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사람을 죽인 늙은 선지자 (왕상 13)

성경에 나오는 흥미로운 이야기 중 하나가

바로 이 열왕기상 13장에 등장하는
하나님의 사람과 벧엘의 한 늙은 선지자 이야기입니다.

이야기의 배경은 북이스라엘과 남유다의 분열 왕국 시대 초기입니다.
B.C. 931년경에 일어난 일입니다.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이 이스라엘 열 지파의 청원을
무자비하게 거절하면서
북 이스라엘 왕국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처럼
여로보암에게로 넘어가게 됩니다(왕상 11:26~40).

하나님은 여로보암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만일 내가 명령한 모든 일에 순종하고
길로 행하며 눈에 합당한 일을 하며
다윗이 행함 같이 율례와 명령을 지키면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내가 다윗을 위하여 세운 것같이 너를 위하여
견고한 집을 세우고 이스라엘을 네게 주리라(왕상 11:38)

그러나, 여로보암은 자신의 왕위에 대한 걱정으로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역사적으로 의미가 있는 벧엘과
영토의 북단인 단에 금송아지를 만들어 백성들에게 절하게 합니다.

예루살렘 성전으로 민심이 향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였습니다(왕상 12:25~29).

일이  되었으니
이는 백성들이 단까지 가서 하나에게 경배함이더라(왕상 12:30)

이것은 하나님 앞에 죄였습니다.
여로보암은 백성들을 하나님에게서 돌아서게 하였습니다.

여로보암의 죄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는 산당을 지었습니다.
그리고 레위 자손이 아닌 보통 백성으로 제사장을 삼고
여호와의 절기가 아닌 임의로 만든 날을 절기로 삼았습니다(왕상 12:31-33).

엘리의 두 아들들이 여호와의 제사를 멸시한 것처럼
여로보암은 여호와께서 명하신 제사의 규례를 모두 무시하기 시작했습니다.

13장은 “보라!”로 시작됩니다.

바로 이 때 하나님의 사람이 여호와의 부르심을 입고 여로보암에게 찾아온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여로보암의 죄를 꾸짖으면서
남 유다 왕국에 다윗의 자손으로 요시야라는 왕이 나올 것인데
그가 이 모든 패역하고 타락한 제사장들을 응징할 것이라 예언합니다(왕상 13:1~2).

그리고 이 예언이 확실할 것에 대한 징조로
제단이 갈라지고 그 위에 있는 재가 쏟아졌는데,
이를 막기 위해 하나님의 사람을 잡으라고 손을 펴서 말하던
여로보암의 손이 말라버리게 됩니다(13:3-5).

여로보암은 하나님의 사람에게 간청하여
손을 다시 회복시켜 달라고 구하고
여호와의 은혜로 여로보암은 손이 다시 성하게 됩니다(13:6).

왕은 그 은혜에 감사하며 하나님의 사람에게 예물을 주기 원했지만(7절)
하나님은 사람은 이렇게 말합니다.

왕께서 왕의 절반을 준다 할지라도
나는 왕과 함께 들어가지도 아니하고
이곳에서는 떡도 먹지 아니하고 물도 마시지 아니하리니
이는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명령하여 이르시기를
떡도 먹지 말며 물도 마시지 말고
왔던 길로 되돌아가지 말라 하셨음이니이다(13:8~9)

열왕기상 13장에 등장하는
하나님의 사람, 늙은 선지자, 여로보암의 이야기의 가장 큰 핵심은
여기에 밑줄 친 내용입니다

왔던 길로 되돌아가지 말라!

이것이 분명한 하나님의 말씀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죄의 길로 되돌아간 여로보암을 책망하기 위해 왔고
자기 자신도 말씀에 순종하여 다른 길로 가고
벧엘에 오던 길로 되돌아가지 않았습니다(13:10).

13장은 이렇게 마무리됩니다.

여로보암이 후에도 그의 악한 길에서 떠나
돌이키지 아니하고 다시 일반 백성을 산당의 제사장으로 삼되
누구든지 자원하면 사람을 산당의 제사장으로 삼았으므로
일이 여로보암의 집에 죄가 되어
집이 위에서 끊어져 멸망하게 되니라(왕상 13:33-34)

자신의 잘못된 그 길로 되돌아갔던 여로보암은 멸망의 수순을 밟습니다.

