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 vs 진화(32): 성경으로 돌아가자. (향후 계획)

This entry is part 32 of 52 in the series 창조 vs. 진화

바이오로고스(BioLogos) 재단

몇 주 전에 존 맥아더 목사는 바이오로고스 재단의 회장인 Darrel Falk로부터 편지를 받았다. 그 편지에서 그는 블로그 시리즈를 통해서 동일과정설에 대한 맥아더 목사의 비평을 반박할 계획임을 밝혔다. 3부작으로 된 그 시리즈는 “동일과정설에 대한 성경적 전제: 존 맥아더에게 답하다”라는 대담한 제목으로 6월 12일에 시작됐다.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는 토론에 합류할 수 있기를 기대하며 그 제목이 약속한대로 시리즈가 진행되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실망스럽게도, Falk와 기고자들은 그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성경적인 전제를 내놓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존 맥아더 목사의 주장에 대해서도 전혀 반박하지 않았다. 그들은 그저 자신들이 증명하고 싶었던 것만을 확언했을 뿐이었다.

GTY의 사무차장인 Phil Johnson의 바이오로고스 재단에 대한 예리한 비평을 여기에서 읽을 수 있다. 그리고 Al Mohler가 리고니어 컨퍼런스(Ligonier Conference)에서 전한 메시지(“왜 우주는 그렇게 오래되어 보이는가?”)도 확인해보라. Tim Challies가 그 메시지를 요약한 것을 여기에서 읽을 수 있다.

동일과정설 지질학

동일과정설에 대한 말이 나온 김에 그 근본적인 문제점 중 하나를 강조하고자 한다. 동일과정설 해석의 요약이라고 할 수 있는 “현재는 과거에 대한 열쇠이다.”라는 말은 “우리가 지금 발견하는 과정들은 예전부터 항상 그래왔다”는 뜻이다. 흐르는 물, 바람의 패턴, 화산 활동, 기온의 변화와 같은 자연 현상은 우리가 지질학적 기록, 즉 지구를 덮고 있는 퇴적층에서 발견하는 것들을 설명한다는 말이다.

최근에 와서, 동일과정설을 지지하는 지질학자들은 국지적 홍수나 지진같은 특정한 대격변을 자신들의 모델에 허용하고 있다. 하지만 분별력있는 과학자로서 그들은 어떤 “종교적인 신화”도 그들의 해석에 영향을 주게 하지는 않는다. 성경에 기록된 사건들, 즉 무에서의 창조, 타락, 전지구적 홍수는 비과학 시대의 유산일 뿐, 실제 과학에 있어서는 아무 관계도 없다고 한다.

하지만, 만약 성경이 말하는대로 대홍수가 실제로 일어났었다고 잠시만 가정해보자. 그것은 매우 이례적인 것으로 절대 반복되지 않을 지각의 격변과 대기의 급격한 변화를 가져왔다. 이런 변화가 방사성 연대 측정에 영향을 끼치지 않겠는가? 화석 기록, 지질 주상도, 결과로 만들어진 자연 경관과 지구 상의 지질학적 특징들을 설명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겠는가? 대부분의 과학자들은 이런 질문을 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들은 성경의 전지구적 홍수를 논리의 전제로서 거절하기 때문이다.

동일과정설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여느 다른 비성경적인 세계관과 마찬가지로 순환논리의 오류에 있다. 내가 만났던 한 정직한 지질학 교수(Zactly)는 학생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여러분, 여러분이 돌이나 지층을 보고 있다면, 여러분은 시간을 보고 있는 것이 아니라 단지 돌과 지층을 보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그 교수님께 어떻게 지질학자들이 지질 주상도(명왕누대(45억년전)에서 신생대(현세대까지)까지의 지질 시대를 구분하는 도표)의 연대를 결정하는지 물었다.

지질학 교수 : “그건 그 시대에 해당되는 지층을 통해 결정합니다.”

나 : “그럼, 그 지층의 연대는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교수 : “지층에 포함된 화석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나 : (의도한대로 대화가 흘러감을 알고) “그렇다면, 탄소 연대 측정법은 비교적 최근의 연대를 측정할 때만 사용 가능하고, 방사성 연대 측정법은 화석의 연대를 측정하는데는 사용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화석의 나이는 어떻게 결정합니까?”

교수 : “그 화석이 발견된 지층의 나이로 결정합니다.”

나 : “그건 순환오류가 아닌가요? 화석의 나이는 바위의 나이로 측정하고, 바위의 나이는 화석으로 측정한다고 하면 순환논리의 오류라 생각합니다.”

