세기는 하나님의 창조를 보여주는 아름다운 그림이다. 질서, 목적, 그리고 조화가 하나님의 완성된 사역 모두에 스며들어 있다. 인간은 하나님에 대하여 의로웠고, 아담과 하와는 서로 사랑했으며, 동물들은 그들과 평화롭게 지냈다. 어떤 갈등이나 두려움, 폭력, 혹은 죽음도 없었다. 아담이 하나님께 대하여 죄를 짓기 전까지 말이다.

그것은 진화론에 큰 문제를 제기한다.

진화론에 관심을 보이는 그리스도인들은 아담의 죄악 이전에 죽음이 존재했는가에 대해서 설명할 때 난관에 부딪히게 된다. 폭력과 질병과 고통과 죽음이 있는 세상을 보시고 하나님께서 어떻게 “심히 좋았더라”라고 말씀하실 수 있겠는가? 정답은 “그럴 수 없다”이다.

존 맥아더 목사의 설명을 듣고, 다음의 질문에 대한 답을 댓글로 달아주길 바란다.

질문: 유신론적 진화론자들은 아담이 타락하기 수십 억년 전부터 죽음이 존재했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아직 완성되지 않은 세상에서 죄는 무슨 관계가 있는 것일까? 어떤 방식으로 “피조물이 허무한 데 굴복”(롬8:20)했다는 것일까? 어떻게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을 겪고”(22절)있다는 것일까?

다음의 설교를 들어보자.

이제 제가 말하려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6일 창조를 거부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이유 없이 진화론에 자리를 내 주었습니다. 과학은 아무 것도 알지 못합니다. 과학은 6일 창조를 반박하는 어떤 것도 증명하지 못합니다. 사실 과학은 그것이 계속 발전함에 따라 말도 안 되는 주장에 더 말도 안 되는 주장들을 제기합니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 이 문제에 대한 시각을 갖는 것은 매우 중요한데 – 우리는 과학자들의 주장에 너무 오랫동안 굴복해 왔고, 이제는 그것을 멈출 때입니다. 이 문제에 대한 책을 읽고 싶으시다면 필립 존슨(Philip Johnson)이 쓴 ‘심판대에 선 다윈(Darwin on Trial)’이라는 책을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이 책은 과학적 관점들을 무너뜨립니다. 우주의 기원에 대한 과학적 설명을 완전히 받아들이는 그리스도인들은 마치 그것이 증명이라도 된 것처럼 진화론적인 편견들을 가진 채로 그 문제에 대해서만큼은 성경이 양보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6일 창조는 과학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그러나 다음 결과들을 보면 충격적입니다.

그 한 예로, 마스터스 대학은 기독 대학 연합(Christian College Coalition)의 회원입니다. 그 연합은 미국 전역의 110개의 대학교가 모인 단체입니다. 그 연합에 속한 110개의 대학교 중에서 창세기의 창조 기록을 믿는 대학은 6개입니다. 110개 학교 중 6개 학교만이 그렇습니다. 그것은 매우 일부입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기독교 지도자들과 교육자들이 모두 진화론의 가르침을 성경에 추가시킵니다. 창세기에 있는 구절들 사이에 진화론을 끼워 넣는 식으로 말입니다. 대부분의 기독교 지도자들은 우주가 수십 억년이 되었다는 것을 인정했습니다.

그러나 성경 말씀에는 확실하게 하나님께서 천지를 글자 그대로 6일 안에 창조하셨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기독교 지도자들은 그것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실제로 그렇게 쓰여있으니까요. 여러분이 어떻게 번역한다 할지라도 그것은 분명하게 해석됩니다. ‘yom’이라는 단어는 하루(day)를 의미하고, 그것이 6개 있습니다. 그러나 그 지도자들은 과학자들이 지구가 수십 억년이 되었다는 것을 어떻게 해서든 증명했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우리가 창세기로 돌아가서 그 문제를 고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들은 성경의 권위에 손상을 가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은 심각한 문제이지요. 성경 말씀에 6일이라고 되어있다면 그렇게 결론을 내야 하는데, 소위 과학이라는 것이 그것은 사실이 아니라고 하면 과학이 맞고 성경이 틀린 것이 됩니다. 만약 창세기의 말씀을 믿을 수 없다면 성경을 어디서부터 믿으실 겁니까? 이것은 교회를 향한 슬픈 고소장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리고 인본주의자들은 심지어 기독교 지도자들의 이런 타협적인 태도를 이용해서 기독교를 무너뜨리려는 그들의 명분을 더욱 굳게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날 우리에게 남은 것은 창세기 1장의 절대성을 잃어버린 기독교입니다. 슬픈 일입니다.

