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듣는 오래된 메시지

 

새해가 시작되면서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새로운 각오도 하고 새로운 계획도 세웁니다. 이러한 각오나 계획들은 거의 자신에게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일들에 더욱 초점을 맞추어 내년, 이 무렵에 그 일에 대한 우리의 입장이 더욱 향상된 위치에 서는 일일 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여러분께 새해를 맞이하여 실제로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에 다시 초점을 맞추어 말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나는 이 편지를 읽는 여러분이 어떤 사람이든지 상관하지 않겠습니다. 이 편지를 읽는 분이 이제 갓 기독교인이 된 분일 수도 있고, 때에 따라 기분 나는 대로 비정기적으로 교회에 다니는 사람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혹은 예수님을 전혀 믿지 않는 분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당신이 나의 친한 친구일 수도 있고, 혹은 말만 몇 번 했거나 얼굴만 겨우 아는 그런 사람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서로 전혀 모르는 사람일지도… 그러나 나는 여러분에게 이보다 더 유익한 메시지가 있을 수 없다는 확신을 하고 공개적으로 이 편지를 보냅니다. 이 편지는 새해에 맞으며 드리는 오래된 메시지입니다. 왜 이 오래된 메시지를 다시 드리는 이유는 이 메시지야말로 시간과 문화를 초월하여 언제나 전해야 하는 유일한 메시지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입니다. 여러분, 이 복음의 메시지를 주의 깊게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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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은 하나님께서 온 우주를 창조하셨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만물을 창조하신 그 하나님께서 성경을 통해서 사람들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말하기를 하나님의 근본적인 성품은 거룩하시다고 말합니다. 요한일서 1:5은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둠이 조금도 없으시다는 것이니라.”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는 전적으로 순결하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성품은 도덕적으로 완전하십니다. 그는 모든 좋은 것을 다 가지고 계십니다. 말씀에서 말하는 것처럼 그에게는 “어둠”이 조금도 없습니다. 그는 완전하게 거룩하지 않은 것이나, 의롭지 않은 것이나, 순결치 않은 것과는 전혀 관계가 없으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의 의로우신 성품은 그가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신 계명에서 잘 알 수 있습니다. 당신은 십계명에 대해서 들어 보셨을 것입니다. 십계명은 하나님의 완전하신 성품을 잘 요약한 것입니다. 이 계명들은 하나님과 온전한 관계를 맺은 사람들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그 방향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죄인입니다.

문제는 우리는 모두 죄인이라는데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법을 어겼습니다. 모든 사람은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사 53:6). 우리는 하나님 없이 자신이 스스로 정한 기준을 가지고 우리 마음대로 우리 삶을 살아왔습니다. 우리가 약물 중독자건 살인자이건 고등 교육을 받은 사람이건 행실이 온전한 사람이건 올바른 시민이든 간에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일을 하고 살았습니다. 그러한 우리는 하나님이 어떻게 생각하실까? 혹은 하나님이 어떻게 하기를 원하시는가 하는 따위는 우리들의 관심 밖의 일이었습니다. 성경은 말하기를 이러한 것을 죄라고 합니다. 이러한 우리의 행동은 하나님의 기준에 벗어 난 것이고 하나님의 의에 이르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 스스로 자기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어느 누가 스스로 자기 자신이 완벽한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심지어 자기 자신이 정해 놓은 기준으로도 “나는 완벽하다.”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아마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전도서 7:20은 “선을 행하고 전혀 죄를 범하지 아니하는 의인은 세상에 없기 때문이로다”하고 말합니다. 그리고 만일 하나님이 빛이라면 그리고 그 안에 어둠이 전혀 없다면 그와 교제하기 위해서는 우리는 그와 마찬가지로 완전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렇지 못합니다. 로마서 3:23은 말합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우리는 “어둠”에 속한 우리의 죄로 말미암아 더럽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문제입니다, 왜냐하면 어둠은 빛과 함께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죄로 말미암아 어둠이고 거룩하신 하나님은 빛이며 그 안에는 어둠이 조금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하나님과 상관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관계를 잘 즐기도록 만들어졌지만 우리는 전혀 그렇게 할 수 없게 되고 말았습니다.