교수 : “그런 것 같군요. 하지만, 그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입니다.”

난 이 교수님의 정직함에 감사한다. 특히 이 대화가 일반 대학생들로 가득 찬 교실에서 이루어졌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더욱 그렇다. 반면에, 그들의 입장이 이런 순환오류가 있음을 인정하지 않는 동일과정설 지지자들, 특히 소위 크리스챤이라 하는 자들에게는 넌저리가 난다. 바이오로고스 사람들처럼 그들은 계속해서 증명하고 싶어하는 것(“현재가 과거에 대한 열쇠다”)에 대해서 단언하기만 할 뿐이다. 어떤 논증도 없이 말이다.

 크리스챤의 관점은 이것이다. “성경이 과거, 현재, 미래에 대한 열쇠다.” 말씀에 기록된 대로 하나님께서 행하셨다고 믿을 때, 진정한 과학적 탐구가 시작된다. 말씀이 이성적인 생각을 위한 올바른 전제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 영원한 물질과 무한한 역행보다는 영원한 하나님의 물질 창조가 더 설득력있다(창 1:1; 히 11:3).
  • 모든 인류에게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도덕에 대한 자각이나 도덕률을 어길 때 생기는 수치심과 죄책감은 성경에서 말하는 창조와 타락으로 설명할 수 있다(롬 2:14-15). 다른 어떤 세계관도 이런 현상은 일관되게 설명하지 못한다.
  • 동일과정설보다는 하늘 아래 모든 산들을 덮고 방주 밖에 있던 모든 생명체를 멸망시킨 대홍수에 대한 성경의 기록이 화석을 더 잘 설명한다.

이제 우리는 “과학이라는 잘못된 이름을 가진 헛된 말과 반대”를 버리고 스스로의 권위를 증명하는 성경으로 돌아가야할 때이다.

겉보기 나이

인터넷을 통한 토론에서 우리 의견에 반대하는 사람들 중 어떤 사람들은 우리 입장을 이런 식으로 정리하려 했다. 우리의 주장에 따르면, 하나님은 마치 우리를 속이려는 듯, 실제와 겉보기 나이가 다르게 우주를 창조하셨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들은 젊은 지구를 지지하는 것은 어느 정도, 그것이 아주 미묘한 것일 지라도 하나님을 위선적으로 만든다고 한다. 동시에 오랜 지구를 지지해야 우주가 그 나이만큼으로 보이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존엄성을 붙드는 것이라 주장한다.

하지만 우리가 주장하는 것은 하나님이 속이려고 했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하나님은 가장 특별한 피조물인 아담과 하와가 유용하게 사용하도록 온전히 동작하는 우주를 창조하셨다고 말하는 것이다. 성숙한 모습으로 창조된 아담과 하와는 그들의 생활과 기쁨을 위해서 동산의 모든 것을 즉시 사용할 수 있었다. 이것이 어떻게 속이는 것이 될 수 있는가?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어떻게 아담과 동산의 모든 피조물이 존재하게 되었는지를 말씀하실 때, 아담이 하나님에게 사기친다고 비난하는 모습을 상상할 수 있는가? 가상의 대화를 생각해보자.

아담 : 잠시만요, 하나님. 저와 하와, 다른 모든 식물과 동물은 하룻밤 사이에 이렇게 자라지는 않았습니다. 설마 제가 어제 태어났다고 생각하시는건가요?

하나님 : 아.. 그게… 사실 그렇단다. 넌 태어난 것이 아니라 흙으로부터 만들어졌지. 하지만, 결론적으로 말하면 넌 어제 태어난 것이 맞단다.

이제 아담은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하나님의 말씀 그대로 하나님이 그렇게 하셨다는 것을 믿거나 그 말씀을 거절해야했다. 이것은 현재 우리 앞에 있는 동일한 선택의 문제이기도 하다.

예수님께서 군중을 위해 떡과 물고기를 창조하셨을 때, 잘 모르는 사람들은 추수한 곡물로 만든 떡과 어부의 그물로 잡은 물고기를 먹고 있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예수님께서 떡과 물고기를 창조하셔서 배고픈 사람들이 즉시 먹을 수 있도록 하셨다는 것을 안다. 하나님께서 그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알려주셨기 때문이다(마 14:13-21; 15:32-38).