기독교 지도자들은 물론 인본주의적 진화론에 동의하지 않을 겁니다. 그들은 이렇게 말하겠지요. “네, 하나님은 실재하시고, 진화 과정에 어떻게든 관계가 되어 계십니다.” 그것을 유신론적 진화론이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그들은 말하기를 “아니요, 하나님은 실재하시고, 유신론적 진화의 부분들에 자신을 주입시키십니다.” 또 그들은 말하기를 “하나님께서 시작하셨습니다.” 점진적 창조론자들은 말하기를 “하나님은 그 과정 사이에 뛰어드시지만 그것이 이루어지기까지는 여전히 수십 억년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이 사람들은 스스로를 하나님을 믿는 자들이라고 합니다. 그들은 아마 성경을 믿는다고 말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6일 창조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아주 큰 문제를 일으킵니다. 아주 큰 문제를요.

그 중 하나가 이것입니다. 다 말씀 드리진 않겠지만 지금 제 머리 속에 떠오른 중요한 문제는 바로 이것입니다. 만약 그것이 자연주의적 진화 과정이든지 하나님에 의해서 시작된 유신론적 진화 과정이든지 간에 인간이 진화 과정의 가장 마지막에 창조되었다면, 혹은 만약 점진적 창조론자들이 믿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그 과정에 끼어드셨다면, 그로 인해 발생하게 되는 문제는 진화가 죽음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과정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적자 생존이라고 알려진 과정이지요. 다른 말로 하면 그것은 유혈과 고통과 질병으로 이루어진 과정입니다. 그 순서가 위로 올라가서 결국에는 인간에게 이를 때까지 죽음의 과정이 계속됩니다.

이제 여기에 문제가 있습니다. (그들의 논리에 따라) 수십 억년이 지나서 나타난 인간은 (성경이 말하는 대로) 완벽하고 죄가 없으며 세상에는 죽음이 없었다는 사실과 맞지 않습니다. (성경에 따르면) 죽음은 인간이 죄를 짓기 전까지 나타나지 않았는데 말입니다. 어떻게 죽음이 인간의 타락 전에 올 수 있습니까? 그 때는 땅이 저주를 받기도 전이었습니다. 창세기 기록 전체가 거꾸로 되어버립니다. 수십 억년의 진화의 기간 동안 모든 종류의 죽음이 발생했다면, 아직 완성되지 않았던 세상에 대하여 죄는 무슨 관계가 있게 됩니까? 모든 진화의 과정을 살피신 하나님께서 마침내 그것이 인간에 이르러 완성되었을 때 어떻게 그가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고 그것이 보기에 심히 좋았다고 말씀하실 수 있겠습니까? 어떻게 하나님께서 그런 말씀을 하시겠습니까? 아담의 죄와 그에 대한 저주는 의미가 없어집니다. 왜냐하면 죽음은 수십 억년 전부터 존재했으니까 말입니다. 이런 생각은 성경의 기록을 왜곡시킵니다. 창세기에 기록된 세상은 인간이 뱀의 유혹에 빠져서 죄를 짓기 전까지 완벽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저주하시자 그 후에 죽음과 질병과 고통과 폭력과 유혈이 생겨났습니다. 이전에는 그런 것들이 없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진화론은 전혀 말이 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낙태와 동성애에 반대합니다. 우리는 잭 케보키언(환자들의 ‘죽을 권리’를 주장하며 미국인 백 여명을 안락사 시켰던 의사:역자 주)과 안락사를 반대합니다. 그것은 살인 행위입니다. 우리는 집단 학살과 사회의 도덕적 죄악들에 반대합니다.” 우리는 왜 이런 것들을 반대합니까? 왜 그런 것입니까? 여러분은 이런 것들을 왜 반대합니까? 한 가지 이유를 말해보십시오. 그것은 바로 성경에서 그것들을 금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우리가 낙태를 반대하는 유일한 이유는 하나님께서 그것을 금지하시기 때문입니다. 그걸 어떻게 압니까? 바로 하나님의 말씀에 그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동성애와 간음을 반대하는 이유도 성경 때문입니다. 그런 문제들에 대하여 우리는 성경을 따릅니다. 그러나 문제는 우리가 창세기에 대하여는 성경을 따르기를 원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즉 우리는 성경의 권위에 대해서 모호한 입장을 취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에 대한 우리의 이런 태도에 대하여 우리를 지켜보는 세상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하겠습니까? 우리가 선택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겠습니까? 다시 말하지만 진화론에 대한 이런 조건적인 항복은 완전히 부적절한 것입니다. 진화론은 전혀 쓸모가 없습니다. 사실 진화론은 일어날 수 없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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