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의 참된 의미 (6)

This entry is part 9 of 20 in the series 크리스마스의 참된 의미
  1.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이제 바울은 4절과 5절 상반절을 논리적으로 연결시킨다. 그리스도께서는 “율법 아래 나셨다” 왜냐하면 “율법 아래있는 자들을 속량하시려고”. 그리스도께서 율법 아래에 나신 것과 우리가 율법의 저주로부터 속량(구속)받는 것은 밀접한 관계가 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그리스도께서는 “율법 아래에서” 흠없이 사셨다.   히브리서 4:15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말씀처럼 예수님은 율법을 완전하게 성취하셨다.

베드로 전서 2:22 “저는 죄를 범치 아니하시고 그 입에 궤사도 없으시며”

히브리서7:26 “거룩하고 악이 없고 더러움이 없고 죄인에게서 떠나 계시고 하늘보다 높이 되신 자라”

고린도 후서5:21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저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이것은 우리의 구속에 굉장히 중요하다

만일 그리스도께서 완전하게 죄가 없으셨다면 죽지 않으셔도 되었다. “율법 아래”난 자로서 단 하나의 명령을 위반했더라면 그는 율법의 저주에 굴복했어야만 했다. 그러나 물론 그리스도께서는 죄를 짓지 않으셨고 죄를 지을 수도 없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그는 율법의 아주 사소하고 작은 것 까지 다 지키셨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죽으셨다. 그 뿐만이 아니라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진노를 당하셨다. 왜? 성경은 이일이 아버지께서 우리 죄의 죄책을 그리스도께 전가시키셨고 그리고 그리스도께서는 우리 죄의 삯을 치르셨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 결과, 그리스도의 완전한 순종의 공로가 우리에게 전가될 수 있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죽음은 우리의 죄의 값을 치렀고, 그리스도의 완전한 삶은 우리가 하나님께 받아들여지는 데 필요한 모든 공로를 우리에게 제공한다. 이런 방법으로 하나님은 우리를 의롭다하는 것을 방해하는 두개의 거대한 장애물을 해결하셨다.

바로 이 방법이 바울이 로마서 3:26에 (하나님이)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믿는 자를 의롭다” 하신 방법이다. 하나님께서는 개인적으로 죄인들의 죄의 삯을 지불하셨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개인적으로 죄인들을 위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의로움을 획득하셨다. 그러므로 하나님만이 죄인을 의롭다하실 수 있다.

아마 당신은 “성경에 그렇게 써있나?”하고 궁금해할지도 모른다. 그렇다. 성경에 반복적으로 말씀하신다. 창세기 15:6으로 시작하자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성경에서는 어떤 죄인이라도 구속받을 때에는, 자신을 위해 성취했거나 또는 쌓은 의로움으로는 구속받지 못하고, 항상, 언제나, 전가받은 의로움으로 구속받는다.

로마서 4:6-7에는 다윗도 “일한 것이 없이 하나님께 의로 여기심을 받은 자”의 행복에 대하여 말했다. 이것이 바울이 로마서 4장에 말하는 전체적 요점이다. 의롭다함은 항상 행위로 되지 않고 믿음으로 되며, 믿는 자에게 전가된 의로움을 통하여 된다는 진리가 요점이다.

아브라함은 의롭다함의 교리를 이와 같이 알고 있었다. 다윗도 이해했다. 그러므로 바울이 지적했듯이, 성경 처음부터 끝까지,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전가된 공로만을 받으신다는 것을 볼 수 있다. 하나님은 결코 우리의 의로운 행위로 인하여 우리를 의롭다고 선언하지 않으신다.

그와 반대로, 하나님께서 우리의 의로움은 불완전하고 흠투성이라고 하신 것을 기억하라. 하나님이 보시기에 그것들은 전혀 선하지 않고 마치 오물이 묻은 속옷처럼 더럽다.

 우리의 행위가 사람의 기준으로 얼마나 좋은지에 상관없이 바로 이렇게 하나님께서 우리의 행위를 보신다. 우리의 행위들은 하나님께서 받으실 수 없고, 더러운 것이며, 공의로우신 하나님을 불쾌하게 한다. 그래서 우리의 순종이 절대로 선하지 않은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천국의 소망을 자신의 선행에 둔 사람들이 자신의 운명을 파멸로가게하는 이유이다.

로마서 10장에 바울이 이것을 명백하게 말했다. 왜 대부분의 이스라엘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거부했는지를 설명한다.

