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 vs 진화(34): 성경과 과학의 “중간에서 살아가기”

This entry is part 34 of 52 in the series 창조 vs. 진화

당신은 바이오로고스라는 웹사이트에서 일어나고 있는 논쟁에 대해 자세히 알지 못할 수도 있지만 어제 대럴 포크(Darrel Falk) 박사의 “중간에서 살아가기”(On Living in the Middle)라는 제목의 칼럼은 바이오로고스가 역사적인 기독교를 지지한다는 기존의 주장이 설득력이 없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그의 칼럼은 바이오로고스에 대한 비평에 대해 불만으로 시작하여 그리스도인의 믿음의 진리를 저버리는 것으로 결말을 맺고 말았다. 포크 박사와 바이오로고스가 젊은 지구 창조론 – 그들은 문자적으로 하루24시간을 의미하는 6일 동안 하나님이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셨다는 사실을 부인한다 – 에 대해 어떤 입장을 취하고 있느냐 하는 것은 너무 분명하여 재론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그의 칼럼은 더 많은 것을 이야기해주고 있다. 포크 박사와 바이오로고스 그리고 그 단체에 동참하는 많은 과학자들 역시 성경의 문자적이고 역사적인 아담과 이브의 창조기록을 부인한다. 중간에서 살아가기?  도대체 무엇의 중간을 의미하는가?

그들은 아담의 창조 기록을 문자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신뢰할 수 없고, 지지할 수 없으며, 오늘날의 과학세계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로 간주하는 것 같다. 나는 그들이 아담에 관한 다른 사실들, 즉 아담의 창조에 대한 역사적인 기록(창 1~2장), 그의 타락(창 3장), 인류의 조상이 됨(창 4~5장), 그리고 그의 계보에 관한 기록들(대상 1:1, 눅 3:38, 유 14)에 대해서도 같은 견해를 가지고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나아가 만약 그들이 진화론적인 과학과 조화를 이루려 한다면, 그들은 문자적이고 역사적으로 존재했던 인물인 아담에 대한 기독교의 근본교리를 포기해야만 할 것이다(롬 5:14, 고전 15:22, 45, 딤전 2:13, 14).

포크박사와 바이오로고스에 찬성하는 사람들은, 아직은 부인한다고 말하지 않을지 모르지만, 결국 원죄자체를 부정할 위험성이 다분히 존재한다. 원죄라는 실타래를 풀기 시작하면 기독교의 신학 전체가 와해될 수 있기 때문이다. 만일 아담 한 사람의 죄로 인해 모든 사람이 정죄에 이르게 되지 않았다고 한다면,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의의 한 행동으로 모든 사람이 의에 이르게 된다는 성경의 진리도 믿을 필요가 없을 것이다(롬 5:18). 

포크박사와 그와 함께 하는 사람들은 명백히 “믿음에서 벗어났다.”  바울이 디모데에게  “망령되고 헛된 말과 거짓된 지식의 반론을” 피하라고 경고한 이유도 이런 사람들이 일어날 거라는 사실을 예견했기 때문이다(딤전 6:20~21).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는, 무엇보다 먼저,

그들이 성경에서 떠났기 때문이다. 바이오로고스 지지자들에게 있어서 최종적인 권위는 성경이 아니라 과학이다. 자연주의 과학이 그들의 판단의 기준이다. 성경이 과학과 다르게 이야기할 때마다 그들은 성경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 진화론의 범위 안에서 성경을 재해석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그들은 과학에 장단을 맞추기 위해 성경의 무오성에 기초한 근본 교리들과 더불어 성경을 문자적이고 있는 그대로 해석해야 한다는 기본원칙을 지키지 않는다.

포크 박사는 성경을 신뢰하지 않는 태도를 드러내었으므로 나는 바이오로고스 웹사이트의 “우리의 소개”(About Us) 내용도 수정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바이오로고스 운영진들은 자신들이 그리스도인의 믿음을 지키며, 성경을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말씀이라고 믿는다고 소개하고 있다. 그들은 자신들의 목표가 대화를 증진하고, 조화를 추구하며, 궁극적으로 과학과 기독교가 함께 하는, 즉 “과학과 믿음이 평화롭게 공존하는 것” 이라고 주장한다. 이 말이 얼마나 신사적으로 들리는가!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그들은 표면적으로는 “평화롭게 공존하기” 라는 입장을 취하고 있지만 실제적으로는 공공연히 적대감을 숨기지 않고 있다. 포크 박사는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바이오로고스의 존재 목적은 상당부분 교회에서  ‘젊은 지구 창조’ 이론을 약화시키기 위함이다.” 그들이 이런 일에 앞장서는 이유가 무엇일까?  그는 계속해서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우리는 대진화(macroevolution)가 일어난 적이 없다는 그들의 견해에 전적으로 반대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아담과 이브가 성경에 기록된 그들의 나이 그대로 창조되었다는 견해에 전적으로 반대한다.” 만약 그들의 이런 태도대로 한다면, 그들은 진화론적인 가정을 담고 있지 않은, 어떤 과학적 조사나 연구도 인정하지 않게 될 것이다. 포크 박사와 바이오로고스 이전에도 중립적인 길을 걸으며 파국적인 결말을 이미 경험한 자들이 있었다. 19세기 자유주의자들을 생각해보라. 중립적인 길로 한 걸음 내딛는 것은 성경으로부터 한 걸음 멀어지는 것과 같다. 그들이 먼저 이러한 시도를 시작한 이유가 무엇일까? 그것은 한 마디로 그들이 성경보다 학문을 더 중시하기 때문이다. 그들이 하나님의 확실한 말씀보다 인간(과학자들)의 자주 변하는 견해에 더 귀를 기울이는 것은 그들이 하나님보다 사람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인정보다 사람들의 인정을 받고 싶어 하는 것이다.  참으로 비극적인 일이다. 왜냐하면,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잠 9:10)이기 때문이며, 또한 “그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져” 있기 때문이다(골 2:3). 중립적인 길에서 살아가기를 희망하는 포크 박사와 그의 무신론적인 반대자들에게는 이러한 지혜와 명철 그리고 지식을 찾아볼 수가 없다. 포크 박사가 불신자들과 교류함으로써 그들의 마음과 의지 안에서 역사하는 죄의 영향력을 드러내는데 어떻게 실패했는지를 주목해보라. 그는 자신을 비평하는 제리 코인과 리챠드 도킨슨 같은 무신론자들이 자신의 견해를 오해함으로써 “불공정한 행위” 를 하고 있다고 불평한다. 포크 박사는 그들이 결코 의도적으로 자신의 입장을 왜곡하지는 않았을 거라고 믿는다고 말하면서 많은 청중들 앞에서 그들이 그러한 오해를 거두어주기를 그들의 선함과 정의감에 호소한다. 무신론 비평가들이 그를 비난하는 것이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님에도 그는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다.

