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 vs 진화(15): 우연으로 이루어 지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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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s entry is part 15 of 52 in the series 창조 vs. 진화

원제: 진화론의 삼위일체 

존 앤커버그(John Ankerberg)와 존 웰던(John Weldon)은 물질, 시간, 그리고 우연이 진화론자들의 ‘성삼위일체’를 이룬다고 지목한다. 사실이다. 진화론의 체계 안에서 이 세 요소는 영원하고 전능한 것들이다. 이 세 요소가 우리가 아는 우주도 만들어냈다. 그리고 그것들이 진화론자들의 마음에서 하나님의 자리를 차지해오고 있다. 앤커버그와 웰돈은 생화학에서의 업적으로 1965년에 노벨상을 수상한 자크 모노(Jacques Monod)의 말을 인용한다. 모노는 <우연과 필연>이란 책에 “인간은 이 무정하고 광대한 우주 안에 홀로 있다. 그 곳에서 인간은 우연히 출현하였다. ‘우연’만이 모든 변혁, 생태계의 모든 피조물의 근원에 있다. 순전한 우연, 절대적으로 자유하지만 맹목적인 우연이 이 광대한 진화라는 체계의 뿌리에 있다.”라고 저술하였다.

당연히 이런 주장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은 것과는 너무나 거리가 멀다. 또한 완전히 비이성적이다. 진화론적 생각은 인간의 존엄성과 가치를 제거할 뿐아니라, 인간의 합리성에 대한 기초도 없애 버린다. 만약 모든 것이 우연히 벌어진 일이라면 궁극적으로 어떤 것도 진정한 목적이나 의미를 가질 수 없기 때문이다. 진화론보다 더 비합리적인 철학적 시작점도 없을 것이다.

잠깐만 생각해 봐도, ‘우연’이 어떤 것(모든 것은 차치하고)의 원인(cause)이 되지 못한다는 것은 자명하다. 우연은 힘이 아니다. ‘우연’이라는 단어는 오직 수학적인 확률과 관련해서만 타당한 의미를 가진다. 동전을 던지고 또 던지면, 확률은 100번 중에 50번 정도는 뒷면이 나온다고 말한다. 그래서 우리는 동전을 던질 때 뒷면은 50 대 50의 확률로 (혹은, 우연으로) 나온다고 말하는 것이다.

하지만 ‘우연’이 실제로 동전을 던지는 힘은 아니다. 우연은 그런 수학적 확률을 설계하는 지적인 존재는 아니다. 우연은 아무 것도 결정하지 않는다. 수학적 확률은 단지 실제로 일어나는 것을 측정하는 방법일 뿐이다.

하지만 자연주의와 진화론에서의 ‘우연’은 어떤 다른 원인이나 설계없이 무엇이 일어날지를 결정하는 것이 되었다. 다시 한번 자크 모노의 말을 생각해보자. “우연은 … 모든 변혁, 모든 피조물의 근원에 있다.” 사실상 자연주의자들은 ‘우연’에 무언가를 발생시키고 결정할 수 있는 능력을 부여해온 것이다. 이는 정말 비합리적인 개념이다.

원인 없는 결과는 없다. 어떤 결과든 원인에 의해 결정된다. 동전 던지기조차도 확실한 원인 없이는 일어나지 않는다. 동전의 앞면이 나오든 뒷면이 나오든 무언가가 그것을 결정했다는 것을 우리는 상식적으로 알고 있다. 수많은 요인들(동전을 던질 때의 힘과 동전이 다시 땅에 떨어질 때까지의 거리 등이 포함)이 동전의 회전수와 땅에 튕기는 수를 결정하여 어느 한 면이 나오도록 결정한다. 동전의 면을 결정하는 힘들을 우리가 정확하게 제어할 수는 없지만, 결국 동전의 면을 결정하는 것은 힘이지 우연이 아니다. 우리에게는 무작위적이고 분명하지 않은 것 같아 보이는 것도 분명 무언가가 결정한 것이다. 단지 우연에 의해 어떤 일이 벌어지지 않는다. 왜냐하면 우연은 힘이나 원인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연은 아무 것도 아니다.

행운은 그리스 신전의 한 여신이다. 진화론자들은 비슷한 방법으로 우연을 신전에 안치했다. 그들은 우연의 신화를 취하고 그것을 모든 일의 원인으로 만들었다. 우연은 원인이 되는 힘으로 바뀌었고, 따라서 아무 것도 아닌 것이 모든 것의 원인이 되었다. 이보다 더 비합리적은 것이 무엇이겠는가? 이는 모든 실체를 완전한 혼란으로 만들어서 결국 모든 것을 비합리적이고 모순된 것으로 만든다.