벧엘에 살고 있는 한 늙은 선지자 이야기가 뜬금없다고 느껴질 수 있지만,
늙은 선지자가 하나님의 사람을 가던 길로 되돌아가게 했을 때
사자에게 찢겨 죽임을 당하는 심판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명령에서 떠나 자신의 죄악된 길로 되돌아간 자에 대한
하나님의 강력한 심판이며, 여로보암과 이스라엘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무서운 경고의 메시지(object lesson)였습니다.

저는 여기서 늙은 선지자가
하나님 뜻을 어떻게 분별했는지 생각해보기 원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람이
하나님으로부터 직접적인 말씀을 받았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습니다.

“왔던 길로 되돌아가지 말라!”는 아주 분명한 말씀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늙은 선지자는 하나님의 사람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도 그대와 같은 선지자라
천사가 여호와의 말씀으로 내게 이르기를
그를 집으로 데리고 돌아가서 그에게 떡을 먹이고
물을 마시게 하라 하였느니라(왕상 13:18)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사람에게 말씀하신 것과 정 반대의 계시를
이 늙은 선지자에게 하셨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은 이 늙은 선지자가 하나님의 사람을 “속임이라”고 말합니다.

선지자는 악한 의도로 속였던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후에 하나님의 사람이 사자에게 찢겨 죽었을 때,
그는 시체를 들어 성읍으로 가져와 그를 위해 슬피 울고
장사한 후 나중에 자신도 그 옆에 묻히기를 원했습니다(왕상 13:29~31).

악한 의도가 아니었다면 늙은 선지자는
하나님이 하시지도 않은 말씀을 받았다고 주장했을까요?

그는 하나님의 사람에게 잘 대접해주기 원했을 지도 모릅니다.

혹은 하나님의 사람이 선포한 무서운 저주,
벧엘에 있는 제단과 사마리아 성읍의 모든 산당에 대한 말들이
자신의 호의와 섬김으로 무효화되기를 원했을지도 모릅니다.

후에 그가 하나님의 사람을 장사한 후

그가 여호와의 말씀으로 벧엘에 있는 제단을 향하고
사마리아 성읍들에 있는 모든 산당을 향하여
외쳐 말한 것이 반드시 이룰 것임이니라”(왕상 13:32)

고 말한 것을 보면 그럴 가능성이 있어 보입니다.

늙은 선지자는 하나님께서 직접 자신에게 그런 말씀을 하지 않으셨다는 것을
스스로 잘 알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음성도 없었고, 계시도 없었으며,
천사를 통해 말씀하시지도 않았고,
환상을 보거나 꿈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계셨던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이르기를…”이라는 말로
하나님의 사람을 완전히 속였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을 집으로 데리고 온 늙은 선지자에게
이제 분명한 하나님의 말씀이 임했습니다.

그 말씀은 자신이 데리고 온 하나님의 사람에 대한 말씀이었습니다.

네가 여호와의 말씀을 어기며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내리신 명령을 지키지 아니하고
돌아와서 여호와가 너더러 떡도 먹지 말고
물도 마시지 말라 하신 곳에서
떡을 먹고 물을 마셨으니
시체가 조상들의 묘실에 들어가지 못하리라(왕상 13:21~22)

하나님의 무서운 경고는 현실로 이루어졌습니다.
나귀를 타고 가는 길에 사자를 만나
사자에게 찢겨 죽임을 당하게 됩니다(왕상 13:23~28).

사자는 배고팠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나귀는 건드리지 않았고 죽은 사람을 먹지도 않고
시체 옆에 서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이 말씀에 불순종한 이유로
심판 받은 것이 분명하다는 것입니다.

죄의 길로 되돌아가면 죽임을 당한다는 분명한 메시지가
여기에서도 다시 한 번 드러납니다.

늙은 선지자는 분명한 하나님의 말씀에서 거리가
자신의 생각을하나님의 이라고 말하였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이러한 표현을 많이 듣습니다.

하나님이 내게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이 이렇게 이야기 하시는 것입니다.

내게 분명히 말씀을 주셨습니다.

음성을 들었습니다.

말씀을 받았습니다.

내게 감동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뜻으로 분별했습니다.

