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 vs 진화(20): 믿음, 그리고 거짓으로 과학이라 불리는 것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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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s entry is part 20 of 52 in the series 창조 vs. 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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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에 출판된 “우주와 인간의 시작(The Battle for the Beginning)”의 서문에서 나는 자연주의가 현대 세속 사회를 지배하는 종교가 되었다고 말한 바 있다. “종교라는 말은 자연주의를 묘사하기에 딱 알맞은 단어이다. 모든 철학은 믿음을 기반으로 하는 전제 위에 만들어졌다. 철학의 기본 가정, 즉 모든 초자연적인 것들에 대한 부정은 커다란 맹신을 요구한다. 그리고 철학을 뒷받침하는 거의 모든 이론 또한 믿음으로 받아들여져야만 한다. (The Battle for the Beginning, Nashville: W Publishing Group, 2001, p. 11). 바로 이것이 내가 이야기하고 있었던 것의 고전적인 예이다.

전형적인 진화론자는 영원과도 같은 매우 오랜 시간 전에 생명체가 무생물로부터 자연적으로 생겨난다는 생각으로부터 출발한다. 이 생각은 생명의 기원과 자연발생설이 가능하지 않다는 확실한 사실을 고의적으로 중지시키는 것일 뿐만 아니라, 지구 나이의 추정 연대를 바꿈으로써 자연주의가 가진 모든 문제점과 모순들을 충분히 해결할 수 있다고 의도적으로 속는 것이다.

한편 대중 매체에서는 진화론과 계속해서 확대되는 선사시대의 개념들이 최근에 생겨난 교파들의 경건한 열심과 함께 장려되고 있다. 인터넷상의 포럼, 디스커버리 채널의 프로그램, 대중 매체에서 발간되는 인터뷰와 기고문, 교과서, 그리고 평범한 독자들을 겨냥하는 책들. 이것들로부터 당신이 발견하는 것은 주로 노골적이고 선동적인 주장과 협박과 조롱이다. 그 주제들이 성경적인 유신론과 창세기에 기록된 창조론인 경우에는 특히 더 심하다. 그러나 모든 생명체가 자연스럽게 발생한 세포 하나로부터 진화한다는 주장을 의심하거나, 우주는 지적 창조의 증거로 가득 차 있음을 지적하거나, 혹은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있는  진화의 기원에 대한 증거를 요구하면 열성적인 진화론자들은 단순히 당신을 이단자나 최악의 편협한 자로 치부할 것이다. 그들이 은연중에 인정하는 것은 그들에게 있어서 진화는 내재한 믿음으로 받아들여야만 하는 신조이지, 과학적으로 증명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다. 결국, 진정한 과학은 언제나 연구실에서 조사, 관찰, 재생, 실험, 증명될 수 있다. 그러므로 진화론과 소위 “태고(deep time)”에 대한 신조들이 의심 없이 받아들여져야만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단지 그것들이 과학적인 이론이 아주 틀린 것이라는 것을 무언 중에 인정하는 것이다.

전형적인 진화론 저술가들이 쓴 글들을 살펴보자.

  • 오늘날의 어떤 생물학자도 “진화에 대한 새로운 증거”라는 제목의 논문을 제출하려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한 세기 동안 전혀 중요한 주제가 아니었다. (Douglas J. Futuyma, Evolutionary Biology, 2nd ed., Boston: Sinauer Associates, 1986, p. 15)
  • 진화 과정을 공부하는 학생들, 특히 창조론자들에 의해서 잘못 인용된 것을 공부하며 이용당해왔던 학생들은 이제 진화가 이론이 아니라 사실임을 명확하게 주장해야 한다. 현재 존재하는 모든 형태의 생명체는 서로 다른 선조형(先祖形)으로부터 생겨났다. 새들은 새가 아닌 것으로부터, 인간은 인간이 아닌 것으로부터 생겨났다. 자연 세계를 이해한다고 말하는 어떤 사람도 이 사실들을 부인할 수는 없다. (R. C. Lewontin, “Evolution/creation debate: A time for truth,” Bioscience (1981), 31:559)
  • 진짜 과학자들과 지적창조를 주장하는 가짜 과학자들를 구분하는 방법은 바로 이것이다. 모든 진짜 과학자들이 동의하는 것은 진화 그 자체이다. 우리가 고릴라, 캥거루, 불가사리, 그리고 박테리아와 사촌 지간이라는 것은 사실이다. 태양에서 열기가 뿜어져 나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듯이, 진화도 그러하다. 그것은 이론이 아니다. 진화를 이론이라고 주장함으로써 철학에 대하여 순진한 사람들을 혼란에 빠뜨리는 것을 제발 멈추자. (Richard Dawkins, “The Illusion of Design,” Natural History (November 2005), 53)

