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프란체스코의 정체

This entry is part 7 of 11 in the series 가톨릭의 이단성

교황 프란체스코가 미국을 방문하여 미국 대통령을 만나고 의회에서 연설을 하는 등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습니다. 소위 복음주의 목회자라고 자처하는 인기 있는 목사는 스스로 가톨릭의 홍보 대사인양  교황을 받드는 일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프란체스코는 자비가 많고 평화 주의자이고 겸손하다고 치켜 세우며 그가 단간방에 살았고, 버스를 타고 출퇴근을한 근면한 사람이라고 그를 굉장한 사람으로 선전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의 칭찬대로 그가 겸손한 사람이고 지금까지의 다른 교황들과 다른 사람들 보다 성품이 나은 사람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가 믿는 종교는 예수님만을 믿는 종교가 아닙이다. 그 뿐입니까? 그는 사람들이 평가하는 것과 같이 평화주의자도 아닙니다. 그는 전 세계를 이단의 추종자로 만들기 위한 길을 앞장 서서 가는 이단의 괴수일 뿐입니다.  예수회에 소속되었던 사제였던 베넷 목사님의 글을 소개합니다.  

(글은  Berean Beacon (http://www.bereanbeacon.org 의 허락을 받고 옮겨 실은 것입니다.)

June 20, 2015

시간이 흐를수록 세계적인 정치 상황이 더욱 불안하여지고 있다. 러시아의 푸틴은 우크라이나로부터 크림 반도를 빼앗았다. 중동은 계속 투쟁 가운데 있다. 분명한 것은 세계 권력의 축이 움직이고 있으며 유엔(UN)의 무능은 교황 프란체스코가 그의 지정학적인 계획을 확장시킬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주고 있다. 따라서 프란체스코는 평화옹호자의 가면을 쓰고 여러 분야에서 교황의 지배를 위한 터를 마련하고 있다. 최근에 그는 1964년에 있었던 교황 바울 6세의 이스라엘 방문 50주년을 맞이하여 평화옹호자의 행보를 하였다. 우리는 교황 프란체스코가 2014년 5월에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을 방문한 사건을 보면서 이러한 그림을 볼 수 있어야 한다.

프란체스코가 그의 임무를 전제로하여 언급한 말에는 결함이 많다. 프란체스코의 외교적으로 언급한 발언들은 잘 알려진 실제 사실들과 전혀 맞지 않는다. 예를 들어, 그는시몬 페레스이스라엘대통령에게 인사를 할 때 다음과 같이 언급하였다.

“모든인간의 존엄성과 자유를 고려할 때 세계 평화가 요구됩니다.”(http://www.news.va/en/news/meeting-with-the-president-of-the-state-of-israel)

더욱이 그는유대인, 기독교인, 무슬림은 모두하나님에 의해 만들어졌으며 영생을 향하도록 되어 있다고 말하였다. 그는 미리 계획된 거짓말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함께 공유한 신념으로 우리는 단호하게 모든논란과 갈등에 대한 평화로운해결책을추구할 수 있습니다.”(http://www.news.va/en/news/meeting-with-the-president-of-the-state-of-israel)

하지만 누구라도 소위 “공유한 신념”은 같은 종류의 것이 아님을 알고 있다. 사실 프란체스코는 이러한 언급을 통해 이슬람교가 모든 유대인과 유대 나라의 멸망을 맹세하였다는 사실에 대해 슬쩍 얼버무리고 넘어간 것이다. 로마 카톨릭 시스템 역시 논란이 되는 문제들에 대해 평화로운 대책을 추구하지 않는다. 오히려 교황 제도는 모든 지성과 의지가 소위 무오한 교황에게 굴복할 것을 요구한다. 이러한 규정된 요구는 다음과 같은 공식적인 선언으로 제정되어 있다.

“절대 지위의 교황은 그의 직책으로 인하여 무오한 가르침의 권위를 소유한다. 교황은 모든 신자들의 최고 목자이며 선생으로서 신앙과 도덕이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해 결정적인 선포를 할 수 있다”(Catechism of the Catholic Church, Para. 891)

 

더욱이 교황 제도는 그 명령을 불순종하는 자들에 대한 처벌을 선포하고 있다.