“형제들아 내 마음에 원하는 바와 하나님께 구하는 바는 이스라엘을 위함이니 곧 저희로 구원을 얻게 함이라 내가 증거하노니 저희가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지식을 좇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아니하였느니라(롬10:1-3)”

그들이 믿는다면 그들에게 전가되었을 그리스도의 완전한 의로움을 거부하고, 그대신 그들은 그들 자신의 불완전한 의로움을 선택했다.그들은 이 시대의 많은 사람들처럼 그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을 행하면 하나님께 받아들여질 것이라고 착각하고 있었다.

그 생각엔 분명히 두가지 문제가 있다. 첫째, 우리의 최선이라도 완전한 하나님 보시기에 선한 것이 아니다. 둘째, 정직하게 말하자면 아무도 나의 최선을 다했다고 정말로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그러므로 어떤 기준으로도 그들은 실패할 운명일 뿐이다. 그들의 죄는 덮어지지 않아서 그들은 율법에 의해 정죄받게 되었다.

복음의 좋은 소식을 들어라. 믿는 자는 누구든지 그리스도가 율법을 완성하신것이 그들의 것으로 계산되고, 그리스도의 보혈은 그들의 실패에 대한 값을 지불한 것으로계산된다.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롬10:4).”

“마침”으로 번역된 단어는 그리스어 telos를 번역한 것이다. 이 단어의 뜻은 아주 강하다. 그리스도가 율법이 요구하는 모든 것을 성취하셨다는 것을 아주 강하게 표현하는 단어이다.

율법의 궁극적인 목표 즉 완전한 의로움을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믿는 자들이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스도의 의로움이 믿음으로 우리에게 전가되고,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으시는 이유이다. 이것이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얻는 교리이다. 이것이 기독교가 사람이 만든 다른 모든 종교와 다른 이유이다.

로마서 4:4-5 “일하는 자에게는 그 삯을 은혜로 여기지 아니하고 빚으로 여기거니와 일을 아니할지라도 경건치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

이 구절은 만일 우리 자신의 의로움을 얻으려고 한다면, 실패할 것이고 우리 죄의 삯을 우리가 지불해야할 것이며, 그러나 만일 경건하지 않은 자를 의롭다하는 하나님을 믿으면,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완전히 용서하기 위한 값을 이미 치르셨으며 그리스도의 완전한 의로움이 우리에게 전가될 것이다 라는 뜻이다

사도 바울은 바리새인으로서 율법에 따라 자기 자신의 의로움을 세우려고 애쓰면서 고생했던 사람이었다. 그가 그 노력을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빌립보서3:4-8 “만일 누구든지 다른 이가 육체를 신뢰할 것이 있는 줄로 생각하면 나는 더욱 그러하리니 내가 팔 일 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의 족속이요 베냐민의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열심으로는 교회를 핍박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로라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 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왜 자기 자신의 모든 의로움을 배설물처럼 여기고 버리는 것이 왜 그토록 중요했을까? 왜냐하면 그는 그것이 잘못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사실상, 그리스어 skublon, 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는데, 이 단어는 배설물이라는 단어보다 훨씬 강한 뜻이 있다. 킹 제임스 번역 성경에는 “똥”이라고 번역되어 있다. 그리고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의로움을 받을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빌립보서 3:9에서 바울은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서 난 의라”

 이것이 크리스마스의 참된 의미이다.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의롭게 할 수 없는 죄인들을 의롭게 하시려고 오셨다.

이 진리는 감정의 문제가 아니지만, 그러나 참으로 우리 마음을 깊이 감동시킨다. 단지 기쁨의 메세지가 아니지만, 그러나 이것보다 더 우리에게 기쁨을 가져다 주는 다른 메세지는 없다.

이번 크리스마스에 크리스마스 메세지를 생각하면서, 우리의 생각이 구유에 누인 마리아의 아들을 넘어 십자가에 달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생각하고, 우리의 마음이 크리스마스의 참 의미의 부요함을 생각하며 진지한 경이로움으로 가득차게 되기를 바란다.

 

“오늘 날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Luke 2:11).”

크리스마스의 참된 의미 (5) 임마누엘, 그 이름의 선물

Phil Johnson은 Grace to You (www.gty.org)의 Managing Director로 일하고 있으며, 존 맥아더 목사의 많은 책들을 편집 하였고, Grace Church의 장로로서Fellowship Group인 Gracelife를 인도하는 목회자로 섬기고 있다. 부인 Darlene 사이에 3명의 자녀와 4명의 손자들을 두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