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을 위한 고난: 신성한 은혜의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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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심이라”(빌 1:29)

신약의 다른 부분에서도 언급되었듯이, 이 말씀에서는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라면 불가피하게 겪을 ‘고난’에 대해 명시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미국 대법원은, 미국 전체 50개 주에 동성결혼을 합법화 할 것을 명함으로써, 이 ‘새로운 (비)도덕적 원칙’에 따르지 않는 자는 누구나 불이익을 당할 것임을 분명하게 시사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성도들에게 닥칠 고난은 이제 어떤 식으로든 피할 수 없게 된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 짚어볼 것이 있습니다. 바로 고난은 어디서 오는 것인가에 대한 질문입니다. 고난은 단순히 반대자들의 적대감에서 오는 것일까요? 아니면 무작위의 혼란스럽고 제어불능한 우주에서 오는 것일까요? 그래서 어쩌다보니 우리가 고난에 빠지게 되었고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치고 있는 것인가요? 냉혹하고 차가운 운명 같은 힘이 이런 고난을 가져올 때 우리는 미소를 머금고 참아내야만 하는 것일까요? 그것도 아니면 고난은 궁극적으로 사탄에게서 오는 것일까요?

이 모든 추측에 대한 답은 ‘아니오’입니다. 고난은 하나님이 주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단언할 수 있는 몇 가지 증거가 있는데 그 첫 번째는 에베소서 1장 11절입니다. “모든

일을 그 마음의 원대로 역사하시는 자의 뜻을 따라 우리가 예정을 입어 그 안에서 기업이 되었으니” 또한 로마서 8장 28절에서는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모든 것”이라고 한 것에 주목해 봅시다. 분명 ‘좋은 것’이라고만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해 나쁜 것을 좋은 것으로 바꾸셨다’라고도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그저 어려운 상황에서 최대한 좋은 결과를 이끌어내시는 분이 아닙니다. 그는 그분의 영광을 위해 모든 일들을 쓰시는 분입니다.

요셉은 창세기 50장 20절에서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만민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라고 말했습니다. 욥도 욥기 1장 21절에서 같은 맥락의 말을 하고 있습니다.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또한 2장 10절에서는 “우리가 하나님께 복을 받았은즉 재앙도 받지 아니하겠느뇨”라고 말합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바벨론의 침략으로 인해 참혹한 폐허로 변한 예루살렘에 서서 “주의 명령이 아니면 누가 능히 말하여 이루게 하랴 화, 복이 지극히 높으신 자의 입으로 나오지 아니하느냐”라고 하였습니다(애 3:37, 38)

굳이 다른 성경 구절을 더 찾아보지 않더라도, 빌립보서 1장 29절에서는 성도들이 믿게 될 뿐만 아니라 고난도 받을 것임을 명시하고 있습니다. 누가 우리에게 믿음을 주십니까? 복음의 적들도 아니고 사탄도 아닙니다. 우리에게 믿음을 주시는 이는 바로 하나님이십니다(엡 2: 8~9). 마찬가지로, 고난을 주시는 이도 하나님이십니다.

‘받게 하시다’는 헬라어 동사 ‘카리조마이’인데, ‘카리스’로부터 유래된 동사이고 ‘은혜’라는 의미입니다. 또한 여기에는 ‘선물로 주다’ 또는 ‘대가 없이 주다’라는 뜻이 있습니다. 로마서 8장 32절에서 사도 바울이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라고 했을 때도 이 동사가 쓰였습니다. 여기서 사도 바울은 성도가 이 적대적인 세상에서 그리스도에게 순종하는 삶을 살고자 할 때 겪게 하시는 고난은, 주권적 은혜로 주시는 은사만큼이나 소중한 선물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부적절한 선물도 주십니까? 아무 목적도 지혜도 없는 선물도 주십니까? 유익하지도 않고, 성도에게 가장 혜택을 줄 수도 없는, 그런 선물도 주십니까?

결단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믿음의 자식들에게 항상 좋은 것만을 주시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이 본문은 하나님께서 우리가 고난을 겪도록 하시는 것이 그리스도를 위한 것이고 그분의 사랑에서 비롯된, 분에 넘치는 선물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고난이 어떻게 선물이 될 수 있나?’하고 의아해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 사도들이 당신이 이렇게 의아해 하는 것을 보았다면, ‘도대체 그리스도인을 자처하는 당신들이 어떻게 그런 의문을 가질 수 있는가’라고 반문 했을 것입니다. 사도행전 5장에는, 사두개파인들이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 못하게 한 명령을 위반한 사도들을 옥에 가두었으나, 주의 사자가 밤에 나타나 옥문을 열고 그들을 풀어주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리고 바로 그 다음 날 아침, 사도들은 다시 성전으로 돌아가 가르치고, 유대인들은 다시금 그들을 공회 앞에 세웁니다. 공회가 사도들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를 놓고 토론을 벌인 후 일어난 일에 대해서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저희가 옳게 여겨 사도들을 불러들여 채찍질하며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는 것을 금하고 놓으니 사도들은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 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면서 공회 앞을 떠나니라”(행 5:40~41).

이 시대의 ‘자칭 그리스도인들’은 믿음으로 인해 수난 당하는 것을 가장 끔찍스러운 일로 여기고 최대한 그런 일을 피하고자 합니다. 그러나 사도들 시대의 성도들은 가장 위대하신 주님의 이름을 위해 고난 받는 것을 하나님께서 주신 성스러운 선물로 여기고 기뻐했습니다. 나는 우리들도 하나님께로부터 고난의 선물을 받아, 사도들이 보았던 주님의 영광을 볼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주님의 영광을 나타낼 수만 있다면, 세상이 주는 치욕도 되려 특권으로 여기며 주님 안에서 만족하는 삶을 살기를 바랍니다.

그날 그렇게 채찍질을 맞고 몇 년이 흐른 뒤, 베드로는 베드로전서 4장 13절과 16절에서 “오직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만일 그리스도인으로 고난을 받은즉 부끄러워 말고 도리어 그 이름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라고 하였습니다.

 

* 이 글은 목요일에 계속됩니다.

고난을 주시는 하나님의 목적 고난: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절호의 기회

Mike 목사는 그레이스 교회(담임목사:존 맥아더)의 전도 사역을 담당하고 팰로십 그룹 GraceLife의 담당 목회자입니다. 그는 The Master’s Seminary를 졸업하고 현재 신학 박사 과정을 밟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