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 vs 진화(40): 우리가 지켜야 할 성경의 권위 (대담)

  • Lael Weinberger 와 성경 강해설교의 대가 존 맥아더 목사와의 대담 –

맥아더 목사는 최근에 창조지(Creation magazine)와의 인터뷰에서 교회와 창세기 그리고 성경해석에 관한 자신의 견해를 나누었다. 다음은 그 인터뷰의 일부이다.

Lael : “지난 2001년 창세기의 창조에 관한 기사에 대해 “태초를 위한 싸움”(The Battle for the Beginning)이라는 책을 쓰셨는데요,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존 : “마스터칼리지의 총장으로 거의 20년간 재임하면서 미국의 기독교대학 협의회에 속한 미션 대학들 중에서 창세기에 대한 믿음이 약화되는 모습을 보아왔습니다. 상당수의 대학들이 성경적인 믿음에 있어서 보수적인 입장을 견지해 왔었지만 최근에는 서서히 그리고 암묵적으로 학문적인 영예를 위해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권위를 부인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창세기에 대한 해석을 의도적으로 타협함으로써 상황이 악화되고 있습니다. 문제는, 창조에 관한 성경의 기사를 부인하는 것이 복음적이며 성경적인 다른 근본 진리들까지 포기하게 되는 시발점이 된다는 것입니다. 성경에 대한 확신을 잃어버리는 것은 과학 이론을 성경의 단순한 가르침보다 우위에 둘 때 자연적으로 따라오는 결말입니다. 전에는 최소한 100여 개 이상의 대학들이 성경적인 믿음을 연대했었지만 이제는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의 대학들만이 문자적인 6일 창조론을 고수합니다.

1997년대에 이르러 대부분의 복음주의자들이 6일 창조를 단순히 선택 가능한 진리 중의 하나로 취급하게 시작했습니다. 사실, 복음주의 운동 내의 많은 인사들이 젊은 지구 창조론에 대해 공공연히 적대감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지금은 창세기 1~3장을 문자적으로 해석하는 것에 대해 가장 노골적으로 적대감을 표하는 사람들이 건전한 복음주의자로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이런 일은 정말 일어나는 안될 일들입니다. 나는 성경적인 창조 기사가 대진화 가설과 절대 양립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 점을 성경본문의 강해설교에서 분명히 하길 원했습니다.”

“현대 교회들은 창세기의 창조기사에 대해 어떻게 이해하고 있습니까?”

자유주의 교회들은 1세기 훨씬 이전부터 성경의 권위를 던져버리고 다윈의 진화론을 포용했습니다. 1970년대와 1980년대에는 일부 흔들리는 교회들을 제외하고 대다수 복음주의 교회들이 창세기의 창조기사를 믿었습니다. 지금도 많은 일반 성도들은 기독교 대학들의 변질과 이탈에도 불구하고 창세기 1~3장에 대해 문자적인 해석을 믿고 있습니다. 하지만 점점 더 많은 수의 교회와 학교들이 이러한 논쟁에서 그릇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기독교지도자들(개인적으로는 우주의 기원에 대해 매우 건전한 견해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포함하여) 이 논란이 되고 있는 이 문제에 대해 정직하게 맞서려고 하기보다 침묵을 택함으로써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습니다. 이것이 영적으로 광범위한 부분에서 일어나고 있는 재난의 원인입니다. 복음주의 계통의 학생들이 대학을 졸업하고 개척을 하거나 교회에 들어오면서 자신들이 재학시절에 영향을 받은 진리를 타협하는 태도를 가지고 들어오고 있습니다.

“목사님은 창세기의 창조 기사에 대해 역사적으로 사실이라는 견해를 오랫동안 강력히 견지해 왔습니다. 혹시 이에 대해 같은 복음주의 계통의 그리스도인들로부터 어떤 반응을 받아왔습니까?”

실제로, 기독교 지도자들과 개인적인 교류를 통해 성경적인 창조론에 대한 견해를 나누어 보았을 때 그것은 대단히 고무적이고 생산적인 경험이었습니다. 저는 항상 성경본문이 무엇이라고 말하고 있는지를 저의 견해의 근거로 삼고 있기 때문에 반대의 견해를 밝히는 사람들 역시 자신들의 주장의 근거로 성경을 제시해야 합니다. 한 때 내 친구 R.C. 스프롤이 ‘구조가설’(framework hypothesis)을 포용하여 낡은 지구이론 해석을 옹호했습니다. 그는 심지어 휴 로스(Hugh Ross)의 책들에 서명까지 했었습니다. 하지만 몇 년 전, 그는 창세기의 본문을 면밀히 연구한 후 문자적인 6일 창조를 믿는다고 공개적으로 자신의 견해를 수정했습니다. 나는 그의 용기에 감사하며 다른 사람들도 그의 본을 따르기를 바랍니다.

많은 복음주의 그리스도인들이 문제에 대해 혼란을 겪고 있습니까?”

나는 그 이유가 복음주의 지도자들이 이 문제를 심각하게 보지 않고 담대하게 다루려고 하지 않으며, 진정한 확신을 갖고 창세기를 가르치지 않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솔직히 말해, 창조론자들 가운데서도 성경 본문자체에 충분히 주의를 기울이거나 성경을 강조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은 형편입니다. ‘지적 창조’(Intelligent Design) 운동이 약간 주의를 끌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 운동은 과학적이고 우주론적이며, 목적론적인 논쟁을 통해 문제를 다루려는 것이어서 정작 비 성경적인 주장들을 물리치는데 있어서는 심각한 실수이자 매우 좋지 않은 전략입니다. 그 결과 복음적인 창조론자들 가운데 성경에 대한 확신이 오히려 약화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들 중 어떤 사람들은 성경말씀을 자기 주장의 근거로 인용하면서 오히려 부끄러워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기도 합니다. 이 운동은 전반적으로 볼 때 지적인 창조자와 성경의 하나님 사이에 분명한 연관성을 끌어내기를 매우 주저하는 것 같습니다. 만일 저명한 과학자가 지적 창조의 불가피성을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창조론자들이 성경의 권위를 그것과 맞바꾼다면, 그것은 매우 어리석은 거래가 될 것이니까요. 앞으로의 일을 예견할 때 내가 진정으로 우려하는 일이 바로 그와 같은 일입니다.

