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죽어야 예수가 산다 (7): 성령의 음성을 듣기 원하십니까?

This entry is part 7 of 7 in the series 내가 죽어야 예수가 산다

성령의 음성을 듣고자 하는 사람들은 참 많이 있습니다.
모든 신자는 성령의 음성을 듣기를 원합니다.
’내가 죽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성령의 음성 듣기를 갈망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게 말씀해주셨다. 응답하셨다”는 말을 많이 합니다.

성령의 음성을 듣고자 하는 마음은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보혜사이신 성령님은 신자 안에 내주하시어
영원토록 함께 동행하시면서
진리를 말씀하시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성령이 어떻게 말씀해주시는가?” 입니다.
성령은 어떻게 말씀해주실까요?

첫째, 많은 사람이 우리의 감정을 통해 성령님께서 말씀하신다고 합니다.

마음의 평안, 차분함, 고요함, 안정감 등이 찾아올 때
성령이 우리에게 어떤 메시지를 주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음에 평안함이 찾아왔습니다…”
”이상하게 마음에 평안함이 없었습니다…”

이러한 감정의 변화가 바로 성령님이 주시는 응답, 음성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 같은 생각에 크게 동의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님은 이런 감정을 가지셨습니다.

…고민하고 슬퍼하사 이에 말씀하시되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마 26:37-38)

예수님은 아버지 하나님의 뜻대로 되기를 원한다고 기도하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마음은 평안, 차분함, 고요함, 안정감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때문에 성령님께서 하나님의 뜻과 진리를 말씀하실 때
항상 우리에게 평안함과 차분함을 주심으로 말씀하시는 분이라고
결론 내릴 수 없습니다.

평안함과 안정감은 세상사람들이 훈련하는 심신수양 혹은 요가 등으로도
누리고 얻을 수 있는 육체적 정신적 감정 상태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을 주신다 하셨습니다.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해주시는 하나님의 절대진리는
우리의 감정을 고요하고 평안하게 해주는 요가 수준의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감정적으로 온전하지 못하고 세상에서 끊어져 나갈 것 같은 때에도
분명하고 명확하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 뜻에 순종할 때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과 기쁨이 찾아 오는 것입니다.

둘째, 많은 사람들이 성령님께서 직접 계시로 말씀하신다고 말합니다.

사도행전을 통해 우리는 실제로 성령님께서 이러한 말씀을 주시는 것을 봅니다.

사도행전 13장 2절에서는 성령님께서 사도 바울과 바나바를 세우실 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이 가라사대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

또한 예언의 은사를 가진 성도들은 성령의 직접 계시를 받기도 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이 기록한 고린도전서 14:30절을 통해 우리는
성령께서 직접 계시를 주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날 “오순절주의,” “은사주의” 혹은 “신사도주의”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이러한 은사가 오늘날에도 지속된다고 믿기 때문에
성령의 직접 계시를 통한 역사하심은 더 많은 사람들의 지지를 받고 있습니다.

나중에 이 “은사주의”와 “신사도운동”에 대하여 다룰 기회가 주어지면
더 자세히 이 부분에 대해서 이야기 하기를 원합니다.
여기에서는 결론만 정리해서 말씀 드리겠습니다.

저는 성령님의 특별계시의 역사는 종료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이미 고린도전서 13장에 예언이 그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사랑은 언제까지든지 떨어지지 아니하나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폐하리라 (13:10)

10절에서 바울은 “온전한 것이 올 때에” 폐할 것이라 말하였습니다.

이 온전한 것이 곧 하나님의 말씀, 성경의 완성을 뜻하는 것이며
요한계시록에 기록된 말씀,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터이요 (계 22:18-19)

이 경고의 말씀이 신약성경의 마지막 책인 요한계시록에
기록되었다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닐 것입니다.

이미 완성된 하나님의 말씀, 항상 있고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 외에 성령께서 직접 계시로 우리에게 말씀하신다면
우리는 계시록 뒤에 계속해서 그 계시를 받아 적어야 할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들었다고 하는 그리고 받았다고 하는 성령님의 직접 계시는
사실 조금만 생각해보면 거짓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성령님이 말씀해주시는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와 그 말씀에 대한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듣고 받은 계시라는 것들은
어떤 저자에게는 책에 기록할 좋은 내용들이요
어떤 청년에게는 좋은 조건으로 결혼할 대상에 대한 것이요
어떤 사업가에게는 최적의 투자분야를 결정해주는 것이요
친구나 친척, 가족의 건강에 대한 예견
특정 장소 시간 사람에 대한 소소한 이야기들…

결국 나와 내 삶에 대한 이야기, 내 중심적인 것들이 주를 이룹니다.

