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8): 하나님께서 우리의 염려를 이기신다.(2)

This entry is part 8 of 11 in the series 불안, 그리스도인의 대적

하나님께서는 만물을 주권적으로 다스리신다. 그 사실 자체만으로도 우리는 염려의 대부분을 떨쳐버려야 마땅하다. 그리고 우리가 그의 자녀들에게 베푸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돌보심을 생각할 때 우리의 염려가 얼마나 어리석고 불필요하며 무력한 것인지 알게 된다.

우리는 염려를 버리라는 마태복음 6장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살펴보고 있다. 지난 시간에 이어서 우리를 향한 하나님 아버지의 돌보심에 대한 생생한 두 가지 예시들을 살펴보자.

염려는 어떠한 생산적인 것도 이룰 수 없다.

마태복음 6장에서 예수님께서는 염려의 어리석음을 강조하는 매우 실제적인 가르침을 주신다.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라도 더할 수 있겠느냐”(마 6:27) 염려한다고 해서 우리의 수명이 길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짧아질지도 모른다. 메이요 클리닉의 공동 설립자 찰스 메이요는 염려가 혈액 순환과 심장과 분비선 및 신경계 전체에 부정적으로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의학 잡지 American Mercury에서 메이요는 과로로 사망한 사람은 본 적이 없지만, 염려 때문에 사망한 사람은 많이 있었다고 밝혔다. 당신은 염려로 인해 죽을 수 있을지는 몰라도, 수명이 늘어날 일은 절대로 없을 것이다.

우리가 사는 이 시대에는 사람들이 수명을 연장하는데 혈안이 되어있다. 사람들은 비타민과 건강 스파와 특효약과 운동에 과도한 관심을 쏟는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몇 살까지 살지를 이미 결정하셨다. 욥기 14장 5절은 인간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의 날을 정하셨고 그의 달 수도 주께 있으므로 그의 규례를 정하여 넘어가지 못하게 하셨사온즉”

이 말씀은 우리가 우리의 식단과 운동에 대한 현명한 충고들을 모두 무시해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그것들은 삶의 질을 증진시키지만 삶의 양은 보증하지 않는다. 내가 운동을 하고 건강한 식단을 유지한다면 신체와 뇌의 기능이 더 좋아지고 기분도 더 좋아질 것이다. 그러나 나는 매일 동네를 조깅하고 건강한 식단을 지키고 균형잡힌 식사를 한다면 하나님께서 나의 수명을 늘려주실 것이라고 착각하지는 않을 것이다.

당신이 언제까지 살 것이며 당신의 수명을 얼마나 더 연장시킬 수 있는지 염려하는 것은 하나님을 불신하는 것이다. 당신이 하나님께 당신의 삶을 드리고 순종한다면 그는 당신이 충만한 삶을 누리도록 하실 것이다. 당신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아간다면, 당신은 충만한 인생을 경험할 것이다. 그것이 길든지 짧든지, 당신의 인생은 아주 멋질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들풀까지도 아름답게 입히신다.

예수님은 이어서 염려하지 말아야 할 이유에 대하여 자연으로부터 또 하나의 가르침을 주신다. “또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마 6:28-30)

어떤 사람들에게는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장소가 옷장이다. (성경이 기록된 시대의 주요 걱정거리였던) 입을 옷이 전혀 없어서 염려하는 대신에, 싫증을 잘 내는 이 사람들은 그들이 최고의 모습으로 보이지 않을까봐 두려워한다. 값비싼 옷에 욕심을 부리고 자신의 외모를 우상화하는 것은 우리 사회에서 흔한 죄이다.

쇼핑몰에 갈 때마다 나는 선반에 진열된 수많은 옷들을 보고 놀라곤 한다. 나는 그 상점들이 재고를 어떻게 유지시키는지 모르겠다. 우리는 패션을 숭배한다. 우리는 인격의 아름다움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것들을 육체에 걸치기 위해 돈을 흥청망청 쓴다. “너희의 단장은 머리를 꾸미고 금을 차고 아름다운 옷을 입는 외모로 하지 말고 오직 마음에 숨은 사람을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하라 이는 하나님 앞에 값진 것이니라”(벧전 3:3-4)

그러나 당신이 값비싼 옷들에 대하여 말하고 싶다면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이 줄 수 있는 최고의 의복도 “들의 백합화”와 비교조차 할 수 없다고 하신다.(마 6:28) 당신 주변에 있는 가장 소박하게 생긴 꽃들을 관찰해보라. 소탈한 아름다움이 있을 것이다. 위대한 왕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의복일지라도 자세히 살펴보면 상복과 같은 것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당신이 꽃잎을 관찰한다면 당신은 눈에 보이는 광경에 넋을 잃고 감탄할 것이다. 만약 당신이 꽃을 자세히 살펴본다면 꽃잎 안에는 인간의 모든 재주로는 복제할 수 조차 없는 질감과 형태와 디자인과 실체와 색채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이 가르침의 요점은 무엇일까?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마 6:30) 들에서 자라는 꽃들은 수명이 매우 짧다. 사람들은 죽은 꽃들을 모아다가 휴대용 난로를 위한 연료로 사용한다. 일시적인 연료용 사료에 그와 같은 아름다움을 입히시는 하나님께서 그의 영원한 자녀들을 위해 필요한 의복을 당연히 주실 것이다. 다음의 작자 미상의 시가 오늘의 가르침을 단순하게 표현하고 있다.

들꽃이 참새에게 말했다.

“이 불안해하는 인간들이

왜 그리도 염려에 사로잡히는지

나는 정말로 알고 싶군.”

참새가 들꽃에게 말했다.

“친구, 그것은 분명 그들에게는

나와 자네를 돌보시는

하늘의 아버지가 없기 때문일걸세.”

(Anxious for Nothing에서 발췌하였음.)

 

http://www.gty.org/Blog/B121115에 가면 원문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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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7): 하나님께서 우리의 염려를 이기신다. (1) 불안(9): 믿음과 염려는 양립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