죄를 범하면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단지 하나님과 우리가 교제하지 못하는 것만이 문제가 아닙니다. 죄는 그 대가를 치르야 한다는 데 문제가 있습니다. 성경은 죄의 대가는 사망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로마서 6:23은 “죄의 삯은 사망이요.” 바울이 말하는 것의 사망이 단지 육체적인 사망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죄의 대가를 치르는 일이 단지 육신이 죽어서 이 세상에서 사라질 뿐이라는 말이 아닙니다. 여기서 말하는 사망이란 영적인 사망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 사망은 지옥입니다. 영원히 혹독한 형벌의 고통으로 들어가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님 스스로 그것을 “풀무불”이라 표현하였고 “거기서 울며 이를 갈리라.”라고 하셨습니다.” (마 13:50)

지옥의 개념에 대해서 요즈음 사람들은 별로 느낌이 없는 것 같습니다. 왜냐햐면, 그들은 영원히 고통을 받을만한 그런 죄인이 어디에 있겠냐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자신이 스스로 대단한 죄를 범하지 않았다고 생각하기에 지옥에서 영원히 고통당하는 그러한 죄를 범하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들의 생각은 잘못된 것입니다. 죄의 대가는 죄의 정도에 따라서 정해지지 않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죄의 형벌이 죄의 경중에 따라 지독한 형벌과 가벼운 형벌로 구분된다는 말이 아닙니다. 살인, 더러운 정욕, 거짓말 등 모든 죄가 영원한 지옥의 형벌을 받습니다. 그 이유는 그 어떤 죄도 거룩하신 하나님께 범한 죄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죄는 근본적으로 무한히 거룩하신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무한히 거룩하신 하나님께 지은 죄는 무한한 벌을 받습니다. 이것이 바로 죄의 형벌이 대단히 심각한 문제인 이유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공의로우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나쁜 소식은 우리는 죄인이라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분리되었습니다. 그리고 영원히 지옥의 형벌을 받을 수밖에 없는 존재들입니다. 이것을 피하고자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우리가 그냥 하나님께 죄송합니다. 다시는 그렇게 하지 않겠다고 말할 수도 없습니다. 또 그렇게 해서 해결될 일이 아닙니다. 예를 들어, 어떤 큰 죄를 지은 사람이 재판관에게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용서를 빌었다고 합시다. 그러한 큰 죄인에게 만일 재판관이 “그래요. 당신은 참 착하군요. 용서 할 테니 앞으로 그런 죄를 짓지 마십시오.”라고만 말하고 그냥 집으로 돌려보내 버린다면 당신은 뭐라고 말하겠습니까? 당신은 그를 공의롭지 못한 재판관이라고 말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완전하게 정의로우시며, 완전하게 공의로우신 심판관이십니다. 공의로우신 하나님은 그 죄를 싫어하시고 그 죄의 대가를 치르라고 요구하십니다. 그리고 그 대가는 영적인 사망 즉 영원한 지옥입니다.

하나님이 사람이 되셨습니다.

그러나 기쁜 소식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의 불쌍한 처지를 보셨고 이를 동정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스스로 그와의 관계를 회복할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계셨습니다. 우리가 우리들의 죄의 대가를 절대 완전하게 갚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계셨습니다. 이렇듯 사람은 완전히 희망이 없고, 우리가 지은 죄의 값을 치르지 못하고 영원한 지옥 불의 형벌을 받을 수밖에 없는 운명에 처했을 때, 하나님 아버지는 그의 독생자를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그는 신비하게 처녀로부터 태어나셨습니다. 성경은 성령님이 마리아가 예수님을 잉태하게 하셨습니다. 성령님으로 인하여 잉태하신 예수님은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리고 사람으로 태어나셨습니다. 그는 사람이셨습니다. 이것은 온 우주에 일어난 일 중에 가장 신비한 일입니다. 우리는 이 사건을 완전하게 이해할 수 없지만, 이것은 사실입니다. 예수님은 완전한 하나님이시며 완전한 사람이셨습니다.