목사님은 창세기의 낡은 지구이론 해석 옹호자들이 성경을 잘못 이해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그런 실수를 저지르는 걸까요?”

세속적인 관점을 추구하는 것은 타락한 인간의 마음의 죄악된 경향이며, 세상 문화는 사람들로 하여금 창조는 비과학적이고, 비이성적이며, 미신적이라고 믿게 만드는데 큰 성공을 거두어 왔습니다. 사실, 지적인 계획에 의하지 않고 모든 것이 무에서 진화되었다고 믿는 것만큼 불합리하고 미신적인 일도 없습니다. 나는 미국의 복음주의자들이 해석의 원칙을 훼손시키고, 본문의 의미를 왜곡하면서 현실적인 면으로 정치적 이해 득실을 따져서 유리하게 보이는 편으로 기울거나(자신들이 원하는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 성경을 타협하는 일에 너무 익숙해져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이런 현상을 낡은 지구 지지자들이 창세기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진영에 대해 저지르는 폭력에서뿐만 아니라 포스트모던 복음주의자들이 많은 난해한 교리들 — (대속, 교회 리더십에 있어서의 여자의 역할, 동성애를 정죄하는 성경의 교훈 그리고 기타 다른 많은 교리들)—을 자신들의 기호에 맞게 재정의하려는 시도들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목사님은 미국을 포함하여 서구의 그리스도인들이 성경해석학에 대해 올바른 지식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고 보십니까?

그렇습니다. 해석학에 문외한인 사람들은 종종 해석학적으로 일관성이 없습니다. 해석학에 대한 무지는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고 가르치는 일에 등한시하며 오로지 사람들의 흥미를 끄는 일에만 몰두해 온 교회성장 철학의 열매입니다. 수 십 년 간 복음주의자들은 자신들을 기쁘게 하면서 그것을 예배라고 불렀습니다. 그 결과 교회는 대부분 성경에 무지하며 성경에 대한 확신도 결여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단지 해석학에 대한 무지(분명히 이를 포함하지만)에 국한된 문제가 아닙니다. 더 큰 문제는,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에 대한 확신을 잃어버렸다는데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의 삶을 변화시키는 복음의 능력을 의심하며, 자연적으로 교회의 성장을 위해 다른 인위적인 대체수단에 의지합니다. 그들은 성경의 권위에 대한 확신도 잃어버렸습니다. 그 결과 과학과 인간의 이성이 성경이 말하는 것보다 더 신뢰할 만하다는 세상의 거짓에 쉽게 속아 넘어 갑니다.

이것에 대해 우리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요?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하나님의 사람들이 더욱 연합하여 성경을 전하고 가르치는 일로 돌아가 그 일에 매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기록된 말씀은 절대 헛되이 돌아오는 법이 없습니다.

많은 낡은 지구이론 지지자들은 자신들이 사람들에게 진화론을 포기하지 않고도 복음을 믿을 있다고 전함으로써 믿음의 장애물을 제거하고 있는 셈이라고 말합니다. 이것이 정말 자연 과학에 맞추기 위해서 성경을 재해석하는 오류에 빠져들기 쉬운 길이 될까요?

물론입니다. 가장 최근의 과학이론에 발맞추는 것이 복음 전파에 있어 최선이라는 생각은 성경의 권위에 대한 확신을 잃어버렸을 때 따라오는 자연스러운 결과입니다. 이것은 단지 오류에 빠졌다고 말하는 것보다 훨씬 해롭습니다. 이것은 믿음에 있어 가장 중요한 성경에 대한 확신 즉,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며, 그것은 인간의 마음의 모든 생각과 이론에 대한 궁극적이고 절대적인 권위라는 믿음을 포기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소위 ‘구조가설’ 이론이나 창세기 1~3장이 문자적으로 읽는 것과는 다른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주장하기 위해 고안된 다른 모든 문학적 용어들도, 알고 보면 성경의 권위와 명료함을 거부하는 변명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들은 성경이 명백하게 말하는 바를 순수하게 받아들이려는 태도를 갖는 대신, 본문의 ‘참된’, 그러나 숨은 의미를 설명하기 위해 이전에는 그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음직한 새로운 이론—(마치 문학 장르의 구조를 이해할 만큼 충분한 지식을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은 어느 누구도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는 하는 바를 이해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 듯한)—에 쉽게 미혹됩니다. 이것은 교만보다도 더 심각한 잘못된 태도입니다.

복음주의자들은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셨다는 믿음과 성경적인 확신을 회복해야 하며, 세상 사람들이 인정하든 인정하지 않든 하나님이 분명하게 말씀하신 것을 있는 그대로 믿어야 합니다. 우리는 특별히 복음(인간의 공교한 주장이나 이성적 사고가 아닌)이 구원 을 얻는데 필요한 하나님의 능력임을 확신해야 합니다. 모든 죄인의 구원은 교묘한 수단(요일 1:12,13)에 의한 인간의 사역이 아니라 진리의 말씀에 의한 하나님의 기적입니다(벧전 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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