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들이 “마땅히 행할 길”에 대해 다시 생각하기 (잠언 22장 6절에 대한 오해들)

잠언 22:6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

자녀 양육은 쉬운 일이 아니다. 찰스 스펄전은 이렇게 말했다. “가정 교육이 쉽다고 생각한다면 그는 가정을 가져본 적이 없는 사람일 것이다. 자녀를 키우는 어머니는 솔로몬 보다 더 지혜로워야 한다. 만일 그랬다면 솔로몬이 잘못된 길로 가지 않았을 것이다.”

감사하게도 하나님은 부모들이 이 행복한 임무를 수행할 때, 더듬거리며 조언을 구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으셨다. 성경은 부모를 위한 지침들로 가득 차 있다. 그런데 가장 흔하게 인용되는 구절 중 하나인 잠언 22장 6절은 우리가 자주 오해하는 구절이다.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

이 구절은 대부분 다음과 같이 해석된다.

  • 이 구절은 경건한 자녀 양육의 결과로 오는 축복의 약속이다.

부모가 그의 자녀를 마땅히 행해야 할 길에 따라 가르친다면(예를 들어, 복음을 들려주고 경건의 모범을 보여주는 등) 그 자녀는 그리스도를 믿고 늙을 때까지 경건한 삶을 살 것이라는 말이다. 이 말씀을 이런 식으로 생각하는 부모들은, 자녀들이 부모의 경건한 가르침에 거역하는 것을 당혹스럽게 지켜보며 혼란스러워 한다. 그들은 자연스럽게 묻는다. “우리 자녀가 마땅히 행할 길로 언제쯤 돌아올 것인가?”

  • 이 구절은 보장된 약속이 아니라 경건한 자녀 양육의 일반적인 결과를 말하고 있다.

부모가 자녀를 경건하게 양육한다면, 비록 보장할 수는 없지만, 그 자녀가 그리스도를 믿고 나이가 들어서도 그 믿음을 따라 살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이 해석은 잠언 말씀을 인생을 향한 완전한 약속으로 보지 않고 단지 우리 주변에서 일반적으로 관찰할 수 있는 일로 여기고 있다.

  • 이 구절은 부모들이 자녀들을 나이에 걸맞은 방식으로, 혹은 그들이 가진 특별한 재능에 따라 양육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 주신 각각의 재능과 능력을 관찰하면서 자녀들의 인생의 시기에 맞춰 그들을 기르라는 말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아이는 하나님께서 주권적으로 허락하신 길을 따라 살아가게 된다는 것이다. 그 아이들이 그 “길”에서 “떠나지 않는다면” 그들의 삶은 그 특별한 재능과 능력(예를 들어, 직업)을 가지고 번창할 것이다.

그러나 잠언 22장 6절에 대한 위의 해석들이 맞는지 의심스럽다. 이 구절은 경건한 자녀 양육의 결과로 주어지는 일반적인 축복에 대해 약속하는 말씀이 아니다. 자녀를 그들의 자연적이고 이기적인 욕망에 따라 살게 내버려 두었을 때 찾아오는 결과에 대해 경고하는 말씀이다. 따라서, 더 알맞은 해석은 다음과 같다.

“자녀가 자신만의 길을 따라 살게 하면 그가 늙어서도 그 길에서 떠나지 않을 것이다.”

이 구절을 경고로 이해해야 하는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1. “마땅히 행할 길”을 나이에 걸맞은, 혹은 하나님께서 주신 재능으로 보는 것은 그 구절의 문맥과 어울리지 않는다. 심지어 잠언과 성경 전체와도 맞지 않는다.

‘나이에 걸맞은’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댄 필립스(Dan Philips)가 지적한 대로, 자녀를 나이에 맞게 훈육하는 것은 “그가 늙어도” 그것에서 떠나지 않을 것이라는 말과 어울리지 않는다(God’s Wisdom in Proverbs, 361). 어떤 부모도 자녀가 50살이 되어서도 어렸을 때 받은 훈육대로 사는 것을 바라진 않을 것이다.