“교회는 처벌법을 수단으로 불순종하는 기독교 신자들을 강압할 본연의 적절한 권리가 있다.”(Code of Canon Law,Latin-English ed. (Canon Law Society of America, 1983) Canon 1311)

따라서 교황이 말하는 평화의 언급과 교황법 사이에는 분명한 불일치가 있다. 결국, 교황이 암몬, 베들레헴, 그리고 이스라엘을 방문한 목적은 단지 선량한 뜻을 위한 지정학적인 평화를 추구하는 것이라기보다 더 깊은 또다른 목적이 있다.

 

평화를 위한 구실

처음부터 교황 프란체스코의 이스라엘 방문은 ‘평화’를 위한 가장된 구실 하에 온 세계의 관심을 끌기 위함이었다. 예를 들어, 카톨릭 미디어 방송은 하나하나 단계별로 사건들을 방영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일요일에 이스라엘에 도착한 교황 프란체스코는 반복적으로 거룩한 땅(성지)의 평화를 호소하였습니다. 예루살렘은 그 이름의 뜻처럼 참으로 ‘평화의 도시’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하셨습니다. 거룩한 아버지 교황은 이스라엘 뿐만 아니라 지역 전체를 위해 평화가 얼마나 절박한지 말씀하셨습니다.”

(http://www.ewtn.com/vnews/getstory.asp?number=130139)

교황은 계속 연설하였다.

“선한 뜻을 지닌 모든 인류의 뜻을 따라 나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지도자들이 복잡한 문제들을 풀 수 있는 합당한 대책들을 철저하게 추구할 것을 간절하게 바랍니다.”

(http://www.ewtn.com/vnews/getstory.asp?number=130139)

프란체스코는 거듭 평화의 개념을 강조하였지만 그의 언급에는 어떻게 진정한 평화를 이룰 수 있는지에 대해 아무런 내용이 없다.

가장 중요한 것은 참되고 영원한 평화는 오직 하나님과의 평화이며 이는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하지만 프란체스코의 ‘기독교’ 지원 활동에는 이토록 가장 중요한 진리를 전혀 찾아볼 수 없다. 프란체스코와 마음을 같이하는 유대인 랍비 라비노위츠는 “꿈의 예루살렘”을 언급하며 교황을 환영하였다.

“영광스러운 교황이 찾아온 예루살렘은 이 땅의 예루살렘이면서도 또한 꿈의 예루살렘입니다.”(http://jewishvoiceny.com/index.php?option=com_content&view=article&id=7522:pope-francis-i-makes-historic-trip-to-israel-stirs-controversy-over-state-of-palestine-remark&catid=107:israel&Itemid=290).

유대 민족을 위한 꿈은 예루살렘에 종교간 평화 설립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를 그들의 구세주와 왕으로 인정할 때 그들의 평화의 꿈이 이루어질 것이다. 그리스도만이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상관없이 모든 믿는 죄인들을 대신하여 하나님과의 평화를 만드신 분이다(엡 2:11-22; 참조, 롬 11:25-26).

 

프란체스코가 종교간 상호 수용을 증진하기 위해 이슬람교의 최고 지도자를 만나다

바티칸의 뉴스서비스는 프란체스코의 근황 및 그의 말을 전하였다.

“교황 프란체스코는 월요일 아침에 예루살렘의 이슬람 최고 지도자인 모하메드후세인과 만나 우애를 나누는 대화와 교류를 가졌습니다. 교황은 ‘우리 앞에 놓인 공동의 도전에 직면할 수 있는 새 힘을 드립니다’라고 말하였다.

“ ‘각하, 그리고 친애하는무슬림 신자들, 친애하는 친구들이여,

“나는 이 신성한 곳에서당신과만날 수 있는 기회에 감사합니다. 나는 당신이 나에게까지 정중한 초대를 해 주신 것에 대해 감사 드립니다. 나는 이 땅에서 순례자로 살았던아브라함을 생각합니다. 무슬림들, 기독교인들, 유대인들은 서로 다른 길에 서 있지만 우리 모두 아브라함 안에서 믿음의 조상 및 우리가 본 받아야 할 위대한 본을 보게 됩니다. … 이 땅의 순례의 길에서 우리는 외톨이가 아닙니다. 우리는 다른 신자들과 함께 서로 길을 텄습니다. 우리는 종종 그들과 길을 확장하여 나눌 것이며 서로 힘을 주는 평화의 시간들을 체험할 것입니다. 오늘이 바로 그러한 만남의 날입니다. 친애하는 형제들과 친구들이여! 이 거룩한 곳에서 나는모든 사람들에게 그리고 아브라함을 바라보는 모든 공동체에게 진심으로호소합니다. :우리는 서로 존중하고서로 사랑을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다른 사람의고통을 이해하고 배울수 있습니다! 그 누구도 폭력을 통해 하나님의 이름을 남용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정의와평화를 위해함께 일할수 있습니다! 살람! ‘”