포크 박사는 코인이나 도킨슨 그리고 다른 무신론자들에 대해 그리스도인들이 그들을 더 이해한다면, 그리고 그들을 좀더 열린 마음으로 환영한다면, 그들이 그리스도인들을 진짜 좋아하는 근본적으로 선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은 다른 많은 믿지 않는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믿음과 상반된 가정에 헌신하는 자들이다. 포크 박사는 무신론자들과의 대화가 인간의 마음의 전쟁터가 아니라 마치 과학적 조사라는 중립 지점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이라고 착각한다. 인간의 타락한 마음 안에 중립 지점은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 모두는 우리의 첫 조상 아담과 이브로부터 타락한 본성을 물려받았으며, 이것이 있는 그대로의 현재의 우리 모습이다. 우리는 하나님을 불신하고 그분의 법을 불순종하고자 하는 성향을 가지고 태어났다. 거듭나지 않고는 인간의 마음은 하나님과 원수이며(롬 8:7), 진리를 막으며(롬 1:18), 빛보다 어두움을 더 사랑한다(요 3:19). 따라서 중립적인 자리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완전히 허상이다. 믿지 않는 사람들은 그들의 존재 중심이 비신앙적인 전제에 기초해 있다. 그들은 항상 자신들의 마음의 보좌에 스스로 주인이 되어 앉아서 얄팍한 인간의 지성으로 반항하게 되어 있다. 그들은 자신들의 독립적인 주권을 자랑하며 결코 그것을 포기하려 하지 않는다. 포크 박사와 바이오로고스는 자신들이 대화를 통해 신사적으로 과학을 존중하는 태도를 보임으로써 그러한 적대감을 극복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가? 불행히도 그것은 당신들의 태도 여하에 달린 문제가 아니다.

자연세계는 우리가 믿지 않는 사람들과 공유하는 공간이지만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은 그것이 하나님의 공간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살아가는 공간을 창조하셨으며, 이곳에서는 자연의 법칙이 작용하도록 만드셨고, 또한 그분의 형상을 우리 안에 심어놓으셨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성과 탐구하는 정신을 주셔서 그분이 만드신 만물을 통해 그분을 발견할 수 있도록 섭리하셨다(롬 1:19,20). 그분은 그분의 법을 우리 마음에 기록하셨으며, 우리에게 양심을 주셔서 스스로 책망 받을 수 있도록 하셨다(롬2:14,15). 사도행전 17장에서 바울이 한 것처럼 우리도 전할 수 있어야 한다. 하나님은 만물의 창조자이시며(24절), 우리는 모두 아담의 후손이며(26절), 또한 우리는 부활하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심판이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을 예견하면서 회개할 수 있어야 한다(30~31절).

포크 박사와 바이오로고스 단체, 그리고 낡은 지구 지지자들은 우리 모두가 공유해야 할 유일한 공간을 내주고 말았다. 그들은 성경을 떠나 중립적인 자리를 선택함으로써 대적의 진영 안에서 안락하게 쉬고 있다. 아담 이전에도 죽음이 존재한지는 오래되었다든지, 아담은 문자 적으로 세상에 존재했던 인물이 아니라든지, 또한 죽음은 아담의 타락의 결과로 임한 것이 아니라든지, 사람들이 자신들의 지식으로 그 어떤 이론을 만들어내든지 그 모든 것은 그리스도인의 믿음이 아니다. 그들은 “망령되고 헛된 말과 거짓된 지식의 반론을 피하기보다” 믿음에서 벗어나는 길을 택한 자들이다(딤전 6:20~21). 포크 박사와 바이오로고스 단체의 예를 통해 알 수 있듯이 중간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믿음이 쇠약해지는 것과 중간에서 살기가 아니라 중간에서의 죽음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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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 vs 진화(33): 화석에 대한 진실 창조 vs 진화(35):지구의 연대기

Grace Community Church 목사, 교사
The Master’s Seminary 총장
Grace to You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