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 vs 진화(27): 구조 가설(Framework Hypothesis)의 허위성

This entry is part 27 of 52 in the series 창조 vs. 진화

창조 기록이 언제나 적들의 표적이 되어왔다는 것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에덴 동산에서 시작해서 하나님의 말씀은 많은 공격을 받았는데, 그런 공격들은 하나의 공통된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 바로 하나님과 그 말씀에 대한 의심이다.

창세기는 적의 주요 공격 지점이다. 많은 사람이 아담은 진짜 사람이 아니었고 에덴도 실존 장소가 아니라고 한다. 또한 말하는 뱀도 진짜는 아니었다고 한다. 사실 그들은 창세기 1장에 나오는 ‘날’이란 단어부터 의심을 제기한다. 구조 가설(framework hypothesis)에 따르면, 여기서 ‘날’은 실제 24시간을 의미하지 않는다. 맥아더 목사의 설명이 도움이 될 것이다.

오래된 지구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구조 가설’이라 알려진 이론을 많이 지지한다. 구조 가설은 창세기에 나오는 ‘날’은 시대 구분이 아닐 뿐 아니라 오랜 진화 과정에 있는 중첩된 단계라고 한다. 이 관점에 따르면, 창세기 1장의 6일은 어떤 식으로든 시간의 순서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창조의 과정을 유한한 인간이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비유적인 구조를 통해 설명한 것이다.

구조 가설은 19세기 독일의 자유주의 신학자들이 처음 주장했고 그 후에 몇몇 주도적인 복음주의자들(특별히,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에서 가르치던 구약학자 메러디스 G. 클라인, Meredith G. Kline)이 그것을 받아들이고 보급하였다.

구조 가설은 창세기 1장에 나오는 창조의 ‘날’이 시간과는 전혀 관계없는 상징적인 표현이라 믿는데서 시작한다. 지지자들은 첫째 날과 넷째 날(빛의 창조와 궁창에 광명체들을 두신 것), 둘째 날과 다섯째 날(공기와 물을 나눈 것과 공기와 물에 살 물고기와 새 창조), 그리고 셋째 날과 여섯째 날(육지가 드러난 것과 육지 동물의 창조) 사이의 분명한 평행 구조에 주목하고, 그런 평행 구조가 창세기 1장이 단지 시(詩)라는 증거가 된다고 한다. 따라서, 이 이론에 따르면, 창조의 순서는 본질적으로 중요한 것이 아니다.

자연적으로 이 가설의 지지자들은 지구가 수십억년에 걸쳐 형성되었다는 현대 과학의 이론을 받아들인다. 그들은 성경의 기록은 단지 비유적인 구조로서 창조에 대한 과학적 이해 위에서 이해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창세기 1장의 표현이나 세부적인 것은 중요한 문제가 아니고, 오직 하나님의 섭리가 진화의 과정을 이끌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따라서 창세기의 창조 기록은 단지 문학적인 장치로서 문자 그대로 이해해서는 안된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창조가 문자적인 6일 동안 일어난 일이라고 우리에게 말하려고 하셨다면, 어떻게 지금의 창세기 1장보다 더 단순하고 직접적으로 말할 수 있었을까? 하루의 길이는 낮과 밤으로 정의되어 있고 넷째 날 이후로는 태양과 달이 그 낮과 밤을 주관한다. 한 주는 인간의 노동과 휴식을 정의한다. 날들은 아침과 저녁의 변화로 구분된다. 이런 것들이 어떻게 하나님께서 하신 창조의 시간적 과정을 나타내지 않을 수 있는가?

