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 vs 진화(38): 창조의 첫날

창조
This entry is part 38 of 52 in the series 창조 vs. 진화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창 1:2)

창세기 1장 2절은 잘 알려진 짧은 성경 구절 중 하나다. 하지만 그런 친숙함이나 간략함이 이 말씀의 중요성을 가리게 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은 창조의 첫째 날에 일어날 놀라운 일에 대해서 말씀하고 계신다.

존 맥아더 목사의 설교를 들어보자.

우주는 어떻게 현재의 모습으로 존재하게 되었을까요? 창세기 1장으로 가서 직접적인 얘기를 들어봅시다. 1절은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 시간과 함께 모든 것을 창조하셨습니다. 이것이 창조의 전체 이야기입니다. 2절부터 31절의 말씀은 이 이야기를 시간에 따라 나누어 설명합니다. 첫째 날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함께 보겠습니다.

첫째 날에 대한 기록은 이렇습니다.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 빛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빛과 어둠을 나누사 하나님이 빛을 낮이라 부르시고 어둠을 밤이라 부르시니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 (창 1:2-5)

첫째 날이 시작될 때, 땅의 상태는 매우 독특했습니다. 3개의 표현이 그 상태를 묘사합니다. 땅은 1) 혼돈하고 공허했으며, 2) 흑암이 깊음 위에 있었고, 3) 하나님의 신은 수면 위에서 운행하고 계셨습니다. 하나씩 살펴보겠습니다.

우선, 익숙한 표현인데요, 땅은 “혼돈하고 공허”했습니다. 히브리어에서 주어가 동사보다 먼저 오면 그것은 새로운 무언가를 강조하기 위함입니다. 2절의 시작이 바로 그런 구조로 되어 있기 때문에 “땅에 대해서 말하자면, 땅은 혼돈하고 공허했다”로 번역할 수 있습니다. 새로운 행성이 만들어졌고, 그 행성을 중심으로 위대한 구속사가 시작되어 새 하늘과 새 땅이 창조되기까지 계속됩니다. 그런데 이 행성 지구가 막 창조되었을 때의 상태는 히브리어로 ‘토후’와 ‘보후’였습니다.

‘토후’는 황량함을 의미합니다. 황무지, 황폐한 곳을 의미합니다. ‘보후’는 텅 빈 것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지구는 텅 빈 황무지였다는 말입니다. 이해하기 쉽게 표현하자면, 지구는 그 모양이 완전히 갖춰지지 않은 상태였고 어떤 생물도 거주하지 않은 상태였다는 말입니다. 첫째 날의 시작을 생각해보면 이해하기 어렵지 않은 표현입니다. 필요한 재료는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물질, 시간, 공간이 있었지만, 지구는 아직 모습이 갖춰지지 않았고 그 안에는 아무것도 거주하지 않았습니다.

두 번째로 “흑암이 깊음 위에 있었다”고 말씀하는데, 이는 하나님이 아직 빛을 창조하시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빛이 전혀 없었기에 어둠이 퍼져있었습니다. “위[표면]에 있었다”는 말이 의미하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그런데 이 어둠이 “지구의 표면”이 아닌 “깊음의 표면”에 있다고 말합니다. 이 원시의 “깊음”은 무엇일까요?

“깊음”은 성경에서 “바다”의 유의어로 사용됩니다. 2절의 뒷부분만 봐도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신다고 하여 흑암을 물이라 말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즉, 여기서 “깊음”은 “바다”의 다른 표현이라 보는 것이 맞습니다.

그렇다면 “흑암이 깊음 위에 있었다”는 말은 지구는 어둠 속에 있었다는 말이 됩니다. 왜냐하면, 지구의 모든 표면은 물로 덮여 있었기 때문입니다. 땅은 원시의 바다로 덮여 있었고, 그 바다는 전 우주적인 어둠으로 덮여 있었습니다. 시편 104편 5절과 6절도 같은 말씀을 합니다.

 “땅에 기초를 놓으사 영원히 흔들리지 아니하게 하셨나이다 옷으로 덮음 같이 주께서 땅을 깊은 바다로 덮으시매 물이 산들 위로 솟아올랐으나” (시 104:5-6)

아직 형태가 다 갖춰지지 않은 지구는 물로 덮여있었습니다. 지금 이 상황은 마치 예쁜 토기를 만들어 그 안에 무언가를 채워놓고 싶어하는 토기장이가 먼저 진흙 덩어리를 가져다가 원판 위에 올려두고 목적에 맞게 다듬으려고 하는 모습과 비슷합니다. 하나님은 먼저 가공되지 않은 재료를 만드셨습니다. 그것은 여러 원료의 혼합물이었고 물로 덮여 있었으며 전 우주적인 어둠 속에 있었습니다. 아마 베드로후서 3장 5절에서 “땅이 물에서 나와”라는 표현은 이것을 의미할 것입니다.

 잠언 8장 27절은 “그가 하늘을 지으시며 궁창을 해면에 두르”셨다고 말씀합니다. 물질들은 먼저 구형이 되었고 후에 지구를 구성한 이 공 모양의 물질은 물로 덮여있었다는 것이 여기까지의 말씀입니다.