그는 이 땅에 33년을 사셨습니다. 그는 다른 모든 아이와 함께 자랐습니다. 그는 육신의 아버지인 요셉과 같이 목수가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예수님과 다른 모든 사람과 완전히 다른 점은 예수님이 단 한 번도 죄를 지은 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법을 어긴 적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는 항상 그가 하는 일의 모든 점에서 그의 온 마음과 성품과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였습니다. 그는 아버지 하나님 아버지 밖에서 만족을 전혀 찾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기의 부모를 거역한 적도 없었습니다. 그는 이기적이지 않았습니다. 그는 한 번도 죄 된 말을 한 적이 없었습니다. 한 마디로 그는 당신과 내가 살아야만 하지만 살지 못한 그러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의 삶은 하나님께 완전히 인정받는 그러한 삶이었습니다. 그의 삶은 우리가 앞에서 말한 대로 순전히 “빛” 그 자체이었고 그 속에는 어둠이라고는 전혀 없었습니다.

예수님이 죄의 값을 치르셨습니다.

그리고 그가 완전히 의로우신 분이셨기 때문에 그는 죄인들을 대신하기에 적합한 분이었습니다. 성경은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죽이려고 계획한 것은 그의 가르침이 당시의 종교적인 내용과는 전혀 벗어난 것이었기 때문이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람을 죽이는 일은 유대인들의 법에 어기는 일이었기에 그들은 이스라엘을 지배하고 있었던 로마인들의 도움을 구하였습니다. 로마 총독 본디오 빌라도는 자신이 유대인들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을 경우에 폭동이 날 것을 두려워하여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자는 그들의 요구를 들어주었습니다.

동시에 성경은 하나님께서 그의 독생자를 이러한 방법으로 죽이기 위해서 보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죽음은 모두 하나님의 계획 중의 일부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사악한 유대인과 로마인들을 그의 선한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사용하셨습니다. 십자가에서 예수님은
죄로 말미암아 고통받으셨습니다. 그 고통은 그 자신의 죄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죄가 없었습니다. 그는 전적으로 완전한 삶을 살았습니다. 십자가에서 그는 “우리 모두의 모든 죄악을 다 담당”하셨습니다. 이 말씀 바로 앞에 절인 이사야서 53:5는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십자가에서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에게 우리들의 죄를 다 무시고 그리고 그 죄의 대가로 그의 모든 진노를 다 그의 죄가 없는 아들에게 퍼 부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죄의 값을 치르기 위해 자진해서 그의 생명을 바치셨습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의 생명을 나의 생명과 같이 취급하셨습니다. 그리고 내가 그 예수님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은 마치 내가 예수님과 같은 삶을 살았던 것 같이 취급하셨습니다. 보십시오. 하나님은 완전히 의로우신 분이시기에 완전히 의로운 자만이 천국에 이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완전히 의로우신 예수님이 나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의 형벌을 받으시므로 나의 죗값을 치르셨습니다. 이제 내가 천국으로 가기 위해 내게 필요한 것은 예수님의 의로움을 내게 적용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돌아가신 후에 하나님은 죽은 지 사흘 만에 기적적으로 예수님을 죽음에서 일으키셨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희생이 하나님을 완전히 충족시켰다는 것을 보여 주시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죽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다시 사셨습니다! 그것은 기적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이 일을 하신 것은 이 메시지가 사실이라는 “믿을 만한 증거”를 주시기 위한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행 17:30-31)

우리가 해야 할 일

자 이제 하나님께서는 약속하셨습니다.