그러나 위의 글들이 보여주듯이, 진화는 하나의 신조(dogma)이지, 입증이 가능한 “사실”이 아니다. 나는 “우주와 인간의 시작”에서 주장했던 다음의 내용을 고수한다.  “진화론에서 믿음이란 순전한 믿음의 문제이다. 그것은 어떤 유신론적 세계관만큼이나 종교적이다. (The Battle for the Beginning, p. 12). 더 나아가 나는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과학은 우주의 시작의 시점이나 방법, 또는 지구에 생명체가 어떻게 생겨났는지에 대하여 어떤 권위를 가지고도 말할 수 없다. 과학은 그 의미상 경험에 의거하여 관찰, 실험, 측정, 그리고 조사될 수 있는 것을 다룬다. 과학적 자료는 그 의미상 통제되고 반복이 가능하며, 항상 일관된 결과를 도출하는 실험에 의해서 입증된 사실들을 다룬다. 우주의 시작은 그 성격 자체가 과학적 탐구의 영역을 넘어서는 것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과학적인 방법으로는 창조를 설명할 수 없다. 하나님을 제외한 그 어느 누구도 창조를 실제로 본 적이 없다. 그것은 어떤 균일하거나 예측 가능하거나 관찰 가능하거나 반복될 수 있거나 고정되거나 자연스러운 법칙에 의해서 발생하지 않았다. 그것은 자연스러운 사건, 혹은 자연스러운 사건들의 연속이 아니었다. 물질의 첫 창조는 즉각적이고 엄청난, 설명할 수 없는 기적이었다. 그것은 “자연스러운” 현상과는 정반대이다.리고 우주의 형성은 단순히 과학으로 연구되거나 설명될 수 없는, 짧고 연속적인 초자연적 사건들이었다. 창조에는 자연적인 과정들이 없다. 창조의 행위는 반복될 수 없고 실험될 수 없으며, 따라서 우주의 기원과 나이를 설명하려고 제기되는 자연주의 이론들은 입증할 수 없다.

다시 말하자면, 창조는 과학의 문제가 아니라 신학의 문제이다. 오직 성경에서만 창조에 대한 신뢰할 만한 정보를 찾을 수 있다. 왜냐하면 하나님 그 자신만이 창조의 목격자이셨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믿거나 거부하거나 둘 중 하나이다. 그러나 어떤 그리스도인들도 우주의 기원에 대하여 우리가 믿는 것을 단지 부차적이고 비본질적이며 부수적인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창조는 하나님의 자기 계시가 시작된 바로 그 지점이기 때문이다.

사실, 창세기 1장 1절의 그 엄청난 간결함 속에 우주와 지구와 지구 상의 모든 것이 어떻게 생겨났는지에 대한 매우 간단하고 명확하며 분명한 설명이 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이것은 애매모호한 진술이 아니다. 다윈의 진화론이 그 활동을 펼치면서 창조를 자연주의 “과학”의 영역으로 가지고 오기 전까지는 – 특히 근대주의 무신론이 교회 안으로 침투하기 전까지는 – 자신이 그리스도인이라고 주장하는 어떤 사람도 창세기 말씀에 대하여 아주 조금도 혼란스러워하지 않았다.

그리스도인들은 독단적인 자연주의로 인해 위협을 느껴서는 안 된다. 어떤 지질학자나 천문학자가 나타나서 우주는 그가 전에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오래되었다고 주장할 때마다, 우리는 창세기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만들어낼 필요가 없다. 우리는 또한 논리적인 과학이 성경의 진리에 위협이 된다고 생각해서도 안 된다. 무엇보다도,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의 명확한 의미를 회피하거나, 창조자에 대한 우리의 믿음을 타협하거나, 혹은 거짓으로 과학이라 불리는 모든 새로운 이론들에 우리의 믿음을 계속해서 양보해서는 안 된다. 이것이 바로 바울이 디모데에게 경고하고 있는 점이다.

애석하게도, 최근 수십 년 사이에 자신을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진화론적인 견해와 창세기에 기록된 창조에 대한 거리낌들이 심각한 단계에 이르렀다. 너무나도 많은 기독교 지도자들과 복음주의 학교와 성경 주석가들이 자연주의 지질학자와 천문학자들의 변화무쌍한 추정치에 맞추기 위해서 지구의 시작이 오래되지 않았다는 성경적인 해석을 기꺼이 무시해왔다. 그들은 최신 이론인 진화론에 맞추기 위해 확실한 해석학적 원칙 – 적어도 창세기의 초반에 나오는 내용들 – 을 버린 것이다.

진화론의 신조가 창조에 대한 성경의 기록을 능가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나는 그들이 성경을 어디서부터 믿느냐고 묻고 싶다. 아담의 타락과 원죄가 기록된 3장부터인가? 초기 인간의 역사가 기록된 4-5장부터인가? 홍수가 기록된 6-8장부터인가? 바벨탑 사건이 등장하는 11장부터인가? 왜냐하면 당신이 창세기 초반부를 이해하기 위해서 자연주의와 그것이 제기하는 가정들을 적용시킨다면, 곧 당신은 성경에 나오는 기적들을 – 그리스도의 부활을 포함하여 – 모두 부인하게 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과학을 통해서 성경의 진리를 설명하고 싶다면 (혹은 그 반대로도 그렇다면) 창세기를 거부하는 것과 성경의 부활에 대한 기록을 의심하는 것이 서로 다를 게 무엇이 있겠는가?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도 망하였으리니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다만 이 세상의 삶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이리라.” (고전 15: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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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y Massimo Mancini on Unsplash

 

창조 vs 진화(19): 믿음, 그리고 거짓으로 과학이라 불리는 것 (1) 창조 vs 진화(21): 진화론은 거짓 종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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