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들에게…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엡 6:4).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는 대표적인 난제(?)이지만, 답이 어려워서라기 보다는 답을 말하기 어려워서 일 때가 많습니다. 가장으로서 가정의 경제적 필요를 공급해야 한다는 책임감으로 일하다 보면 아버지들은 가족에서 소외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가족을 위해서 많은 희생을 하고 최선을 다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책임을 위해 가족과의 시간을, 그리고 결과적으로는 가족을 희생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앞의 질문에 대한 아이들의 솔직한 대답은 아무래도 자신과 시간을 많이 보내고 그러기에 더 잘 이해해주는 ‘엄마’인 경우가 많습니다.

한편, 과거에는 남편은 ‘바깥 양반’, 아내는 ‘안 사람’으로 부부의 역할이 완전히 나누어져 있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요즘에도 드라마 등을 보면 아이가 잘못된 행동을 하면 남편이 아내에게 “여자가 집에서 애들 교육을 어떻게 시키는 거야!”라며 책망하는 모습도 볼 수 있습니다. 즉, 남편의 역할은 밖에 나가서 일을 해서 돈을 벌어오는 것이고, 가정을 돌보고 자녀를 양육하는 일은 전적으로 아내의 역할이며 책임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성경은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물론 남녀의 주된 역할에 있어서 차이가 있는 것은 맞습니다. 아내가 자녀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며 그들을 잘 양육해야 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녀 양육이 전적으로 아내의 일이고 아내의 책임인 것은 아닙니다. 오늘의 말씀은 이 부분에 있어 아버지들에게 주는 분명한 명령입니다. 말씀은 “아비들아”로 시작하는데, 이는 문맥에 따라서 “부모들아”라고도 번역할 수 있는 단어입니다. 하지만, 어떤 경우에도 “어미들아”로 번역하지는 않습니다. 이 말씀은 자녀 양육에 있어 아버지의 책임을 분명하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실 남편은 가정의 리더이기 때문에 가정의 어떤 일에 대해서 “그건 내 일이 아니야”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말씀은 첫째로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라고 합니다. 절대 자녀를 ‘화나게 해서는 안 된다’는 말은 아닙니다. 그들도 죄인이기에 죄악된 분노를 나타낼 수 있습니다. 그것은 그들의 문제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것은 부모가 잘못된 방법으로 그 자녀를 대함으로 자녀를 분노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이 분노는 겉으로 터져 나오는 분노일 수도 있고 마음 속에 담아두는 분노 혹은 미움(쓴 뿌리)일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자녀를 노골적으로 차별 대우한다면 그것은 자녀를 노엽게 하는 일입니다. 그들이 할 수 없는 것을 요구하면서 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 나무란다면 그것도 자녀를 노엽게 하는 일입니다. 무조건 권위로 자녀를 제압하려고 하거나 자신의 화를 못 이겨 자녀를 체벌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둘째로, 자녀를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서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가르쳐야 하며 또한 그것을 삶으로 보여 주어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그저 ‘행동’을 바로 잡는 것이 아닙니다. 그 ‘마음’을 바로 잡아 바른 행동이 나올 수 있게 해야 합니다. 그런 목적으로 훈계가 필요하다면 훈계를 해야 하며 체벌이 필요한 경우 체벌을 해야 할 것입니다. 이 양육을 통해서 그들이 배워야 할 것은 바로 하나님이고 그 하나님이 주신 교훈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며 그에 따르는 삶을 살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부모의 역할입니다.

이 모든 명령은 부모에게 주어졌습니다. 교회에게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 어린이집이나 유치원, 학교, 학원에 주어진 것도 아닙니다. 부모에게 주어졌습니다. 어머니에게만 아니고 아버지에게도 주어졌습니다. 저는 특별히 아버지들을 위해 이 글을 쓰고 있기에 아버지들에게 말씀 드립니다. ‘직장 일만 해도 이미 벅찬데, 그런 일까지 내가 다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드실 것입니다. 최소한 ‘자녀 양육은 아내의 일, 나는 돈만 잘 벌어오면 되지 뭐’라는 생각을 버리십시오. 작은 것부터 시작하시면 됩니다. 나에게 시간이 부족하다면 아내와 함께 아이들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시기 바랍니다. 단지 그들의 학업 성취도나 건강에만 관심을 갖지 마시고, 그들의 영적인 상태에 관심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꼭 가정 집회를 매일 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함께 식사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주일학교 시간에 배운 것을 물어보고, 암송이 있다면 함께 암송하며 그 의미를 설명해 주십시오. 각자의 상황에 맞게 할 수 있습니다. 어쩌면 이러한 시간을 마련하기 위해 다른 무언가를 희생하셔야 할 수도 있습니다. 최소한 그런 고민들을 지금 시작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바로 여러분 자신을 먼저 주의 교훈과 훈계로 ‘잘’ 양육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을 잘 이야기 한다고 해도, 남편이 아내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신 것같이 사랑하지 않는다면 아버지의 말은 공허합니다. 자녀를 노엽게 하는 아버지가 순종을 이야기하면 자녀들은 성경적인 순종을 배우지 못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최우선이라고 말하면서 정작 자신은 회사가 언제나 최우선이며 자녀에게는 학원 우선의 삶을 강요하고 있다면 어떻겠습니까? 세상과 구별된 삶을 가르치면서 세상의 가치관을 그대로 따르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면 자녀들은 어떤 가치관을 따르겠습니까?

자녀를 사랑하십니까? 자녀가 잘 되기를 원하십니까? 그들이 정말로 성공하기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성경이 주는 이 가르침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