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 vs 진화(13): 종교로서의 자연주의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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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론 덕분에 자연주의 철학이 이제 현대 사회를 지배하고 있다. 한 세기 반 전에 찰스 다윈은 그의 책 ‘종의 기원’을 통해 이 세속적인 종교를 위한 신조를 유행시켰다. 다윈이 제시했던 진화의 방법에 대한 대부분 이론들은 오래전에 버려졌지만, 진화 교리 자체만큼은 여전히 현대인의 사고방식에서 본질적인 신조이다. 자연주의는 이제 기독교를 제치고 서구 사회의 주된 종교가 되었다. 그리고 이 자연주의의 주요 신조가 바로 진화론이다

자연주의 철학은 우주를 작동시키는 모든 법칙과 힘이 도덕적, 영적, 초자연적이지 않고 자연 발생적이라는 견해이다. 자연주의는 근본적으로 인격적인 하나님의 개념을 거부하는 무신론적인 견해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은 자연주의가 종교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자연주의가 과학적 객관성의 본질이라는 주장은 흔한 오해이다. 자연주의자들은 그들 스스로 자연주의 철학을 믿음에 근거한 모든 세계관에 대항하는 철학으로 묘사한다. 그들은 자신들의 이런 비종교적인(?) 특성 때문에 자연주의가 과학적으로 그리고 지적으로 더 우월한 체한다.

그렇지 않다. 종교는 자연주의를 묘사하기에 딱 적합한 단어이다. 그것의 전체 철학은 신앙을 바탕으로 하는 전제 위에 세워진 것이다. 자연주의의 기본적인 가정, 즉 모든 초자연적인 것의 배제는 커다란 맹신이 있어야만 가능하다. 그리고 그것을 뒷받침하는 거의 대부분 이론들은 신앙이 있어야만 받아 들여질 수 있는 것들이다. 예를 들어, 진화론의 기본 신조를 살펴보자. 자연 발생적인 진화 과정이 모든 생명체의 기원을 설명한다는 생각은 지금까지 그리고 앞으로도 절대로 사실로 인정될 수 없다. 진정한 의미에서 그것은 “과학적”이지도 않다. 과학은 관찰될 수 있고 실험을 통해 재현될 수 있는 것들을 다룬다. 생명의 기원은 관찰될 수도 없을뿐더러 실험실에서 재현될 수도 없다. 그렇다면 결론적으로 진정한 의미에서 과학은 우리가 어디서 그리고 어떻게 여기에 오게 되었는지에 대한 어떠한 지식도 우리에게 주지 못하게 된다. 진화론에 대한 신념은 순전한 믿음의 문제이다. 그리고 모든 자연주의 이론에 대한 신조적인 믿음은 다른 종교적 신앙들과 비교했을 때 “과학적”이지 않다.

현대 자연주의는 종종 강력한 종교적 색채를 띤 선교 열정을 동반하며 널리 전파되곤 한다. 많은 기독교인이 자동차에 붙이고 다녔던 물고기 형상이 이제는 자연주의자들에게는 “다윈”이라는 글자가 옆에 새겨져 있는 발이 달린 물고기가 되었다. 인터넷은 자연주의자들이 가장 크게 활동하는 선교지가 되었다. 자연주의 전도자들은 인터넷에서 유신론적인 논리를 붙잡고 있는 무지한 사람들을 구원하고자 적극적으로 애쓰고 있다. 나는 사람들을 자연주의로 끌어들이고자 제작된 자료 몇 가지를 읽어 보았다. 그 자료들의 취지를 보고 판단하건대, 자연주의자들은 보통 독실한 열정을 가지고 그들의 믿음에 대하여 헌신적인 모습을 보였고, 그것은 어떤 급진적인 종교적 열심자의 광신을 필적하거나 뛰어넘는 것이었다. 자연주의는 확실히 모든 유신론적 세계관처럼 종교적이다.

이 점은 자신이 어떠한 종교적 믿음에도 절대로 제한받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자연주의자들의 신념을 살펴볼 때 더욱 증명된다. 지난 20년 동안 가장 잘 알려진 과학자인 칼 세이건의 예를 들어보자. 저명한 천문학자이자 언론인인 세이건은 성경적 신론에 대하여 공개적인 적대감을 표현했다. 그러나 그는 자연주의 종교의 가장 유력한 텔레비전 전도사가 되었다. 그는 완전히 자연주의적인 가정에 근거한 세계관을 펼쳤다. 우주의 모든 것에는 자연적인 원인과 자연적인 설명이 있다는 확고한 확신이 그의 모든 주장의 기초였다. 그 신념-순전히 과학적인 관찰이 아닌 믿음의 문제가 그의 우주에 대한 모든 이론을 뒷받침하고 형성했다.

우주의 광대함과 복잡성을 연구한 후, 세이건은 우주 그 자체보다 더 거대한 것은 없다고 결론지었다. 그래서 그는 무한, 영원성, 그리고 전능과 같은 신적 속성들을 빌려 사용하였고 그것들이 우주를 구성하는 요소라고 주장하였다.

세이건의 종교는 사실 자연주의적 범신론이고, 그것은 그의 표어를 통해 완벽히 요약된다. 그는 우주 그 자체가 전에도 있었고 이제고 있고 장차 있을 것이라고 주장하며 우주와 그 안에 있는 모든 것들을 신격화했다(요한계시록 4:8 참조). 우주를 연구함으로써 창조자의 무한한 능력과 장엄함의 증거를 본 그는 그 전능함과 영광을 피조물 자체에 돌렸다. 그는 바울이 로마서 1:20-22에서 묘사하고 있는 바로 그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어리석게 되어”

바울이 묘사하는 우상숭배자들과 똑같이 세이건은 창조자가 있어야 할 자리에 피조물을 갖다 놓았다. 칼 세이건은 우주와 그것의 광대함을 보고 그것보다 더 큰 것은 없다고 결론지었다. 그의 이런 종교적인 가정 때문에 그는 우주가 지적인 창조의 결과물임을 부인했다. 사실 헌신적인 자연주의자로써 그는 우주가 창조되었다는 것 자체를 부인해야만 했다. 그러므로 그는 우주를 영원하고 무한한 것으로 보았고 그로 인해 그의 생각 속에서 우주는자연스럽게 하나님의 자리를 차지했다.

세이건의 세계관을 형성시킨 철학의 종교적 특성은 그가 저작한 책들과 말한 것들에서 명백하게 보여진다. 그의 소설 컨택트(1997년에 영화로 제작됨)는 종교적인 비유와 이미지들로 가득 차 있다. 이 소설은 전 세계가 메시아에 대한 기대와 종말에 대한 두려움으로 가득 찼던 1999년 12월에 발생한 외계 생물체의 발견에 대한 이야기이다. 세이건의 상상 속에서 우주 어딘가에 존재하는 지적인 생명체의 발견은 세이건 자신의 신념체계-우주가 하나님이고 과학자들이 새로운 대제사장들이다-를 완벽하게 반영하는 세계관에 과학과 종교를 융합시키기 위한 근거를 제공하는 “계시”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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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 vs 진화(12): 타협, 미묘한 듯 중요한 문제 창조 vs 진화(14): 진화론의 주장은 터무니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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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aster’s Seminary 총장
The master’s College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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