“행할 길”을 하나님께서 주신 재능/성격으로 이해하는 것도 적합하지 않다. 종종 부모들은 자녀의 특별한 재능을 알지 못한다. 부모들이 “우리 아들은 커서 운동선수가 될 것 같아요”라고 말하지만 그렇게 되지 않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이러한 생각은 이 구절을 다음과 같이 해석한다. “당신의 자녀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재능을 발견하고, 그들의 성격에 따라 양육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러한 해석은 자녀 양육의 문제와 잠언 전체의 관점에서 볼 때 너무 편협한 해석이다. 잠언에서 말하는 자녀 양육의 문제는 직업, 성격 혹은 능력을 발견하는 것보다는, 인격 형성과 훈육에 더욱 초점이 맞춰져 있다. 마찬가지로, 이 해석은 성경의 가르침과 모순되는 심리학적 해석의 영향을 받았다고 할 수 있다.

  1. “마땅히 행할”이라는 구절은 원문에는 등장하지 않을 뿐 아니라 암시되어 있지도 않다.

“마땅히 행할 길”이라는 구절은 하나님 앞에서 의로운 삶을 사는 방법을 암시한다. “마땅히”라는 말은 도덕적인 “의무”를 말한다. 그런데 원문에는 “마땅히 행할”이라는 말이 없다.

그러면 왜 그 구절이 많은 영어 번역본에 포함된 것일까?

영어 번역본 중에서 “마땅히”라는 단어가 처음 등장한 것은 킹 제임스 번역본(KJV) 일 것이다. 왜 그 말을 넣었을까? 정확한 이유는 모른다. 그러나 잠언 22장 6절은 70인역 성경에는 없는 구절이다. 제롬(Jerome)이 4세기 말에 불가타(Vulgate) 라틴어 성경을 번역했을 때, 그는 이 구절에 “이것은 잠언이다”라는 서문을 쓰고 이렇게 번역했다. “청년이 자신의 길을 따르면 나이가 들어서도 그것에서 떠나지 아니하리라.” 더글라스 스튜어트(Douglas Stuart)는 제롬이 70인역 성경에서 소실된 잠언 구절들을 발견하고, 자신의 번역이 정경에 속함을 보장하기 위해서 서문을 포함시켰을 것이라고 주장한다(Bib. Sac.171 (July-Sept. 2014): 269).

뿐만 아니라 스튜어트는, KJV 번역자들이 그들 생각에 그 구절에서 짐작되는 바를 확실히 하기 위해 “마땅히 행할 길”이라는 구절을 삽입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비록 히브리어 원문에 근거는 없지만 말이다. 어떤 경우이든지 간에 KJV에서 그 구절이 사용된 후부터 다른 영어 성경 번역본들도 이를 따랐다(ASV, NIV, GNT, HCSB, NET, CEB, NKJV, ESV, NASB 등). 그리고 성경 번역이 활발해지자 그 기세에 눌려 지금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잠언 22장 6절의 해석이 되었다. 프랑스어를 비롯한 다른 언어에서도 그 구절은 비슷하게 번역되었다(BDS, LSG, NEG1979 등).

번역이 어떻게 되었든 간에 “마땅히 행할 길”이라는 구절은 히브리어 원문 성경에는 등장하지 않는다. 결과적으로 영어 성경에도 포함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그 대신, “(~을) 따라서(according to)” 혹은 “그의 방식으로(in his own way)”라는 뜻인 히브리어 עַל־פִּ֣ידַרְכֹּ֑ו,가 들어가야 할 것이다. 그런데 ‘그의(his)’는 누구를 지칭하는 것일까? 그 앞에서 언급된 대상은 ‘자녀’이다.

게다가, 히브리 단어 חֲנֹ֣ךְ가 “가르치다(train up)”로 번역되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논란이 있다. 필립스는 그 단어에 대해 세부적인 연구를 진행했고, 그것을 “시작하다”로 번역하는 것이 더 낫다는 것을 증명했다(367-8). 그러므로 이 구절은 다음과 같이 해석하는 것이 더 좋다. “아이가 자신의 방식을 따라서 인생을 시작하게 하면 그가 늙어서도 그 길에서 떠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부모가 자녀를 충동적으로 살도록 양육하라고 명령하신 것인가? 당연히 아니다. 이 명령은 부모가 자녀를 바르게 돌보지 않았을 때 일어날 일을 경고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다음 요점에서 알 수 있듯이 그러한 해석이 잠언의 문맥과도 잘 어울린다.

  1. 이 구절을 일반적인 경고로 해석하는 것이 잠언에 등장하는 여러 경고들과 더 문맥상 일관성이 있다.