(www.news.va/en/news/pope-francis-to-muslims-we-must-confront-common-ch)

이처럼 교황프란체스코는 카톨릭과 이슬람사이의 존중과 관계 회복의분위기를 만들어내었다. 교황의 목적은 “형제들과 자매들”이라는 이름 하에 전 세계적인 통일된 종교 및 믿음의 공동체를 세우기 위해 이슬람 종교와 그들의 민족들을 포용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화해는 성경적인 차원에서는 불가능하다. 그리스도인은 하나의신격안에세 위격이 존재하는 한분 하나님을 믿는다. 그러나 이슬람은 이러한 성경의 진리를 거부한다. 코란은 다음과 같이 선언한다.

“분명히 우리는 알라는세 위격 중에 세 번째 위격이라고 말하는 자를 믿지 않는다. 오직 한분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은 없다. 만일 그들이 그들의 말을 취소하지 않는다면 고통스러운징벌이 그들 불신자들에게 임할 것이다.”(Surah 5:73).

성경은 신자들을 대신하여 십자가 상에서 희생 제물로 바치신 그리스도의 죽음을 선포한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 곧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엡 1:7).

하지만 이슬람은 그리스도 예수께서 십자가에 죽으셨다는 사실을 철저하게 부정한다. 코란은 다음과 같이 선포하고 있다.

“그들이 말하길 ‘우리는 분명하게 알라의 사도이며 마리아의 아들 그리스도 예수를 죽였다’고 한다. 하지만 그들은 그를 죽이지 않았으며 십자가에 못박지 않았다. 단지 십자가에 죽은 자가 그들에게는 예수처럼 보였을 뿐이다. 아마 거의 확실하게 그곳에 있던 다른 사람들은 예수가 죽었다는 점에 대해 의심하였음이 분명하다. 그들은 이에 대해 아무런 지식이 없다. 따라서 추측을 하지만 예수를 죽인 것에 대해서는 분명하지 않다.”(Surah 4:157).

(http://www.ewtn.com/vnews/getstory.asp?number=130139)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이며 하나님의 나타난 모양으로서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라고 선포한다. 하지만 코란은 예수 그리스도를 단지 알라의 사도일 뿐이라고 깍아내린다. 코란의 언급을 보자.

“그 책(성경)을 추종하는 자들이여! 너희 종교의 한계를 넘어서지 말라. 알라에게 거짓을 말하지 말고 오직 진리를 말하라. 마리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단지 알라의 사도일 뿐이다.”(Surah 4:171).

 

하지만 그리스도 예수께서 선언하셨다.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내가 있느니라”(요 8:58).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요 10:30).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기를 너희가 너희 죄 가운데서 죽으리라 하였노라 너희가 만일 내가 그인 줄 믿지 아니하면 너희 죄 가운데서 죽으리라”(요 8:24).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인하는 종교와 종교인들은 반성경적이며 반기독교적이기 때문에 참 기독교인과 화해가 불가능하다. 나아가 그들은 죄 가운데서 죽은 상태라서 아무런 소망이 없다. 그러나 교황 프란체스코가 무슬림들을 “형제와 자매들”로 받아들이면서 성경의 주권적인 하나님이 이슬람의 거짓 신인 알라와 같은 존재인 것처럼 암시하였다. 프란체스코는 예루살렘 및 이슬람에서 회교 최고 종교 지도자(무프티)에게 경의와 존경을 표함으로써 주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사역과 그분의 존재를 부인하였으며 따라서 복음 자체를 부정한 셈이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14년 6월 8일 날자의 대중언론매체들은 “이슬람 기도와 코란 낭독을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바티칸에서 들을 수 있었다”(http://www.breitbart.com/Big-Peace/2014/06/08/ )라고 보도하였다. 이는 교황 프란체스코가 그들을 신속하게 바티칸으로 초대하였을 때 발생한 사건이었다.

 

 

교황 프란체스코가 다락방에서 행한 미사 설교는 성경의 진리를 부인한다.

