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 vs 진화(26): 창세기는 시가 아니다.

This entry is part 26 of 52 in the series 창조 vs. 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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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의 9분짜리 설교를 들어보자.

창세기 1장 1절로 다시 돌아가보십시오. 간단한 말입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여러분은 그 말을 믿든지 안 믿든지 둘 중 하나에 속합니다. 만약 이것을 믿지 않는다면 성경에 나오는 많은 다른 것들도 믿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비평가들이 성경을 공격하는 말들을 들을 때면 저는 참 지칩니다. 저는 US News and World Report(미국 시사전문지)에서 사도 바울에 대한 정말로 말도 안 되는 글을 읽었는데, 그것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을 완전히 왜곡시키고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무신론자의 어리석은 생각이었습니다. 그들은 창세기에 대해서도 같은 일을 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자기 스스로를 종교적인 학자인 양 행세합니다.

“창세기의 창조 기록을 문자적인 역사가 아니라 비유적인 히브리 시의 한 종류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인정하는 사실이다.” 만약 그것이 사실이라면 여러분은 다른 모든 부분들도 비유적으로 해석해야 할 것입니다.

창조와 변화(Creation and Change)라는 정말로 뛰어난 책을 저술한 Douglas Kelly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많은 성경 해석자들은 창세기 본문의 직접적인 해석과 그에 반대하는 자연주의 이론 사이에서 발생하는 명백한 갈등을 피하려고 애써왔다. 그들은 창세기의 1장부터 11장, 특히 첫 3장은 시간적인 역사가 아니라 시적인 글이라고 주장하면서 그렇게 해왔다. 이런 입장은 놀랍게도 일반적으로 성경의 권위를 높이 평가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흔하게 발견된다.” 정말 놀랍지 않습니까?

필라델피아에 있는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의 위대한 학자인 Edward J. Young−제가 학생이었을 때 그의 책을 많이 읽었습니다−은 히브리어와 동족 언어 분야의 권위자인데, 그는 창세기 1장부터 3장이 진짜 역사가 아니라 시라는 이 주장들에 대해서 대답한 바 있습니다. 그는 그의 글 ‘창세기는 시인가 신화인가?’에서 그 질문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어떤 복음주의자들은 창세기의 명백히 사실적인 진술로 부터 벗어나기 위해서 창세기의 처음 부분이 시 또는 신화라고 말한다. 그들은 그 말씀들을 직접적인 설명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데, 그런 관점을 받아들이는 것은 여러 난제들을 제거해준다. 그들은 말하기를, 그런 관점을 선택하면 현대 과학과 관련해서 발생하는 모든 문제들이 없어지게 된다.”

그리고 나서 Young은 말하기를 “창세기는 시가 아니다. 성경에는 시편 104편과 욥기에서처럼 창조에 대한 더욱 시적인 말씀들이 등장하는데, 그것들은 창세기의 첫 장과 완전히 다르다. 히브리 시는 어떤 특징들을 갖고 있는데 그것들이 창세기의 첫 장에서는 나오지 않는다. 따라서 창세기 1장이 시라는 것은 절대로 해결책이 될 수 없다. “나는 창세기가 역사적인 사건이라는 주장에 동의하지만, 그것을 믿지는 않는다”라고 말하는 것이 “나는 창세기가 완전히 사실임을 믿지만, 그것은 시이다”라고 말하는 것보다 성경을 훨씬 더 잘 해석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시에 대한 그런 말도 안 되는 주장을 펴지 말고, 그냥 여러분은 그것을 믿지 않는다고 말하십시오. 그것이 더 나은 접근입니다. 창세기 1장은 히브리 시의 방식을 따라 쓰인 것이 아닙니다. 구약에는 그런 본문들이 많이 있지만, 창세기 1장은 아닙니다. 창세기 1장에는 히브리 시에서 나타나는 전형적이고 전통적인 종류의 유사성이 사용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Douglas Kelly는 말하기를, “신약 성경의 말씀들 중에는 창세기 1장에서 11장을 시적인 관점으로 해석하는 내용이 전혀 나오지 않는다. 만약 그 말씀들이 시였다면 신약 성경의 기자들이 그것을 시로 가정하고 시처럼 다뤄야 할 것이다. 그러나 신약 성경의 기자들이 창세기에 대해 주석을 쓴 것을 보면 그들이 그 말씀들을 역사로 받아들이고 있음이 명확하다.”

