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 vs 진화 (37): 닭이 먼저? 달걀이 먼저?

This entry is part 37 of 52 in the series 창조 vs. 진화

하나님이 지구를 창조하셨을 때, 지구는 모든 면에서 완전했다. 아담과 이브는   “더 이상의 조합이 필요치 않은” 완전하고 모든 것이 구비된 상태의 에덴에서 살게 되었다. 나무들은 열매를 맺고 있었으며, 동물들은 생육하고 번성할 만큼 성장한 상태에 있었고, 지구는 생명으로 활력이 넘치고 있었다. 살아가기에 알맞게 모든 준비가 되어 있었으며, 하나님의 대리인의 다스림을 받기만 하면 되는 상태였다.

아담과 이브는 창조 사역의 완성을 보조할 일이 없었다. 하나님이 만물을 창조하시고 “보시기에 좋았더라” 라고 선언하셨을 때, 그 선언은 모든 면에서의 완전함과 성숙 – 시간적인 의미에서 볼 때의 성숙 – 을 의미했다. 이것을 보다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존 맥아더 목사의 견해를 읽어보자.

“많은 사람들이 다소 간과하기 쉬운 명백한 사실은, 처음 창조되었을 때의 우주는 이미 성숙한 상태에 있었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외형적으로 볼 때 만물이 시간이 꽤 흐른 모습으로 창조하셨다. 예를 들어, 나무와 동물들을 창조하셨을 때, 하나님은 그것을 오랜 시간이 흘러야 완전히 성숙하고 성장한 모습을 띠게 되는 다 자란 유기체로 만드셨다. 성경에 따르면, 그분은 씨앗이나 세포형태로 창조하지 않으셨다. 다시 말해 하나에서 다양한 형태의 피조물로 진화해가도록 정형화된 하나의 세포로 시작하지 않으셨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이미 다 자라 열매를 맺은 상태의 나무를 만드셨다(창 1:11). 하나님은 달걀하나만 달랑 만드신 게 아니라 이미 충분히 자란 닭을 만드셨다. (따라서 창세기 1장 21절은 이와 비슷한 난문들에 대한 확실한 답을 제공해 준다.). 하나님은 아담을 흙으로 지으실 때에도 충분히 성장하여 결혼과 생육이 가능한 성인으로 창조하셨다.

아담에게 배꼽이 있었을까? 켄함(Ken Ham)과 같은 현대 창조주의자들(그의 업적들에 대해 나는 충분히 존중을 표하지만)은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배꼽은 탯줄이 끊어질 때 생기는 상처인데 아담처럼 처음 창조된 사람은 그런 상처가 생길 리가 없다는 것이다. ‘아담에게 배꼽이 있었을까?’ 와 같은 질문은 하찮게 들릴지 모르지만 중세와 르네상스 시대에는 종종 열띤 논쟁의 주제가 되었던 질문이었다. 에덴 동산의 아담과 이브를 화폭에 담는 당시의 예술가들은, 우리의 첫 조상들을 과연 배꼽이 있는 모습으로 그려야 하는가 말아야 하는가 하는 심각한 신학적 딜레마에 직면해야 했다. 많은 예술가들이 이 난제를 배꼽이 있는 자리에 무화과 나뭇잎을 큼지막하게 그려 넣음으로 피해갔다. 하지만 시스티나 성당 천정에 그려진 미켈란젤로의 유명한 걸작품에는 아담에게 인상적인 배꼽이 그려져 있다. 그리고 그는 이로 인해 당시의 엄격한 신학자들로부터 엄청난 비난을 받아야만 했다.

하지만 하나님이 배꼽이 있는 모습으로 아담을 창조하셨을 것이라는 사실이 그토록 논란이 되어야 하는 일일까? 배꼽이 정상적인 인간 신체구조의 중요한 부분인 것만은 사실이다. 인간과 같은 포유동물의 근육조직과 혈관구조는 배꼽을 가지게 되도록 설계되었다. 나는 아담과 이브가 배꼽을 가지고 있지 않았을 거라고 주장하는 신학적이고 성경적인 이유를 모르겠다. 우리의 첫 조상은 틀림없이 보통의 성인들과 모든 면에서 같은 모습이었을 것이다. 그들에게는 보통 사람들처럼 발바닥을 보호하기 위해 굳은 살이 박혀 있었을 것이며, 치아도 한번도 사용하지 않은 것처럼 날카로운 모양보다는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우리의 치아와 같은 모습이었을 것이다. 물론 이 모든 것은 순전히 추측이다. 성경은 이런 문제들에 대해 일일이 답하지는 않는다. 질문자체는 흥미롭지만 중세시대 때와 같이 지엽적인 문제들을 다시 끄집어낼 필요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담이 성장한 신체를 가진 사람이 가지고 있는 모습을 지니고 있었을 것이라는 사실은 여전히 부인할 수 없는 진실이다. 그는 태아나 유아형태로 창조되지 않았다. 그는 온전히 성숙한 성인으로 창조되었다. 그가 과연 정상적인 성인에게 있는 모든 신체구조를 가지고 있었을까라는 의구심을 품을 필요는 전혀 없다. 그는 분명 완전히 발달된 근육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며, 동산을 관리하고, 동물들에게 이름을 지어주고, 하나님과 대화를 나누기에 충분한 지성을 가진 존재로 창조되었을 것이다. 아담은 더 이상의 성장이나 자라온 역사 혹은 경험이 필요치 않은 온전히 성숙한 성인이었다.

