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알기 위해 무엇이든 경험해야 하는가?

뭐든 해봐야 한다!

경험해보지 않고서는 알 수 없다!

이와 같은 말들은 상당히 설득력이 있습니다.

사람은 경험을 통해 배우고 경험을 통해 자라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께서 계속해서 말씀하신 것은
그들을 하나님이 어떻게 인도하셨는지
기억하라는 것이었습니다(신 7:19; 8:2, 18; 9:7; 15:15; 24:18).

교회가 주의 오실 때까지 해야 할 일도
그리스도가 교회를 위해 흘리신 피와 찢기신 몸,
그것을 기억하는 것입니다(고전 11:26).

성경 역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행하신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와 섭리를 보면서
과거의 경험들을 오늘날 우리에게 적용시켜
그 하나님이 바로 우리 하나님이심을 믿고
찬양하며 예배하기 위해 기록된 책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직접적으로 이런 말씀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들 중의 어떤 사람들이
주를 시험하다가 뱀에게 멸망하였나니
우리는 그들과 같이 시험하지 말자…

그들에게 일어난 이런 일은 본보기가 되고
또한 말세를 만난 우리를 깨우치기 위하여
기록되었느니라(고전 10:8, 11)

성경은 과거 이스라엘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는데,
그것은 바로 오늘 우리를 깨우치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이처럼
과거경험오늘을 살게 해주는 교훈이 됩니다.

그러나, 이렇게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믿지 않는 사람과 연애도 해봐야 해,
그래야 왜 안 좋은지도 배울 수 있어.

요즘 한창 말이 많은 영화 <노아>에 대해서도
보는 것과 보지 않는 것에 대한 견해의 차이가 존재하지만,
그 가운데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무엇이든 봐야 분별력이 생긴다.

경험해 봐야 무엇이 이로운지 해로운지도 알 수 있다.

심지어 이렇게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세상 문화에 대해서 나쁘다고 말할 수 없다.
왜냐하면 무엇이든지 그것을 통해 배울 점이 있기 때문이다.

과연 이러한 생각은 옳은 것일까요?

“뭐든지 경험해봐야 한다”는 말은
다음과 같이 쉽게 극단적으로 반박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살인하자, 살인을 통해도 배울 수 있는 것 아니냐?
우리 간음하자. 간음을 통해서도 배우는 게 있을 것이 아니냐?

불륜도 저지르고 술도 마시고 마음껏 살아보자.
방황도 해보고 사람도 때려보고, 경험을 통해 배울 수 있다고 하지 않았냐?

분별력을 키우기 위해
포르노도 보고, 잔인한 하드코어 영화도 보고,
철학을 경험하기 위해 여러 철학서적을 사서 보자.
유교, 불교도 경험해보고, 사이비 이단도 한 번 경험해보자.

그러나 이러한 비판은
“뭐든지 경험해봐야 한다”는 말을 비약적으로 오해한 경우입니다.
”뭐든지 경험해봐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 가운데
위와 같은 말에 동의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또한 위와 같은 비판은 “뭐든지 경험해봐야 한다”는 생각의
근본적인 문제에 대해서 다루지 못합니다.

저는 이 칼럼을 통해
”뭐든지 경험해봐야 한다”는 생각이 지닌
근본적인 문제를 다루려고 합니다.

근본적으로 뭐든지 경험해봐야 한다라는 말
로마서 6장에 나오는 사람들의 생각을 반영합니다.

그런즉 무슨 말을 하리요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냐? (롬 6:1)

“이 사람들은 은혜를 더하게 하기 위해 죄에 거해도 된다”라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죄가 더한 곳에 은혜를 넘치게 하시기 때문에(롬 5:20)
계속해서 죄를 지어도 하나님이 은혜를 주실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뭐든지 경험해봐야 한다는 주장의 근본적인 생각이 이와 같습니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분명하게 자기의 뜻을 보이셨습니다.

믿지 않는 자와 연애, 결혼은
하나님이 명백하게 죄라고 말씀하셨습니다(고후 6:14-18).

술 취하는 것에 대해서도 방탕한 것이라 말씀하셨습니다(엡 5:18).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결혼을 깨뜨리지 말라고 하셨습니다(마 19:6).

그러나 뭐든지 경험해봐야 한다는 생각은
하나님이 금하신 이러한 일들도 경험해봐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면 그 안에서 배우는 것들이 있다고 합니다.

다시 말해, 그러한 경험 가운데 하나님의 은혜가 더 넘칠 것이라는 말입니다.

바울은 이러한 생각들을 가진 자들에게 단호히 말합니다.

그럴 수 없느니라!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리요(롬 6:2)

더 나아가 바울은 성도의 삶의 방향이 완전히 뒤바뀌었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 대하여는 살아 있는 자로 여길지어다(롬 6:11)

여기에 뭐든지 경험해봐야 한다는 생각의
근본적인 문제가 드러납니다.

뭐든지 경험해봐야 한다는 생각은
자신이 이미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고
이제는 하나님께 대하여 살아 있는 자라는 것을 망각했다는 것입니다.