구조 가설의 문제는 그것이 파괴적인 말씀 해석 방법을 사용한다는데 있다. 만약 창세기 1장의 문자적 의미가 사라지고 표현은 단지 문학적 장치라고 한다면, 창세기 3장에 대해서 그렇게 못할 이유는 무엇인가? 실제로, 대부분의 자유주의 신학자들은 말하는 뱀은 창세기 3장이 우화나 비유임을 보여주고 따라서 창세기 3장은 인간의 타락에 대한 문자적이고 역사적인 기록은 아니라고 말한다. 언제 비유가 끝나고 역사가 시작되는가! 홍수 이후인가, 아니면 바벨탑 이후인가? 어떤 근거로 그렇게 말할 수 있는가? 그렇다면 왜 성경에 나오는 모든 기적들을 단지 문학적인 장치라고 하지 않는가? 예수님의 부활도 단지 우화일 뿐이라고 할수도 있지 않는가? E. J. 영(E. J. Young)의 말을 빌리자면, “만약 구조 가설이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이나 부활, 혹은 로마서 5:12에 적용된다면, 그것은 창세기 1장의 중요성을 최소화한 것과 마찬가지로 이 말씀들의 중요성도 최소화시킬 것이다.”

<창세기 1장 연구>라는 책에서 Young은 구조 가설의 허위성에 대해 지적한다.

“반드시 던져야하는 질문이 있다. 만약 (창세기 1장의) 날들이 시간의 흐름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면, 6개의 날을 언급하는 목적은 무엇인가? 일단 창세기의 시간적 순서를 거절한다면, 우리는 창세기 1장의 내용에 대해서 말할 것이 거의 없다. 사실 창세기 1장의 날들이 두 개의 짝으로 꼭 맞아들지도 않는다. 넷째 날은 하나님께서 궁창에 광명체들을 두신 것에 대해서 말한다. 그런데 궁창은 둘째 날에 창조되었다. 만약 넷째 날과 첫째 날이 같은 것의 두 측면을 말하고 있다면, 둘째 날(궁창의 창조)은 첫째 날과 넷째 날보다 선행해야 한다. 문법이 무시된 이런 절차가 허용된다면, 왜 일관되게 창세기 1장 1절과 이런 날들 가운데 4일 모두가 같다고 말할 수 없는가? 문자적으로 분명한 의미를 포기하게 되면, 이런 과정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진지하게 물어보자. 과연 창세기 1장은 둘째 날이 첫째와 넷째 날보다 선행한다는 것을 가르치려 하는 것일까? 이 질문이 곧 그 해답이다.

가장 단순하면서 분명한 사실은 성경을 읽을 때 누구도 창세기의 7일을 우리가 이해하는 일주일이 아닌 다른 것으로 이해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십계명의 4번째 계명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구조 가설은 현대의 과학 이론에 기초하여 성경을 해석하려한 노력의 직접적인 결과다. 그 기본적인 전제는 지구의 나이와 기원에 대해서 성경보다는 과학이 더욱 권위가 있다는 이념이다. 이를 받아들이는 것은 성경 위해 과학이라는 권위를 놓는 것이다. (하나님의 권위와는 관계없는 그저 인간의 의견인) 과학이 말하는 가설을 성경 해석의 원리로 삼는 것이다.

이는 전혀 정당성이 없다. 현대 과학이 만든 가설은 창세기를 비롯해 다른 모든 성경 말씀을 해석하는 원리가 될 수 없다.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하심으로 기록되었다(딤후 3:16). 하나님으로부터 온 진리다(벧후 1:21). 예수님은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요 17:17)라고 하심으로써 이 모든 것을 요약하셨다. 성경은 최고의 진리이기 때문에 그에 기초해서 과학적 이론이 검증을 받아야 한다. 그 반대가 되어서는 안된다.

맥아더 목사가 말한 것처럼 구조 가설의 지지자들은 창세기 1장의 표현이나 구체적인 것은 중요하지 않다고 한다. 그것들은 단지 진화의 과정에 하나님의 섭리가 있었음을 보여준다고 한다. 하지만, 만약에 그것이 정말 하나님께서 그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가르치고 싶으셨던 것이라면, 왜 하나님은 그렇게 정확하고 구체적인 표현들을 사용하셨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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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 vs 진화(26): 창세기는 시가 아니다. 창조 vs 진화(28): 기원에 대한 답을 알고자 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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