교황은 그리스도께서 마지막 만찬을 열었던 곳으로 알려진 곳에서 그리스도의 희생을 제정하는 로마 미사를 드렸다. 프란체스코의 미사는 화려한 말로 그 간계함을 감춘채 완벽하게 보였다.

“이 다락방은 우리에게 성체를 통한 희생 제사를 기억나게 합니다. 모든 성체 미사를 통해 예수께서는 아버지께 우리를 위해 자신을 희생 제물로 드리십니다. 따라서 우리 역시 하나님께 우리의 삶과 일과 기쁨과 슬픔을 바치며 주 예수님과 연합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모든 것을 영적인 희생 제사로 바칩니다.”(http://www.zenit.org/en/articles/pope-francis-homily-at-mass-in-the-upper-room)

 

그리스도의 단 한번의 제사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뜻하신 것으로서 단회적이다. 그리스도의 희생 제사는 결코 역사 가운데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 그 이유는 그리스도의 완전한 희생은 단번에 드려져서 받아들여진 희생 제물이며 이로써 그분의 신성이 증거되기 때문이다(참조, 히 10:12-14). 그러므로 우리는 갈보리에서 있었던 하나님의 아들과 위격과 사역에서 “인애와 진리가 같이 만나고 의와 화평이 서로 입맞춘”(시 85:10) 사실을 보게 된다. 오직 하나님의 구속의 사역을 의지하는 자들에게만 “공의의 열매는 화평이요 공의의 결과는 영원한 평안과 안전이다”(사 32:17; 참조, 롬 10:4, 고전 1:30; 고후 5:21; 빌 3:9). 그러나 교황 프란체스코는 로마 미사는 그리스도의 희생 제사의 또 다른 제정이며 반복이라고 가르침으로서 하나님 아버지의 자명한 뜻과 목적을 폄하하였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엄위와 능력과 절대적인 완벽함은 바로 단 한번의 희생 제물로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킨데서 찾아볼 수 있다. 그리스도의 희생의 독특한 탁월함에 대한 진리는 ‘단번에’라는 단어에서 강조되어진다. 예를 들어, 성경은 “그가 죽으심은 죄에 대하여 단번에 죽으심이요 그가 살아 계심은 하나님께 대하여 살아 계심이니”(롬 6:10)라고 가르친다. 또한 “그리하면 그가 세상을 창조한 때부터 자주 고난을 받았어야 할 것이로되 이제 자기를 단번에 제물로 드려 죄를 없이 하시려고 세상 끝에 나타나셨느니라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 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 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히 9:26-28)고 하였다. 그러므로 교황이 말한 “우리 역시 하나님께 우리의 삶과 일과 기쁨과 슬픔을 바치며 주 예수님과 연합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모든 것을 영적인 희생 제사로 바칩니다”는 언급은 최대의 오만인 셈이다. 그의 언급은 그가 전혀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그리스도 예수만이 자기 자신을 드릴 자격이 있다. 그분만이 성령께서 “이러한 대제사장은 우리에게 합당하니 거룩하고 악이 없고 더러움이 없고 죄인에게서 떠나 계시고 하늘보다 높이 되신 이라”(히 7:26)고 가르치신 것처럼 영원한 희생 제물로서 절대적인 유일한 자격을 지니신다.

 

결론적으로, 프란체스코가 소위 미사라는 것을 통해 희생을 제정하여 사람들과 함께 자신들을 희생 제물로 드릴 수 있도록 했다는 것은 참으로 참람하고 가증한 것이다! 갈보리 십자가에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은 단번에 영원히 드려진 주 하나님의 구속적인 행위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프란체스코가 “모든 성체 미사를 통해 예수께서는 아버지께 우리를 위해 자신을 희생 제물로 드리십니다”고 말한 것은 하나님의 뜻과 목적을 폄하한 것일뿐만 아니라 또한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유일하고 완벽한 흠없는 어린양(요 1:29, 36; 참조 벧전 1:18-20)으로서 이룩한 완벽한 거룩과 의를 제거한 셈이 되었다. 다음과 같은 주의 통찰력있는 말씀이 이제 프란체스코와 그의 다락방 연극에 해당하겠다. “이와 같이 너희도 겉으로는 사람에게 옳게 보이되 안으로는 외식과 불법이 가득하도다”(마 23:28).

 

교황 프란체스코 및 정교회 대주교 바돌로매는 복음을 믿지 않는다

교황 프란체스코는 바티칸으로 돌아간 이후 로마 교회를 기독교로 언급하면서 “기독교 연합을 추구한다”고 말하였다. 그의 말은 다음과 같다.