여전히 자기 삶의 주인은 자기 자신입니다.

내가 보고 싶으면 보고, 내게 유익이 되면 하고,
내가 경험해 보고 싶으면 경험해 보고, 내가 원하면 얻기 위해 노력하는 것입니다.

내가 보기에 좋으면 좋은 것이고, 내가 보기에 싫으면 좋지 않은 것이며,
내가 볼 때 문제가 없으면 괜찮은 것이고,
내가 볼 때 먹음직하고 보암직하고 유익이 될 것같이 탐스러워 보이면
하나님이 그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든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뭐든지 경험해봐야 한다”는 생각 가운데
하나님의 자리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나의 우선순위 뒷자리로 밀려나 있습니다.
하나님은 일단 내가 나의 기준으로 결정해서 다 경험하고 나면
어떻게든 좋은 교훈을 주시는 뒤처리 역할 밖에 되지 않는 분입니다.

이것이 근본적인 문제입니다.

바울은 갈라디아서에서 분명하게 이와 반대되는 삶의 자세를 보여줍니다.
로마서 6장에서 강력하게 주장한 바대로
사도바울은 살았던 것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 2:20)

모든 그리스도인은 예수를 주로 영접한 사람들입니다(롬 10:9).

예수를 사랑하며 그 계명에 순종하는 자들입니다(요 14:21).

주를 위해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를 좇는 자들입니다(마 10:38).

이 모든 것을 강제가 아닙니다.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해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기 때문이며(고후 5:14)
우리가 그를 사랑하는 것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요일 4:19).

그러므로

성도의 마땅한 자세는 “뭐든지 경험해봐야 한다”가 아닙니다.

“뭐든지 주를 위해 한다”입니다(고전 10:31).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롬 14:8)

바울은 빌립보서에서 삶의 모든 방향이
주님께 맞춰져야 한다는 것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끝으로 형제들아
무엇에든지 참되며 무엇에든지 경건하며
무엇에든지 옳으며 무엇에든지 정결하며
무엇에든지 사랑 받을 만하며
무엇에든지 칭찬 받을 만하며
무슨 덕이 있든지
무슨 기림이 있든지
이것들을 생각하라(빌 4:8)

이것들은 9절에 나오는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가리킵니다.
사도 바울이 그들에게 말과 삶으로 전해준 하나님의 말씀을 말합니다.

성도는 모든 생각에 있어, 결정에 있어, 분별에 있어
하나님의 말씀을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삶의 중심에 자리잡아야 합니다.

참되고, 경건한 것, 옳고 정결한 것
사랑 받을 만한 것과 칭찬 받을 만한 것
그것을 결정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심을 범사에 인정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내가 하는 모든 생각과 행동의 절대기준이 되야 합니다.

분별력을 키우기 위해 무엇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비그리스도인과의 연애 경험을 통해 내가 무엇을 배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결정하는 것이며,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삶을 사는 것입니다.

뭐든지 경험해 봐야 한다는 말의 진정한 문제는
”무엇을”경험하느냐 보다는
그 말 가운데 무시되고 있는 하나님의 권위에 있습니다.

고린도전서10장은 과거 하나님의 권위를 무시한 자들처럼
살지 말라고 경고합니다.

이러한 일은 우리의 본보기가 되어
우리로 하여금
그들이 악을 즐겨 한 것같이
즐겨 하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 함이니(고전 10:6)

창세로부터 오늘날까지 하나님의 권위를 무시한 자들은
늘 자신이 선택한 악을 즐기며 살아왔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지 아니하고 자기 삶의 주인이 되어
영혼의 주인 되신 하나님을 내 마음의 중심에서 몰아내는 것
그것은 악입니다.

성경은 우리로 하여금 그러한 본을 따르지 말라고 말합니다.

“뭐든지 경험해봐야 한다”는 생각은
다시 한번 우리에게 하나님을 마음의 중심에서 몰아내자고 합니다.

하나님의 영광보다는 나의 경험과 유익을 추구하자고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보다는 내 생각과 분별이 우선순위 앞에 놓여 있습니다.

바울의 마지막 경고에 귀를 기울이십시오.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전 10:12)

필자 소개: 조정의 목사: 마스터스 신학대학원 (tms.edu) 에서 M.Div와 Th.M(신약전공) 과정을 마친 후, 현재 유평교회에서 청년회와 주일, 수요일 설교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아내 김선미 자매와 2008년 결혼하였습니다.

* 위의 글은 조 정의 목사의  허락을 받아 게재한 것입니다.

 

 

 

Grace to Korea의 자문 목회자이시며 고정 기고자로 봉사하고 있습니다.
The Master’s Seminsry에서 M.Div와 Th.M(신약전공) 과정을 마친 후, 현재 유평교회의 담임 목회자이며,  Master’s University에서 성경적 카운셀링의 대학원 과정을 마친 아내 김 선미 자매와 2008년 결혼하였습니다. 저서로는 “야고보서 강해’, “정직한 크리스챤의 질문들”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