더 나아가 만일 성령께서 예수님과 그분의 말씀에 대한 것을
우리에게 직접 계시로 말씀해주신다 하여도
만일 그것이 성경에 나와있지 않은 것이라면
과연 누가 그것이 성령에게서 왔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을까요?

그것이 ‘성령으로부터 왔다’라고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나님뿐이십니다.
어떤 사람이 그것을 결정할 권리가 있다면 그는 하나님일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성령이 우리에게 직접 계시를 통해 말씀하신다고 볼 수 없습니다.

셋째, 어떤 사람들은 성령께서 환경을 통해 말씀하신다고 말합니다.

네, 이것도 사실입니다.
사도바울은 성령께서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셨다고 말하였습니다.
또한 비두니아로 가려고 했을 때도 예수의 영이 허락지 않으셨다고 하였습니다.
(행 16:6-7).

사실 모든 환경은 하나님의 허락 아래 주어진 것이므로
하나님께서 환경을 주관하시고 인도하신 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환경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파악하려고 하는 것은 조금 다른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가져야 할 마땅한 태도는
모든 환경 가운데 변하지 않는 하나님의 뜻을 붙들고 순종하는 것이지
변하는 환경에 따라 변하는 성령의 뜻을 분별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뜻은 “항상” “언제나”라는 말이 종종 따라옵니다.

“항상 기뻐하라”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그리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이 명령들은 우리가 처한 환경과 관계없이 주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과 실라는 빌립보 감옥에서도 감사의 찬송을 드린 것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처한 참혹한 환경을 보고 하나님의 뜻을 찾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환경을 초월하여 분명하게 말씀하신 성령님의 음성
”항상 기뻐하고 감사하라”는 그 말씀에 순종하여 찬송을 드린 것입니다.

우리 삶 가운데 아주 소소한 환경의 변화를 통해
성령께서 실시간으로 무언가 말씀하시고자 한다고 추정하려고 애쓸 필요가 없습니다.

그렇게 찾아내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성령은 너무도 분명하게 그리고 아주 확실하게 말씀해주십니다.

만약 성령님께서 감정의 변화로, 직접적인 계시로, 혹은 환경으로
말씀해주신다고 말하기 어렵다면,
어떻게 성령께서 말씀하신다는 것일까요?

먼저 분명하게 성령께서 말씀하신 것,
그리고 그것이 오늘날까지 적용 가능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 성경입니다.

베드로후서 1장 20-21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먼저 알 것은 경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니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니라

마태, 마가, 누가, 요한, 바울, 베드로, 야고보 등 여러 사람이 성경을 기록하였으나
성경의 저자는 바로 성령님이십니다.

성령께서 하나님의 뜻을 그들로 하여금 기록하게 하신 것입니다.
최면에 빠진 인간 저자들이
성령님이 불러 주시는 것을 받아쓰기 하듯이 쓰게 하셨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환경과 배경, 자신들의 특징과 문체를 사용하여 기록하였으나
그 모든 과정 속에 성령님의 완벽한 역사하심과 섭리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이라고”말씀하였습니다.

이 말씀이 참인 것은 요한복음 16장에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요 16:13)

성령께서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진리 그것을 정확하고 분명하게 전달하여
성경을 기록한 인간 저자들이 하나님의 진리를 잘 담아서 기록할 수 있도록
완벽하게 역사하시고 도우셨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호흡’이라고 표현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하나님이 직접 표현하신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직접 감동하심으로 기록하신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권위와 능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이 놀라운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님의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말씀” (벧전 1:23)이라 부릅니다.

이 진리의 말씀은 죽은 영혼을 살리고 살린 영혼을 거룩하게 만듭니다.

또한 이 진리의 말씀은 오늘날 우리를 위해서도 주어졌습니다.

예수님은 겟세마네에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를 위해서도 기도하셨습니다.

내가 비옵는 것은 이 사람들만 위함이 아니요
또 저희 말을 인하여 나를 믿는 사람들도 위함이니 (요 17:20)

바로 그 전에 예수님은 이렇게 기도하셨습니다.

저희를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요 17:17)

진리의 영이신 성령은 오늘날 성경을 통해 말씀하십니다.
이 성경이 곧 아버지 하나님의 말씀이며
성령께서 아버지 하나님께 들은 것이고
성령께서 인간 저자들을 감동하심으로 기록하신 것입니다.