Henry Morris는 대한 신약 성경에 나오는 구약 성경 말씀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요약한다. “신약 성경은 구약 성경보다 창세기에 대한 의존도가 오히려 훨씬 더 크다. 창세기의 말씀 중 약 165 구절이 신약 성경에 직접적으로 인용되었거나 확실하게 언급되었다. 그 말씀들 중 여러 구절이 한 번 이상 언급되고 있으므로 창세기에 나오는 구절이 적어도 200회가 넘게 인용 및 언급된 것이다. 회의론자들과 불신자들의 가장 많은 공격의 대상이 된 창세기 1-11장이 신약 성경에 가장 큰 영향을 주었다는 사실은 중요하다. 신약 성경에는 창세기 1-11장의 인용이나 직접적인 언급이 100회가 넘는다. 게다가 1-11장의 모든 장들이 신약 성경 안에 암시되어 있으며, 신약 성경의 모든 기자들이 자신의 글에서 창세기 1-11장을 언급한다.” 신약 성경의 모든 기자들이 그렇다는 말입니다. “적어도 6번의 다른 상황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창세기 1-11장에 등장하는 일이나 인물을 인용하거나 언급하셨고, 첫 7장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인용을 하셨다. 게다가 구약이나 신약 성경이 창세기 말씀을 언급하는 부분에서 그 기자들이 창세기에 나오는 일이나 인물들을 신화나 비유로 보고 있다는 어떠한 증거도 찾을 수 없다. 반대로, 그들은 모두 창세기를 완전히 역사적인 진리와 권위를 가진 것으로 보았다.” 훌륭한 진술입니다.
Walter Brown은 창세기 초반부를 언급하는 신약 성경 구절 71개를 들면서 이렇게 결론을 내렸습니다. “신약 성경의 모든 기자들이 창세기 초반부를 인용한다. 모든 기자들이.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창세기의 첫 7장을 모두 언급하셨다. 갈라디아서, 빌립보서, 데살로니가전후서, 디모데후서, 디도서, 빌레몬서, 그리고 요한 1, 3서를 제외한 신약의 모든 성경들이 창세기 1-11장을 언급한다. 창세기 1-11장 중 8장을 제외한 모든 장들이 신약 성경에 구체적으로 언급된다. 신약 성경의 모든 기자들은 그 장들을 역사적으로 정확한 것으로 받아들였다.”

이제 창세기로 돌아가봅시다. 창세기의 개요를 보면 창세기 첫 장의 역사성이 더욱 확실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1장에서 11장은 원시 시대이고, 12장에서 50장은 가부장 시대로 아브라함, 이삭을 시작으로 요셉, 야곱, 그리고 요셉으로 이어집니다. 원시 시대에서는 창조, 타락, 홍수, 인류의 흩어짐이 일어납니다. 가부장 시대에서는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이 나옵니다. 매우 잘 구분되어 있습니다. 어느 누구도 12장에서 50장이 역사라는 사실에 대해서 언쟁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들은 왜 1장에서 11장이 역사라는 것을 부인합니까? 그들은 홍수에 대해서는 매우 많은 증거가 있기 때문에 그것이 역사적인 사실이 아니라는 데에 대해서는 논쟁하려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인류의 흩어짐, 바벨탑 사건과 국가들과 언어에 대해서는 역사가 아니라고 논쟁하지 않습니다. 언어와 국가들의 다양성에 대해서는 어떤 설명이든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가장 논쟁하려고 하는 것은 창세기의 첫 세 장이며, 그들이 가장 문제로 삼고자 하는 것은 창조입니다. 그들은 과학이 그 목적을 달성했으며 성경이 틀렸음을 밝혀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창세기는 역사적인 사실입니다. 1장에서 11장은 원시 시대이고, 12장에서 50장은 가부장 시대인 것입니다.

