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 vs 진화(23): 기적은 연구의 대상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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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s entry is part 23 of 52 in the series 창조 vs. 진화

성경을 펼치고 첫 구절부터 읽어나가려면 반드시 답해야만 하는 질문이 있습니다. 이 질문에 답하지 않고 첫 구절, 첫 장, 두번째 장을 넘어갈 수 없습니다.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이 질문은 “당신은 성경을 믿는가?”입니다. 성경을 하나님의 권위 있는 말씀으로 받아 들이냐는 이 질문에 답하지 않고 성경을 계속 읽어 나갈 수는 없습니다. 성경을 믿으십니까? 그 첫번째 테스트가 바로 창세기 1장입니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둘 중에 하나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것을 믿든지 그렇지 않든지입니다. 창세기가 말하는 것을 받아 들이든지 거절하든지 둘 중 하나입니다. 말씀을 바꿀 권리는 당신에게 없습니다. 사실 성경은 그에 무엇을 더하거나 빼는 것 자체를 강력하게 금합니다(계 22:18-19). 말씀을 편집할 필요도 없습니다. 성경에는 부족한 부분이 전혀 없습니다. 창세기 1장과 2장도 마찬가지입니다.

혹시, 이런 생각을 하실지 모릅니다. “그럼, 과학은요? 창세기의 말씀을 지식적으로 제대로 이해하려면 과학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지금까지 축적 되어온 과학으로 성경을 지지할 수 있어야 그 말씀을 제대로 이해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사실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스스로 그리스도인이라 하면서, 창세기는 우주의 기원에 대한 불충분한 정보를 주기 때문에 제대로된 정보를 얻으려면 과학적 발견이 필요하다고 하는 자들이 정말 많습니다. 그런 생각을 버리십시오. 그러면 불필요한 의구심과 끝없는 혼란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과학은 창조를 이해하는데 어떠한 도움도 주지 않습니다.

이 말이 충격적으로 들리실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창조의 과학’이란 말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 것은 존재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창조를 설명할 수 있는 ‘과학적인 방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창조는 ‘자연적인’ 현상이 아닌, 과학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초자연적 사건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창조의 과학’은 없다라고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모든 과학은 관찰에 기초하는데, 누구도 창조는 관찰하지 못했습니다. 또한 모든 과학은 재현을 통한 검증을 필요로 하는데, 창조는 재현될 수 없기 때문에 (과학적으로) 검증될 수도 없습니다.

창조는 관찰자도 없고 재현할 수도 없습니다. 어떤 예측 가능하거나 관찰할 수 있는 방법, 혹은 일정하게 정해진 자연의 법칙에 의해 일어난 것이 아닙니다. 사실은 정반대입니다. 창조는 초자연적이며 순간적인 사건으로서 설명할 수 없는 연속된 기적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창세기에는 진화에 대한 어떠한 언급도 없는 것입니다. 창조는 자연적인 과정이 아닙니다. 모두 초자연적입니다. 진화는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방법이 될 수 없습니다. 창조는 초자연적인 기적이기 때문입니다. 창조에 대한 기록은 오직 창세기 1장과 2장에만 있습니다. 믿으시든지 거절하시던지, 창세기에 있는 기록이 전부입니다.

이런 질문을 하실지 모릅니다. “잠깐만요, 피조물들이 변하는 것은 사실이지 않습니까? 식물도 변하고 동물도 변하고 같은 종 안에서 변이를 일으키기도 합니다. 성장의 과정이라는 것도 있지 않습니까?” 맞습니다. 모두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창조 자체와는 관계가 없습니다.

우리는 피조물들이 어떻게 동작하는지 관찰할 수 있습니다. 어떻게 기능하는지도 알아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아무리 열심히 관찰해도 창조 자체에 대한 정보는 알 수 없습니다. 현재 그들의 모습은 처음에 어떻게 그들이 존재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정보는 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예수님께서 나사로를 죽음에서 살리셨던 그 때 당신이 예루살렘에 살던 사람이라고 가정해봅시다. 나사로를 만난 당신은 “만나서 반갑습니다”라고 인사하고 그 손을 잡고 이렇게 말합니다. “와우, 당신은 정말 죽었던거죠? 그리고 지금 살아있고……. 혹시 실례가 되지 않으면 당신 주변에 좀 머물면서 당신을 관찰해봐도 될까요? 제가 좀 알고 싶은 것이 있어서 그렇습니다.”

허락을 받고 계속해서 나사로를 따라 다닙니다. 어떻게 걷는지 어떻게 말하는지를 관찰합니다. 머리를 긁적이는 방식, 먹는 방식 등 모든 것을 관찰합니다. 그리고 그에 대한 모든 기록을 남깁니다. 나사로의 남은 생애를 전부 관찰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으로 어떻게 나사로가 죽음에서 살아 돌아왔는지를 알아낼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의 부활은 자연적인 과정과는 관계없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기적이었습니다.

다른 예로, 예수님께서 물고기 두 마리와 떡 다섯 덩이로 5천 명이 넘는 사람을 먹이셨던 그 때에 당신이 갈릴리에 있었다고 해봅시다. 도대체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했는지 알기 위해 모든 사람들을 인터뷰 해 보고, 그것을 먹을 때 어떤 느낌이었는지 그것을 먹고 나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정보를 수집합니다. 그 모든 정보를 모은다고 해도 어떻게 예수님이 그런 일을 할 수 있었는지를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이는 바로 창조에도 해당되는 말입니다. 창조된 세계가 지금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지를 관찰할 수는 있지만 그것이 창조 자체에 대한 정보를 주지는 못합니다. 창조는 창조주의 계시를 믿는 것외에 다른 방식으로 이해할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당신이 성경을 열때 직면하게 되는 첫번째 테스트입니다.

저를 정말 놀라게 하는 것은, 영향력있는 기독교 사역을 이끄는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창세기 1장과 2장에 대해서 단지 그대로 믿기 어렵다는 것외에 어떤 입장도 표명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들에게 저는 묻습니다. “그럼, 몇 장부터 믿으실 겁니까? 3장 아니면 4장부터면 믿으시겠습니까?”

나사로의 행동이 그가 어떻게 부활하게 되었는지를 설명할 수 없는 것처럼, 과학적 발견도 창조와는 관계가 없습니다. 창조는 과학적인 사건이 아니기 때문에 자연적인 법칙에 의해 된 것인양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나머지는 창세기를 읽는 독자들의 몫입니다. 독자들은 창조자의 말씀을 믿어야합니다. 그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입니다.

토론을 위한 질문:

(이 모든 논쟁은) 어쩌면150년에 걸친 진화론의 유산이거나 혹은 공허한 세상에서 어떤 권위를 찾기 위한 인간의 기본적인 필요일 수도 있다. 어떤 이유이든 간에 과학은 기원의 문제에 있어서는 그 영역을 벗어난다. 과학이 성경의 영역에 들어오게된 근복적인 이유는 무엇일까? 스스로 그리스도인이라 하는 과학자들은 어떻게 과학과 성경을 이해해야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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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y Nathan Anderson on Unsplash

 

창조 vs 진화(22): 과학은 형이상학을 설명하기에는 부족하다 창조 vs 진화(24): 창조, 믿거나 거절하거나

Grace Community Church 목사, 교사
The Master’s Seminary 총장
Grace to You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