잠언서는 거의 모든 구절에서 타락의 심각성을 경고한다. 사람은 그가 경건한 지혜와 훈련 안에서 부지런히 노력하지 않으면 반드시 미련한 자의 길로 가게 될 것이다. 잠언에 따르면, 자신의 삶을 미련한 자의 모습으로 끝내고자 한다면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된다. 그의 본성의 방식을 따라가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미련한 자는 자기 행위를 따라 사는 자이다(잠 12:15). 그는 자신의 방식대로 살아간다. 그는 사리에 맞게 대답하는 사람 일곱보다 자기 자신을 지혜롭게 여긴다(잠 26:16). 그는 하나님보다 자신의 생각을 더 위에 두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훈계를 업신여긴다(잠 15:5, 12). 잠언의 모든 구절이 “자녀가 자신의 본성을 따라 살게 내버려 두지 말라!”고 명령하고 있다. 잠언에 따르면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하시게 내버려 두는 것(Let go and let God)”은 비극적인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이러한 문맥으로 보면 자녀 양육에 대한 많은 잠언 구절들이 서로 들어맞게 된다. 예를 들어, 잠언은 그 서두가 아들들에게 주는 훈계로 시작하는데, 그들에게 악한 자들의 길로 가지 말라고 경고한다(잠 1:8-19). 아이들의 마음에는 미련한 것이 얽혀있기 때문에(잠 22:15) 부모들로부터 지혜롭고 경건한 가르침을 받아야 한다(잠 2:1-11). 인간은 모두 미련한 마음 상태로 이 세상에 태어난다. 그러므로 그들 마음대로 살아간다면 자신과 가정과 사회는 무너질 것이다.

그래서 잠언에서는 부모의 징계가 자녀에게 은혜를 끼치는 하나님의 방식으로 묘사되고 있다(잠 19:18, 22:15상). 부모들은 자녀를 회심하게 할 수는 없지만 미련함을 억제시킬 수 있다(잠 20:30). 자녀들은 자기 마음대로 사는 것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데렉키드너(Derek Kidner)가 말했듯이, 그런 식의 삶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은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이다(Proverbs, 47). 마치 재앙과도 같은 타락한 인간 세계를 통제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자비로운 도구는 바로 성경적인 채찍이다. (채찍과 꾸지람은 지혜를 주지만) 임의로 행하게 버려 둔 자녀는 그의 가족을 수치스럽게 할 것이다(잠 29:15).

잠언에는 자녀 양육이라는 주제와 관련하여, 인간이 타락한 결과에 대한 경고의 말씀이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즉, 잠언 22장 6절 말씀을 ‘경고’로 이해하는 것이 잠언의 다른 말씀들과 함께 문맥상으로 더욱 일관성이 있어 보인다.

  1. 이 구절을 일반적인 경고로 해석하는 것이 인간 타락에 대한 성경적인 이해와 더 문맥상 일관성이 있다.

모든 사람은 하나님을 대적하며 이 땅에 태어난다(시 51:5). 홍수가 일어나기 전에 하나님은 세상에 사는 인간들의 모습을 보실 때,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셨다(창 6:5). 사사기는 “자기 마음대로 사는 인간의 모습은 어떠한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보여줌으로써 우리에게 유익을 준다. 하나님의 은혜 앞에서 회개하지 않는 모든 인간은 불의를 행하고 그 길을 따를 것이다(롬 3:10-12). 그러므로 하나님을 떠나 홀로 남겨진다면 그 사람은 죄에 더 깊게 빠질 뿐이다.

결론적으로, 잠언 22장 6절의 “그의 방식을 따라”라는 구절은 의로운 길이 아니라 불의한 길을 의미한다. 그래서 “마땅히 행할 길”이 아니라 “그의 방식을 따라”라고 해석하는 것이 맞다. 이 말씀은, 아무런 제약 없이 양육된 어린 아이가 자라서도 악한 길에 빠지게 될 것임을 경고하는 의미인 것이다.

  1. 다른 성경 주석가들은 인간 타락에 비추어서 잠언 22장 6절을 경고로 이해했다.

몇몇 영국 번역본에는 “마땅히 행할 길”이라는 구절이 없다. 예를 들어, 낙스 성경(Knox Bible)에는 다음과 같이 번역되어 있다. “소년은 그가 시작한 길에 계속 있을 것이다. 그가 나이가 들지라도 그는 거기서 떠나지 않을 것이다.” 렉스햄 성경(Lexham Bible)에는 다음과 같이 번역되어 있다. “자녀를 그의 길을 따라 양육하라. 늙어서도 그는 거기에서 벗어나지 않을 것이다.”