“친애하는 형제 자매들이여! 최근 성지를 방문한 나의 사도 여행은 나와 교회 전체에 큰 은혜가 되었습니다. 이번 여행은 기독교의 연합에 큰 분기점을 마련하였던 교황 바울 6세와 연합 대주교 대표 아테나고라스의 만남의 50주년을 기념한 것입니다. 대주교 바돌로매와 나는 부활하신 주님의 무덤 앞에서 한 형제로서 함께 기도하였습니다. 우리는 교회의 온전한 교통을 위해 혼신을 다할 것을 서로 다짐하였습니다.”

(http://w2.vatican.va/content/francesco/en/audiences/2014/documents/papa-francesco_20140528_udienza-generale.html)

 

프란체스코는 예루살렘에서 다음과 같이 연설하였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가장 귀하게 여기는 이곳 바실리카 성당에서 나는 그리스도 안의 사랑하는 형제 대주교 바돌로매와 함께 순례의 길을 따라 이제 최고 정상에 이릅니다.”

(http://www.zenit.org/en/articles/francis-address-at-prayer-service-with-patriarch-bartholomew)

 

프란체스코는 자신뿐만 아니라 정교회 대주교 역시 그리스도인이라고 믿고 있다. 하지만 이는 철저한 거짓이다. 그 이유는 둘 다 전혀 그리스도인이 아니기 때문이다.

정교회의 경우 그들의 구원관은 하나님의 말씀이 가르치는 것과 근본적으로 다르다. 동방 정교회는 칭의 부분에서 성경의 분명한 가르침과 근본적으로 다른 차이를 보여준다. 다음은 이 주제에 대한 정교회가 두 가지 교훈이다.

“칭의는 단번에 영원히 주어지는 것이 아니며 영원한 구원을 보장하는 것도 아니다. 의롭게 되고 의롭게 안 되는 것은 단지 사람이 장래에 의롭게 살 것인지 아니면 죄악 가운데 살 것인지에 달려있다. 법적으로 악한 죄인을 의로운 자로 즉각 변화시키는 그러한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What Do Orthodox Christians Believe? (Lamp Publishing of the Little Orthodoxy Library: 1996) p. 9 )

“그러므로 정교회의 칭의론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정교회의 가르침은 다마스커스의 요한에 의해 체계화된 것들이 전부인데 거기에는 칭의의 개념이 전혀 없다.”

(Ernst Benz, The Spirit and Life of the Eastern Church (Svetlost Press: Sarajevo, Bosnia, 1991) p. 48 )

 

반면에, 성경의 수많은 구절들은 참 신자들은 그리스도 안에서만 주어지는 믿음에 의해 칭의를 받는 것을 가르친다. 그들은 주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알고 그분이 이루신 구속을 의지함으로서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그들을 사랑하는 자로 영접한 사실을 안다. 몇몇 구절의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요 5:24).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요 10:28).

 

이와 같은 분명한 말씀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두 사람은 이러한 절대 진리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도리어 프란체스코는 정교회 대주교 바돌로매를 형제로 영접하였다. 그러나 그들의 말과 처신과 행위들을 보면 그들 모두가 그리스도 안에 있지 않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교황이 그의 방문 결과에 대해 기도로 마리아에게 감사를 드리다

어떤 로마교 웹사이트에 다음과 같이 프란체스코가 마리아에게 드린 기도가 실려있다.

“교황 프란체스코는 지난 화요일 아침에 마요론의 성 마리아 성당을 사적으로 방문하여 성지의 사도적 방문에 대한 긍정적인 결과에 대해 성모에게 감사를 드렸다. … 바티칸 라디오 방송은 바실리카의 대사제인 추기경 아브릴 카스텔로가 교황 프란체스코가 11시 정도에 성모에게 바칠 꽃다발을 안고 와서 그의 여행의 좋은 성과에 대해 감사하며 그의 순례의 열매를 성모에게 바쳤다고 보도하였다.”

(http://www.zenit.org/en/articles/pope-visits-rome-basilica-to-thank-our-lady-for-holy-land-pilgrimage)

 

성경은 우리가 신자로서 기도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를 높일 것을 가르친다. 그러므로 이 세상을 떠난 다른 성도들에게 기도하거나 언급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마리아에 대해서도 기도로 높이거나 그녀에게 기도하는 것은 말도 되지 않는다. 기도는 그 자체가 예배 행위로서 기도를 받는 대상을 최고 존재로 인정하고 높이는 것이 된다. 이러한 숭배와 높임은 오직 하나님께만 드려져야 한다. 따라서 주님만이 기도를 받을 자격이 되신다.

