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 vs 진화( 4): 진화론은 창조주에 대한 반역이다.

This entry is part 4 of 52 in the series 창조 vs. 진화

성경에서 말하는 창조에 대한 무신론자의 대안으로 소개된 것이 진화론이다. 진화론에 따르면 사람이 하나님을 만들었지 그 반대는 아니다. 진화론자들의 최종적인 목표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제거하여 그에 따른 도덕적 책임을 회피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인간의 근원에 대해서 생각할 때 우리는 자연스럽게 다음같은 일련의 질문들을 하게 된다. “이 우주는 누가 다스리는가? 이세상의 주권자 혹은 입법자가 있는가? 우주적인 심판자가 있는가? 시공을 초월하는 어떤 도덕적인 기준이 있는가? 우리는 각자의 삶에 대해 누군가에게 해명해야하는가? 우리의 삶에 대한 마지막 평가같은 것이 있는가? 최후의 심판같은 것이 있는가?”

이런 질문들이 바로 진화론이 피하고자하는 것들이다.

진화론은 성경의 하나님에게서 빠져나가려는 시도다. 실제로 어떻게 모든 것이 시작되었는지를 설명하는데 있어 창조자가 불필요하다고 진화론자들이 믿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은 성경의 하나님을 심판자로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Marvin L. Lebenow는 이렇게 말한다.

“창조냐 진화냐하는 논쟁에 있어 진짜 이슈는 하나님의 존재 여부가 아니다. 진짜 이슈는 하나님의 속성이다. 진화론를 무신론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진화론을 오해한 것이다. 진화론은 유신론에 대한 광범위한 공격으로 시작된 것이 아니다. 성경의 하나님, 창조의 가르침을 통해 드러난 하나님에 대한 특정한 공격이다. 당연한 얘기지만, 무신론자라면 진화론자가 되는 것에 대해 부담을 느끼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진화론은 무신론만큼이나 유신론과도 잘 어울릴 수 있다. 진화론자는 자신이 원하는 어떤 신이든지 선택할 수 있다. 그 신이 성경의 하나님만 아니면 된다. 진화론이 허용하는 신은 개인적이고 주관적이며 피상적인 신이다. 그 신은 아무도 귀찮게 하지 않고 어떤 절대적인 도덕적 요구를 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성경의 하나님은 창조주이며 만물을 붙드시는 분이고 구원자이며 심판자이다. 모든 존재는 하나님께 어떤 의무가 있다. 하나님의 기준은 죄악된 인간의 기준과는 다르다.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다는 것은 두려운 것이지만, 하나님이 인간의 형상으로 창조되었다는 말은 받아들이기 편한 것이다. (Bones of Contention: A Creationist Assessment of Human Fossils, 188-89).

정리하자면, 진화론은 창세기의 하나님을 제거하여 입법자를 몰아내고 절대 침범할 수 없는 그의 법을 제거하기 위해 고안된 것이다. 진화론은 간단히 말해 타락한 우리 인류가 본래 알고 있던 지식을 억누르고 하나님이 존재하며 우리가 그분께 의무가 있다는 성경의 증언을 감추기 위해 고안해낸 가장 최신의 수단이라고 할 수 있다. 진화론을 받아들임으로서 현대 사회는 도덕성, 책임감, 죄책감에서 벗어나려 하고 있다. 사람들은 진화론이 심판자를 제거하고 자신들에게 어떤 죄책감이나 상응하는 결과없이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는 자유를 준다고 생각해서 기꺼이 진화론을 받아들이고 있다.

진화의 이론들(좋은 쪽으로의 돌연변이, 수백만년의 시간과 같은)은 정직한 과학적 탐구의 결과가 아니라 특정 목적이 있는 과학이라는 사실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진화론은 창조주에 대한 반역으로 시작되어 계속되고 있고, 입법자를 무시하며 심판자를 폐위한다. 그 과학이라는 것도 그저 비합리의 바다위에 떠있으며, 오직 떳떳하지 못한 수준의 모순과 억측에 근거할 뿐이다.

오늘날의 많은 영향력있는 크리스천들이 성경과 진화론을 조화시키려 하면서 이 사실을 무시한다. 왜 이 무법한 반역자들에게 굴복해야 하는가? 이 문제에 대해 왜 원수와 이야기를 해야하는가? 왜 이 침임자의 목소리를 들어야하는가?

그리스도의 이름을 고백하면서 그분의 법은 즐거워하지 않는 자들이 많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는 것에 만족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은 악인의 꾀(진화론)에 겁을 먹고, 죄인의 길(학문적 신뢰성이나 타당성에 대한 추구)에 매료되어 오만한 자의 자리(존경 받는 혹은 영향력있는 자리)를 원한다. 세상의 사람들이 하는 것처럼 해볼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심판자는 절대 폐위되지 않는다. 언젠가 그  분 앞에 설 날이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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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 vs 진화( 3): 전쟁의 양상 창조 vs 진화 (5): 허무주의의 논리적 근거

Grace Community Church 목사, 교사
The Master’s Seminary 총장
Grace to You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