리처드 클리포드(Richard Clifford)는 그 구절을 적절히 다른 말로 표현했다. “자녀를 그가 원하는 것을 하게 내버려두면 그는 변화 가능성이 없는 고집 센 어른으로 성장할 것이다!”(Proverbs: A Commentary, 196)

제이 아담스(Jay Adams)는 이 구절과 관련해서 이렇게 썼다.

“이 구절은 다음과 같이 이해할 수 있다. ‘자녀를 그의 방식대로 양육하라.’ 즉, 자녀가 (그 자신이) 양육되길 바라는 기준이나 방식을 따라서 양육하라는 것이다. 이 구절은 약속의 말씀이 아니다. 이 구절은 만약 부모들이 그들의 자녀가 원하는 대로 양육한다면, 자녀가 자라서 그런 삶의 방식을 바꿀 것을 기대해서는 안 된다는 경고의 말씀이다. 자녀들은 죄인으로 태어나며, 그들이 바라는 대로 살도록 둔다면 자연스럽게 죄된 습관을 발전시켜 나갈 것이다(Competent to Counsel, 158).

다른 주석가들도 이 구절을 경고의 말씀으로 받아들인다. 더글라스 스튜어트(Douglas Stuart), 사디아 벤 요세프(Saadia ben Yosef, Bib. Sac. 171 (July-Sept. 2014): 266-273), 랄파그(Ralpag, J.H. Greenstone, Proverbs with Commentary, 196), 댄 필립스(Dan Phillips, God’s Wisdom in Proverbs, 353-79)를 참고하라. 특히 Phillips’ commentary on Proverbs에는 이 주제에 대한 26쪽 분량의 유익한 설명이 있는데, 구매를 추천한다.

결론

잠언 22장 6절에 대해서는 더 많은 것을 이야기 할 수 있다. 이 구절에 대한 일반적인 해석(‘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에서 ‘마땅히 행할 길’은 삭제되어야 한다. 대신에, 영어 번역서는 다음과 같이 번역되어야 할 것이다. “자녀가 자신의 방식대로 그 삶을 시작하게 한다면 그가 나이가 들어서도 그것으로부터 떠나지 않을 것이다.”

이 구절은 경건한 훈육과 양육의 결과로 주어지는 축복을 약속하는 말씀이 아니다. 이것은 자녀가 자연적이고 악한 욕망을 따라 살도록 내버려 두는 것을 경고하는 말씀이다. 언어적인 이유뿐만 아니라 잠언서와 성경 전체의 문맥으로 볼 때에도 이러한 해석이 더 적절하다.

그래서 어떻게 할 것인가?

  • 성경적인 훈련과 지도로 자녀를 양육하지 않으면 그 자녀는 그가 원하는 대로 타락한 길에서 살아가게 될 것이다. 자녀의 악한 본성은 그가 점점 더 파괴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삶에 사로잡히게 만들 것이다.
  • 부모들은 (자녀가 반항할 가능성이 있을지라도) 자녀를 하나님의 방식으로 훈련과 지도할 때 자녀를 향한 그들의 사랑을 보여주게 된다. 부모들이 자녀의 회심을 보장할 수는 없지만 자녀의 파괴적이고 자기중심적인 경향을 크게 줄여줌으로써 그가 자기만의 길로 가지 않도록 도울 수 있다.
  • 그렇게 했을 때, 잠언 22장 6절은 자녀가 잘못된 길로 간 것에 대해서 부모들에게 책임을 돌리지 않는다. 부모들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방식대로 자녀를 양육하는 최고의 목표를 위해 부르심을 받은 자들이며(고전 10:31; 고후 5:9), 그것에 대한 결과는 하나님께 맡겨야 한다. 만약 자녀가 반항한다면 그것은 부모들의 훌륭한 양육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되는 것이지, 그들의 양육 때문에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니다.
  • 만약 자녀가 회개하고 그리스도를 믿게 된다면, 부모들은 자녀를 주님 안에서 훈련하고 지도하기 위해 그들의 불완전한 노력을 사용하시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려야 한다.

 

http://thecripplegate.com/reconsidering-proverbs-226/에서 원문을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