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죄인이라구요?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하는 사람에게
그 문제로부터 벗어나야 한다는 것을 설득시키는 것만큼
어려운 일은 없습니다.

도박에 중독 된 사람에게 그 도박이 얼마나 위험하고 파괴적인 것인지
아무리 설명해도
“나는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끊을 수 있어!
이건 별 거 아니야, 이 정도는 누구나 다 하는 거야”
라고 말하는 사람은
아무리 설명하고 설득하고 달래고 격려하고 협박하고 화내도
눈 하나 깜박 하지 않고 도박에서 벗어날 필요성을
조금도 느끼지 못합니다.

인류의 가장 큰 문제인 죄의 문제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의 죄가 얼마나 큰 문제이며
얼마나 파괴적이고 무서운 결말을 향해 돌진하고 있는지
깨닫지 못하는 자들에게 복된 소식인 복음은
별볼일 없는 그저 그런 이야기가 되고 맙니다.

“나? 내가 죄인이라고?”

“물론 내가 완벽하다는 것은 아니지, 그러나 내가 죄인이라고?”

“난 남에게 부끄럽지 않을 만큼 열심히 살았는데?”

“나 스스로 당당하고 깨끗하게 살려고 얼마나 노력했는데?”

“내가 죄인이라고? 잘 모르겠는데?”

세상에는 정말 이렇게 말할 자격이 있어 보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참 정직하고 순진합니다.
그들은 자신과의 약속도 잘 지키며 성실합니다.
도덕적이고 다른 사람에게 피해주는 것을 굉장히 싫어합니다.
예의를 잘 지키고 부드러운 말을 하며 분노할 때 잘 참으며 절제합니다.
심지어 남을 돕기 위해 물질을 사용하고 시간을 내어 봉사활동을 합니다.
완벽하진 않지만 세상에 있는 사람들 가운데 단연 돋보이는 인격자입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당신은 죄인입니다”라는 말을 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들 스스로 죄인임을 깨닫는 것 역시 어렵습니다.

누가 마더 테레사에게 “당신은 죄인입니다”라고 쉽게 말할 수 있겠습니까?

누가 아프리카 오지에서 자신의 인생을 모두 희생하면서 가난한 자를 돌보는 사람을
”죄인”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저도 그들에게 죄인이라고 담대하게 말할 자신이 없습니다.
만약 제가 제 기준을 가지고 죄를 말한다면 말입니다.

인간의 문제는 각각 자기 기준을 가지고 산다는데 있습니다.
내가 볼 때 나는 괜찮은데?
내가 볼 때 나는 그렇게까지 죄인은 아닌데?
내가 볼 때 나는 이 정도면 잘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모든 판단의 기준이 바로 나라는데 있습니다.
베드로는 우리가 각각 “양처럼 길을 잃은 자들”이었다고 말합니다 (벧전 2:25).

하나님의 절대적이고 변하지 않는 기준이 아닌
우리 각자의 기준으로 정하는 모든 것에는 혼란과 혼동이 있습니다.

누가 절대적인 기준을 제시할 수 있겠습니까?
오직 하나님뿐입니다.

도둑과 살인자, 강간범들이 모여서 누가 의인인지 논한다고 생각해보십시오.
그들의 기준에 따르면 각자 자기가 더 의인이라고 말합니다.
도둑은 사람을 죽이지 않았고 물건만 가져갔으니 자신이 가장 의인이고
살인자는 사람을 우발적으로 죽였으나 술에 취해서 제정신이 아니었으니
자신이 가장 억울하다고 말하고
강간범은 상대방이 먼저 유혹을 했다고 주장하며 자신은 사실 피해자라고 합니다.
그들은 각자 자신이 가장 의인이라고 주장하지만
법은 그들을 다 죄인이라고 규정하고 있지 않습니까?

사람은 자기 생각으로 선과 악을 안다고 생각합니다.
사람은 자기 기준이 절대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사람을 지으신 분, 만물을 다스리시는 분,
법을 만드시고 법대로 심판하시는 분은 오직 한 분 하나님이십니다 (약 4:12)

그래서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잘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사실 교만의 문제를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이것은 정말 무서운 일입니다.

자신이 하나님의 자리에 앉아 있는 것입니다.
내가 무엇이 심각한 죄이고 무엇이 지어도 괜찮은 죄인지 정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내 기준이 절대적이며 내가 판단할 때 나는 큰 문제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당신이 큰 문제 없는 괜찮은 인생을 살고 있었다면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내려오실 이유가 전혀 없었습니다.

당신은 무고한 하나님의 어린양, 예수의 보혈로 씻어야만 깨끗해질 수 있을 만큼
심각하고 더러우며 추악한 죄인입니다.

마음을 낮추어 자신의 참 모습을 바라보게 해달라고 구하십시오.
겸손히 자신을 살피고 하나님의 기준으로 나를 바라보고
내가 얼마나 그곳에서 멀리 떨어진 자인지 현실을 직시하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기준입니다.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마 5:48)

“온전하라”는 명령어는 영어로 “Be perfect”입니다. 한 마디로 “완벽하라”는 명령입니다.