지구의 상태에 대한 세 번째 묘사는 매우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여기 “운행한다”는 말은 “(공중에 떠서) 맴돌다”는 의미입니다. 지구는 형태가 갖춰지지 않았고 생명이 없었습니다. 물로 덮여 있었고 흑암에 잠겨 있었습니다. 그런 지구를 맴돌고 있었던 것이 바로 하나님의 영이었습니다. 이는 바로 하나님의 보살핌과 감독하심을 의미합니다. 욥기 33장 4절은 “하나님의 영이 나를 지으셨고 전능자의 기운이 나를 살리시느니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맴돌다”는 말은 정말 아름다운 단어입니다. 신명기 32장 11절은 이 단어에 대한 좋은 그림을 제공합니다. 신명기 말씀에서는 이 단어가 독수리가 새끼 위에 “너풀거린다”고 번역되었습니다. 독수리 새끼는 스스로 먹지도 못하고 자신을 적으로부터 지킬 수도 없습니다. 스스로 생존할 수 없는 것입니다. 살 수도 없고 성장할 수도 없습니다. 온전히 그들 위에 맴돌며 먹이를 주고 보호해주고 따뜻하게 해주는 부모에게 의존적입니다. 그 부모 때문에 그들은 생존하고 성장할 수 있습니다. 이 그림이 바로 창세기 1장 2절의 모습입니다. 지구는 물로 덮여 있고 어둠 속에 있었습니다. 모습도 갖춰지지 않고 생명도 없는 상태였습니다. 성령께서 그 지구를 맴돌고 계셨습니다. 수면을 품고 계셨습니다.

이는 창조 기록의 곁가지가 아닌 핵심입니다. 이는 성경적 세계관에 따라 하나님이 창조에 직접 관여하셨음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의 손은 결코 물질의 창조 과정에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계속해서 그곳에 계시면서 관여하셨습니다. 이는 철학적인 이신론과 전혀 반대의 말입니다. 철학적 이신론은 하나님을 창조를 시작한 존재로 그것을 마치고는 관여하지 않는 존재로 주장하기 때문입니다. 이는 신학적 이원론에도 반합니다. 신학적 이원론은 선한 영인 하나님과 악한 물질인 세상을 완전히 구분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며 모든 것을 품으시고 감독하시고, 창조의 모든 과정에 직접 관여하셨습니다. 성경을 읽어보시면, 하나님의 영이 모든 생명의 근원인 것을 아실 수 있으실 겁니다.

처음의 물질에 대한 묘사 이후에 일어난 첫 창조에 대한 기록은 3절에 나옵니다. 여전히 첫째 날에 대한 기록입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 (창 1:3)

과학자들은 빛이 어디서 생겨났는지를 알기 위해 수십 수백 년 동안 혼란스러워했고 야단을 떨어 왔습니다. 하지만 이 한 구절이면 충분합니다. 빛은 존재하지 않았고, 하나님께서 빛이 있으라고 하셨을 때 빛은 존재하게 되었습니다. 창조되지 않은 빛이신 분께서 창조된 빛을 존재하게 만드신 것입니다. 디모데전서 6장 16절에 따르면 그분은 가까이 가지 못할 빛에 거하시는데, 바로 그분이 오직 어둠만 있는 그곳에 빛을 존재하게 만드셨습니다.

빛의 창조와 함께 연속된 주기인 낮(빛의 기간)과 밤(어둠의 기간)이 시작되었습니다. 5절 말씀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하나님은 빛을 낮이라 부르시고 어둠을 밤이라 부르셨습니다. 이것이 낮과 밤이라는 주기의 시작입니다. 이 말은 지구는 즉시 자전을 시작했고, 태양이 있는 방향으로 광원이 있었다는 말이 됩니다. 물론 아직 태양은 존재하지 않는 상태였습니다. 하나님은 빛을 창조하셨고, 빛이 존재하게 되었습니다. 단지 하나님께서 존재하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마치 어두운 곳에 어지럽게 흩어져있는 물건들을 정리하기 위해 사람이 방에 불을 켜는 것과 같은 그림입니다.

4절은 “빛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고 말씀합니다. 이와 유사한 말씀은 10절, 12절, 18절, 21절, 25절, 31절에서 반복됩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모든 것이 “좋았”습니다. 그리고 31절에서 모든 것을 정리하며 “하나님이 지으신 그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고 말씀합니다. 창조주의 하신 일은 선한 것뿐이었습니다. 그리 놀랄 일은 아닙니다.

토론을 위한 질문:

창세기 1장 2-5절에 대한 말씀이었다. 우주의 창조와 그리스도인으로의 새로운 창조(고후 4:6) 사이에는 어떤 공통점이 있는가? 이런 공통점을 생각해볼 때, 진화론은 그리스도인에게 어떤 영향을 끼칠 수 있겠는가?

http://www.gty.org/Blog/B100708에 가면 원문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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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 vs 진화 (37): 닭이 먼저? 달걀이 먼저? 창조 vs 진화 (39): 하나님 스스로 증거하신 창조

Grace Community Church 목사, 교사
The Master’s Seminary 총장
Grace to You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