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 vs 진화(11): 문제의 심각성, 기원과 삶의 의미

Sad young man at the railway station
This entry is part 11 of 52 in the series 창조 vs. 진화

진화론을 믿을 때 생기는 또 다른 문제가 있습니다. 바로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삶에서 어떤 의미도 찾을 수 없습니다. 아마 바로 그 순간만이 의미가 있을 것입니다. 따라서 진화론자는 실존주의자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어떤 미래도 없고 있을 수도 없습니다. 죽음으로 모든 것이 끝나버립니다. 그러므로 당신은 어떤 목적도 없고 가치도 없습니다.

혹시 스스로 이런 질문을 해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과연 저 아이는 어떻게 생각할까? 이제 열 살 혹은 열 두서너 살이 된 아이가 학교 과학 시간에 자신은 진화의 과정 중 일부일 뿐이고 죽고 묻히면 모든 것이 끝난다는 말을 들었을 때, 그 아이는 뭐라고 할까?’ 그 아이는 자신의 사고 체계에 영원에 대한 생각을 발전시켜온 아이입니다.

예일 대학의 초기 학장 중 한 사람은 어떻게 인간 마음에 있는 영원에 대한 갈망을 설명할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그는 강풍에 연을 날리는 어린아이를 비유로 들어 설명했습니다. 연 날리는 아이는 연을 볼 수는 없지만 그 손으로 연이 당기는 힘을 느낄 수 있습니다. 저 역시 인간은 영원의’ 견인력’을 느낄 수 있다고 믿습니다. 우리가 영원에 대해 생각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모든 물질, 동물을 넘어섰다는 증거입니다. 우리는 영원의 견인력을 느낍니다. 인간의 마음속에는 죽음 이후의 삶에 대한 희망이 있습니다. 지구 상의 모든 윤리 체계는 어떤 식이든 죽음 이후의 삶에 대해 말합니다. 예외가 있다면 순전한 물질주의자들일 것입니다. 그들에 따르면 우리는 죽어서 단지 묘지를 비옥하게 만들 뿐입니다. 만약 이것이 전부라면 어떻게 십 대의 아이들이나 대학생들에게 “너희 삶은 의미가 있다”고 설득할 수 있겠습니까? 어떤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을까요?

우리는 삶을 그렇게 보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가 하는 모든 것은 영원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영원한 상급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삶에 영향을 줄 때마다 그것은 영원한 의미가 있습니다. 누군가를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으로 인도할 때, 당신은 영원한 친구를 얻은 것입니다. 어떤 사역이나 봉사를 통해 하나님의 나라에 투자할때마다 당신은 하늘에 보물을 쌓는 것입니다. 그 보물은 절대 썩지도 않고 도둑이 훔치지도 못하고 녹슬지도 않습니다. 우리는 영원의 관점으로 살아갑니다.

언젠가 어떤 사람이 저에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전 항상 뭔가 부족합니다.” 예, 당신은 부족합니다. 제가 이상한지 모르겠지만 전 평생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습니다. 그 말은 무슨 의미일까요? 저 역시도 부족합니다. 전 로마서 7장에서 벗어나고 싶습니다! 전 제 마음의 법과 싸우는 이 ‘한 다른 법’, 저를 계속해서 죄로 이끄는 이 법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저는 저 자신을 인정하기보다는 자신에게 화가 날 때가 더 많습니다. 여러분도 그렇지 않으신가요? 저는 부족합니다. 그런 것이 당연합니다. 사실 저는 그 사람에게 이렇게 말했어야 했습니다. “당신이 부족해서 참 다행이네요.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오히려 걱정되었을 겁니다.” 어느 누가 완전하겠습니까? 저 스스로 죄인일 뿐 아니라 저는 죄인과 결혼도 했습니다! 제 아내도 부족합니다. 저희 둘 다 그렇습니다. 제 자녀들도 그렇고 손주들도 그렇습니다. 우리 중 누구도 완전하지 않습니다. 이생에서 누구도 풍족할 수 없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우리는 이 세상의 것을 바라고 세상에 살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 삶에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을 받고, 즐거워하고, 받아들입니다. 그것이 기쁨이든 고통이든, 행복이든 슬픔이든, 승리든 패배든, 이득이든 손해든, 우리는 그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계획 하심 안에 둡니다. 어려움을 당하지만 기쁨으로 여깁니다. 이 땅에서 완전한 삶을 살 수는 없습니다. 그건 문제가 아닙니다.