하나님이 약간의 속임수를 사용했다는 듯이 말하는 사람들은 옛 뱀과 같이 하나님의 속성에 그림자를 던지는 것이다(창 3:1). 말씀대로 하나님이 하셨다고 믿는 것, 특별히 기원의 문제에 대해서 그렇게 믿는 것은 하나님을 속이는 분으로 만들지 않는다. 오히려 이는 믿음으로만 가능한 겸손한 관점이다.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히 11:3)

그럼, 창세기에서 말하는 문자적인 6일 창조에 부합하지 않는 것같은 자료를 찾으면 어떻게 해야할까? 어떤 사람들은 1987년에 발견된 초신성의 경우를 지적한다. 왜냐하면 그 위치상, 초신성 1987의 빛 입자가 지구까지 오려면 16만 8천년 정도가 걸리기 때문이다. 성경이 말하는 역사는 1만년도 되지 않는데, 이 16만 8천년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성경이 우리 생각의 올바른 곳에 자리잡고 있다면, 우리는 보고 경험하는 것을 우리가 말씀에서 읽는 것을 통해 해석할 수 있다. 따라서 우리가 의구심을 가져야할 것은 성경의 창조에 대한 기록이 아니라 16만 8천년일 것이다. 우리는 문자적인 6일 창조라는 틀 안에서 자료를 해석한다. 자료와 그것을 이해하기위한 과학적 연구 모두를 성경에 복종시켜야 한다. 성경을 오랜 지구의 틀 안에 끼워맞출 수는 없다.

초신성 1987의 경우, 아래와 같은 몇가지를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 빛 입자가 어떻게 우주를 돌아다니는지에 영향을 주는 어떤 힘이 있다면 어떨까? 당신이 창조한 모든 입자를 주장하시는 하나님께서 빛의 움직임에 영향을 주는 우주의 규칙을 두셨는데, 그것을 우리가 아직 발견하지 못했다면 어떨까?
  • 16만 8천 광년이란 거리가 16만 8천년이란 시간과 동일하다고 결론을 내리기 위해 필요한 전제에는 무엇이 있는가?
  • 다른 현상에 대해서 우리의 무지에 대해, 더 많은 자료의 부재에 대해 우리가 미처 묻지 않은 질문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지구에 대해서도 우리는 많은 것을 모르고 있고 여전히 새로운 사실을 발견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한번도 가보지 못한 먼 우주에 대해서는 좀 더 겸허한 자세로 다가갈 필요가 있다.

로드맵

앞으로 이 창조 시리즈는 어떻게 진행되는지에 대한 언급을 하려고 한다. 우리는 지난 3월 진화론적 세계관의 비합리성과 현재 사회에 대한 파괴적인 영향을 언급하며 이 시리즈를 시작했다. 그리고 기원에 대한 질문에 과학이 주는 대답은 한계가 있음을 드러냈다. 하나님은 욥에게 “내가 땅의 기초를 놓을 때 너는 어디에 있었느냐”고 물으셨다. 그에 대한 대답은 없었고, 오늘날의 과학자들은 여전히 이 질문에 직면해 있다.

자연 만물(일반 계시)을 연구하는 과학자들은 기원에 대한 질문에 대답을 할 수 없다. 왜냐하면 과학은 관찰 가능한 것을 다루는 학문인데, 기원에 대한 것은 관찰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감사하게도, 하나님은 그 모든 일이 어떻게 일어났는지에 대한 기록을 담은 특별 계시를 우리에게 주셨다.

지금 우리는 성경 해석에 대한 문제를 다루고 있다. 하나님께서 창세기의 말씀을 주셨는데, 우리는 그 말씀을 어떻게 해석해야할까? 우리는 성경의 기록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문자적이고 문법적이며 역사적인 해석법이 옳다고 믿는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성경을 문자적인 6일 동안 창조하셨다고 믿는다.

해석의 문제를 다룬 후에 우리는 곧 의미의 문제를 다룰 것이다. 창조의 기록을 이해하는 방법이 창세기 3장의 타락, 6-9장의 홍수, 그리고 성경의 다른 기본적인 교리에 어떻게 영향을 주는지 다룰 것이다. 창세기를 어떻게 해석하는지가 우리의 궤도를 결정하기 때문에, 우리는 바르게 해석해야만 한다.

이 시리즈에 관심을 가져준 독자들에게 감사를 표하며, 아직 중요한 포스트가 많이 남아있으니 끝까지 함께해 주길 바란다.

Travis Allen

Managing Director

http://www.gty.org/Blog/B100622에 가면 원문을 볼 수 있다.

COPYRIGHT ©2013 Grace to You

You may reproduce this Grace to You content for non-commercial purposes in accordance with Grace to You’s Copyright Policy(http://www.gty.org/connect/Copyright)

 

창조 vs 진화(31): 왜 6일인가? 창조 vs 진화(33): 화석에 대한 진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