진리로 죽은 자를 거룩하게 하고
진리로 산 자를 거룩하게 하는
아버지 하나님의 말씀, 성경을 통해 진리의 영이신 성령은
우리를 진리로 인도하십니다.

여러분 책장에 꽂혀있는 성경책을 한번 꺼내어 펼쳐 보십시오.

교회 가방에 들어있는 성경을 한번 꺼내어 펼쳐 보십시오.

천 페이지가 넘는 이 무수히 많은 글자와 단어, 문장들이
수 천 년의 시간 동안 수 많은 저자들에 의해 쓰였지만
바로 하나님 아버지께서 직접 그 호흡으로 말씀하신 것이며
성령께서 그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받아
기록하신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사실이 놀랍지 않으십니까?

이 성경은 여러분의 책장에 꽂혀있는 다른 신앙서적과 비교할 수 없습니다.

인생에 대한 책, 자기 개발서와 절대로 비교할 수 없습니다.

다른 모든 책들은 아무리 번뜩이는 아이디어와 놀라운 깨달음을 준다 하여도
유한하고 제한적인 인간의 지식과 지혜의 한계를 벗어날 수 없습니다.

성경을 기록하신 성령님은 하나님이십니다.
꽃과 풀이 마르고 시들어도 영원히 사라지지 아니할 진리를
바로 이 성경에 담아 기록하셨습니다.

또한 성령께서는 오늘날 이 성경을 통해 우리에게
진리를 분명하게 조명하여 주셔서
우리에게 하나님의 진리를 말씀해주시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라고 명령한 것입니다.

계속해서 평온한 감정을 좇으라 하지 않았습니다.

성령의 직접적인 음성과 환상, 꿈과 계시를 좇으라 하지 않았습니다.

환경을 통해 성령의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노력하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그러나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네가 뉘게서 배운 것을 알며
또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 (딤후 3:14-17)

그러므로 누구든지 성령의 음성을 듣고자 하신다면
부지런히 하나님의 감동으로 쓰인 성경을 상고해야 할 것입니다.

감정도 환상이나 꿈이나 음성도, 환경의 변화도
성령의 확실한 음성을 듣는 좋은 방법이 되지 못합니다.

성경을 기록하신 성령님께서는
성경을 통해 우리에게 하나님의 진리를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바로 이와 같은 이유로
감정, 환경, 환상, 경험을 좇는 ‘내가 죽어야 한다’고 말하는 자들의
성령론은 아주 크게 위험하다고 말씀 드릴 수 있습니다.

성령께서 사용하시는 메인스피커를 끄고
다른 곳에서 그분의 음성을 듣고자 노력하기 때문입니다.

신자 안에서 신자를 거룩하게 하시기 위해
성령께서는 또 여러 가지 일들을 하십니다.

오늘은 성령께서 하시는 “진리를 말씀하시는 것”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신자가 거룩한 삶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이 것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바로 이 진리의 음성을 좇을 때 우리는 거룩해집니다.

아버지의 말씀이 진리며
그 진리가 우리를 거룩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성령의 또 다른 놀라운 사역들을 살펴보기 앞서
다음 칼럼에서 이 성경의 권위에 대해 먼저 이야기 하기를 원합니다.

성령께서 성경을 통해 말씀하시는 것이 사실이라면
우리는 그 어떤 생각, 전통, 문화, 관습, 경험, 감정 보다
이 성경의 참 뜻을 좇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성령께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통해 우리에게 진리를 말씀하신 다는 것
그 사실에 감사하시고 기뻐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뜻을 감추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기뻐하시는 계획을 우리와 나누셨습니다.

하나님은 끊임없이 우리에게 당신의 뜻을 알리십니다.

바로 이 진리의 영, 보혜사, 성령께서
우리 안에 영원히 내주하셔서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 이 성경을 통해
우리에게 변하지 않고 썩지 않고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진리를
밝히 말씀해 주십니다.

그래서
성경을 사모하고 그 말씀을 종일 묵상하는 일을 기뻐하는 자를
하나님은 하나님 마음에 합한 자라고 부르셨을 것입니다.

성령의 음성을 듣기 원하십니까?

하나님의 진리를 알고 싶으십니까?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서 하나님의 마음에 가까이 거하기 원하십니까?

성경을 사모하십시오. 그 말씀을 종일 묵상하십시오.

여러분 안에 영원히 거하시어
그 진리의 말씀을 분명하게 증거하여 말씀해주시는
성령님을 기쁨으로 신뢰하고 그 진리에 귀 기울이시기 원합니다.

내가 죽어야 예수가 산다 (6): 보혜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