이 모든 개념은 이성적이고 철학적인 관점에서 볼 때 어디서 시작해야 할지도 모를 문제로 가득차있다. 한번 기원의 문제를 생각해보자. 물질은 어디에서 왔는가? 자연주의자는 모든 물질은 영원하다고 하든지 모든 것은 무에서 우연에 의해 시작되었다고 말해야 할 것이다. 후자는 분명히 비합리적이다.

자연주의자가 물질은 영원하다고 믿기를 택했다고 가정해보자. 당연한 질문 하나가 떠오른다. 무엇이 진화의 과정을 시작하는 첫 사건을 일으켰는가? 유일한 대답은 우연이 그런 일이 일어나게 했다는 것이다. 말 그대로 무에서 유가 나온 것이다. 누구도 혹은 무엇도 그런 일이 발생하게 하지 않았다. 이 역시 비합리적인 말이다.

이 딜레마를 피하기 위해 어떤 자연주의자들은 무작위적인 사건의 ‘영원한 사슬’이 이 물질계를 움직인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결국 영원을 말하지만 그것은 끊임없는 우연적 사건의 연속으로 결정되어 계속해서 변화하는 물질계다. 설계자는 없지만 위대한 설계가 나오고 어떤 궁극적인 원인도 없지만 모든 일이 일어난다. 결국 여전히 비합리적인 말이다. 이는 우주의 모든 것으로부터 목적과 운명, 의미를 제거해 버린다. 따라서 어떤 것도 합리적이라고 말할 근거를 남겨두지 않는다.

다른 말로 하면, 허무주의만이 자연주의에 부응하는 유일한 철학이다. 허무주의는 모든 것은 전혀 의미도 없고 논리나 이유도 없다고 주장하는 철학이다. 우주 자체가 논리적이지 않고 비합리적이다. 이성은 우연에게 자리를 빼앗겼다.

우연에 대한 이런 관점은 이성과는 정반대에 있다. 상식적인 논리는 모든 시계에는 시계를 만든 사람이 있다고 말한다. 모든 건물에는 건축자가 있고 모든 구조물에는 설계자가 있다. 무언가를 조정할 때는 계획이라는 것이 있고 계획에는 설계자가 있다. 그리고 모든 설계에는 목적이 있다. 우리가 보는 우주는 어떤 시계보다도 무한히 복잡하며 어떤 인간이 만든 구조물보다 무한히 위대하다. 그렇다면 어떤 무한한 능력과 무한한 지혜를 가진 존재가 그것을 만들었다고 생각하는 것이 자연스럽지 않은가!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로마서 1:20)

하지만 자연주의자들은 우주를 보면서 그 이해할 수 없는 놀라움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우주를 만들지 않았다고 결론내린다. 우연히 생겨났다고 한다. 어쩌다가 그렇게 되었다고 한다. 전혀 논리적이지 않다. 불합리하다.

논리를 포기하면 비상식만이 남는다. 여러 면에서 자연주의자들이 우연을 신성시하는 것은 모든 거짓 종교의 미신보다도 더 치명적이다. 왜냐하면 우연은 모든 것의 모든 의미를 지워버리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지만, 이는 온전한 비합리성의 심연으로 뛰어드는 치명적인 믿음을 요구하는 순전한 종교다. 이는 어리석은 자들의 오래된 종교다(시 14:10). 오늘날에는 단지 ‘과학’이라는 옷을 입고 있을 뿐이다.

무엇이 사람들로 하여금 이런 체계를 받아들이게 하는가? 왜 어떤 사람은 모든 합리적인 것을 포기하는 이런 세계관을 선택하는가? ‘죄에 대한 사랑’이 문제의 본질이다. 인간은 그들의 죄에 있어 편하길 원하고, 이를 위해서는 하나님을 제거하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다. 하나님을 제거하면 죄의 결과에 대한 모든 두려움도 지워버릴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순전한 비합리성이 성경의 하나님에 대한 유일한 가시적 대안이라 할지라도 사람들은 죄책감 없는 삶과 자신들의 죄에 대한 수치에서 벗나기 위해 비합리성을 택한 것이다. 이렇게 단순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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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 vs 진화(14): 진화론의 주장은 터무니 없는 것이다. 창조 vs 진화(16):(無)에서는 아무 것도 생기지 않는다

Grace Community Church 목사, 교사
The Master’s Seminary 총장
Grace to You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