오늘날의 과학자가 시간여행을 시작하여 아담이 창조된 직후의 에덴에 와 있다고 상상해보자. 그가 만약 아담을 살펴본다면, 그는 온전한 성인(아마 배꼽과 굳은 살, 정상적인 치아, 그리고 적어도 성인의 체형과 근육조직 등)의 모습을 보게 될 것이다. 만일 아담과 대화를 나누어본다면, 그가 성인의 지식과 언어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하지만 이것을 창조된 지 한 시간이 지난 사람의 모습에 대한 결론적인 증거로 해석한다면, 이와 같은 해석은 틀린 해석이 될 것이다. 무(無, ex hihilo)에서 창조된 피조물의 문제를 우리가 다룰 때, 성숙 혹은 시간의 표징은 그러한 모습을 갖출 때까지 얼마나 오랜 시간이 흘렀는지를 증명하는 도구가 될 수 없다.

또한, 만일 시간여행을 하는 그 과학자가 새로 창조된 오크나무에 대해 식물연구를 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그는 나무의 크기를 관찰하고 열매(도토리)를 연구하여 아마 그 나무가 수년이 된 나무라고 결론을 내릴지 모른다. 만약 나이테를 연구하기 위해 그 나무들 중 한 그루를 베어낸다면 어떻게 될까? 여러 줄의 나이테 모양을 살펴보며 그 나무가 수많은 계절을 지난 나무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나무의 목질부와 체관부의 나이테 모양은 나무의 나이를 말해줄 뿐 아니라 관다발 체계를 형성한다. 그것은 나무의 힘을 결정하는 데 필수적이다. 그러나 만약 상상력이 풍부한 그 과학자가 나이테에 근거하여 그 나무가 90년이 된 나무라고 결론을 내린다면, 그는 또다시 실수를 범하는 셈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에덴동산은 온전한 모습으로 창조되었으며, 모든 것이 완전히 작용하고 있었고, 결과적으로 외양만을 볼 때는 오랜 세월이 흐른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동산은 의심할 바 없이 많은 시간이 흐른 것처럼 보이는 피조물들로 가득 차 있었다. 일곱째 날 하나님이 창조사역을 마치고 쉬셨을 때, 모든 만물은 온전히 성숙하고 완전히 기능하고 있었다. 하늘을 날고 있는 독수리들은 30년쯤 되어 보일지 모르지만 사실은 일주일도 채 되지 않은 피조물이었다. 푸른 초원을 거닐고 있는 코끼리들은 완전히 자란 상아를 가지고 있어서 50년은 족히 되어 보이지만 실은 하루밖에 되지 않은 것이었다. 산과 강 그리고 다른 지형적인 모습들을 볼 때 전부터 그 자리에 있던 것처럼 보일 수 있다. 지질학자가 추측할 때는 수세기 동안의 바람, 물, 화산폭발, 그리고 지진활동에 의해 형성되었음직한 아름다운 폭포와 장관을 이루는 계곡들과 여러 지형적인 모습들도 틀림없이 거기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모든 것들이 하루에 만들어졌다는 사실이다. 또한 아담이 수많은 빛나는 별들로 수놓아져 있는 광대한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을 때, 그는 수백만 광년이나 멀리 떨어져있는 거리에서 오는 빛을 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그 별들은 지어진 지 나흘이 채 되지 않은 것들이었다. 그가 본 빛은 하나님의 창조의 일부에 속한 것이었다(창 1:3).

이 모든 성숙과 시간의 흐름을 나타내주는 증거처럼 보이는 것들은 창조의 기적의 일부였다. 예를 들어, 예수님이 물을 포도주로 변하게 하셨을 때, 그분은 발효와 숙성의 과정을 완전히 초월하셨다. 그분은 즉시 물을 포도주로 변하게 하셨으며, 그것을 맛본 사람들은 그 포도주가 최상품 포도주라고 증거했다(요 2:10). 그 말은 이미 완전히 숙성되어 맛이 든 포도주라는 뜻이었지만 사실은 순식간에 만들어진 것이었다. 예수님이 떡과 물고기로 수천 명의 사람들을 먹이셨을 때에도 그분은 이미 요리가 되어 먹기에 알맞은 떡과 물고기를 만드셨다.

우리는 성경을 배격하고 하나님을 경멸하는 사람들은 틀림없이 우주가 영겁의 세월 동안 존재해 왔다는 생각을 받아들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에게는 명백해 보이는 몇 가지 이유들로 인해 그들은 인간의 기원에 대한 모든 초자연적인 설명을 배제시키기를 원한다. 그들은 어떠한 형태의 도덕률에 매이는 것도 싫어하고, 자신들이 그 앞에 서서 결국 모든 것을 회계하게 될 전능하신 심판자의 존재도 원치 않는다. 당연한 귀결로, 그들은 자연적인 진화론과 오래된 지구이론을 열렬히 포용한다. 하지만 복음적인 기독교계까지 수억 수천 년 전에 지구가 시작되었다는 이론에 물드는 모습을 보는 것은 놀랍고 안타까운 일이다. 최근에 지도적인 위치에 있는 많은 복음주의 신학자, 성경 주석가 그리고 성경 옹호자들이 창세기의 창조에 관한 설명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보다는 창조에 관한 우리의 이해를 오늘날 유행하는 과학이론에 가능한 한 밀접하도록 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만일 우리가 문자적인 6일 창조와 젊은 우주의 나이에 집착한다면, 우리의 학문적인 평판과 신뢰도를 스스로 깎아 내리고 진화론으로 교육받은 사람들에게 우리의 간증이 별 효력이 없게 만들 것이라고 주장한다.

번역: 유 지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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