“너희는 알리며 진술하고 또 함께 의논하여 보라 이 일을 옛부터 듣게 한 자가 누구냐 이전부터 그것을 알게 한 자가 누구냐 나 여호와가 아니냐 나 외에 다른 신이 없나니 나는 공의를 행하며 구원을 베푸는 하나님이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느니라. 땅의 모든 끝이여 내게로 돌이켜 구원을 받으라 나는 하나님이라 다른 이가 없느니라”(사 45:21-22).

“이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사탄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마 4:10).

 

오직 주 하나님만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기도 가운데 존귀함을 받을 자격이 있다. 그러므로 그분만이 마땅이 우리의 찬양을 받으셔야 한다.

“우리 주 하나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권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나이다 하더라”(계 4:11).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기에 오직 그에게만 영광이 세세에 있을 것이다(참조, 롬 11:36). 프란체스코는 이렇게 중대한 문제에 있어서 주 하나님을 순종하지 않았다. 도리어 그는 기도로 마리아를 숭배하였다. 성경에 이러한 질문이 나온다.

“백성이 자기 하나님께 구할 것이 아니냐 산 자를 위하여 죽은 자에게 구하겠느냐 마땅히 율법과 증거의 말씀을 따를지니 그들이 말하는 바가 이 말씀에 맞지 아니하면 그들이 정녕 아침 빛을 보지 못하리라”(사 8:19-20).

따라서 주의 기록된 말씀에 따라 주께서 프란체스코에 대하여 내리신 판단은 “그에게 빛이 전혀 없다”는 사실이다. 프란체스코가 “성모에게 감사드리는” 기도를 드린 것은 그가 영적으로 깊은 어둠 가운데 있음을 보여준다. 이스라엘 방문을 마친 교황 프란체스코는 주께 기도드리기보다 로마 전통에 따라 마리아에게 기도를 드리는 거짓을 택하였다.

 

결론

교황의 성지 순례 및 그 여파는 또 다시 프란체스코의 간교한 예수회 성격을 드러내었다. 그는 계속적으로 자신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에서 정치적인 중재자 역할을 하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보다는 그는 영적 중재자의 역할을 행하고 있다고 강조한다. 여기서 우리는 여러 가지를 고민해 볼 수 있다.

 

첫째, 교황은 배도한 종교 시스템인 로마 카톨릭 교회와 실제 세상 나라인 교황청 모두를 대표하고 있다. 교황의 지배 체제는 절대적으로 권위주의와 전체주의이다.

 

둘째, 그가 그의 개인 사택으로 이스라엘 부총리 페레스와 팔레스타인 수반 압바스를 초청한 것은 분명한 정치-외교 행위였다. 이 두 사람은 종교와 관련해서 아무런 역할이 없고 단지 세상 나라들과 관련되어 있다. 여기서 두 개의 가리개가 사용되었다. 하나는 정교회 대주교 바돌로매가 초청된 것이며, 또 다른 하나는 그 모임이 기도 모임이었다는 사실이다.

 

어느 나라이든 시민 질서는 그 시민들을 어떤 종교가 주관하고 있느냐에 기반을 두고 있다. 교황은 이 사실을 매우 잘 알고 있다. 우리는 교황이 수세기 동안 자신을 “위로부터 내려온 존재”로 인식하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즉, 영적으로는 세상 나라들의 모든 왕들과 모든 것들 위에 존재한다. 프란체스코는 이 사실을 충분히 믿고 있으며 이를 실행에 옮기고 있다. 즉, 로마 시스팀과 자신을 세상의 머리로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각 나라를 방문하면서 ‘낮은’ 대표들을 방문한 후에 공적으로 그들을 기도 모임으로 초청하였다. 즉, 교황으로서 그는 모든 것 위에 그의 종교를 우월하게 세운 셈이다.