마치 늙은 선지자가 “여호와의 말씀으로 내게 이르기를…”이라고
말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계시, 말씀, 음성, 환상, 무엇이 되었든
그것이 기록된 분명한 하나님의 말씀과 다르다면
그것은 늙은 선지자가 것과 똑같은속임입니다.

성령님께서는 한 분명한 의미를 가지고 말씀을 계시하셨으며
그 본래 의미를 벗어나 성경을 내가 원하는 방식과 모양으로
해석하고는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 뜻, 감동의 메시지라고 주장하는 것은
정확히 이 늙은 선지자가 하고 있는 것과 같은 일입니다.

성경에 기록된 “내려간다, 올라간다, 멀리 간다”등의 단어로
선교지를 결정하면서 이것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았다고 하거나

원래 성경의 기록된 의미를 벗어나 특정 단어나 구절만 가져와서
하나님이 그것으로 감동케 하시어 특정 메시지를 주셨다고 말하는
모든 노력들은 결국 이 늙은 선지자의 오류를 벗어날 수 없는
참으로 위험한 행위입니다.

늙은 선지자가 “하나님이 내게 그렇게 말씀하셨다”고 말했을 때
그 위험한 발언은 하나님의 사람의 생명을 빼앗았습니다.

“하나님이 내게 말씀하셨다” “말씀을 받았다”는 발언은
오늘날 우리에게 여러 가지 면에서 해를 끼칩니다.

첫째로, 확실한 하나님의 말씀에서 관심을 돌리게 합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마땅히 자신에게 주어진 말씀을 붙잡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늙은 선지자가 자신의 생각으로 하나님의 뜻을 받았다고 했을 때
하나님의 사람은 분명한 하나님의 말씀을 버렸습니다.

경험, 감동, 체험을 앞세워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고 주장하고
마치 지금 실시간으로 새로운 계시를 주시는 것같이 표현하는 것들은
결국 하나님의 이미 기록된 분명하신 뜻에서 관심을 돌리게 만듭니다.

만약 지금 이 시간 나에게 하나님이 새로운 뜻과 계획을 말씀해주신다면
수 천년 전에 다른 사람에게 하나님이 계시하신 내용이
나에게 무슨 이득이 있겠습니까? 낡고 오래된 이야기에 불과할 것입니다.

새로운 뜻, 감동, 직접적인 계시를 추구하는 사람에게는
언제나 기록된 말씀의 본래 의미를 찾고 순종하려는 노력에서
멀어진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들은 단지 성경에 써 있는 글자를 이용해서
하나님의 감동과 신비로운 계시 과정을 통해
직접적인 음성과 뜻을 알아내려고 노력하는 것에 치중되어 있습니다.

말씀의 본래 의미와 뜻과는 관계 없이 말입니다.

둘째로, 죄를 짓게 합니다.

늙은 선지자는 신성모독의 죄를 지었습니다.

하나님이 하시지도 않은 말을 하셨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이는 매우 무서운 죄입니다.

율법에서는 거짓 선지자들을 죽이라고 명하고 있습니다(신 18:22).
거짓 선지자는 하나님이 하시지도 않은 말을 했다고 주장하는 자들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 “말씀을 받았다”는 발언은
만약 그것이 사실이 아니라면 엄청난 죄입니다.

거짓 선지자, 거짓 교사들이나 하는 신성모독의 죄입니다.
구약시대였으면 돌로 쳐서 죽여야 하는 죄입니다.

만약 그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오지 않았을 가능성이 0.01%라도 있다면
그렇게 말하지 않는 것이 좋은 일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이름이 더럽혀지는 것을 절대로 간과하지 않으십니다.

셋째로, 다른 사람을 실족하게 만듭니다.

늙은 선지자의 죄는 하나님의 사람이 죄를 짓게 만들었습니다.

늙은 선지자가 “하나님께 말씀을 받았다”고 말했을 때,
하나님의 사람은 진짜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고, 죄를 짓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는 말은 본인 스스로 짓는 신성모독의 죄일 뿐만 아니라
다른 성도를 죄로 인도합니다. 실족(cause to sin)하게 만듭니다.

어렸을 때부터 이런 표현을 오래 들었던 사람은
자신에게 왜 하나님이 음성으로 감동으로 말씀하시지 않는지 의문을 갖게 됩니다.