적당히 의롭게 살라는 것이 하나님의 기준이 아닙니다.
이 정도면 괜찮지 않을까? 정도가 하나님의 기준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기준은 “완벽함”이며 그 완벽함의 정도는 “하나님의 완벽하심”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기준을 가지고
당신이 스스로 의롭다고 생각한다면
당신은 이렇게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나는 하나님처럼 완벽하다!”

이 세상 그 누가 하나님처럼 완벽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요한은 하나님은 빛이시며 그에게는 어둠이 조금도 없다고 하였습니다 (요일 1:5).
바울은 하나님이신 예수께서 죄를 알지도 못하셨다고 말합니다 (고후 5:21).

당신의 삶 속에 당신은 어두움을 조금도 발견하지 못하십니까?

마음으로 미워한 적이 한 번도 없습니까? (마 5:22)

이성을 보고 음욕을 품어본 적이 한 번도 없습니까? (마 5:28)

이웃이나 원수를 내 모든 것을 내어줄 만큼 사랑했습니까? (마 5:44)

특별히 원수를 위해 기도하며 나를 괴롭히는 자를 사랑했습니까? (마 5:44)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십니까? (신 6:5; 막 12:30)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감사하며 사는 삶을 살고 있습니까? (롬 1:21)

만일 당신의 눈이 한 번도 죄를 범하지 않았고 손이 범죄 한 적이 없으며
발로 죄를 지은 적도 없다면 당신의 마음은 어떻습니까?

마음에 시기, 질투, 간사함, 분노, 의심, 불평…등 여러 가지 죄를 품어 본 적이 없습니까?

성경은 만물 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이 사람의 마음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렘 17:9)

마음에 조금의 악한 것도 존재하지 않으며
죄가 전혀 없는 하나님처럼 완벽한 삶을 사는 인생,
이것이 하나님의 기준입니다.

만약에 당신이 “그렇습니다! 내가 바로 그 기준을 만족시키는 사람입니다”
”내 안에 죄가 전혀 존재하지 않으며 나는 하나님처럼 완벽한 사람입니다”라고 말한다면
당신은 하나님을 거짓말쟁이로 만드는 것입니다 (요일 1:10).

로마서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롬 3:10-12)

당신은 아마 이렇게 물을지도 모릅니다.
”하나님처럼 완벽하진 않지만 그래도 저는 선을 많이 행했습니다!”
”선을 행하는 자가 없다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로마서 말씀은 이렇게 대답합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롬 3:23)

당신이 생각하는 선은 아마 가난한 사람에게 도움을 주는 것 정도 일 것입니다.
어쩌면 더 나아가 당신의 삶을 희생하여 고통 받는 사람들을 위해 내어 주는 것도 있을 것입니다.
당신의 모든 인생을 쏟아 부어 국가 혹은 민족을 위해 바치는 것도 선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성경도 이웃 사랑과 섬김의 덕을 가치 있는 것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그것이 우리에게 “선”을 가져다 주지 못합니다.

우리 목숨을 바쳐도, 모든 재물을 바쳐도 “선”은 얻을 수 없습니다.
우리의 인생을 이 “선”을 얻기 위해 아무리 노력해도
우리는 얻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선”은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완벽한 기준을 만족시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그만 재판자의 자리에서 내려 오십시오.
피조물이면서 만 왕의 왕이신 하나님의 자리에 앉아서
자기가 세운 기준으로 이 정도면 의롭게 살고 있다고 판결하지 마십시오.

당신이 서야 할 자리는 심판자 앞에 있는 죄인의 자리입니다.
겸손히 당신의 자리에 서서
만물의 심판자가 읽어주는 법조문을 진지하게 들어보십시오.

그분이 말씀하시는 기준이 얼마나 높은지 귀 기울여 보십시오.
그 법에 당신 스스로를 비추어 보십시오.
얼마나 당신이 그 법의 기준에서 먼 죄인 중의 괴수인지 깨닫게 되시기 바랍니다.

당신은 유죄이며 당신은 사형의 판결을 받았으며 형량은 영원하다는 것을
깨닫고 애통하시기 바랍니다.
가슴을 치며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에 통곡하시기를 바랍니다.
”나를 불쌍히 여겨주소서!”라고 부르짖으시기 바랍니다.

그러한 자들에게 하나님은 이렇게 희망을 주셨습니다.

슬퍼하며 애통하며 울지어다
너희 웃음을 애통으로, 너희 즐거움을 근심으로 바꿀지어다
주 앞에서 낮추라 그리하면 주께서 너희를 높이시리라 (약 4:9-10)

Grace to Korea의 자문 목회자이시며 고정 기고자로 봉사하고 있습니다.
The Master’s Seminsry에서 M.Div와 Th.M(신약전공) 과정을 마친 후, 현재 유평교회의 담임 목회자이며,  Master’s University에서 성경적 카운셀링의 대학원 과정을 마친 아내 김 선미 자매와 2008년 결혼하였습니다. 저서로는 “야고보서 강해’, “정직한 크리스챤의 질문들”이 있습니다.