 

이러한 새로운실천은 단지 로마교가 1962년에서 1965년까지 열렸던 바티칸공의회-2에서 채택된 세계 종교간 통합 확장 원칙의 실제 적용일 뿐이다. 그 공의회에서 공식적으로 채택된 주요 변화중에 하나는 종교 통합 프로그램을 시작한 것이었다. 당시 결정 내용은 소위 ‘기독교’와 관련된 모든 종파 및 교단들을 교황의 다스림 하에 교류하도록 하는 것이다. 바티칸 공의회-2 가 열리기 전에 로마 카톨릭은 복음주의자들을 이단이라고 불렀다. 하지만 바티칸공의회-2가 열린 이후로는 로마카톨릭은 개신교 신자들을 “떨어져 나간 형제들”(separated brethren)이라고 부르면서 카톨릭 울타리로 ‘조금씩’ 계속 끌어들이고 있다(Vatican Council II Document No. 32, “Decree on Ecumenism,” Sect. 4, “조금씩 계속 완벽한 연합 공동체에 대한 장애물을 이겨내어 모든 기독교인들이 하나로 뭉쳐져 함께 성체 성사를 드려야 한다. 유일하고 참된 하나의 교회 연합체가 되어야 한다. 우리는 카톨릭 교회 안에 이러한 하나됨이 있다고 믿으며 이를 결코 포기해서는 안 된다.”)

 

더욱이 바티칸 공의회-2 이후로 카톨릭 신자들은 그 이전까지 자신들을 카톨릭 신자라고 부르던 것을 바꾸어 ‘크리스찬’이라고 부르도록 하였다. 이는 뚜렷한 변화이다. 이처럼 바티칸 공의회-2 이후로 교황 로마 교회는 그 교회가 기독교 교회로 인식될 수 있도록 쉬지 않고 노력하고 있다. 카톨릭 신도들은 모든 다른 사람들, 특히 복음주의자들을 ‘분리된 형제’로 부름으로서 그들이 모교회인 카톨릭 교회로 돌아와 하나가 될 때에야 진정한 크리스찬이 되는 것으로 가르치고 있다. 교황 로마 교회는 자신의 교회가 기독교 세계의 머리라고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날까지 쉬지 않고 수고할 것이다.

 

모든 기독교 세계를 은근 슬쩍 차지하려는 이러한 정책은 동시에 보다 더 넓은 또 다른 대상을 바라보고 있다. 즉, 교황 시스템은 낙시대로 낚아야 할 또 다른 물고기가 있는 것이다. 그 물고기들은 다름 아닌 무슬림과 유대인이다. 즉, 바티칸은 온 세상의 종교를 하나로 연합하여 그 우두머리에 앉고 싶어한다. 이에 교황은 지독하게 미묘하지만 이러한 야심차고 중대한 우두머리 자리을 차지하기 위해 지난 2014년 5월에 중동을 방문하였고 6월에는 페레스와 압바스를 로마로 초청하였다. 교황이 있는 로마 교황청에서 세계 4대 종교 지도자들이 모인 것은 교황의 영특한 초치였다.

 

이처럼 교황은 개인 사택으로 모든 종교 지도자들을 모이게 하여 비록 함께 기도는 하지 않았지만 적어도 같은 장소에서 평화를 기도하도록 부탁하였다. 따라서 네 개의 주요 종교 지도자들은 다른 종교의 구별된 예배 장소가 가지 않고도 자기 신들에게 기도할 수 있었다. 이렇게 하여 네 개의 주요 종교 사이의 평화 추구를 위한 극적인 장면이 돌출되었다. 따라서 정교회, 로마 카톨릭, 유대교, 회교는 교황의 후원 아래 평화의 선례를 세우게 되었다.

 

교황은 이처럼 우아하게 이 위대한 사건을 주관하고 지원할 수 있는 주도권을 잡았다. 교황 프란체스코는 가장한 겸손, 정교한 외교 기술, 특별한 환대, 선의를 향하는 듯한 위로를 사용하여 평화를 위한 종교간 협력의 명예로운 회장 자리에 앉았다. 물고기는 참으로 유혹의 미끼를 물더니 낚였고 어부의 물통속에 들어갔다. 이처럼 교황은 로마 교회의 영적 중보자라는 신성한 특권을 사용하여 바티칸을 위한 중대한 정치-외교의 이익을 달성하고 있다.

 

프란체스코는 변함없는 최고의 예수회원이다. 그의 마음은 예수회의 규율 조항에 따라 생각하도록 특별히 훈련되어져 있다. 거의 5백년 동안, 예수회는 로마 카톨릭이 16세기 종교 개혁 이전에 누렸던 영광을 되찾도록 하는 일을 주도해 왔다.