뭔가 신앙에 문제가 있다고 분별합니다.

직접 계시를 받는 사람을 영적으로 더 뛰어나고 신비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말씀을 자신의 뜻대로 마음대로 적용하고 해석하는 것이
지극히 당연하고 그것이 더 영적으로 훌륭한 것이라고 판단하게 만듭니다.

그리고 자신도 그렇게 할 수 있게 되기를 기도하며 희망하고
그렇게 되려고 노력합니다. 그러한 표현들을 쓰게 만듭니다.

그게 더 정상적이라고 생각하게 합니다.

신성모독의 죄를 사모하고 추구하게 만듭니다.
돌로 쳐서 죽여야 했던 죄를 사모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넷째, 죄의 결과(징계) 맛보게 합니다.

창세기부터 오늘 날까지 죄가 그 결실을 맺지 않은 적은 없습니다.
다윗은 밧세바와 동침하고 그녀의 남편을 죽였을 때,
하나님 앞에 회개했고 용서를 받았지만,
그 결과 가족 안에서 환난(압살롬, 암논, 다말)을,
그리고 온 국가의 환난을 죄의 결실로 맛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분명하신 말씀의 뜻에서 돌이켜
늙은 선지자가 받았다고 주장하는 하나님의 계시를 좇아 행했고,
그 결과 사자에게 찢겨 죽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
계시를 받았고 특별한 감동을 받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그 결과를 고스란히 받을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만약 그것이 사실이라면 다행이지만,
그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 아니라면,
신성모독의 죄를 짓고 다른 성도를 그 죄로 인도한 것에 대한
대가를 반드시 치르게 될 것입니다.

분명한 것은, 말씀의 원래 쓰여진 의미와 전혀 관계없이
받았다고 주장하는 하나님의 뜻은 100% 하나님으로부터 오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성령께서 원래 가지고 계셨던 의도와 다른 의미로
새롭게 말씀을 조명해서 우리에게 주신다면
성령은 더 이상 진리의 영이 아닙니다.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분이 아닙니다.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주의 말씀은 영원하다고 하신 말씀이
거짓이 되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하나님의 사람은 마땅히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어야 했습니다.
하나님이 이미 분명하고 명백하게 밝히신 그분의 말씀에서 돌이키지 말아야 했습니다.

늙은 선지자는 자신이 새로운 하나님의 뜻을 받았다고 주장했습니다.
하나님이 감동하셔서, 천사를 통해서,
기존의 하나님의 뜻에서는 거리가 먼 하나님의 계시를 주셨다고 말했습니다.

이 늙은 선지자의 거짓말을 하나님의 사람이 좇았을 때
그는 말씀을 거절한 대가로 목숨을 빼앗기게 되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이미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분명히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미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우리를 의로 인도하고 영적으로 성장시키는 데 충분합니다.

오늘날 누군가가 “말씀을 받았다”고 말하거나
”하나님이 그렇게 나에게 말씀을 주셨다”고 확신한다면
그것은 이미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으로
반드시 검증 되야 합니다.

만약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과 거리가 먼 이야기라면
왜 “하나님께 받았다”고 주장하는 것이 무서운 신성모독의 죄며
다른 성도를 그 신성모독의 죄로 이끌어가는 무서운 행위인지
반드시 깨달아야 합니다.

만약 내 주위에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죄에서 돌이키게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이 하지 않은 말을 했다고 주장하는 것은 사기 죄에 해당합니다.

하나님을 가지고 성도를 대상으로 사기 죄를 짓는 것은
말로 다 할 수 없을 만큼 무겁고 무서운 죄라는 사실을
이 늙은 선지자와 그의 손에 죽은 하나님의 사람의 이야기는
오늘날 우리에게 교훈하고 있습니다.

Grace to Korea의 자문 목회자이시며 고정 기고자로 봉사하고 있습니다.
The Master’s Seminsry에서 M.Div와 Th.M(신약전공) 과정을 마친 후, 현재 유평교회의 담임 목회자이며,  Master’s University에서 성경적 카운셀링의 대학원 과정을 마친 아내 김 선미 자매와 2008년 결혼하였습니다. 저서로는 “야고보서 강해’, “정직한 크리스챤의 질문들”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