혹시 오해하실까 봐 말씀드리지만, 주님은 저에게 놀라운 선물을 많이 주셨습니다. 가장 소중한 아내를 주셨고, 사랑스러운 자녀들을 주셨습니다. 귀여운 손자 손녀들도 그렇습니다. 이들은 제 삶에 엄청난 풍요로움을 더해 주었고 지속적인 기쁨을 줍니다. 하지만 다른 모두와 마찬가지로 힘들고 슬픈 일도 있습니다. 하지만 괜찮습니다. 저는 오직 한 가지에만 관심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그들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를알기 때문에 언젠가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준비하신 그 풍족함을 함께 즐기게 되리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제가 삶을 사는 방법입니다.

하지만, 여러분이 만약 진화론자라면, 여러분이 만약 신이 없다고 믿으신다면, 그것은 여러분에게는 어떤 미래도 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합니다. 여러분은 어떤 의미도, 어떤 목적도 가질 수 없습니다. 여러분 삶에는 어떤 가치도 없습니다. 정말 슬픈 일입니다.

우리는 창조자이시며 지금도 만물을 붙들고 계신 분, 그리고 구원자이신 하나님을 믿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을 주셨고, 우리는 그 말씀에 따라 어떤 기준으로 살아가야 하는지 어떻게 우리 삶의 의미와 목적을 찾을 수 있는지 알고 있습니다. 미래의 관점에서 어떻게 현재를 살아가야 하는지 압니다. 영원한 천국의 영광 속에서 영원히 살기 위해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도 압니다. 가족의 책임이 무엇인지 압니다. 자녀 양육에 무엇이 필요한지도 압니다. 인간 사이의 관계가 무엇인지도 이해합니다. 다른 사람이 나보다 중요하다는 것도 압니다. 우리 주위의 모든 사람이 죽어가고 있고 영원한 지옥을 향해 가고 있으며 그곳에서 하나님 없이 영원한 형벌을 받게 되리라는 것도 압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들에게 그리스도의 구원 복음을 전할 책임이 있다는 것도 알고 그 책임에 충성하려 합니다. 우리는 모두 창조의 능력을 통해 (유전적으로 혹은 경험적으로 얻게 되는) 독특한 재주와 재능을 부여받았습니다. 이런 독특한 재능을 통해 하나님의 세상에 놀랍게 이바지하며 살아갑니다.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에, 우리가 다른 이의 삶에 창조적으로 영적으로 생산적으로 다양하게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이 놀랍지 않습니까? 우리에게는 도덕적 기준이 있습니다. 우리는 내가 아닌 남을 위해 사는 삶이 무엇인지 이해합니다.

이것이 로마서 1장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입니다. 당신이 하나님을 부인하고 창조주보다 피조물을 경배한다면, 당신은 어둠 속에서 지혜로운 자라고 주장하겠지만 실상은 어리석은 자가 되는 것입니다. 진화론이 아무런 영향이 없다고 하지 마십시오, 엄청난 영향을 끼칩니다.

토론을 위한 질문 :

‘무의미”는 서구 사회의 기치가 되었다. 서구 문화는 전도서에 나오는 솔로몬의 좌절을 보여주는 거대한 예시가 된 듯하다. “나는 내 마음에 이르기를 자, 내가 시험 삼아 너를 즐겁게 하리니 너는 낙을 누리라 하였으나 보라 이것도 헛되도다” (전 2:1)

진화론과 자연주의는 허무주의로 우리를 이끌고, 허무주의는 절대적인 무가치함과 전적인 절망으로 이끈다. 이 과정은 서구 문화에서 너무나 분명하게 드러난다. 이는 아무도 관심 없어 하는 조용하지만, 치명적인 전염병이다. 이는 로마서 1:18-32절에서 언급하는 심판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지혜는 자기의 모든 자녀로 인하여 옳다 함을 얻느니라”(눅 7:35)라는 말씀을 고려해볼 때, 완전한 자연주의의” 지혜”, 즉 과학에 대한 진화론적인 접근에 대해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 왜 크리스천 과학자들이 자연주의 진화론의 전제가 만든 경계 안에서 과학을 연구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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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ace Community Church 목사, 교사
The Master’s Seminary 총장
Grace to You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