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죽어야 예수가 산다(2): 부활의 삶

This entry is part 2 of 7 in the series 내가 죽어야 예수가 산다

– 내가 죽는다는 말의 참된 의미 –

지난 칼럼에서 우리는 “내가 죽어야 예수가 산다” 류의 설교에 대해서 몇가지 질문을 던졌습니다. 이 시간에는 그 질문 중 첫번째로 “내가 죽는다는 말의 참된 의미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을 로마서 6:1-14에서 찾아보겠습니다.

로마서 6장 1-14절에서 사도 바울은 1절과 14절을 제외한 모든 구절에서 “죽음”을 언급합니다.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 (2절)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 (3절)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 (4절)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같은 모양으로 …” (5절)
”우리의 옛 사람이 …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 (6절)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 (7절)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 (8절)
”그리스도께서 … 다시 죽지 아니하시고 …” (9절)
”그가 죽으심은 죄에 대하여 단번에 죽으심이요 …” (10절)
”너희도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 (11절)
”너희는 죄가 너희 죽을 몸을 지배하지 못하게 하여 …” (12절)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난 자 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 (13절)

여기서 사도 바울은 두 가지 죽음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믿는 자의 죽음과 그리스도의 죽음이 그것입니다. 하지만, 사도 바울의 논점은 두 죽음의 차이가 아닌 “연합”에 있습니다. 믿는 자의 죽음은 우리말 성경의 표현에 따르면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의 죽음입니다 (3절). 좀 더 우리에게 익숙하게 표현하자면,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우리” 혹은 “그리스도 예수와 연합한 우리”의 죽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왜 여기서 이런 죽음에 대해서 말하고 있을까요?

로마서 6장의 시작에서 사도 바울은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냐 (1절)

라고 묻습니다. 은혜의 복음(로마서 1-5정)은 지속적인 죄를 용납하느냐는 것입니다. 이에 대한 대답은 아주 간단 명료합니다.

그럴 수 없느니라 (2절)

절대 그럴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말씀은 왜 그러한지를 설명합니다. 그 설명의 핵심은 “믿는 자와 그리스도의 연합”에 있습니다. 그 연합에 따른 죽음과 삶에 있습니다.

먼저, 믿는 자는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죽었습니다 (3절). 우리가 예수님을 믿음으로 영접할 때부터 하나님은 우리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들로 보시기 때문에 예수님이 죽으실 때 우리도 함께 죽은 것으로 보십니다.

하지만 이 죽음이 끝이 아닙니다. 믿는 자는 또한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살았습니다 (4-5절). 여기서 한가지 흥미로운 사실이 있습니다. 우리의 죽음은 죽는 것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도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 (4절)

믿는 자가 죽은 것은 그가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하려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새 생명”이라는 말에 주목하십시오. 이것은 단지 기존의 잘못된 것을 고친 것이 아닙니다. 완전히 새로운 것입니다. 새로운 생명을 주기 위해서는 기존의 것이 죽어야 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왜 믿는 자에게 새 생명을 주셨습니까?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고 그렇게 하셨습니다. 예전의 모습으로 그냥 살아도 된다면 굳이 새 생명이 필요없습니다. 예전과는 완전히 다른, 새 삶을 살아야하기 때문에 새 생명을 주신 것입니다.

6절에서 사도 바울은 이 죽은 몸을 “옛 사람,” “죄의 몸”이라고 지칭합니다. “옛”은 단지 시간상 오래된 것이 아니라 “낡고 소용이 없어진”이란 의미입니다. 왜 “옛 사람”은 소용이 없어졌을까요? 옛 사람은 선을 행할 수 없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죄의 몸”은 죄의 지배를 받는 몸입니다. 죄의 지배를 받아 죄를 지을 수 밖에 없는 몸입니다. 새 생명을 얻기 전의 사람들은 선을 행할 수 없고 죄를 지을 수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새 생명을 얻은 자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선을 행할 수 있고 죄를 짓지 않을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이고 “하나님께 대하여는 살아있는 자”이기 때문입니다 (10-11절). 우리는 이 극명한 사실을 믿고 확신 가운데 거해야하며 (“여기라,” 11절), 그에 따라 죄에게 지배권을 내주지 말고 (12절) 우리의 모든 지체를 의의 무기로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13절). 이것이 믿는 자의 올바른 삶입니다. 완벽함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완벽함을 향하여 나아가는 (행하는) 삶을 말하는 것입니다.

맞습니다. 믿는 자는 죽었습니다. 따라서 죽은 자처럼 살아야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절대 이제는 우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던가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죽은 것은 죄의 몸이 죽은 것입니다. 죄의 지배 아래 있지 않고 우리의 소욕을 따라서 살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로 하여금 단지 “죽음의 삶”을 살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부활의 삶”을 살아야합니다. 새 생명 가운데 행해야 합니다. 우리의 지체 하나하나가 그리스도의 뜻에 따라 움직여야 합니다. 말씀을 통해 그리스도를 배우고 기도를 통한 성령의 능력으로 강하여져서 강력한 의의 무기가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믿는 자의 죽음과 부활의 삶입니다.

그리고 바로 이것이 신자가 그리스도 안에서 죽었다는 것의 참된 의미입니다.

내가 죽어야 예수가 산다 (1) 내가 죽어야 예수가 산다(3): 성경적 성화와 미신적 성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