창세기에 대한 짧은 수업을 해 봅시다. 5장을 보십시오. “계보”라는 말은 “족보”라는 뜻입니다. 즉,역사를 말하고 있습니다. 창세기 5장 1절입니다. “이것은 아담의 계보를 적은 책이니라.” 6장 9절을 보십시오. “이것이 노아의 족보니라.” 10장 1절입니다. “노아의 아들 셈과 함과 야벳의 족속은 이러하니라.” 11장 10절을 보십시오. “셈의 족보는 이러하니라.” 27절을 보십시오. “데라의 족보는 이러하니라.” 25장 12절입니다. “이스마엘의 족보는 이러하고.” 19절입니다. “이삭의 족보는 이러하니라.” 이런 것이 계속됩니다. 36장에는 “에서 곧 에돔의 족보는 이러하니라.” 9절에는 “에서의 족보는 이러하고”가 반복됩니다. 37장 2절을 보십시오. “야곱의 족보는 이러하니라.”

우리는 창세기 전체를 역사적인 기록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거꾸로 되돌아가면 요셉으로부터 야곱, 에서, 이삭, 이스마엘, 아브라함, 데라, 셈, 함, 야벳, 노아, 아담, 그리고 하나님으로 이어집니다. 이것은 모두 역사입니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이 역사적인 사실이 하나님에 대한 신화와 관계있다고 진술하는 것은 터무니없습니다.

오늘 토론 주제는 다음과 같다:

 창세기 1-3장을 직접적이고 문자적으로 읽는 것이 “수백만 혹은 수십억년 전” 신화를 믿는 사람들에게는 고질적인 장애가 되고 있다. 이것을 피하기 위해서 어떤 복음주의자들은 창세기의 초반 장들에 대한 해석의 원칙들을 바꾸려고 시도하고 있다. 만약 성경적인 창조 기사가 문자적으로 해석되지 않는다면 문자적인 6일 창조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그냥 잘못된 것이 아니라 작가의 의도에 해를 가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간단하지만 영리한 전략이 있다. 그들은 창세기 1장에서 11장, 특히 첫 세장이 히브리 시라고 말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어떤 사람들은 더 나아가서 그것이 비유라고 말한다. 거기에 사용된 말들은 중요하지 않고, 그것들은 하나님께서 더 깊고 숨겨진 진리들을 가르치시려고 사용하시는 문학적 장치들이다. 자유주의자들은 초자연적인 요소들을 모두 다 부인하면서 성경의 창조 기사는 정교하게 만들어진 신화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요지는 그들이 저자의 의도를 바꿈으로써 해석의 원리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쉽게 말하면 무엇이든지 상관없는 것이다. 성경은 마치 해석자의 손에 있는 부드러운 찰흙처럼 그의 개인적인 편견을 따라서 원하는 형태로 만들어진다.

창세기 1-3장이 시인가? 비유인가? 그 부분을 시적으로 혹은 비유적으로 보는 관점이 성경의 나머지 부분, 특히 신약 성경에서 창조 기사를 다루는 방식과 어떻게 조화될 수 있는가?

존 맥아더 목사의 설교에서 발췌한 부분을 들은 후에 다음의 시나리오에 대한 의견을 댓글로 달아주기 바란다. 창조 기록에 대한 두 가지의 다른 해석을 생각해보자. 하나는 창세기를 순수하게 역사적 사실로 받아들이지만 그것을 믿지 않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창세기 1장과 2장이 완전히 사실이지만 시 또는 비유로 쓰였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둘 중 어느 접근이 더 진실성이 있어 보이는가? 그 이유는 무엇인가?

http://www.gty.org/Blog/B100606에 가면 원문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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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ace Community Church 목사, 교사
The Master’s Seminary 총장
Grace to You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