 

교황에게 절대적인 충성을 다짐한 뛰어난 보병대인 예수회는 각 나라에서 왕들과 통치자들과 중요한 가문의 자녀들에게 가정 교사와 학교 교사가 되었다. 따라서 그들은 국가 권력 및 영향력을 지난 자들에게 다가갈 수 있었는데 이들의 목적은 과거에 신성 로마 제국에 속하였던 국가들이 다시 로마 카톨릭의 교훈과 법에 복종하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심지어 현대의 민주주의에서도 예수회는 정치, 미디어, 국가 기관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자리에 다 들어와 있다. 그들은 언제나 로마 국가 교회의 이익만을 최고의 사명으로 여기고 활동한다. 만일 예수회 회원 프란체스코가 세계 평화 열차의 명예로운 조종사가 되었다면 이제 바티칸이 열차의 티켓 가격을 정하게 될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실제로 영적인 화평을 가능케하는 유일한 분은 주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참 신자는 그리스도 예수를 유일한 중보자로 바라본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자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딤전 2:5).

복음의 영광은 신자들의 마음이 생명의 근원이신 그리스도께 있는 것이다. 신자들은 주의 오른 편에 있는 기쁨의 강물로부터 실컷 생수를 마신다. 영생은 오직 완벽한 삶과 충분한 희생을 통해 구속을 이루신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만 찾을 수 있다.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 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그와 같은 형상으로 변화하여 영광에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고후 3:18).

우리는 주를 향해서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이는 신자는 영생을 위해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만을 쉬지 않고 바라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프란체스코와 교황 로마 교회가 사람들에게 제시하는 목표와 방향은 얼마나 성경과 철저하게 다르던가! 로마 교회는 자기 신자들, 더 나아가 온 인류를 이끌어 성체 성사를 의지하게 하고 그 성사를 지지하는 종교 통치 체체를 지지하게 하고 있다.

 

성경의복음은물리적인 표시들을 바라보도록 하지 않는다. 오히려신자들은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아야 한다.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신” 우리의 구세주이시다(히 12:2). 주 예수님만이 우리의 믿음의 주요 완성자이시다. 우리 믿음의 시작이요 끝이다. 주를 바라보는 것은 충실하게 우리 마음과 생각을 그분께 고정시킨다는 뜻이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은혜가 있다. 그분만이 각 신자들에게 필요한 모든 은혜와 필수품들을 제공하실 수 있다. 신자의 삶은 그리스도로부터 시작하여 그리스도로 향한다. 그분은 우리 신자의 삶의 시작이며 끝이다. 참된 인생은 그리스도와 함께 인격적으로 친밀한 교제 가운데 사는 것이다. 이에 사도 바울은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갈 2:20)라고 멋지게 말하였다. 이 뜻은 전능하신 거룩한 하나님에 의해 의롭다 함을 받은 사람은 주 예수 그리스도와 동행하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즉, 주님의 멍에를 지고 그분께 배우며 그분의 기록된 말씀으로부터 깊게 마시고, 인간의 생각이나 꾀를 따르지 않고 그 대신 성경의 가르침을 따르는 것을 의미한다.

은혜의 풍성함은 죄의 사악함을 훨씬 능가한다. 어떤 사람이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 예수를 자신의 유일한 구세주로 영접하고 의지하면 그는 죄로부터 자유함을 얻을 뿐만 아니라 “생명 안에서” 다스리게 된다.

“한 사람의 범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그 한 사람을 통하여 왕 노릇 하였은즉 더욱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는 자들은 한 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생명 안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롬 5:17).

그리스도에 의해 주어지는 풍성한 은혜를 받는 자는 죽음의 세력으로부터 구속함을 받을 뿐만 아니라 주님과 함께 살며 다스리게 된다. 그들은 성령에 의해 주의 말씀을 따라 행함으로 날마다 거룩하여지며 또한 끊임없이 주와 교제하게 된다. 그들은 주와 함께 영원히 살며 영원히 다스린다. 은혜는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 능력과 자유와 풍성함으로 영원히 다스릴 것이다.

“그의 영화로운 이름을 영원히 찬송할지어다 온 땅에 그의 영광이 충만할지어다 아멘 아멘”(시 72:19).

프란체스코가 영적인 중개자로서 그의 지정학적인 계획을 펼쳐 나가다 (리차드 베네트, 로버트 니콜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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