  • 만일 당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안다면 그리고 하나님의 법을 어긴 것을 안다면,
  • 만일 당신 스스로 그의 호의와 그의 용서를 받을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한다면,
  • 만일 당신이 죄 된 삶으로부터 돌아서고 당신의 삶을 그에게로 돌릴 결심이라면,
  • 만일 당신이 예수님의 의로우심만이 거룩하신 하나님께 나아가는 유일한 길이라는 것을 믿는다면,

… 하나님은 마치 예수님이 당신의 삶을 살았던 것으로 간주하고, 당신이 예수님의 삶을 살았던 것 같이 대우할 것입니다. 당신은 죄의 형벌로부터 구원받을 것입니다. 그리고 천국에서 영원히 그와 교제를 즐기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교제는 예수님을 믿는 즉시 이 땅에서 시작됩니다.

다시 말해서, 만일 당신이 죄인임을 시인하고 당신의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형벌을 받기에 마땅한 자라고 믿는다면, 그러나 또한 하나님께서 그의 아들 예수님을 당신이 받아야 할 형벌을 대신 받으셨다는 것을 믿고, 그의 희생만이 당신이 용서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는 것을 믿는다면…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죄를 용서하시고, 당신을 구원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당신은 당신을 창조하신 하나님을 알게 될 것입니다.

시간을 낭비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당신의 영혼을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지금의 당신을 만드셨습니다. 마치 자동차가 휘발유로 움직이도록 만들어진 것같이 당신이 그에게 달려가도록 계획하셨습니다. 그가 당신 삶의 전부입니다. 당신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실망, 절망, 그리고 불확실성 들은 모두 그 안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모든 만족과 기쁨, 그리고 즐거움도 그 안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우리 삶의 모든 좋은 것은 하나님 안에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삶의 모든 나쁜 것들은 예수님을 모른 채 하나님을 떠나서 사는 삶이 옳지 않다는 것을 다시 생각할 기회를 우리에게 주기 위하여 일어나는 것입니다.

나는 또한 당신에게 말하고 싶습니다. 삶을 낭비하시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을 바로 알고 온전하게 예배드리게 하시기 위하여 만드셨습니다. 만일 당신 그러한 목적을 위해서 살지 않는다면 당신은 당신의 삶을 낭비하고 있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은 하나님을 떠나서 행복을 찾기를 원하지만 절대 찾지 못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인생의 의미가 무엇인지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나는 당신이 그러한 사람이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나는 당신이 당신의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영원한 형벌을 받게 되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나는 당신이 영원히 하나님의 천국에서 그를 경배하고 그가 예수님의 희생으로 말미암아 우리들의 죄를 용서하신 그가 얼마나 은혜로우신 분이신가를 찬양하게 되기를 원합니다.


죄 사함을 받으라

예수님을 받아들이시겠습니까?

당신이 하나님 앞에 당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알았고, 이를 바로 잡기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까?

죄로부터 돌아서서 당신의 삶을 예수님께 순종하므로 생명의 길로 나아오시지 않겠습니까?

당신은 하나님 앞에 의로워 지기 위하여 예수님만 믿으시겠습니까?

당신은 우리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나와 함께 경배하시지 않으시겠습니까?

By Mike Riccardi

원문을 보시려면 http://thecripplegate.com/an-open-letter-to-you-in-2014-the-same-old-message-for-a-brand-new-year을 방문하시기 바랍니다.

역자가 일부 내용을 수정하였음을 알려 드립니다.

Mike Riccardi는 미국 Grace Community Church에서 부목사로 사역하고 계십니다.

Mike 목사는 그레이스 교회(담임목사:존 맥아더)의 전도 사역을 담당하고 팰로십 그룹 GraceLife의 담당 목회자입니다. 그는 The Master’s Seminary를 졸업하고 현재 신학 박사 과정을 밟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